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75화
“<너와 나의 연결고리>요.”
“너와 나의 열쇠고리요?”
하준이 드라마의 제목을 얘기하자, 조세후가 드립을 치고 싶은 마음에 끼어들었다.
“아뇨, <너와 나의 연결고리>요. 헤헤.”
하준은 피식 웃으며 정정했지만, 유재선은 역시나 조세후에게 장난스럽게 핀잔을 주었다.
“아, 정말. 창피하다, 세후, 그런 드립 좀 하지마아, 좀!”
“이렇게 하면 다들 제목을 더 기억 잘 할 거예요. 제가 열쇠고리라고 했던 걸 떠올리면서요. 맞죠, 하준 군?”
“네, 그럴 것 같아요.”
하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유재선이 고개를 저으며 하준에게 말했다.
“하준 군이 착하니까 다 받아주는데, 이런 거 막 받아주면 안 돼요, 하준 군. 다음에 또 한다니까.”
“에이, 형님, 가끔 하는 거예요, 가끔. 요 정도는 괜찮지 않습니까? 그렇죠, 하준 군?”
“아이 참, 세후 씨가 자꾸 그렇게 물으면 착한 하준 군은 당연히 괜찮다고 하지. 안 그래요, 하준 군?”
하준은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면서 자기에게 번갈아 동의를 구하자 재밌다는 듯 까르르 웃었다.
“자자, 하준 군이 웃었으면 된 겁니다. <너와 나의 연결고리> 얘기 계속하죠. <너와 나의 연결고리>는 어떤 내용인가요?”
조세후가 얼른 분위기를 수습하며 하준에게 먼저 질문했다.
“재벌집 남자와 가정부의 사랑이야기인데요, 이렇게 얘기하면 흔한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재벌집 남자는 부인이 사고로 죽었고, 8살짜리 아들이 있어요.”
“그럼 그 8살짜리 아들이 하준 군?”
“네, 맞아요.”
“그럼 하준 군이 연결고리 역할인가요?”
“네, 그것도 맞아요. 물론 다른 다양한 연결고리 장치가 있긴 하지만,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건 아들인 저예요.”
“와우!”
유재선과 조세후가 번갈아가며 하준에게 질문하고는 둘 다 맞히자, 하이파이브를 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고는 유재선이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
“하준 군이 생각하기에 일반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와 다른 점은 또 뭐가 있나요?”
“재벌집 남자, 그러니까, 제 아빠랑 저는 둘 다 엄마의 사고 이후 말이 거의 없고, 차갑고, 웃지도 않아요. 근데 어느 날 원래 저를 돌봐주시던 가정부 아주머니가 아프셔서 대신 여주인공 분이 오게 되면서 우리 두 사람에게 변화가 시작되죠.”
“오, 이거 재밌겠다!”
“트라우마를 가진 부자가 한 여자로 인해 밝게 변해가는 내용이겠네요. 크, 이런 게 재밌으면서 감동도 있죠.”
조세후와 유재선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며 관심을 보였다.
“근데 방송은 언제부터예요?”
“사실 아직 대본 리딩도 안 했어요. 그러니까 아마 두세 달쯤 뒤에 첫방송 할걸요?”
“아하. 첫 방송 하기 전에 아저씨들한테 연락 좀 줘요. 안 잊어버리고 보게.”
“네, 그럴게요.”
“자, 그럼 현재 이야기는 해봤고, 그럼 이제 미래 이야기로 넘어가 봅시다. 원래 우리 어린 꿈나무들은 앞으로 살날이 훨씬 많기 때문에 미래 이야기가 할 얘기가 더 많을 거예요. 그쵸, 하준 군?”
“미래 이야기면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그런 거요?”
“그렇죠. 먼 미래도 좋고, 가까운 미래도 좋고요. 앞으로 뭐가 하고 싶어요?”
유재선의 물음에 하준은 잠깐 고민하더니 유재선에게 되물었다.
“하나만 얘기해야 되나요?”
“아뇨, 여러 개 얘기해도 돼요. 하고 싶은 게 많나 봐요. 어떤 게 하고 싶어요?”
“음, 일단 저는 앞으로 계속, 어른 돼서도 연기를 하고 싶은데요, 제 나이대별로 해볼 수 있는 다양한 역할을 다 해보고 싶어요. 어른 되면 아이 역할은 못 하니까, 지금은 어릴 때 할 수 있는 역할을 최대한 많이 해보는 게 목표예요.”
“연기에 대한 열정이 많군요. 아주 좋은 자세네요. 덕분에 우리도 하준 군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을 테니 좋구요. 또요?”
“제가 요즘 기타를 배우고 있거든요. 작곡책도 좀 보고 있고요.”
“어, 그렇다면? 싱어송라이터 되려고?”
“네,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어요.”
“와!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어서 벌써 기타랑 작곡을 배우고 있어요? 대단하네!”
유재선이 감탄하며 말했고, 조세후도 얼른 거들었다.
“기타로 작곡해서 대박난 분들 많잖아요. 정범준 씨도 있고, 악당 뮤지션도 있고요. 하준 군도 그런 작곡 하고 싶은 거죠?”
“네, 맞아요.”
“오, 그럼 혹시 벌써 작곡한 곡도 있어요?”
“있긴 한데······.”
“한번 들려줄 수 있어요? 짧게라도······!”
조세후는 이어 스태프들에게 기타가 있는지 물었다.
스태프들이 기타를 구해오려고 웅성거리는 가운데, 하준이 말했다.
“저, 근데 전 아동용 기타밖에 못 쳐요. 손가락이 짧아서 어른들 건 치기 힘들거든요.”
“아······ 그렇겠군요. 아쉽다, 들어보고 싶었는데······.”
조세후와 유재선을 비롯해 스태프와 작가들도 아쉬워했는데, 하준이 조심스럽게 다음 말을 이었다.
“차에 제 기타가 있긴 한데, 가져올까요?”
“와, 정말요? 그럼 너무 좋죠!”
하준은 할머니 생신이 얼마 남지 않아서 요즘 차로 이동 중에 할머니가 좋아하는 곡을 열심히 연습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침 차에 기타가 있었던 것이다.
하준의 매니저인 김유택은 차에서 기타를 가져다 주었고, 하준은 기타를 잡았다.
“오, 기타 너무 귀엽다. 이거 장난감 기타 아니고 성인용 기타랑 크기만 다르고 똑같은 거죠?”
조세후가 물었다.
“네, 맞아요. 크기만 작게 나온 거예요. 음, 제가 작곡한 곡 중에 하나 들려드릴게요. 저 작곡 초보니까 너무 기대는 마시고요······.”
“아휴, 우리는 작곡의 ‘작’자도 모르는데, 9살인 하준 군이 작곡이라는 걸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거예요.”
유재선은 작곡한 곡을 연주하기도 전에 하준을 칭찬하며 부담을 덜어주었다.
“제목은 ‘바다 물결’이에요.”
“여름 노래인가 보네요?”
“네, 작년 여름에 부모님과 바다에 처음 갔을 때 느꼈던 감상을 떠올려서 만든 곡이에요.”
“아하, 그럼 어디 들어볼까요?”
MC들과 스태프들은 모두들 박수로 하준의 노래를 청했다.
하준은 음을 하나씩 연주하는 아르페지오 주법으로 반주를 하다가 노래에 들어갔다.
“처음 본 바다 물결은 내 마음을 닮았네~ 간질간질 반짝반짝~ 흔들리고 어지럽지만 네가 좋아~”
하준의 노래에 녹화장의 사람들은 다들 눈이 휘둥그레져서 서로를 쳐다보았다.
아이의 순수한 표현이 돋보이는 가사, 그에 딱 어울리는 발랄하고 아름다운 기타반주, 여기에 하준의 맑은 목소리가 어우러져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있었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하준의 자작곡을 감상했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너에게~ 바다 물결 바다 물결~ 너에게~”
하준은 1절 후렴구까지만 부르고 노래를 마쳤다.
그러자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유재선과 조세후도 기립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이야!! 하준 군, 노래 정말 좋은데요?”
“노래가 아름다워요! 특히 빠져든다 빠져든다~ 너에게~ 이 부분 중독성 있고 너무 좋아요.”
“맞아! 나도 그 부분 너무 좋았어. 빠져든다 빠져든다~ 너에게~”
“빠져든다 빠져든다~ 너에게~”
조세후의 말에 유재선이 맞장구를 쳤고, 두 사람은 후렴구를 함께 합창했다.
하준은 첫 자작곡에 좋은 평가를 받자, 함박웃음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근데 이거 사랑 노래······ 아니죠?”
조세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그냥 바다 물결 보고 든 느낌을 가사로 써본 거예요.”
“와, 근데 가사가 완전 사랑 노래 같지 않았어요?”
조세후의 말에 스태프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유재선도 공감한다며 설명을 덧붙였다.
“하준 군은 바다 물결이 좋아서 가사를 썼겠지만, 이게 또 사랑하는 대상이 있는 분들은 사랑 노래로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이런 가사 진짜 좋아해요. 사랑 노래로 쓴 건 아니지만 사랑 노래 같은 거 말이에요. 뭔가 사랑을 비유한 것 같잖아요.”
하준은 남녀의 사랑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몰랐지만, 조세후의 말을 들어보니 사랑 노래 같이 들린다는 건 좋은 의미 같았다.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헤헤.”
“이 노래 발매 안 해요? 발매하면 나 맨날 들을 것 같은데.”
조세후가 정말 ‘바다 물결’이 마음에 드는지 적극적으로 물었다.
“아직 계획은 없어요. 실력이 앨범 낼 정도는 아니라서······.”
“노래가 너무 좋은데, 왜 안 내요? 이번에 방송 나가고 반응 좋으면 소속사 대표님한테 내 달라고 해봐요.”
“하하, 네, 그럴게요. 전 사실 빨리 앨범 내고 싶긴 해요. 그래서 잘 돼서 우리 회사가 돈 많이 벌었으면 좋겠어요.”
“하준 군이 돈 많이 벌고 싶은 게 아니라 회사가 돈 많이 벌었으면 좋겠어요? 왜요?”
유재선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저희 회사가 아직 작아서 구내식당이 없거든요. 제 목표 중 하나가 우리 회사가 돈 많이 벌어서 건물 사고 거기 구내식당 만드는 거예요. 대형 기획사 구내식당 밥이 그렇게 맛있다더라고요.”
“아하하하. 하준 군, 밥에도 진심이군요?”
자기 소속사가 커졌으면 하는 이유가 구내식당이 있었으면 좋겠어서라니, 하준의 순수한 마음에 MC들과 스태프들이 귀여워하며 웃음 지었다.
하지만 이어진 하준의 설명에 다들 감동을 받았다.
“사람은 밥심으로 사는 거잖아요. 헤헤. 요즘 대표님이랑 직원 분들이 주변 음식점 음식들이 좀 질리셨다고 하시더라구요. 우리 회사 식구들이 맛있는 밥 먹으면 좋겠어요.”
“아휴, 그런 생각이었다니, 너무 기특하네요.”
“이런 소속 배우 있으면 진짜 든든하겠어요. 대표님, 하준이 자작곡 좀 꼭 앨범으로 내주세요!”
조세후는 하준을 칭찬하더니 곧 카메라를 보며 부탁했다.
하준은 자신의 자작곡을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조세후에게 감사함을 표했고, 앞으로 바라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금 개봉 중인 <죽지 않는 백화점>이 관객수 700만을 넘기면 좋겠구요, 내년에 방영될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도 잘 돼서 시즌 2 찍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하준은 뮤지컬에서 했던 노래와 피아노 연주를 보여주는 것을 끝으로 녹화를 마쳤다.
***
“하준이가 자작곡을 불렀어? 벌써 작곡을 했단 말이야?”
월드 엔터의 최원상 대표가 김유택에게서 소식을 전해 듣고 깜짝 놀라 되물었다.
“네, 근데 노래가, 제가 들어도 너무 좋더라고요! 녹화장에 사람들도 다 너무 좋다고 막 칭찬을······.”
“정말? 얼마나 좋길래? 기타로 작곡을 했단 말이지?”
“네, 조세후 씨는 이거 대표님한테 앨범으로 내달라고 하라고 하기까지 했어요.”
“하준이는 자작곡이 있으면 나한테 먼저 들려줘 봐야지······ 아, 궁금해!!”
최 대표는 얼른 휴대폰을 들어 하준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
그때, 김유택이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최 대표에게 내밀었다.
“여기 뒷부분 영상 찍은 거 있는데, 이거라도 먼저 들어보실래요?”
“그래, 그래. 노래는 원래 일부만 들어도 느낌이 딱 와야 돼.”
최 대표는 일단 소파에 앉아 김유택의 휴대폰에 녹화된 하준의 동영상을 재생했다.
김유택은 거의 후렴구부터 동영상을 찍어서 후렴구가 바로 나왔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너에게~ 바다 물결 바다 물결~ 너에게~
후렴구를 들은 최 대표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이건 무조건 앨범 내야 돼!”
그러고는 곧바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