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88화
삼총사가 인파를 헤치고 가는 동안에도 환호성은 그칠 줄을 몰랐다.
세 사람은 신기하면서도 고맙고 기뻤다.
이런 비슷한 상황을 많이 겪어본 하준이 먼저 주변 팬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해 주었고, 서희수와 공정환도 하준을 따라 이쪽저쪽으로 손을 흔들어댔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삼총사의 인사에 팬들은 더 크게 환호하며 좋아했고, 저마다 휴대폰 카메라를 들고 그들의 사진을 찍어댔다.
보안 요원들은 삼총사를 사인회가 펼쳐질 테이블로 데려다주었고, 주변에 딱 버티고 서 있었다.
세 사람은 각자의 이름이 적힌 곳에 나란히 앉았다.
“와, 난 애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어른들도 엄청 많다.”
공정환이 주변을 둘러보며 하준과 서희수에게 속닥였다.
“애들끼리만 이런 데 어떻게 오냐? 그리고 책도 부모님이 사줘야 하는 거잖아. 그니까 애들만큼 어른들도 많은 거지.”
“아······ 그렇네.”
서희수의 말에 공정환이 바로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하준의 생각은 달랐다.
“근데 부모님으로 보이는 분들 말고도 꽤 많은 것 같은데?”
“그런가? 아, 너네 팬카페 분들 아니야? 거기 20대 누나랑 형들 많던데.”
“팬카페 분들은 저기 모여 계신데, 다른 쪽에도 꽤 많은 것 같아. 근데 너 어떻게 알아? 우리 팬카페에 20대 누나랑 형들 많은지?”
“나도 가입했거든. 희수가 하자고 해서. 네가 요즘 뭐하는지 궁금하면 들어가 봐. 거기 아주 자세히 다 나오니까.”
공정환이 웃으며 말했다.
하준은 두 친구가 이렇게 자기한테 관심을 가져 주니 기분이 좋았다.
“고맙다. 그리고 미안해. 내가 자주 연락 못 해서.”
“에이, 우린 맨날 학교 끝나면 노는 게 일상이지만, 넌 바쁘잖아. 다 이해하지.”
“맞아. 너 잘나가면 우리도 뿌듯하고 좋아. 나 맨날 친구들한테 자랑하거든. 내 친구 하준이 인기 엄청 많다고 말이야.”
서희수와 공정환이 빙긋 웃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때,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 원작 도서의 작가인 주미연이 사인회장에 도착했다.
주미연은 삼총사를 보자마자 환한 미소를 띠며 달려오더니, 인사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세 사람을 와락 껴안았다.
“어머, 우리 아가들!”
“안녕하세요.”
삼총사가 인사하자, 주미연은 한 사람씩 눈을 맞추며 말했다.
“이번에 드라마 잘 찍어줘서 너무 고마워. 이거 때문에 수영도 배우고, 액션도 배우고 고생 너무 많이 했다고 들었는데, 진짜 수고 너무 많았어. 완성된 거 보니까 딱 내가 원한 주인공들이었단다.”
주미연은 고맙다고 인사하며 세 사람에게 선물을 건넸다.
“<신비종> 양장본이랑 너희들 이름표야.”
세 사람은 모두 <신비종> 책의 열혈 팬이었으니 양장본 선물만으로도 너무 기뻐했는데, 이름표를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름표는 <신비종>의 도술학교에서 목에 거는 명찰이었는데, 원래 극중에서는 나무에 이름을 새겨 사용했다.
그런데 주미연이 준비한 이름표는 금으로 만든 직사각형의 얇은 판에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거······ 진짜 금이에요?”
서희수가 동그래진 눈으로 물었다.
“응, 맞아. 나중에 금값 올랐다고 팔면 안 된다? 호호.”
“와······! 이렇게 의미 있는 이름표를 어떻게 팔아요? 반짝반짝 너무 예쁘기도 하고요. 감사합니다.”
“절대 안 팔 거예요!”
“감사합니다! 진짜 멋지네요.”
세 사람은 모두 당장에 황금 이름표를 목에 걸었다.
그들은 금메달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서 이름표를 만지작대며 활짝 웃었다.
잠시 후, 드디어 팬 사인회가 시작되었다.
팬 사인회는 양장본 구매 고객들 중 팬 사인회 티켓이 든 양장본에 당첨된 100명에게 사인을 해주는 것이었는데, 그들은 줄을 서서 사인을 받았다.
그 외에 당첨이 되지 않은 사람들은 아쉬워했지만, 삼총사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좋은지 팬 사인회 내내 주변에 몰려 있었다.
당첨된 사람들 중에는 아이들도 있고, 하준의 팬카페 회원들도 있고, 20대 청년들도 있었다.
아이들은 보통 부모님과 함께 동행해서 사인을 받아갔는데, 부모님들 역시 <신비종>을 좋아했다.
“우리 애들이 <신비종> 드라마 그거, 틈만 나면 보고 또 봐. 막내는 4살이라 안 데려왔는데, 그거만 틀어주면 얌전히 있어서 아줌마가 너무 편해. 호호.”
“아저씨도 어릴 적에 꿈이 구름 타고 날아다니는 거였거든. 애들 보니까 나도 같이 봤는데, 도술 부리는 것도 멋지고, 재밌더라. 시즌 2도 파이팅!”
“우리 딸이 하준이 팬이야. 말 잘 들으면 여기 오게 해준댔더니 얼마나 말을 잘 듣는지! 호호.”
부모님들은 아이들보다 더 말을 많이 하며 삼총사에게 친근하게 대해주었다.
덕분에 사인회 분위기는 편안하고 즐거웠다.
삼총사는 사인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악수도 해주고, 사진도 찍어 주는 등 다양한 팬서비스를 해주었다.
하준은 정성을 다해 붓펜으로 사인을 해주었는데, 그러다 반가운 얼굴도 만났다.
“어? 유나야!”
“안녕, 하준아.”
세계그룹 부회장의 막내딸 김유나는 수줍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와, 너 당첨된 거야?”
“응, 당연하지. 너 요즘 외부 촬영이 더 많아서 우리 집에 잘 안 오잖아. 그래서 한번 와봤어.”
김유나는 그냥 들렀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사실 아침부터 서점에 와서 양장본을 잔뜩 샀다.
팬사인회 티켓이 나올 때까지.
“아, 그랬구나. 여기까지 보러 와 주고 고마워.”
하준이 웃으며 사인을 해주었다.
그러는 사이,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서희수가 궁금해하며 하준에게 슬쩍 물었다.
“누구야? 아는 애야?”
“아, 나 <너와 나의 연결고리> 촬영하는 저택 있잖아, 거기에 사는 애야.”
“저택에 사는 애? <너나연>에 나오는 거 보니까 진짜 큰 저택이던데······. 가만 있어 봐, 그럼 얘 재벌 딸이야? 너 거기서 재벌 아들로 나오잖아.”
서희수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재벌? 그렇······겠네. 얘네 아버지가 세계그룹 부회장님이시긴 해.”
“뭐?”
“진짜?”
하준의 말에 서희수와 공정환도 놀랐지만, 주미연이 더 놀랐다.
“어머, 너 세계그룹 부회장 딸이니?”
“네, 맞아요.”
“근데 여길 어떻게······? 아······.”
주미연은 뭔가 더 물으려다가 눈치를 보고 깨달았다.
김유나가 하준을 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이걸 알아본 사람은 주미연뿐만이 아니었다.
서희수도 단박에 눈치를 채고 불안한 눈빛으로 하준과 김유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둘이 친한가 보네······. 촬영할 때마다 만났나?’
주변에 취재를 와 있던 여러 기자들 역시 김유나의 등장에 사진을 열심히 찍어댔다.
이번 사인회에서 가장 이슈가 될 장면이 될 테니까.
이런 주변의 반응에도 김유나는 그러든지 말든지 오로지 하준만 바라보며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하준아, 나 너 대금 부는 거 보고 싶은데, 한번 불어주면 안 돼?”
김유나가 하준의 뒤에 세워둔 대금을 보더니 부탁했다.
하준은 오늘 소품으로 대금도 챙겨왔다. 다른 두 사람도 다양한 팬서비스를 위해 각자 구슬과 부채를 챙겨왔고.
“뭐, 그래.”
하준은 흔쾌히 대답하고는 대금을 집어 들었다.
하준이 대금을 불려고 하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가 연주를 듣기 위해 금방 조용해졌다.
주미연 작가와 기자들도 숨을 죽이고 하준을 주시했다.
하준은 박민후의 테마곡 중 하나인 ‘그리운 그림자’를 즉석에서 연주했고, 서점에는 하준의 구슬프면서도 아름다운 대금 소리가 울려퍼졌다.
김유나는 두 손을 모으고 반한 눈빛으로 하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물론 하준에게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은 김유나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하준이 ‘그리운 그림자’를 연주하는 것을 처음 보았기에 신기해하면서도 감탄했다.
하준의 연주가 끝나자 모두 박수갈채를 보냈다.
“와, 하준이 너무 멋지다!”
“진짜 잘 분다.”
“대금 소리 너무 좋아. 대박이야!”
사람들 중 가장 감격한 사람은 바로 주미연 작가였다.
하준이 직접 대금을 연주했다는 걸 들었고, <유퀴스>에 나와 짧게 연주하는 거도 봤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박민후의 테마곡을 직접 연주하는 걸 보니 하준에게 더 고마웠다.
“박민후는 정말 하준이가 아니었으면 누가 할까 싶어. 이렇게 대금도 배워서 직접 연주해주고, 정말 고맙다. 내가 만들어 낸 캐릭터가 살아 숨 쉬는 기분이야.”
주미연이 하준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실 원작 도서인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가 드라마화가 되지 않았을 때는 책 자체와 작가인 주미연이 관심의 대상이었고,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신비종> 하면, 하준과 서희수, 공정환이 더 유명하고 관심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주미연은 세 사람에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작가인 주미연은 세상 그 어느 독자보다도 자기 작품의 팬이었으니까.
그녀는 자신이 상상해서 만들어 낸 캐릭터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너무 행복했다.
특히 대금 연주까지 직접 해서 완벽한 박민후가 되어준 하준에게 주미연은 정말 고마웠다.
팬 사인회가 모두 끝난 뒤, 주미연은 삼총사에게 <신비종> 양장본 하나를 내밀었다.
“셋 다 여기 사인 좀 해줄래? 내가 소장하고 싶어서 그래.”
주미연은 세 사람의 사인을 받고, 함께 사진도 찍었다.
“시즌 2도 잘 부탁해. 항상 건강하고, 언제든 필요하면 연락하고.”
주미연은 세 사람을 번갈아 꼬옥 안아주고 돌아갔고, 세 사람은 다음 스케줄에서 만날 날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
“하준아, 오늘 따뜻하게 입고 가야 돼.”
최선희가 하준에게 준비해 둔 내복과 두툼한 솜바지 등을 건네주며 말했다.
“오늘 야외 촬영이야?”
“응. 그리고 오늘은 아빠가 운전해서 데려다주신대.”
“그럼 나 촬영하는 거 구경도 한대?”
하준이 화색을 띠며 물었다.
“응, 계속 같이 계실 거야.”
“와, 신난다!”
“오늘 촬영 장소가 좀 멀어서 일찍 출발해야 돼. 얼른 준비하자.”
“응!”
하준은 윤기철이 함께 간다는 말에 무척 좋아하며 옷을 입었다.
세 사람은 곧 차를 타고 촬영장으로 출발했다.
하준은 일찍 일어난 탓에 차에서 잠을 청했다.
한참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한 윤기철과 최선희는 하준을 깨웠다.
“하준아, 일어나. 다 왔어.”
하준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창밖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의외였다.
연출팀과 촬영 장비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웬 꽁꽁 언 저수지의 얼음 위에 드문드문 텐트가 설치되어 있는 게 보였다.
“응? 여기 어디야? 우리 촬영 장소 잘못 찾아온 거 아니야? 촬영 팀 없는데?”
하준이 당황해하며 윤기철과 최선희에게 물었다.
그러자 두 사람은 팔을 벌리며 외쳤다.
“짜잔! 서프라이즈!”
“오늘 우리 하준이랑 빙어 낚시 하는 날이지롱!”
얼마 전 하준은 절친인 고우주와 통화를 하다가 우주가 빙어 낚시를 다녀왔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빙어 낚시가 궁금했던 하준은 검색을 해봤고, 구경을 하면 할수록 빙어 낚시를 해보고 싶었다.
윤기철과 최선희는 그 얘기를 듣고 지금이 아니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하니 <너와 나의 연결고리> 촬영 팀에 양해를 구해 촬영을 하루 뺐다.
그리고 하준을 데리고 빙어 낚시를 하러 춘천으로 달려온 것이다.
“빙어 낚시? 그러고 보니까 텐트들이······ 우와아!!”
하준은 인터넷에서 찾아본 빙어 낚시터 사진을 떠올리고는 만세를 부르며 좋아했다.
“하준아, 좋아?”
“응, 너무너무 좋아. 고맙습니다, 엄마, 아빠!”
하준은 차에서 내리며 최선희와 윤기철을 꼭 안아주었다.
그러더니 곧바로 저수지를 향해 냅다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