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77화
“칠백만 축하합니다~ 칠백만 축하합니다~”
직원들과 아이돌들은 윤기철과 <죽않백> 배우들을 둘러싸고 축하노래를 불렀다.
“우와!”
“와!”
하준과 윤기철, 그리고 배우들은 생각지도 못한 축하에 놀라며 기뻐했다.
“자, 불 끄시고!”
최 대표의 말에 <죽않백> 배우들과 윤기철은 다 함께 후하고 촛불을 불었고,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은 박수로 다시 한번 축하했다.
“축하합니다! <죽않백> 너무 재밌었어요!”
“축하드려요!”
“<죽않백> 진짜 재밌게 봤어요.”
“전 3번이나 봤어요!”
배우들은 축하해주는 사람들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 사이 직원 중 한 명이 연습실의 전등을 다시 켰고, 최 대표는 케이크 칼을 윤기철에게 건네며 말했다.
“윤 감독, 축하해. 내가 700만이라서 7단 케이크로 준비하려고 했는데, 주문 받아주는 곳이 없더라구. 그래서 3단으로 조촐하게 준비했어.”
“조촐하긴! 3단만 해도 진짜 감동 받았어. 3단 케이크도 처음 받아보거든. 이렇게 깜짝 축하를 준비했을 줄은 몰랐는데, 이러려고 우리한테 연습실 빌려준 거야? 하하, 고마워, 최 대표!”
윤기철은 함박웃음을 지었고, 케이크를 자르기 위해 건네받은 칼을 들었다.
“와, 근데 이거 케이크 자르는 것도 일이겠는데? 여기 있는 사람들 다들 나눠 먹게 잘라야 하지?”
3단 케이크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크기가 1.5배씩은 더 컸기에 한 사람이 다 자르려면 시간이 꽤 오래 걸릴 듯했다.
“뭐, 적당히 나눠 먹으면 되니까, 대충 잘라. 네모나게 자르는 게 더 편할 거야. 아, 여기 칼 더 있는데, 내가 도와줄까? 아니면, 배우님들이 도와주시겠어요?”
최 대표의 말에 차우민과 김지숙이 돕겠다고 나섰다.
하준에게 케이크는 너무 높이 있어서 자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케이크는 모두가 먹기에 충분했다.
연습실에 모인 사람들은 함께 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죽지 않는 백화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포털 사이트에서 <죽않백> 관람객들 평점이랑 한줄평 봤어?”
최 대표가 윤기철에게 물었다.
“아니, 나 그런 거 일부러 안 봐. 괜히 평점도 안 좋고 안 좋은 말 있으면 멘탈 나가거든.”
“700만 관객이면 그만큼 재밌다는 건데, 볼 수 있지 않아? 좋은 말이 훨씬 많을 거 아냐? 그리고 영화는 이미 결과가 나와 있는 거니까 멘탈 나가도 뭐 특별히 영향 받을 것도 없고.”
“난 좋은 말 수십 개보다 나쁜 말 한 마디가 훨씬 마음에 깊게 남아서 봐도 한참 지난 다음에 볼 거야.”
“윤 감독 멘탈이 은근히 약한가 보네. 그래, 그럼 내가 대신 좋은 말만 전해줄게. 그건 괜찮지?”
“그건 당연히 괜찮지.”
윤기철이 고개를 끄덕였고, 주변에 있던 배우들도 관람객들의 평가가 궁금한지 최 대표 주위로 몰려들었다.
“대체적으로 좀비가 머리를 쓴다는 점을 신선하게 봤다고 좋아하더라. 나도 이건 동감이고. 배우들 연기 구멍 없다는 말도 많았어. 아, 그중에서도 특히 하준이 연기 얘기가 진짜 많더라. 하준이 때문에 눈물 콧물 다 뺐다고 말이야.”
하준의 이야기가 나오자, 배우들은 흐뭇하게 웃으며 하준을 바라보았다.
윤기철 또한 아들 하준이 기특해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하준이가 극을 살린 건 맞지. 그때 아역 배우들 중에 그 역할 할 만한 애가 없어서 얼마나 고생했던지······. 하늘이 도왔어. 하하.”
윤기철의 말에 하준도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빠는 절 살렸어요. 하늘이 진짜 도와줬나 봐요.”
하준이 윤기철에게 입양되었다는 사실과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미 아는 다른 사람들은 하준의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그들은 짠한 눈빛으로 하준과 윤기철을 바라보았고, 윤기철은 다정하게 하준을 안아주었다.
잠깐의 떠들썩한 파티가 끝나고, 연습실에는 다시 <죽않백> 배우들과 윤기철만이 남았다.
이제 하준의 지휘 아래 다 함께 춤 연습을 해야 할 시간.
“하준아, 우리 춤 뭐 추지?”
“음, 제가 생각해 온 것들이 몇 곡 있어요. 한번 보실래요?”
하준은 휴대폰을 꺼내 춤 동영상을 몇 개 보여주었다.
윤기철에게 물어서 그나마 출 수 있을 것 같은 곡들로 골라온 것이었다.
하지만 춤을 본 배우들은 다들 입을 쩍 벌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걸 우리가? 나 이렇게 빨리 못 움직여······.”
“이렇게 복잡한 걸 어떻게 외워······.”
“웨이브가 이게······.”
차우민은 웨이브가 되는지 확인해보는지 몸을 마음대로 꿀렁대며 방금 본 동영상에서 본 웨이브를 따라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배우들은 박장대소했고, 하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아이돌 안무 중에 가장 쉬운 것들로 고르고 고른 건데······. 송이 누나도 못 하겠어요?”
하준이 20대인 유송이에게 물었다.
“응······ 사실은 나 몸치거든······. 미안.”
“근데 춤 공약 걸 때 거부 안 하셨잖아요?”
“솔직히 말해도 돼? 나 700만 못 넘을 줄 알았어······. 죄송해요, 감독님.”
유송이가 윤기철에게 미안해하며 말했다.
그러자 윤기철은 손사래를 치며 멋쩍게 웃었다.
“아냐, 미안해할 필요 없어. 나도 못 넘을 줄 알고 같이 춤추겠다고 한 거거든······. 하하······.”
“아, 정말요?”
윤기철도 같은 사정이라는 걸 들은 유송이는 그제야 얼굴을 펴고 피식 웃었다.
“후우, 다들 이게 너무 어려우신 거죠?”
“응, 근데 요즘 아이돌들 춤 보면 안 어려운 게 없던데, 아이돌 거 말고 쉬운 춤 없을까?”
“흠······.”
하준이 검지로 입술을 문지르며 고민했다.
공약답게 뭔가 인상 깊으면서도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너무 어려운 춤을 추려고 하다가 영 잘 못 추면 성의가 없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때, 문득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거 어떨까요?”
하준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얘기하며 동영상을 보여주자, 이번엔 다들 찬성했다.
“이거 좋다! 이 정도는 할 수 있어. 근데 하준이 네가 할 수 있겠어?”
“네, 마침 할머니 생신 때문에 연습 좀 했었거든요.”
“오, 좋아, 그럼 이걸로 하자!”
배우들은 이번 춤은 할 수 있다며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고, 하준의 지휘 아래 춤 연습을 시작했다.
***
며칠 후, 드디어 공약을 위해 <죽지 않는 백화점>의 배우들과 윤기철은 서울의 한 영화관을 찾았다.
이 공약은 동영상으로 찍어 너튜브에 업로드할 예정이었지만, 게릴라성으로 진행했기에 관객들은 아무도 이들이 어느 곳에 등장할지 몰랐다.
“하준아, 아빠 엄청 떨린다······. 손 좀 잡아줘.”
등장 시간이 가까워 오자 윤기철이 긴장한 목소리로 하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준이나 다른 배우들은 예능 같은 것도 해보고 해서 무대 경험이란 게 있지만, 윤기철은 감독이니 무대 경험이 제로였다.
하준은 윤기철의 손을 꼭 잡아주며 힘을 주었다.
“아빠, 긴장할 거 없어. 솔직히 배우들이 눈에 띄지, 아빠는 잘 안 보일 거야. 그리고 맨 뒷줄이잖아. 앞에 선 차우민 형 보고 추면 돼.”
“후우, 그렇겠지? 아휴, 우리 아들은 어떻게 뮤지컬 같은 걸 했을까? 대단해!”
윤기철은 새삼 하준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무대에서 떨지 않고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건 어른들도 힘든데, 하준이는 어린 나이임에도 항상 좋은 무대를 보여줘 왔으니까.
‘천생 연예인 체질이야, 후후.’
윤기철이 이런 아이가 내 아들이 되었다는 게 너무 행복했다.
그때, 드디어 영화가 끝났고,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관객 여러분, 오늘 계 타신 겁니다! <죽지 않는 백화점>, 700만 관객 돌파 공약 실천을 위해 <죽지 않는 백화점>의 배우님들, 차우민, 김지숙, 강진욱, 유송이, 하준, 그리고 윤기철 감독님이 이곳을 찾아주셨습니다! 자, 700만 돌파 공약으로 준비한 댄스 무대가 있겠습니다! 박수로 배우님들과 감독님 모셔볼까요?”
“와아아!!”
“대박!!”
“꺄아아아!”
관객들의 커다란 환호 속에 <죽지 않는 백화점>의 배우들과 윤기철이 무대로 달려 들어갔다.
그들은 하준을 가운데에 놓고 빙 둘러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곧바로 음악이 재생되었다.
흘러나온 음악은 바로 트로트 가수 영탁의 ‘찐이야’.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를 샘플링한 반주가 흘러나오자, 하준이 지휘하듯 팔을 휘둘러 배우들을 각자의 위치로 보냈고, 관객들은 즐거운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짧은 반주 후에 배우들과 윤기철은 신나는 춤을 선보였고, 하준은 재킷 속에서 반짝이로 장식된 마이크를 꺼냈다.
그러고는 라이브로 ‘찐이야’를 열창하기 시작했다.
하준이 라이브로 ‘찐이야’를 부르자, 이번엔 환호에 놀라움이 더해졌다.
“어머머!! 하준이 라이브?”
“하준이가 트로트도 부를 줄 아는 거야?”
“대박! 잘하는데? 너무 귀여워!!!”
“잘한다아!!”
춤 연습을 위해 모였을 때, 고민하던 하준은 이 트로트 곡을 다른 배우들에게 제안했다.
그 이유는 일단 요즘 트로트도 여러 세대에서 꽤 인기를 얻고 있어서 낯설지 않고, ‘찐이야’는 노래 자체가 흥겨울 뿐만 아니라 춤도 별로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 춤으로 관객들이 만족할지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하준은 본인이 직접 라이브를 하겠다고 한 것이다.
마침 하준은 할머니 생신에 통기타 노래 말고도 할머니가 좋아할 만한 트로트 노래를 연습하고 있던 터였기에 트로트의 맛을 어느 정도는 낼 수 있었다.
“찐찐찐찐 찐이야~”
하준은 깜찍한 목소리로 맛깔나게 음을 꺾어가며 ‘찐이야’를 불렀다. 당연히 춤도 적당히 곁들여 춰가며 노래했고, 영화관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꺄아아!!”
“너무 귀엽다!!”
“잘한다!”
“신난다아!”
관객들은 박수로 박자를 맞추며 함께 즐겼고, 무대가 끝나자 기립해서 박수갈채를 보냈다.
“와, <죽지 않는 백화점> 배우분들, 정말 열심히 준비하셨네요! 거기다 하준 군의 깜짝 트로트 실력, 정말 대단했습니다! 여러분, 박수 한 번 더 부탁드립니다.”
“와아아!!”
“후우, 감사합니다!”
배우들과 윤기철은 관객들이 좋아한 것에 무척 안도했고, 하준의 아이디어가 제대로 먹혔다며 하준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죽지 않는 백화점>팀은 한 사람씩 관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고, 곧이어 한 사람을 추첨해 선물도 주었다.
성공적인 첫 공연 후, 자신감이 붙은 윤기철이 다른 배우들에게 외쳤다.
“자, 이제 6번만 더 하면 되겠다! 가자, 다음 영화관으로!”
***
<죽지 않는 백화점>팀의 700만 관객 돌파 공약 실천 영상은 너튜브에도 올라갔지만, 연예뉴스에도 짧게 방송되며 엄청난 화제를 불러모았다.
하준은 여기서 보여준 색다른 모습으로 또 한 번 크게 이슈가 되었다.
[하준이 찢었다!! 트로트도 잘 부르다니.. 대박!!]
[으아, 넘 귀엽자나 ㅠㅠ 트로트도 잘하고 춤도 잘 춰!!]
[하준이 너란 존재.. 도대체 못하는 게 뭐니..]
[양파하준이야ㅋ 까도 까도 잘하는 게 나옴 ㅋㅋ]
[꺾기는 또 언제 배웠다냐~~ 우리 하준이는 찐찐찐찐 찐이야~~♡♡]
“아이구, 언니는 좋겠다, 하준이 같은 손자를 둬서. 부럽다, 부러워······.”
“그것만 부러워? <죽지 않는 백화점>은 아들내미가 감독이잖아. 그거 700만 넘었다고 이렇게 춤춘 거고, 맞지?”
하준의 동영상을 본 김복녀의 친한 친구들은 김복녀가 부러워서 난리였다.
“호호호, 맞아. 지금은 800만 넘었어. 우리 아들도 고생 끝에 낙이 왔지. 내가 그래도 언젠가는 이렇게 될 놈이다 생각하고 믿어주길 잘했다니까. 우리 하준이는 애가 또 얼마나 순하고 착한지 몰라. 나한테도 그렇게 살갑게 잘해. 아, 이번 내 생일에 와서 또 노래 불러준댔어. 하준이가 기타를 얼마나 잘 친다구!”
“알지, 알지. <유퀴스>에 나온 거 봤어. 기타도 잘 치고 노래까지 만든다며? 직접 보고 싶네.”
“근데 언니 생일에 오면 우리도 볼 수 있는 거지? 그치?”
김복녀의 생일에 초대받은 두 친구는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김복녀에게 물었다.
“그럼! 하준이가 날 위해서 열심히 노래 연습한다고 우리 아들이 슬쩍 귀띔해줬어. 다들 기대해.”
김복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며칠 후, 기다리고 기다리던 김복녀의 65번째 생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