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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만 걷는 천재스타-94화 (94/150)

94화

94화

“벽 너머에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있단다. 절대, 그 벽을 넘어서는 안 돼. 절대!”

할머니 역의 성우 김윤경이 곧 겁을 주듯 강한 목소리로 하준과 호흡을 맞췄다.

김윤경의 나이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는데, 목소리는 정말 할머니 목소리였다.

“정말요?”

하준이 금세 위축된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정말이지, 그럼.”

“근데 에디 아저씨가 젊었을 때 벽 너머에 다녀왔다던데요? 벽 너머에 무시무시한 괴물이 있었는데, 어떻게 살아 돌아온 걸까요?”

“그놈은 거짓말쟁이야! 괜히 너희들을 놀리려고 이야기를 꾸며내는 것이지. 절대 그놈 말을 믿지 말거라. 벽 너머에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있고, 우리는 이 벽 안에 있을 때만 안전해. 알겠니?”

“네······ 알겠어요.”

하준은 할머니의 말에 약간의 의구심을 드러내며 ‘네’라고 답한 후, 기대감이 꺾여 시무룩한 말투로 ‘알았어요’ 대사를 읊었다.

이건 심사위원들이 딱 원한 바로 그 감정이었다.

목소리만으로 감정을 살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하준은 그 쉽지 않은 걸 쉽게 해냈다.

“오, 정말 잘하는데요? 전문 성우 못지않아요.”

상대 역을 해준 성우 김윤경이 가장 먼저 감탄하며 말했다.

김윤경의 말에 다른 심사위원들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송나현 대표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아주 좋았어요! 캐릭터에도 딱 어울리고, 연기도 좋고요.”

“감사합니다!”

하준은 활짝 웃으며 배꼽인사를 했고, 최 대표 역시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하준을 바라보았다.

“자, 그럼 이번에는 노래 한 번 들어볼까요? 이쪽으로 따라와요.”

송나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앞장을 섰고, 다른 심사위원들과 하준, 최 대표도 그 뒤를 따랐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은 녹음실.

하준은 곧바로 녹음 부스로 들어갔고, 심사위원들과 최 대표는 컨트롤 룸 소파에 앉았다.

“반주 틀어줘요.”

송나현이 프로듀서에게 지시했다.

하준은 헤드폰으로 반주 소리가 흘러나오자, 곧 마이크에 대고 노래를 시작했다.

하준이 부를 노래는 애니메이션 제목과 같은 ‘담을 넘어서’라는 곡으로, 주인공 글렌이 담을 넘어 새로운 모험을 떠날 거라고 다짐하는 노래였다.

“우리 마을은 너무 좁아~ 내 큰 꿈을 담기에는~ 언제나 궁금했어~ 저 담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제 그 때가 왔지~”

하준은 기대감 가득한 목소리로 명랑하게 노래를 불러나갔다.

최 대표는 하준의 노래를 당연히 미리 들어봤는데, 듣자마자 이건 딱 디즈리가 원하는 목소리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힘 있고 청량한 목소리.

하준은 감미롭고 부드러운 노래도 잘했지만, 의지가 드러나는 강렬한 노래도 잘 불렀다.

게다가 하준의 노래는 연기의 대사에 멜로디만 붙여 부르는 것처럼 감정이 살아 있었다.

최 대표는 슬쩍 옆에 앉은 심사위원들의 표정을 살폈다.

‘그럼 그렇지. 다들 반할 수밖에 없지. 후후.’

심사위원들은 각자 다른 표정이었다.

입을 쩍 벌린 사람,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감은 사람, 노래에 홀린 듯 멍한 사람 등 다들 다른 표정이었지만, 모두 하준의 노래에 분명 깊은 감명을 받은 모습이었다.

“담을 넘어서~ 난 내 길을 찾아 떠날 거야~ 담을 넘어서!”

하준이 노래를 마치자, 이번에는 심사위원들의 기립 박수가 터져나왔다.

최 대표는 얼른 심사위원들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신나게 박수를 따라 쳤다.

“너무 좋네, 너무 좋아.”

“노래까지 정말 완벽하게 준비해 왔는데요?”

“목소리가 참 청량하고 좋네.”

“감정도 잘 살리고. 애가 강약을 알아요.”

여기에 프로듀서까지 합세했다.

“이대로 녹음해도 될 정도예요. 와, 애가 어쩜 저렇게 노래를 잘하죠?”

다들 입이 마르게 칭찬을 하는 가운데, 하준이 컨트롤 룸으로 돌아왔다.

송나현은 활짝 웃으며 하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준 군, 글렌 더빙, 맡아줘요.”

“와! 정말요? 감사합니다!”

하준은 기뻐하며 송나현의 손을 덥석 잡았고, 송나현은 다른 손으로 하준의 손을 포개어 잡고 다시 한번 부탁했다.

“잘 부탁해요. 뭐, 말 안 해도 너무 잘하겠지만, 그래도.”

“네, 정말 열심히 할게요.”

하준은 행복한 미소를 지었고, 최 대표는 만세를 부르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최 대표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운전을 하다가 하준에게 당부했다.

“하준아, 아까 계약서에 있던 비밀 유지 조항 봤지? 애니메이션 공개되기 전에는 비밀로 해야 돼.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아빠한테도요? 근데 벌써 말했는데······.”

하준이 화들짝 놀라 물었다.

“하하, 아빠한테는 말해도 되지. 부모님께는 내가 비밀 지켜 달라고 따로 말씀드려 놓을게. 우리 하준이 목소리로 더빙된 애니메이션 얼른 보고 싶다!”

최 대표는 한껏 들떠서 신나게 차를 몰았다.

***

딩동, 딩동.

“어? 애들 왔나 봐!”

하준이 초인종 소리에 월패드로 다가가 얼굴을 확인했다.

월패드에 보이는 애들은 공정환과 서희수였다.

하준은 통화를 누르고 말했다.

“얘들아, 잠깐만. 지금 나갈게.”

하준은 얼른 가방을 멨고, 최선희와 윤기철도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하준 가족이 현관으로 내려가자, 공정환과 서희수가 우렁차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아줌마, 아저씨.”

두 사람은 이른 아침임에도 피곤한 기색 없이 무척 신나는 표정이었다.

“그래, 안녕. 얘들아, 옷 챙겨 왔니?”

“네!”

두 친구는 빵빵한 가방을 두드리며 경쾌하게 대답했다.

“좋아, 이쪽으로 따라오렴. 차 이쪽에 있어.”

최선희와 윤기철은 삼총사를 태우고 시동을 걸었다.

“안전벨트 다들 잘 맸지?”

“네!”

“그럼 출발!”

“출바알!!”

삼총사가 온 힘을 다해 출발을 따라 외쳤다.

이들이 이렇게 신난 이유는 지금 아이스링크장에 스케이트를 타러 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준아, 너 스케이트 처음 타본댔지?”

공정환이 물었다.

“응, 아이스링크장도 처음 가봐. 너네는 타 봤으니까 잘 타겠다. 그치?”

“난 한 번밖에 안 가봐서 아직은 잘 못 타. 근데 희수는 잘 탄대.”

“와, 정말? 그럼 희수가 우리 가르쳐주면 되겠다. 희수야, 가르쳐 줄 거지?”

“그래! 네 덕분에 사람 없을 때 편하게 놀 수 있을 테니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나만 믿어.”

서희수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이들이 출발한 시각은 아침 7시.

원래 세계랜드에 있는 아이스링크장은 오전 11시에 오픈이었는데, 세계랜드에서 특별히 하준의 스케이팅 연습을 위해 오전 8시부터 11시까지 아이스링크장을 열어주기로 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세계제과에서 하준에게 제안한 망고빙수 광고 때문이었다.

광고 컨셉 상 스케이트를 타는 장면이 있었는데, 하준이 스케이트를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다고 해서 연습을 해볼 수 있도록 세계랜드의 아이스링크장을 이용하게 해준 것이다.

또한 세계랜드 측에서는 친구들 몇 명과 함께 방문해도 괜찮다고 허락해 주어서 이렇게 친구들과 스케이트를 타러 가게 되었다.

“우리 근데 셋이 같이 놀러 가는 건 처음이다! 너무 재밌을 것 같아.”

서희수는 삼총사가 함께 놀러간다는 사실 자체가 무척 즐거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공정환은 별로 특별할 건 없다는 듯 대꾸했다.

“우리 촬영장에서 맨날 같이 놀잖아. 전에 액션 연습이랑 수영도 같이 배웠고.”

“야, 그건 일이지, 일. 지금은 완전 놀러 가는 거고.”

“근데 하준이 광고 때문에 연습 삼아 가는 거면 일하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으이구, 내가 진짜 너랑은 말이 안 통해. 하준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냐?”

서희수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치는 시늉을 하며 하준에게 물었다.

“아니, 나도 우리 셋이 처음으로 놀러 가는 거라서 너무 신나는데? 나 친구들이랑 같이 놀러 가는 건 처음이거든!”

“역시, 하준이랑은 말이 좀 통한다니까. 정환이 얘는 너무 애가 뭐랄까······ 답답해. 선비같이 말이야.”

“그래서 이청모로 발탁된 거잖아. <신비종>에 꼭 필요한 인재야. 아마 우리 중에 쟤가 실제 싱크로율이 제일 높을걸?”

서희수의 직설에 공정환이 조금 기분이 상할 뻔했지만, 하준의 말에 금방 마음이 풀렸다.

그러더니 서희수를 놀렸다.

“근데 나도 나지만, 얘도 싱크로율 장난 아니야. 성질이 아주······ 뒷말은 생략한다.”

“쳇, 내가 촬영하느라 캐릭터에 너무 빠져 있어서 그런 거거든?”

공정환과 서희수는 <신비종>의 캐릭터들처럼 실제로도 이렇게 자주 투닥거렸다.

그리고 그 중재는 항상 하준 몫이었다.

그래도 하준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이런 과정 속에서 점점 더 끈끈해지는 우정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조잘거리며 가다 보니 하준의 차는 금세 세계랜드에 도착했다.

세계랜드 입구에서는 미리 하준 일행을 안내해줄 직원이 대기하고 있었다.

“오, 안녕하세요. 삼총사 여러분, <신비종> 재밌게 봤어요. 반가워요!”

안내 직원은 악수로 인사를 건네더니 곧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윤기철 부부와 삼총사는 안내 직원을 따라 아이스링크로 향했다.

그런데, 아이스링크 매표소 앞에 뜻밖의 인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준아!!”

“어? 김유나?”

바로 세계그룹 부회장의 딸 김유나였다.

그녀는 하준을 보자마자 반갑게 달려왔다.

“안녕!”

“어어, 안녕. 근데 넌 여기 어떻게······?”

하준이 갑자기 나타난 김유나에 어안이 벙벙해서 물었다.

“너 스케이트 한 번도 안 타봤다며. 그 얘기 듣고 가르쳐주려고 왔지. 난 피겨스케이팅 하려고 좀 배웠었거든.”

“와, 피겨스케이팅도 배웠구나! 근데 나 스케이트 한 번도 안 타봤다고 너한테 얘기한 적 없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알았어?”

하준이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김유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은 없었기에 물었다.

“호호, 넌 참 뭘 모르는구나? 우리 아빠가 세계그룹 부회장이잖아. 여긴 세계랜드고, 네 광고 제안한 곳은 세계제과. 이제 알겠지?”

“아······ 그렇구나!”

“귀여워!”

하준의 깨닫는 표정이 귀여웠던 건지, 아니면 하준의 모든 표정이 귀여운 건지, 김유나는 두 손을 부르르 떨며 하준이 귀여워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때, 공정환과 서희수가 끼어들었다.

“저기······.”

“하준아, 어떻게 된 거야?”

공정환은 김유나의 눈치를 보았고, 서희수는 김유나를 경계하며 하준에게 물었다.

“아, 전에 우리 <신비종> 책 사인회 때 봤지? 이쪽은 김유나, 나랑 동갑이고. 이쪽은 공정환, 서희수. 우린 삼총사라서 서로 친구하기로 했는데, 사실 희수는 우리보다 한 살 많아.”

하준이 소개하자, 김유나는 반가워하며 먼저 인사했다.

“안녕, 정환아? 희수 언니, 안녕! 나 <신비종> 팬이야. 전에 사인도 받으러 갔었고. 오늘은 하준이 스케이팅 좀 가르쳐 주려고 왔어. 같이 놀아도 괜찮지?”

공정환은 당연히 별 상관 없었지만, 하준의 스케이팅을 가르쳐주기로 했던 서희수는 뭔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뭐, 같이 놀아도 돼. 근데 나도 스케이팅 잘 타서 하준이는 내가 가르쳐 주기로 했어.”

“난 선생님한테 배웠는데, 언니는 혼자 탄 거 아니야?”

“혼자 탔지만, 나 진짜 잘 타거든?”

두 사람은 서로를 째려보며 신경전을 벌였다.

하준은 난감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다가 중재안을 내놓았다.

“내가 두 사람 다한테 배울게. 한 명씩 가르쳐줘. 그럼 되잖아. 응?”

일단은 지켜보고 있던 윤기철과 최선희도 얼른 끼어들었다.

“그래, 그럼 되지. 자자, 이제 스케이트부터 신고 보호장비 착용하고 아이스링크로 들어가자.”

김유나와 서희수는 새침한 표정으로 스케이트와 보호 장비를 착용했다.

가장 먼저 채비를 마친 김유나는 하준에게 몸을 먼저 풀겠다며 아이스링크로 바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서희수도 질 수 없다는 듯 곧장 아이스링크로 향했다.

김유나는 자연스럽게 몸을 풀더니, 링크 바깥에서 채비 중인 하준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하준아, 잘 봐!”

그러자, 서희수도 김유나를 따라 외쳤다.

“나도 잘 봐!”

두 사람은 하준에게 보여주기 위해 아이스링크를 부드럽게 가르며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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