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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만 걷는 천재스타-93화 (93/150)

93화

93화

“잘 지내요. 유나가 매일 연락하거든요.”

하준이 솔직하게 답했다.

“와, 정말? 매일? 그럼 둘이 여자친구, 남자친구 이런 거야?”

우 감독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우 감독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애들이 유치원 때부터도 사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 감독의 딸이 초등학교 5학년인데,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매 학년마다 남자친구가 있었고, 현재 5번째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거의 한두 달 만나다가 말긴 했지만 말이다.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친구예요.”

하준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우 감독이 의외란 듯 다시 물었다.

“유나가 하준이 엄청 좋아하던데, 사귀자고 안 해?”

“사귀자고 안 할 거래요.”

“응? 사귀자고 한 게 아니라, 사귀자고 안 할 거라고 했다고? 그게 무슨 말이지?”

우 감독은 이해가 안 간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옆에 앉은 차 작가는 귀를 쫑긋 세우고 두 사람의 대화를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좋아하는데 사귀진 않을 거래요. 대신 20살에 결혼하자고 하더라고요.”

“뭐? 사귀진 않고 바로 결혼? 하하. 유나도 참 특이하네. 그래서 하준이는 뭐라고 했는데?”

“저는 당장 내일의 미래도 모르는데, 어떻게 20살 일을 미리 결정할 수 있냐고 모르겠다고 했어요.”

“와······.”

“오······.”

하준의 어른스러운 말에 우 감독과 차 작가가 감탄했다.

“그랬더니?”

“멋있대요. 그게 끝이에요.”

하준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하준은 김유나를 좋아하긴 했지만, 아직 사귄다는 의미와 결혼의 의미를 명확히 알 수 없었다.

또한 하준은 엄마, 아빠도 좋아했고, 절친인 공정환, 고우주, 서희수도 좋아했다.

“역시 하준이는 다르네. 나였으면 당장 공증받자고 했을 텐데. 아하하.”

우 감독이 웃으며 농담하자, 차 작가도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 감독님도 참! 하준이가 그런 걸 어떻게 알아요?”

두 사람이 함께 웃는 걸 본 하준은 눈을 깜빡거리며 물었다.

“공증이 뭔데요?”

“아, 그게, 법적으로 하는 약속 같은 건데, 넌 아직 어려서 몰라도 돼. 아무튼, 하준아, 나중에 유나랑 결혼하게 되면 꼭 우리 초대해줘야 된다?”

“아직 모르는데요, 결혼할지 말지······.”

“그러니까, 아주 만약에 결혼하게 되면 말야. 아니다, 그냥 나중에 하준이 네가 결혼하게 되면 우리 초대해줘. 알겠지?”

“아, 네. 그럴게요.”

하준은 자신이 언젠가는 결혼을 하게 될 테니까, 이 정도는 약속해줄 수 있었다.

잠시 후, <너와 나의 연결고리>의 남녀 주연인 한강필과 진유주가 도착했다.

두 사람은 우 감독과 차 작가에게 인사한 다음 곧바로 하준을 끌어안았다.

“우리 아들! 한 달 만에 보네!”

“너무 보고 싶었어. 잘 지냈어?”

두 사람은 드라마가 끝났음에도 여전히 하준을 아들처럼 대했다.

“네, 엄마, 아빠도 잘 지내셨죠? 아빠는 새 드라마 들어가신다는 거 봤어요. 방영하면 꼭 챙겨볼게요.”

“오, 고마워. 하준이 <신비종> 시즌 2 곧 촬영이라며? 아빠도 하준이 나오는 거 다 챙겨볼게.”

“엄마는 하준이 너튜브 나오는 것도 봤어. 우리 하준이는 못하는 게 없더라. 말도 잘하고, 떡도 잘 만들고!”

“헤헤, 감사합니다.”

그때, 조감독이 고깃집의 대형 TV를 틀며 큰소리로 외쳤다.

“자, 이제 마지막화 시작합니다. 주목해주세요!”

한강필과 진유주는 마지막 방송 시청을 위해 얼른 우 감독과 최 작가의 맞은편에 앉았고, 곧 방송이 시작되었다.

<너와 나의 연결고리> 마지막화에서는 한강필과 진유주가 오해로 인해 헤어지게 되었는데, 하준이 그 오해를 풀어주어 마침내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모두가 행복한 가운데, 그동안 진유주를 ‘아줌마’라고 불렀던 하준이 마지막에 진유주에게 ‘엄마’라고 부르며 드라마는 끝이 났다.

“와아!”

종방연에 모인 스태프들과 배우들은 방송이 끝나자, 환호와 박수로 종방을 축하했다.

그때, 우 감독이 자리에서 일어섰고, 주변은 일순간에 조용해졌다.

우 감독은 벅찬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다들 너무 수고 많았습니다! 우리 드라마가 잘 된 건 모두의 노력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대본, 좋은 배우들, 좋은 스태프들 덕분에 좋은 드라마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제 다들 흩어지겠지만, 다음에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파이팅합시다. 고생했습니다!”

우 감독에 이어 차 작가와 한강필, 진유주도 각자 종영 소감을 말했고, 마지막으로 하준의 차례가 되었다.

“이번 작품은 제가 했던 드라마 중에서 가장 오래 촬영했던 거라 정이 많이 들었어요. 감독님, 스태프분들, 배우분들 모두 너무 잘 해주셔서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 다른 작품에서 또 만났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하준이 종방연에 모인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보며 말한 후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사실 하준은 촬영 마지막 날에는 그래도 종방연이 있으니 다시 한번 만날 거라서 마지막인 것 같은 느낌이 별로 안 들었었다.

그런데 오늘은 <너와 나의 연결고리> 팀을 만나는 게 진짜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뭔가 서운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준의 글썽글썽한 눈을 본 진유주가 덩달아 눈물을 훔치며 하준을 끌어안았다.

“하준아, 울지 마. 다들 다시 볼 날이 있을 거야.”

“네······ 흑흑. 그래도 슬퍼요······.”

하준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자, 종방연장 여기저기서 훌쩍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 감독도 코가 시큰거리는지 코를 찡긋거리더니 스태프들을 향해 외쳤다.

“난 지금까지 했던 작품 중에 이번 작품이 제일 호흡도 좋고 즐겁게 촬영한 작품이야. 우리 하준이 덕분에 분위기가 항상 화기애애하고 좋았지. 안 그래?”

“네, 맞아요!”

“귀여운 하준이 덕분이에요!”

“하준이 덕분에 맛있는 것도 많이 얻어먹어서 힘도 많이 얻었고요!”

“하준아, 고마워!”

“울지 마, 하준아. 하준이가 울면 다들 마음 아파. 응?”

스태프들과 배우들은 단체로 하준을 달래주었다.

하준은 그들이 무척 고마워서 눈물을 꾹 참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형, 누나, 삼촌, 이모들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그래, 하준이도 건강하고 행복해!”

종방연에서 <너와 나의 연결고리>팀은 서로를 축복해주며 마지막 만남을 마무리 지었다.

***

얼마 후, 하준은 디즈리 애니메이션 더빙 오디션을 위해 디즈리 컴퍼니 코리아 사무실로 향했다.

최원상 대표는 디즈리가 워낙 큰 회사이기도 했고, 하준이 더빙 오디션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서 직접 하준을 데리고 갔다.

똑똑.

최 대표는 회의실 문을 두드린 뒤 하준의 손을 꼭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심사위원으로 보이는 사람들 4명이 일렬로 앉아 있었는데, 그들 중 2명은 여자, 나머지 2명은 남자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하준의 소속사 대표 최원상입니다.”

“안녕하세요. 하준입니다.”

두 사람은 심사위원들의 정면에 가서 인사했다.

“아, 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디즈리 컴퍼니 코리아 대표 송나현이에요.”

송나현이 자신의 명함을 건네며 인사했고, 나머지 세 사람은 가볍게 묵례만 했다.

“먼저 이렇게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준이가 더빙 제안을 듣고 무척 기뻐했어요. 하준이가 디즈리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거든요.”

최 대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준은 꾸벅 감사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하준의 명랑한 모습에 심사위원들은 빙긋 웃었고, 송나현이 곧 입을 열었다.

“하준 군이 뮤지컬도 했었고, 연기도, 노래도 다 잘하니까 더빙을 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물론 무엇보다 의 주인공 이미지와 목소리가 잘 맞아 보였고요.”

은 한국 제목으로는 <담을 넘어서>였고,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마을에 살던 한 소년이 담을 넘어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였다.

“자, 그럼 연기 한 번 볼까요?”

송나현의 말에 최 대표는 얼른 옆으로 빠졌고, 하준만 심사위원들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송나현이 하준을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의아해하며 물었다.

“근데, 대본은 안 가져 왔어요?”

송나현은 드라마 계통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하준의 소문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네. 다 외워서 안 가져왔어요.”

“다 외웠다니, 주인공 ‘글렌’의 대사를 벌써 전부 외워왔단 말이에요?”

송나현이 화들짝 놀라며 다시 물었다.

송나현의 옆에 앉아 있던 다른 심사위원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원래 대본을 주는 건 전체 내용을 보고 캐릭터를 파악하라고 주는 것이지 오디션에 대사를 다 외워오라고 주는 것이 아니었다.

보통은 대본 중에서 중요한 씬 몇 개를 표시해서 그걸 연습해 오라고 한 뒤, 그 중에서도 한두 개를 골라 연기해보라고 한다.

“네······.”

하준이 심사위원들이 너무 놀라 하자, 살짝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아니, 아직 역할이 확정 난 것도 아닌데······. 흠, 뭐, 그건 이 작품을 너무 하고 싶다는 얘기겠죠?”

송나현은 긍정적으로 해석해서 하준에게 확인했다.

하준은 대본을 한 번 보기만 해도 저절로 외워져서 외운 것이지만, 이 작품이 매우 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기에 그렇다고 답했다.

그런데 그때, 송나현의 옆에 앉은 남자가 송나현에게 뭐라고 속닥였다.

그러자 송나현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하준에게 말했다.

“음, 근데 그래도 대본은 가져왔어야 될 텐데······. 더빙은 자기 대사만 다 외우고 있다고 다 되는 게 아니거든요. 장면을 보면서 대사를 맞춰야 하고, 또 다른 캐릭터의 대사도 알아야 자기 대사를 할 수 있기도 하고요. 자기 대사 다 외웠다고 대본을 안 가져온 건 실수한 것 같아요. 그래도 지금 어쩔 수 없으니까, 여기 대본 빌려줄게요.”

심사위원들도 대사를 보면서 연기를 확인해야 했기 때문에 그들의 앞 테이블에는 대본이 올려져 있었다.

그래서 송나현은 그 중 하나를 집어 하준에게 내밀었다.

“아······ 괜찮아요. 전 전체 대본을 통째로 외웠거든요. 뭐든 말씀만 해주세요. 연기해볼게요.”

하준의 말에 심사위원들은 경악했다.

지금까지 하준처럼 대본을 통째로 다 외웠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물론 더빙은 대사를 다 외워야 할 필요는 없었지만, 어쨌든 어린 아이가 그 많은 대사들을 전부 외웠다는 사실만으로 심사위원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 배우들은 원래 대본을 다 외워서 해야 하니까 외우는 걸 엄청 잘하나 봐요. 그럼, 일단 봅시다. 근데 내가 몇 씬이라고 하면 거기 대사도 할 수 있는 거예요?”

“네, 할 수 있습니다. 제 머릿속에 대본이 그대로 들어 있거든요.”

“와······ 그럼······.”

하준처럼 대본을 다 외울 재주는 없는 송나현은 대본을 들춰 원하는 장면을 선택했다.

그리고 심사위원 뒤쪽 화면에 그 장면의 애니메이션 영상을 띄웠다.

“자, 그럼 시작할게요. 여기 애니메이션 영상을 보면서 연기하면 돼요. 할머니 역은 여기 김윤경 성우님이 해주실 거고요.”

송나현이 심사위원 중 맨 끝에 앉은 사람을 가리켰다.

“아, 네!”

하준은 자신 있게 답했고, 영상이 재생됨과 동시에 연기를 시작했다.

심사위원들은 한껏 기대하며 하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할머니, 저 벽 너머엔 뭐가 있어요?”

지금까지의 차분한 목소리와는 조금 다른 명랑하고 들뜬 목소리.

영상 속 글렌의 표정과도 딱 맞아떨어지는 억양의 대사였다.

‘오, 딕션도 좋고.’

‘목소리도 좋고.’

'연기도 좋고.'

‘영상에도 잘 맞춰!’

하준은 첫 대사부터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확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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