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74화
“내가 대충 봤는데, 캐릭터 괜찮더라.”
최원상 대표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그래요? 어떤 캐릭터인데요?”
“미니시리즈들은 대부분 주인공 아역 역할인데, 그건 주인공 아들로 계속 나오는 거야. 게다가 재벌집 아들 역이고. 너 재벌집 아들은 안 해봤잖아? 음, 세자도 재벌집 아들로 칠 수 있나? 아, 그건 요즘으로 치면 대통령 아들이지, 참. 아무튼, 밥 먹고 이따 자세히 봐봐.”
하준은 짜장면을 다 먹은 후, 줄거리와 캐릭터 설명 등을 읽어 보았다.
“엄마를 잃고 차가워진 재벌집 아들······ 말수가 적고 웃음이 없다······ 성격도 제가 안 해본 캐릭터네요?”
“응, 그리고 주인공 남녀의 매개체가 요 아들이잖아? 주인공이 자기 아들을 돌봐주는 가정부 여자랑 엮이는 이야기니까. 그래서 비중도 좀 있고.”
“기본 스토리는 마음에 드는데, 대본 좀 더 읽어 볼게요.”
“그래, 그래, 천천히 봐. 뭐, 대본 보고 별로면 다른 것도 많으니까 다른 걸로도 골라보고.”
“네, 아, 여기 대본들 집에 가져가서 봐도 돼요?”
“그럼. 내가 유택이한테 박스에 담아서 옮겨주라고 할게.”
“감사합니다.”
하준은 대표실에서 일일드라마 대본을 좀 살펴보았고, 나머지 대본들은 집으로 가져왔다.
그러고는 본격적으로 차기작을 고르기 시작했다.
***
약 2주 뒤, 하준은 <유퀴스>에 출연하기 위해 녹화장으로 향했다.
녹화장에 들어서자마자, 스태프들이 먼저 하준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하준아! 아휴, 귀여워라!”
“안녕, 하준아. 오늘도 멋있게 하고 왔네.”
“누나가 하준이 팬이야. 너무 반갑다!”
작가들은 녹화 전에 하준과 미리 미팅을 했기에 하준을 친근하게 맞았다.
“하준아, 오늘 컨디션 어때?”
“좋아요.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었거든요.”
“오구, 그랬어? 손가락 컨디션은?”
작가들이 손가락 컨디션을 물은 이유는 오늘 하준이 손가락으로 보여줘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손가락 컨디션도 좋아요. 헤헤.”
하준이 열 손가락을 빠르게 꼼지락거리며 대답했다.
작가들은 그런 하준이 귀여워 어쩔 줄 몰랐다.
“손가락 귀여워! 저 귀여운 손가락으로 어떻게 그렇게 피아노를 잘 치지? 신기하단 말이야.”
“오늘 하준이 피아노 치는 것도 볼 수 있겠다. 기대 돼.”
“맞아. 얼른 듣고 싶다. 아, 하준아, 마이크부터 달자.”
작가는 하준의 옷에 마이크를 달아주었고, 그 사이 MC인 유재선과 조세후가 도착했다.
“오, 하준 군! 반가워요. 실제로 보니까 더 귀엽다.”
“와, 잘생겼다, 잘생겼어. 크면 꽃미남 되겠어요.”
두 사람은 하준에게 달려와 대뜸 칭찬부터 했다.
하준 역시 칭찬을 칭찬으로 돌려주었다.
“감사합니다. 저도 이 프로그램 재밌게 봐서 두 분 만나고 싶었어요. 너무 재밌으셔가지구요.”
“우리 재밌었어요?”
“네, 두 분 다 엄청 말씀을 잘하세요. 전 말은 재밌게 못 하거든요.”
하준의 말에 조세후가 괜찮다는 듯 말했다.
“에이, 얼굴이 유잼이라 괜찮아요. 우리는 얼굴이 노잼이라 입이 유잼. 안 그렇습니까, 형님?”
조세후의 말에 갑자기 하준이 웃음을 빵 터뜨렸고, 이에 조세후가 깜짝 놀라며 말을 이었다.
“오, 제 개그가 먹히나 봐요. 하준 군, 웃겼어요?”
“네, 저 아저씨 개그 좋아해요. 제 스타일이에요. 하하.”
“그래요? 좋아, 그럼 오늘 내가 아주 배꼽 빠지게 해줄게요. 나중에 배꼽 어디 갔냐고 따지면 안 돼요, 알겠죠?”
“아하하, 네. 너무 웃겨요.”
하준이 조세후의 말에 계속 빵빵 터지자, 유재선도 덩달아 웃으며 말했다.
“세후 개그는 특히 아이들한테 잘 먹히는 것 같아. 오늘 하준 군 신나게 웃겨줘.”
“아, 근데 너무 그러면 제가 부담스러워서······ 하아.”
조세후가 진심으로 걱정되는 표정으로 얕은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하준은 조세후가 별말 안 했는데도 표정이 재밌는지 조세후를 쳐다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오, 세후 얼굴이 꿀잼인가 보다.”
“아, 그래요? 다행이네. 내 얼굴이 웃음 버튼이었구나!”
조세후는 자신의 얼굴만 봐도 웃음을 터뜨리는 하준을 향해 다양한 표정을 지어주었다.
역시나 하준은 그 모습을 보며 깔깔대고 웃었다.
“오늘 방송 쉽겠다. 세후야, 분위기 어색해지려고 하면 바로 하준이한테 얼굴 들이밀어. 하하.”
“네네, 오늘 활약 기대해주세요.”
유재선과 조세후는 방송에 들어가기 전부터 하준을 재밌게 해주었고, 하준은 첫 예능 출연의 긴장감을 풀 수 있었다.
잠시 후, 녹화가 시작되자, 유재선은 하준의 소개부터 했다.
“오늘 모신 분은요, 엄청난 분입니다. 드라마, 영화, 뮤지컬을 데뷔 1년 차에 다 섭렵하고, 지상파 2곳의 아역상을 휩쓸고, 발매한 노래 2곡이 전부 음원차트 1위를 한 어마무시한 아역 배우, 하준 군입니다!”
유재선과 조세후가 박수로 하준을 맞았고, 하준은 배꼽인사를 하며 등장해 두 사람의 가운데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하준 군, 어서 와요. 시청자분들에게 자기소개부터 해줄래요?”
“네, 안녕하세요, 하준입니다. 활동명은 하준이고, 본명은 윤하준이에요.”
“오늘 하준 군, 예능 출연이 처음이라고 하던데, 여러 군데서 섭외가 갔을 텐데, 어떻게 우리 프로그램을 나오게 됐어요?”
“제가 유퀴스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사실 그 전에는 제가 입양아라는 걸 밝히지 않아서 괜히 부모님 질문 같은 거 나오면 곤란해서 나가지 않았어요.”
“아······ 얼마 전에 하준 군이 <죽지 않는 백화점>의 감독이신 윤기철 감독님의 양자라고 밝혔죠? 근데 이제는 입양 얘기하는 거 힘들거나 하진 않아요?”
유재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괜찮아요. 지금 엄마, 아빠가 너무 사랑해주시기도 하고, 팬분들도 많은 사랑을 주셔서 그동안 힘들었던 거, 사랑 못 받았던 거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랑을 받았거든요.”
“아, 사랑으로 치유를 받았군요. 참 좋은 분들이시네요.”
“네, 그래서 이렇게 큰 사랑을 받게 해주려고 하늘이 저한테 시련을 좀 주셨나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하준이 시크하게 답하자, 유재석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웃으면 안 되는데, 하준 군 말하는 게 무슨 득도한 도사 같네요. 너무 어른스럽고, 귀엽다.”
“도사 하니까 생각나는데, 하준 군, <신입 도사와 신비한 종소리> 드라마에서 도사 역할 했죠?”
조세후가 불쑥 끼어들어 하준에게 물었다.
“세후 씨,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야. 신비한 종소리 아니고. 줄여서 <신비종>.”
“아아, 헷갈려 가지고. 미안합니다.”
조세후가 하준에게 얼른 사과하자, 하준은 그 모습을 보고 또 웃음을 터뜨렸다.
유재선은 하준을 따라 웃으며 조세후를 가리켰다.
“웃음 버튼, 웃음 버튼. 방송 전부터 하준 군이 그렇게 조세후 씨 보기만 해도 웃기다고 빵빵 터졌거든요.”
조세후는 두 사람을 따라 웃은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신비종> 촬영은 다 끝난 거죠? 언제쯤 방송되는 거예요?”
“CG 작업 때문에 내년에나 방송될 거래요.”
“아, 그렇겠네요. 저는 그 드라마 엄청 기대하고 있거든요. 도술 마니아거든요. 축지법 쓩! 둔갑술 뿅! 분신술 촥촥촥!”
조세후가 팔을 휘두르며 의태어를 남발하자, 하준이 또 재밌다는 듯 까르르 웃었다.
“맞죠? 이거 <신비종>에 다 나오죠?”
“네, 다 나와요. 구름 타는 것도 나와요.”
“와!! 아, 맞다, 하준 군, 거기서 대금도 분다면서요?”
“네, 극중 제 역할이 대금으로 소리 공격을 하거든요. 물론 다른 것도 하는데, 대금 소리 공격이 특기예요. 그래서 대금을 조금 배웠어요.”
“어? 근데, 제가 여기 어디서 마침 대금을 본 것 같은데······.”
조세후가 능청스럽게 중얼거리더니 뒤쪽의 박스에서 주섬주섬 대금을 꺼내왔다.
“이거, 마침 대금이 있네요! 하준 군, 소리 한 번만 내주면 안 될까요?”
“헤헤, 그럼 조금만 불어볼게요.”
하준은 대금을 잡더니 능숙하게 아름다운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조세후와 유재선은 동공이 확장되고 입이 쩍 벌어졌다.
“우와!”
“와! 나 지금 소름 돋았어. 이렇게 잘 부는 줄 몰랐는데요? 기가 막히네!”
“저도요. 아마추어인 줄 알았는데, 프로네, 프로.”
조세후와 유재선은 기립박수를 보내며 하준을 칭찬했다.
“감사합니다.”
“우리 하준 군은 못 하는 게 진짜 없네!”
“아까 웃기는 거 못한댔어요. 아, 근데 얼굴이 유잼이니까, 못하는 거 없네, 없어.”
잠시 하준의 대금 연주를 감상한 후, 다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아, 이번에 개봉한 <죽지 않는 백화점> 이야기를 해볼까요? 지금 개봉한 지 3주 조금 넘었는데, 벌써 500만 관객이 넘었다면서요?”
“네, 아빠가 엄청 좋아하세요. 물론 저도 좋고요. 아빠는 500만 자신 없어 했거든요.”
“윤기철 감독님이 자신 없어 하셨어요?”
“네, 공포, 스릴러 쪽은 처음이어서 기대를 안 하셨나 봐요.”
“그래도 이렇게 하준 군이 명연기를 펼쳤는데, 기대하셔도 좋았을 것 같은데!”
“기대한 만큼 실망도 크다고······.”
“아하, 그건 그렇죠. 아무튼, 500만 축하합니다!”
유재선이 박수로 하준에게 축하를 해주었고, 조세후도 한마디 했다.
“앞으로 700만, 천만까지 쭉 달리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참, <죽지 않는 백화점>은 1년 전에 촬영 다 끝난 거였다면서요?”
“네, 그게 제 첫 영화였어요. 데뷔작이죠.”
“이때가 처음 연기한 거예요? 저 얼마 전에 극장 가서 봤는데, 연기 장난 아니던데. 그게 처음이라고요?”
조세후가 호들갑을 떨며 물었다.
“네, <죽지 않는 백화점>이 사실 제 인생을 바꾼 영화라고 할 수 있어요. 그 영화에서 아역 배우를 못 구해서 아빠가 길거리에서 아역 배우 할만한 애를 찾다가 절 처음 만나게 된 거거든요.”
“와, 영화 같은 이야기네요. 그 얘기 좀 더 해줄 수 있어요?”
유재선의 물음에 하준은 그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네, 그날은 제가 파양된 날이었어요. 파양되고 나서 다시 보육원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전 보육원에서 괴롭힘을 좀 당했어서 정말 돌아가기 싫었어요. 그래서······.”
유재선과 조세후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하준이 윤기철을 만난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때 아빠가 갑자기 눈물 연기 한번 해보라고 그랬는데, 제가 눈물이 얼마나 잘 나겠어요. 그 상황에.”
“그렇죠. 툭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 날 상황이었겠네요.”
“네, 근데 또 이상한 게 달리기를 시키는 거예요.”
“달리기요? 아, 좀비 피해서 달리려면 잘 달려야 되니까?”
“그것도 그건데, 아이들은 달리면 그렇게 웃는대요. 근데 쫓기고, 무서운 상황에서 웃으면 안 되니까 안 웃을 수 있는 애를 찾으셨나 봐요.”
“근데 마침 하준 군은 힘들었으니까, 웃음이 안 나오는 상황이었군요?”
“네, 그렇죠.”
“크으, 첫 역할로는 하준 군에게 딱이었네요.”
“네, 그리고 연기를 하게 되면 엄마, 아빠가 생긴다는 게 좋아서 바로 하겠다고 했고요.”
“하준 군은 연기하는 게 운명이네요. 윤기철 감독님과도 운명이고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활짝 웃었다.
“하준 군은 데뷔를 작년에 했는데, 활동을 진짜 많이 했어요. 상도 많이 받고, 화제도 많이 됐고요. 하나씩 얘기 나눠 볼까요?”
하준은 두 사람과 그동안 출연한 드라마, 뮤지컬 등에 관한 이야기와 발매한 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신비종> 캐스팅 때 대기실에서의 비화도 이야기했고, 뮤지컬에서의 에피소드도 풀어놓았다.
“뮤지컬은 라이브 공연이니까 대사 까먹으면 큰일 나거든요. 근데 베토벤 아버지 요한 역으로 나오셨던 안강훈 배우님이 저랑 대화를 하다가 대사를 깜빡하신 거예요. 몇 초가 지나는데 안강훈 배우님은 눈만 깜빡이셔가지고, 제가 대신 역으로 대사 해드린 적 있어요.”
“역으로 어떻게요?”
“원래 대사가 ‘넌 그냥 애비가 하라는 대로 연습만 열심히 하면 돼. 그딴 작곡은 집어치우고!’ 이거였거든요. 그래서 제가 ‘아버지, 작곡이 싫으세요?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연습만 하라는 말씀이시냐고요?’ 이렇게 물었죠.”
“오, 센스 있다! 그래서 안강훈 배우님은 뭐라고 답하셨어요?”
“‘그래! 작곡 집어치우고 애비가 시키는 대로 연습이나 해!’ 이러셨죠. 그래서 잘 넘어갔어요.”
“와, 잘한다!”
유재선과 조세후가 박수를 치며 하준을 칭찬했다.
이어 조세후가 하준에게 물었다.
“라이브 공연은 진짜 힘들겠어요. 근데 하준 군은 대사 잊어버린 적은 없었어요?”
“저는 없었어요.”
하준이 고개를 저었고, 유재선이 조세후에게 핀잔을 주며 말했다.
“세후, 하준 군 얘기 몰라? 남의 대사까지 다 외운대. 한 번도 대사 NG 난 적 없는 신동이라고 이쪽 업계에서 유명하잖아.”
“오, 그 얘기까지는 몰랐어요. 대단하네요!”
조세후가 이번엔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자, 그럼 이제 하준 군, 과거 이야기 많이 했으니까, 현재 이야기도 나눠 볼게요. 요즘 뭐하고 지내요?”
“최근에는 드라마, 영화 대본들 보느라 바빴는데요, 지금은 결정해서 캐릭터 분석 중이에요.”
“아, 차기작 결정했다는 소식 본 것 같아요. 일일드라마였죠? 제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