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86화
“우리 드라마 요즘 시청률 30% 넘게 나오는 거 알고 있지?”
“네, 당연히 알고 있죠.”
“그래서 말인데, 방송국에서 20화 연장을 하고 싶어 해. 가능하겠니?”
우 감독이 간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날씨가 추워서 우 감독의 볼은 빨개져 있었고, 손도 시린지 손을 비비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왠지 더 간절해 보였다.
“감독님, 추우시죠? 몸 좀 녹이고 가세요.”
“아, 그래. 너도 문 열고 있으면 춥겠다.”
우 감독은 하준의 차에 타고 문을 닫았다.
“차가 좋네. 따뜻하고. 아, 아무튼, 하준아, 20화 연장하는 거 어떻게 생각해? 출연할 수 있겠어?”
우 감독이 다시 물었다.
원래 <너와 나의 연결고리>는 100화 종영 예정이었는데, 현재 80화까지 촬영이 완료된 상태였다.
여기에 20화가 추가된다면 약 한 달 정도 촬영을 더 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사실 방송국에서는 천천히 연장 논의 중이었는데, 오늘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가 한국 N플릭스 1위에, 해외에서도 탑 10에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빨리 하준을 잡고자 바로 우 감독에게 연락을 했다.
<신비종>의 인기가 급상승하게 되면 하준이 이후 스케줄을 빼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랑 이모는 가능하시대요?”
하준이 극중 자신의 아빠로 나오는 한강필과 이모라고 부르는 진유주의 연장 출연 여부를 물었다.
남주와 여주인 두 사람도 오케이를 해야 20화 연장이 가능한 것이었으니까.
“확답은 아직 안 들었지만, 될 것 같댔어. 아, 그리고 작가님도 마무리를 잘 지으려면 20화 정도 추가하는 게 좋을 것 같댔고.”
“아하, 그렇군요. 저도 될 것 같긴 한데, 일단 저희 대표님이랑 상의해볼게요.”
“그래, 그래야지. 그래도 웬만하면 연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네가 우리 드라마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이니? 제목도 그렇잖아? 마지막까지 네가 있어줘야지.”
<너와 나의 연결고리>라는 드라마 제목에 걸맞게,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하준은 극에서 무척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남주와 여주의 달달한 순간도 만들어주고, 오해도 풀어주고, 거의 해결사 수준.
또한 시청자들이 극중 최대운을 무척 좋아해서 후반부로 갈수록 하준의 비중이 커지고 있었다.
그러니 연장에서 하준이 빠지면 큰일이었다.
“네, 오늘 촬영 끝나고 회사 들어가 볼 거거든요. 그때 상의해볼게요.”
“그래, 그럼······.”
우 감독이 차에서 내리려고 몸을 일으키자, 최선희가 따뜻한 꿀물을 내밀었다.
“감독님, 이거 좀 드시고 가세요.”
“아, 그럴까요? 감사합니다.”
우 감독은 활짝 웃으며 꿀물을 마셨고, 곧 하준과 함께 촬영하러 나갔다.
***
“20화 연장?”
최 대표가 하준에게 되물었다.
“네, 작가님도 작품 전개상 20화 정도 추가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대요.”
“음, 일단 그때 스케줄이 아직 확정된 게 없긴 한데, <신비종> 인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
최 대표는 조금 고민하는 눈치였다.
앞으로 한 달 정도면 <너와 나의 연결고리> 촬영이 끝날 테고, 그럼 <신비종>의 여파로 쏟아지는 인터뷰나 광고 등을 빠르게 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대충 예상을 해둔 터였다.
“대표님, 근데 저는 이거 연장한다고 하면 하고 싶어요. 일단은 현재 제가 이 작품을 찍고 있고, 그럼 이 작품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 거니까요.”
“네 생각이 틀린 건 아니지만, 우리가 원래 100화로 계약을 한 거니까, 꼭 연장에 동의해야 하는 건 아니야. 생각을 좀······음······.”
최 대표는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근데 연장 제안을 안 받아들이면 네 이미지에 안 좋겠다. 그래, 하는 걸로 하고 스케줄은 조정해보자.”
최 대표는 문득 작년에 연장에 동의하지 않았다가 욕을 먹은 주연배우가 생각났다.
드라마 연장은 당연히 시청률이 잘 나올 때 한다.
인기 많은 드라마는 시청자들이 재밌게 본다는 이야기고, 그럼 더 오래 보고 싶어 하니까 연장을 환영한다.
그런데 주연배우가 그 연장을 거부했다고 하면, 드라마 팬들은 주연배우가 배가 불렀네 뭐네 하면서 욕을 하는 것이다.
간혹 미리 스케줄이 정해져 있어 연장 출연을 거부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는데, 그럼 사정이 있어도 결국 욕먹는 건 피할 수 없었다.
욕을 하는 드라마 팬들도 사실 이해가 좀 가긴 했다. 드라마 자체를 너무 재밌게 보고 있으면 마무리까지 잘 되어서 좋은 작품으로 남기를 바랄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너와 나의 연결고리>가 연장을 한다면 연장까지 출연하는 게 낫다는 결론.
그게 하준의 커리어에도, 이미지에도 좋을 터였다.
“네, 좋아요.”
“그래, 그리고 드라마랑 영화 대본은 계속 들어오고 있는데, 일단 작품 쪽은 보류해 두자. 왜인지는 알지?”
“<신비종> 시즌 2 촬영 스케줄 잡히면 그 후에 결정하자는 말씀이시죠?”
“그렇지! 아무래도 <신비종>은 세계적으로 방영되는 거니까 이쪽이 훨씬 좋아. 거기다 이건 네가 오롯이 주연이잖아. <신비종>을 최우선으로 해야 돼.”
<너와 나의 연결고리>처럼 하준이 작품 내내 나오는 드라마여도, 사실 진짜 주인공은 작품의 성인인 남주와 여주였다.
하지만 <신비종>은 하준이 진짜 작품의 주인공이었으니, 이게 잘 되는 것이 가장 좋았다.
“네, 저도 <신비종>이 제일 좋아요. 친구들이랑 촬영하니까 재밌고요.”
“그래, 여러모로 너한테 최고의 작품이 될 거야.”
최 대표가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릴 하준을 상상하며 활짝 웃었다.
“아, 그럼 지금은 인터뷰랑 광고 뭐할지 한 번 봐봐. 여기 보면······.”
최 대표는 하준에게 제안 온 인터뷰와 광고가 정리된 서류를 보여주며 설명을 해주었다.
최선희도 하준의 옆에 앉아서 함께 서류를 보고 있었다.
“이건 삼총사 인터뷰 들어온 건데, 네가 한다고 하면 내가 그 친구들한테 연락해서 스케줄 잡을게. 아, 근데 걔들 회사 어디야? 아직 아무 데도 안 들어갔나?”
“걔들은 <신비종>만 할 거라서 회사 안 들어갈 거랬어요. 지금도 없을걸요?”
“아, 그래? 그럼 개인적으로 연락해야겠네. 근데 시즌 2, 시즌 3 찍고 그러면 필요하지 않나?”
“아! 걔들 우리 회사로 데려올까요?”
하준은 앞으로 <신비종> 관련으로 함께 인터뷰하거나 활동할 일이 자주 생길 텐데, 같은 소속사면 훨씬 좋을 거라 생각했다.
“뭐, 그럼 확실히 편하긴 하겠다. 걔들이 우리랑 계약하고 싶어 하면 그렇게 해.”
“근데 걔들 <신비종> 관련한 활동만 한댔어서 회사에 크게 도움은 안 될 수도 있어요. 다른 활동은 할 생각 없다더라구요. 공부도 해야 하고, 부모님들도 어릴 때는 학업에 열중하게 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상관없어. 알잖아, 우리 회사, 너만 믿고 가는 거. 하하.”
최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헤헤, 그럼 이 삼총사 인터뷰할 때 만나서 얘기해볼게요.”
“그래, 그리고······.”
최 대표가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미안, 잠깐만.”
최 대표가 전화를 받아보니, 상대는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 책을 출판하는 베셀 출판사의 대표 배주형이었다.
-최원상 대표님, 안녕하세요. 저는 베셀 출판사의 배주형 대표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일단 먼저 축하드립니다. <신비종> 드라마가 대박 조짐이라고 기사 쏟아지더라고요.
“하하, 감사합니다. 저도 미리 축하드립니다. 덩달아 책도 잘 나갈 테니까요.”
-네, 벌써 여기저기서 주문이 많습니다. 하하.
양쪽 대표들은 서로 기분이 좋아서 껄껄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아, 바쁘시죠? 용건 말씀드릴게요. 이번에 <신비종> 양장본 특별판을 출판하거든요. 출판하면서 주미연 작가님 팬 사인회를 개최할 건데요, 하준 군도 함께 해 주면 좋겠어서요.
베셀 출판사는 드라마 방영에 맞춰 양장본을 출판하려고 준비했다. 아무래도 드라마가 방영되면 원작 책의 수요도 늘어나니 그때 맞춰 새롭게 양장본으로 출판하면 더욱 판매가 촉진될 터였다.
“양장본이면 멋있겠네요! 사인회는 스케줄을 봐야 하는데, 언제 어디서 하는 건지 문자로 남겨주세요. 보고 하준이와 의논해서 연락드릴게요.”
-네, 삼총사 친구들 모두 부를 예정인데, 특히 하준 군은 꼭 와줬으면 좋겠습니다. 스케줄이 안 맞으면 저희가 맞출 수도 있으니 어려워 마시고 말씀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 대표는 전화를 끊자마자 하준에게 <신비종> 양장본 출판 기념 팬 사인회를 설명했다.
“스케줄은 드라마 측이랑 상의해서 조율하면 될 거야. 내 생각에 이런 팬 사인회는 같이 하는 게 좋아. 팬들을 위해서도 그렇고, 원작 소설 팬들의 반응도 직접 느낄 수 있고 말이야.”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팬들 만나는 것도 좋고요.”
“그럼 일단 드라마 측에 이때 스케줄 뺄 수 있는지 물어보고 조정해보자.”
하준은 팬 사인회는 가기로 확정하고 광고와 인터뷰 제안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
일주일 뒤, N플릭스 한국지사.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 오리지널 드라마를 담당한 유 CP와 지사장, 각색을 맡았던 정 작가 등이 회의실에 모였다.
회의는 지사장의 호탕한 웃음으로 시작되었다.
“아하하하. 내가 이럴 줄 알았어요. 대박날 줄 알았다니까요!”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는 지금 한국 N플릭스 시청률 1위를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30여 개국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1위를 차지하지 못한 국가들에서도 모두 5위 안에 든 상황.
꼴뚜기 게임을 뛰어넘지 못했지만, 굉장한 성적이었다.
“하하, 지사장님께서 역시 보는 눈이 있으십니다.”
“저는 솔직히 모험이라고 생각했는데, 지사장님, 대단하십니다.”
다른 사람들도 지사장을 따라 웃으며 아부를 곁들였다. 사실 이건 아부라기보다는 사실이었다.
전연령을 상대로 하기에는 <신비종>이 불리한 감이 있었기에 본사에서 반대가 좀 있었는데, 지사장이 자신이 책임지겠다면서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들인 만큼 아주 잘 나와 줬어요. 캐스팅도 아주 좋았고요. 마침 어떻게 그렇게 딱 맞는 아이가 혜성처럼 등장했는지, 이건 정말 운이 좋았어요. 연기도 잘하는 데다가 노래도 잘하고, 직접 대금 연주도 하고, 액션도 잘하고요.”
하준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준은 주인공 박민후와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여줬을 뿐 아니라 도술만 빼고 박민후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직접 해냈다.
그래서 더 완벽한 영상이 만들어질 수 있었고, 거기에 OST까지 불러서 몰입감을 더 높여주었다.
“맞습니다. 박민후를 하준이보다 더 잘 연기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하.”
유 CP가 맞장구를 쳤고, 회의장의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이어 지사장은 모두들 수고했다며 칭찬을 한 다음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갔다.
“자, 여러분, 오늘 우리가 왜 모였는지 다들 아시죠? 드디어 <신비종> 시즌 2 제작 확정 났습니다.”
지사장의 발표에 회의장의 사람들은 모두 박수로 축하와 기쁨을 표현했다.
“한국 컨텐츠들이 전세계적으로도 잘 먹히고 있어요. 근데 이런 장르가 잘 된 경우는 없죠. 대부분은 청소년 관람불가 작품들이 잘 되는데, 우린 동양적 판타지에 전체 관람가잖아요. 이거 굉장히 의미가 있습니다. 앞으로 시즌 2, 시즌 3, 쭉쭉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다들 더 열심히 해봅시다.”
“네!”
“네에!”
그때, 누군가 회의실 문을 똑똑 노크했다.
“아, 왔나 봐요, 우리 성공의 주역들. 들어와요.”
지사장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지사장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섰고, 문이 열리며 하준과 서희수, 공정환이 들어왔다.
그들을 보자마자 지사장이 가장 먼저 박수를 보냈고, 다른 사람들도 지사장을 따라 힘차게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