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90화
“세환이 쟤가 사실 보육원에서 자랐거든.”
“정말요?”
“응, 쟤는 입양된 건 아니라서 지금까지 혼자야. 요리사도 보육원에서 맛있는 거 잘 못 먹어서 그 한 풀겠다고 된 거야.”
“아······.”
박병우의 설명에 하준은 물론 윤기철과 최선희도 마음이 아렸다.
하준은 특히 보육원 시절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오세환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지 알 것 같았다.
자기는 그걸 조금만 겪고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오세환은 성인이 될 때까지 겪은 것이다.
“그래도 참 착한 놈이야. 세상이 자꾸 시련을 줘서 그게 친구로서 화가 나지만 말이야.”
박병우가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그런 걸 보니 박병우는 오세환처럼 보육원 출신은 아닌 것 같았다.
“두 분은 어떻게 친구가 되신 거예요?”
“아, 우린 중학교 동창이야. 중1 때부터 절친이었지. 그래서 세환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다 아는 거고.”
박병우가 간단하게 답했다.
그러고는 당사자가 아닌데 너무 자세히 말하는 건 실례일 것 같다면서 자리를 떠났다.
***
얼마 후, 하준은 촬영이 일찍 끝나 저녁에 시간이 비게 되었다.
오세환은 요즘 일을 쉬고 있어서 아무 때나 괜찮다며 하준에게 한 돈가스 가게로 오라고 했다.
하준은 김유택의 차를 타고 오세환이 말한 돈가스 가게로 향했다.
“하준아, 그래도 낯선 사람이니까, 내가 동행하는 게 좋겠어.”
김유택은 자신의 배우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데려다만 주지 않고 함께 있겠다고 했다.
하준은 자신이 어리니 김유택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세환에게 양해를 구했고, 오세환은 김유택 몫의 돈가스도 준비하겠다며 허락했다.
“행복 돈가스. 여긴가 봐.”
김유택이 ‘행복 돈가스’ 앞에 일단 차를 세웠고, 하준과 김유택은 돈가스 가게로 들어갔다.
“세환이 형! 저 왔어요.”
“어? 하준아!”
하준이 주방 쪽을 향해 외치자, 오세환이 요리 준비를 하다가 비닐장갑을 후다닥 벗고 주방에서 나왔다.
“와 줘서 너무 고마워.”
오세환은 하준의 볼을 쓰다듬으며 활짝 웃었다.
“제가 감사하죠. 제가 좋아하는 돈가스 해주시는 거니까요.”
“그렇게 생각해 주면 난 더 고맙고. 아, 안녕하세요, 매니저님.”
오세환이 깍듯이 인사하며 악수를 청했다.
김유택은 오세환의 손을 잡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하준이 매니저 김유택이라고 합니다. 근데 차는 가게 앞에 저렇게 대놔도 될까요? 가게를 다 막는 것 같아서요.”
“괜찮습니다. 그냥 두세요. 여기 장사 안 하거든요.”
“네? 왜요?”
김유택은 장사를 안 하는 가게에서 돈가스를 튀겨준다고 하니 의아해서 반사적으로 질문이 나갔다.
“아, 그게, 말하자면 긴데······ 일단 여기 앉으세요.”
오세환은 김유택과 하준에게 자리를 안내해주고 곧 따뜻한 차를 내왔다.
그러고는 맞은편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장사하다가 망했어요. 전 진짜 좋은 재료만 써서 재료비가 많이 드는데 그래도 돈가스 가격은 올릴 수가 없고······ 그러다 보니까 점점 팔아도 적자가 나더라고요. 그리고 음식 장사에 재료비만 있는 게 아니니까······ 임대료랑 관리비 등등 은근히 들어가는 게 많거든요.”
“아······ 그럼 매장도 넘기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매장은 남겨두셨어요?”
“이미 1년 계약을 한 상태라서요. 내놔도 안 팔려서 제가 그냥 만기까지 월세 내면서 있어야 해요.”
“아이고······.”
김유택은 안타까운 탄식을 내뱉었다.
하준은 박병우가 왜 세상이 자꾸 오세환에게 시련을 준다고 했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오세환은 괜찮다며 빙긋 웃었다.
“그래도 이 매장 그대로 둔 덕분에 제가 이렇게 하준이한테 돈가스도 만들어 줄 수 있잖습니까. 하하.”
“돈가스는 집에서 만들어 주실 수도 있잖아요. 월세가 비쌀 텐데······.”
하준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하준은 예전 양부모님이 월세 이야기를 많이 해서 월세 개념을 알고 있었다.
그러자 오세환이 머쓱해 하며 대답했다.
“우리 집에는 요리할 공간이 없거든. 아, 그리고 여기 매장에서 너튜브 영상도 찍고 그래. 요리하는 거 찍어서 올려보라고 병우가 카메라도 사줬거든.”
“너튜브 하세요?”
“응, 병우가 해보래서. 시간도 남고, 매장도 놀고, 그럼 너튜브가 딱이라나? 그래서 그냥 나 밥 먹을 때 요리하는 거 찍어서 올려보고 있어.”
“채널 이름 뭔데요?”
하준이 휴대폰을 꺼내며 물었다.
“아휴, 부끄러워. 시작한 지 한 달 조금 넘어서 구독자 100명도 안 돼.”
“그래도요. 구독자 한 명이라도 늘면 좋잖아요. 형 요리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아, 그래? 하준이가 궁금하다면야······ ‘오마카세환’이야. 병우가 지어줬어.”
하준은 이게 무슨 뜻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는데, 김유택은 어떤 단어 조합인지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요! 오마카세와 오세환의 합성어.”
“약간 어그로성 이름이죠. 사실 제가 오마카세를 보여주는 건 아니니까요. 초밥도 만들 줄 알긴 하지만 오마카세 할 정도는 안 되거든요.”
하준은 오마카세가 뭔지 몰라서 두 사람에게 물었다.
“오마카세가 뭐예요?”
“아, 뭐라고 설명해야 되지? 초밥이랑 회 같은 거 하나씩 주는 건데······.”
“······일식 코스 요리 같은 거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요?”
하준은 두 사람이 정확한 설명을 못 해주는 것 같아 휴대폰으로 ‘오마카세’를 검색해 보았다.
그러고는 곧 오세환에게 말했다.
“아! 제가 찾아보니까 오마카세는 일본어로 ‘맡긴다’라는 뜻이래요. 그런 의미에서, 주인에게 메뉴를 모두 맡겨서 주인이 주는 대로 먹는 식당을 이르는 말이 된 거고요. 그럼 채널 주인인 세환 형 마음대로 하고 싶은 음식 보여주는 것도 이 이름이랑 어울리는 거 아닐까요?”
“와! 진짜 그런 뜻이었어? 그럼 뭐 괜찮겠네! 찾아봐 줘서 고마워, 하준아.”
오세환은 자신의 너튜브 채널 이름에 의미를 부여해준 하준이 고마워 활짝 웃었다.
“아, 배고프지? 내가 얼른 돈가스 튀겨올게! 10분만 기다려.”
오세환은 후다닥 주방으로 달려갔고, 하준은 오세환의 너튜브 채널을 구경했다.
약 30여 개의 동영상이 있었는데, 조회수는 200을 넘는 게 없었다.
“음······.”
하준은 오세환을 돕고 싶었다.
부모님 없이 자라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 일인지 알고 있었기에 혼자서 열심히 노력하는 오세환이 안타까웠다.
하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형, 돈가스 만드는 건 안 찍어요? 너튜브에 안 올리는 거예요?”
“아, 그건 이미 올려서 안 올려도 돼. 돈가스 만드는 건 당연히 제일 처음으로 올렸거든.”
“아······ 그럼 좀 도와드릴까요?”
“아니야, 넌 손님으로 온 거야. 그리고 거의 다 해놔서 별로 할 것도 없어. 얼른 가서 앉아 있어.”
하준이 주방 너머를 보니 벌써 접시에 밥과 반찬 등은 담겨 있었고, 돈가스만 튀기면 될 듯했다.
하준은 일단 다시 자리로 돌아와 오세환의 너튜브 영상들을 계속 살펴보았다.
잠시 후, 오세환이 모듬 돈가스 3접시를 가져왔다.
모듬 돈가스에는 각기 다른 모양의 돈가스가 4개 올려져 있었고, 샐러드와 단무지, 김치도 조금씩 한쪽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밥 위에는 계란프라이도 올려져 있었다.
“우와아! 진짜 맛있을 것 같아요!”
하준이 군침을 흘리며 외쳤다.
“정말? 하하. 이건 치즈돈가스고, 이건 안심, 이건 등심, 이건 생선까스야. 자, 맛있게 먹어.”
오세환이 포크와 나이프를 건넸다.
하준은 포크와 나이프를 건네받은 후 잠시 멈칫하더니 대뜸 오세환에게 말했다.
“형 채널에 제 먹방 올려도 돼요? 이 돈가스 먹는 거 말이에요.”
“먹방? 네가 내 채널에 나와 주면 나야 너무 좋은데, 괜찮겠어?”
“당연하죠! 돈가스도 대접해 주시는데 그 정도는 해드려야죠. 아, 그럼 형이랑 저랑 나란히 앉아서 먹는 거 찍어요. 재밌겠다! 어떻게 하면 돼요? 저 너튜브는 한 번도 안 찍어봤거든요.”
하준의 영상이 너튜브에 올라간 적은 있지만, 하준이 직접 너튜브 영상을 올리기 위해 촬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아, 시청자들한테 설명하면서 하면 되는데, 잠시만.”
오세환은 카메라를 가져와서 설치하고 하준과 나란히 앉았다.
“내가 게스트 소개하듯이 해볼게. 저번에 병우가 와서 같이 요리한 적 있어서 한번 해봤어.”
“네, 전 일단 가만히 있을게요.”
오세환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더니 어색하게 말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돈가스 먹방인데요, 제가 하준 군에게 돈가스를 만들어 주고 싶어서 하준 군을 초대했습니다.”
오세환이 하준을 가리키며 소개하자, 하준은 양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하준입니다. 세환 형이 저 돈가스 좋아한다고 초대를 해주셨어요. 와, 여러분, 이거 보세요. 진짜 푸짐하죠? 이건 치즈돈가스, 이건 안심······.”
하준은 오세환이 설명해준 대로 돈가스들을 차례로 보여주며 설명했고, 부수적인 반찬들까지 귀엽게 소개했다.
오세환은 너무 능숙하고 자연스럽게 설명하는 하준을 놀란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조잘조잘 말하는 목소리도, 입도 너무 귀여워! 역시 하준이야!’
오세환은 하준이 편히 먹을 수 있도록 돈가스를 잘라주었고, 하준은 곧 돈가스 먹방을 시작했다.
바삭. 바삭.
“와, 이 바삭한 소리 들리세요? 엄청 바삭하고 맛있어요. 이 치즈 보세요. 너무 고소해요. 우와······.”
하준은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신나게 돈가스를 먹었다.
하준은 혹시 돈가스가 맛이 없더라도 장점을 찾아서 말해줘야지 했는데, 돈가스는 진짜 맛있었다.
고기는 부드럽고, 치즈도 고소하고, 튀김옷도 두껍지 않고 바삭하고.
그래서 하준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표현과 표정으로 맛을 표현해주었다.
김유택은 카메라 뒤쪽에서 돈가스를 먹으며 하준의 먹방을 구경했는데, 하준이 너튜브를 해도 참 잘하겠구나 싶었다.
설명도 잘하고, 목소리도 예쁘고, 먹는 모습도 너무 귀여웠기에.
오세환은 소리가 잘 들리도록 하준의 입 가까이에 마이크를 대주었다.
바삭한 돈가스 소리와 하준이 맛있게 고기를 씹는 촵촵촵 소리가 침샘을 자극했다.
‘하준이 진짜 맛있게 먹네!’
오세환은 하준이 잘 먹어줘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게다가 이렇게 먹방도 올리라고 찍어주니 정말 고마웠다.
“세환 형, 요리 진짜 잘한다요! 너무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하준은 접시를 싹싹 비우고는 엄지를 척 세우며 오세환의 돈가스를 칭찬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세환을 꼭 안아주며 인사했다.
“형, 초대해 주셔서 고마워요.”
오세환은 하준이 너무 다정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누군가 자신을 이렇게 다정하게 안아준 적은 처음이었다.
사실 오세환은 하준의 과거 이야기를 보고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박병우는 모르는 일이지만, 오세환 역시 파양을 경험했고, 다시 돌아온 보육원에서 오세환은 입양을 가기 전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하준이 파양을 당한 후 보육원으로 돌아가지 않고 윤기철을 만나 살게 된 이야기를 듣고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기뻤다.
자신은 하지 못한 일을 해낸 하준이 너무 멋지고 대단해 보였다.
그래서 오세환은 하준의 팬이 되었던 것이다.
“넌 정말 따뜻한 아이구나.”
오세환은 하준이 대담할 뿐만 아니라 참 따뜻한 아이라고 느끼며 하준을 꼭 끌어안았다.
오세환은 하준을 대접하고자 불렀는데, 오히려 오세환이 하준에게 위로와 도움을 받은 것 같았다.
촬영이 끝나고, 오세환은 하준에게 재차 감사인사를 했다.
“와 줘서 정말 고마워. 먹방 촬영도 고맙고. 다음에 언제든 돈가스 먹고 싶으면 와.”
“네, 그럴게요. 돈가스 진짜 맛있어서 조만간 또 먹고 싶을 것 같아요. 헤헤.”
하준은 오세환의 힘든 사정을 알기에 돈가스값을 주려고 했지만, 오세환은 한사코 거절했다.
초대해놓고 돈 받는 경우는 없다고 말이다.
“형, 그럼 다음엔 제가 맛있는 거 쏠게요. 그건 되죠?”
“그래. 그러자.”
하준은 다음을 기약하며 오세환과 헤어졌다.
하준이 돌아간 뒤, 오세환은 뒷정리를 하고 나서 곧바로 박병우를 호출했다.
“병우야, 하준이가 먹방 찍어주고 갔는데, 편집 좀 도와주라.”
-헐, 대박! 하준이가 먹방을 찍어주고 갔다고? 당장 갈게! 이거 너튜브 올리면 대박 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