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73화
드디어 촬영 완료 1년 만에 윤기철 감독의 영화 <죽지 않는 백화점>이 개봉됐다.
윤기철과 하준은 주연 배우들과 함께 무대인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지금 영화 끝났어요. 들어가시죠!”
직원의 안내를 받아 배우들과 윤기철은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와아!!!”
“차우민이다!”
“하준이 너무 귀여워!”
상영관에는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었고, 관객들은 배우들이 등장하자 환호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감독인 윤기철이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죽지 않는 백화점>의 연출을 맡았고, 여기 하준이의 아빠인 윤기철입니다.”
“와아아!!”
“열렬한 환호 감사드립니다. 영화 재밌게 보셨나요?”
“네에!!”
“진짜 재밌었어요!”
“감동적이었어요!”
“대박날 것 같아요!”
관객들은 영화에 만족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큰소리로 답해주었다.
“하하, 감사합니다. 제가 공포, 스릴러 쪽은 처음 연출해봤는데, 만족하셨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소문 많이 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윤기철 다음은 차우민 차례였다.
“안녕하세요, 안주환 역을 맡은 차우민입니다.”
“와아악!”
“멋있다아!!”
관객들은 차우민이 인사만 했는데도 무척 좋아했다.
“감사합니다. 저는 아들이 있는 이혼남 역할은 처음이었는데요, 촬영 내내 즐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하준이와 촬영하면서 하준이 같은 아들이 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 했거든요. 윤기철 감독님이 부럽네요.”
차우민의 말에 윤기철이 어깨를 으쓱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차우민이 관객들에게 물었다.
“그래도 영화에서 저랑 하준이 케미 좋았죠? 정말 아빠와 아들 같지 않았습니까?”
“네, 맞아요!”
“눈물 났어요! 둘이 진짜 부자 같았어요!”
관객들은 하준과 차우민의 케미를 인정해 주었고, 차우민은 활짝 웃었다.
“하준이가 연기를 참 잘해서 제가 몰입하기 정말 쉬웠어요. 사실 개봉을 지금 해서 그렇지, 하준이가 이 작품이 데뷔작이거든요. 연기학원 같은 데도 한번도 안 다녀봤다는데 어찌나 연기를 잘하는지, 깜짝 놀랐었어요. 아무튼, 여러분도 재미있게 보셨다니 보람 있고 행복하네요. 입소문 많이 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차우민에 이어 김지숙이 마이크를 받아 말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하준이 엄마 역을 맡은 김지숙입니다. 오늘 객석이 꽉 찬 걸 보니까 제 마음도 꽉 찬 것 같네요. 이렇게 보러 와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김지숙은 아예 자신을 ‘하준의 엄마 역’이라고 소개해 웃음을 자아냈고, 마지막으로 하준이 마이크를 잡았다.
하준이 마이크를 잡자마자, 관객들은 환호와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이 박수와 환호에는 하준을 향한 대중들의 격려와 위로가 가득 담겨 있었다.
하준이 입양아인 것을 아는 관객들은 이 어린아이에게 힘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관객들의 마음을 느낀 하준은 더 활짝 웃으며 배꼽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안도진 역을 맡은 하준입니다.”
“와, 귀엽다!!”
“하준이 연기 최고!”
“하준이 파이팅!!”
하준이 인사하자, 관객들은 여러 격려의 말을 쏟아내며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냈다.
“헤헤, 감사합니다. 요즘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아서 정말 행복하네요. 그리고 저한테 엄마, 아빠가 정말 많아졌거든요? 차우민 아빠, 윤기철 아빠, 김지숙 엄마도 있고, 다른 드라마에서 만난 엄마, 아빠도 있고요. 아, 삼촌들도 많고, 랜선 누나, 이모들도 많아졌어요.”
하준이 감격스럽게 이야기하자, 갑자기 객석 중간쯤에서 서너 명 정도의 팬들이 ‘연기 신동 하준’이라고 적힌 작은 플래카드를 흔들며 소리쳤다.
“하준아, 여기 랜선 누나들 왔다!!”
우렁찬 누나들의 외침에 모두들 빵 터져서 상영관은 잠시 웃음바다가 되었다.
하준도 방긋 웃은 뒤 누나들에게 짧은 양팔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를 만들어 주고는 말을 이었다.
“누나들, 사랑합니다!”
“꺄아! 귀여워! 우리도 사랑해!!”
흥이 가득한 누나들은 하준의 하트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좋아했다.
“감사합니다. 음, 차우민 아빠 말처럼, 제가 처음 연기를 시작하게 된 작품이 바로 이 <죽지 않는 백화점>이에요. 처음이라 부족한 점도 많을 텐데, 귀엽게 봐주시면 좋겠고요. 아, 이런 얘기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죽지 않는 백화점> 손익분기점이 관객 200만 명이래요. 그래서 200만 명만 넘었으면 좋겠어요. 소문 많이 내주세요. 감사합니다!”
하준은 아빠인 윤기철이 손해가 날까 봐 걱정이 되었고, 관객수 200만 명만 되길 기원했다.
그러자, 사회자가 하준에게 물었다.
“하준 군, 그럼 200만 넘으면 공약 있어요?”
“공약이요? 어······ 생각 안 해봤는데······.”
하준이 차우민과 윤기철 등을 쳐다보며 눈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차우민이 마이크를 잡았다.
“음, 근데 이왕 공약 걸 거면 손익분기점 공약보다는 한 500만 공약은 해야죠. 안 그렇습니까, 감독님?”
“어······ 500만이나?”
윤기철은 솔직히 500만은 자신이 없었다.
첫 공포 영화기도 하고, 저번에 흥행에 성공했던 영화도 500만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번 영화는 손익분기점이 100만 명이 안 됐기에 약 450만 명의 흥행성적에도 수입이 꽤 됐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윤기철 감독의 영화 중 최대 성적이었다.
그때, 하준이 당당하게 손을 들며 말했다.
“럭키 세븐이라는 말이 있으니까, 700만 할래요!”
“어어?? 700만은 정말 힘들 텐데······.”
윤기철 감독이 화들짝 놀라며 당황해하는데, 차우민이 박수를 짝 치며 말했다.
“그렇지! 7자 좋다! 감독님, 우리 700만 공약 가시죠. 꿈은 크게 가지는 거잖아요? 음, 근데 뭐하죠? 여러분, 뭐 할까요?”
“게릴라 콘서트요!”
“단체 춤!”
“노래요!”
“백화점에서 700명 팬 사인회!”
차우민의 질문에 관객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소원을 마구 내질렀다.
“와, 백화점에서 700명 팬 사인회가 꽤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요, 근데 700명 사인하다가는 손목 나가요. 진짜 힘들 거예요. 그리고 백화점에 민폐가 되지 않을까 싶고······. 노래, 노래할까요?”
“저 노래 못하는데, 하준이가 노래 잘하니까, 하준이가 노래하고 우리는 춤 추는 게 어때요?”
김지숙은 노래보다는 춤을 추겠다며 제안했다.
그러자, 사회자가 나서서 적당한 아이디어를 주었다.
“이렇게 하시는 건 어떤가요? 700만이니까, 7개의 상영관에 찾아가서 춤추고 관객들 중에 추첨해서 7명한테 선물 주는 거요.”
“괜찮은 것 같아요.”
“이걸로 하죠!”
다들 고개를 끄덕였고, 700만 관객 공약은 이것으로 정해졌다.
윤기철은 무대를 내려오면서 하준에게 걱정스럽게 말했다.
“하준아, 관객수 700만은 정말 어려운 거야.”
“뭐, 안 되면 공약 안 하면 되지. 무슨 걱정이야?”
“그래도 700만 공약 했다고 기사 나가고 나서 터무니없는 성적 나오면 좀······.”
“괜찮아. 이번 영화로 700만 못 넘으면 다음 영화에서 넘으면 되지. 내가 찾아봤는데, 유명한 감독들도 계속 흥행하지는 못하던데 뭐. 아빠도 너무 걱정하지 마.”
하준은 오히려 어른스럽게 윤기철을 다독였다.
“허허, 아빠보다 아들이 더 어른스럽네? 그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우린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긴 하지.”
윤기철은 빙긋 웃으며 하준과 차에 올랐다.
***
“안녕하세요, 대표님!”
하준이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며 최선희와 함께 최원상 대표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오, 하준이 빨리 왔네? 무대인사 끝나고 바로 온 거야? 저녁도 안 먹고?”
최 대표가 시간을 확인해보더니 하준에게 물었다.
“네, 오늘은 여기서 짜장면 먹고 싶어서요.”
“아하, 천향각 짜장면?”
하준이 사무실에서 노래나 춤 연습을 하면 최 대표는 여러 배달 음식을 시켜주곤 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사무실 근처의 천향각이란 중국집의 짜장면이 하준의 입맛에 딱 맞았다.
그래서 가끔 식사 때 사무실에 있으면 천향각 짜장면을 시켜 먹곤 했다.
“네, 대표님이 마침 할 얘기도 많다고 하셨으니까, 같이 먹으면서 얘기하려고요. 그래도 되죠?”
“그럼, 당연하지. 작가님도 짜장면 드실래요?”
“저는 짬뽕이요.”
“양장피나 깐풍기, 탕수육 같은 거 드셔도 되는데, 뭐 더 드시고 싶은 거 없으세요?”
“전 괜찮아요. 하준아, 뭐 더 먹을래?”
“깐풍기 먹을래요.”
“오케이. 깐풍기 추가.”
최 대표는 사무실의 다른 직원들에게도 의사를 물은 뒤 천향각에 음식을 주문했다.
“자, 그럼 음식 올 동안 얘기를 좀 해볼까?”
최 대표가 손을 비비더니 자기 책상에서 서류와 대본 뭉치를 한아름 들고 와서 테이블에 내려놓고 소파에 앉았다.
“참, <죽않백> 드디어 100만 관객 넘었던데, 추이가 좋더라. 작가님, 윤 감독 좋아하죠? 저번 영화보다 추이가 좋은 거 아니에요?”
최 대표가 최선희에게 묻자, 최선희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이 정도 추이면 500만은 넘을 수 있겠다고 요즘 입이 귀에 걸렸어요. 인터뷰도 몇 개 했고요.”
“그 친구 바쁘겠구만. 아, 하준아, 너도 이제 더 바빠질 예정이야. 여기 제안 온 것들이야. 광고, 드라마 시나리오, 영화 시나리오 한가득이다, 한가득.”
최 대표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고, 하준은 엄청난 대본량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다요? 엄청 많네요!”
“응, 게다가 오디션 보러 오라는 것도 아니고 캐스팅 제안이야. 아, 예능 출연 제안도 있는데, 괜찮은 거 한두 개 나가자. 이제 뭐 숨길 것도 없으니까.”
“예능은 어떤 거요?”
“영화 홍보도 할 겸 <유퀴스> 나가는 거 어때? 이거 엄청 인기 있는 거 알지?”
<유퀴스>는 ‘유 퀴즈 스토리’의 약자로 다양한 사람들을 초대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간단한 퀴즈도 푸는 프로그램이었다.
“와, <유퀴스>요? 뭔지 알아요. 인터뷰처럼 하는 거죠?”
“응, 인터뷰 중심이긴 한데, 뭐 노래도 시키면 하고, 네 끼를 막 펼쳐도 돼.”
“나갈래요. 영화 홍보에도 좋고, 저도 재밌을 것 같고요.”
“오케이, 그럼 다른 것들도 봐봐.”
최 대표의 말에 하준은 테이블에 올려진 대본들과 제안서들을 들춰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드디어 짜장면이 도착했다.
“하준아, 먹고 봐. 불면 맛없어.”
최선희의 말에 하준이 대본에서 눈을 떼고 젓가락을 들었다.
“으음! 대표님, 역시 여기 짜장면이 제일 맛있어요.”
“그치?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최 대표는 짜장면이 아니라 지삼선 덮밥을 먹고 있었다. 지삼선 덮밥은 가지 튀김과 감자, 피망 등을 간장 양념에 볶아 밥 위에 얹어 먹는 음식이었다.
의아하게 생각한 하준이 물었다.
“근데 대표님은 왜 짜장면 안 드시고 그거 드세요?”
“아, 여기 짜장면 하도 먹어서 물렸거든. 요즘 그래서 이 집 다른 식사류 안 먹어본 거 시켜 먹어보고 있어.”
“아······.”
하준은 가끔 와서 먹는 거지만 최원상 대표는 맨날 먹으니 얼마나 질리겠나 싶었다.
“대표님, 회사에 식당 있으면 좋겠죠?”
“말해 뭐해? 맨날 시켜 먹는 거 고르는데도 시간 엄청 걸려. 직원들도 주변 음식점 음식들 하도 먹어서 질려 하고. 근데 직원식당 만들려면 돈 엄청 벌어야 돼. 그래도 요즘 우리 아이돌 애들 인지도가 좀 올라갔어. 하준이 덕분에.”
작년 말에 낸 캐럴 앨범 덕분이었다.
그때 뮤직비디오도 찍었었는데, 월드 엔터의 남녀 아이돌들은 하준의 인기에 숟가락을 얹어 요즘은 작년과는 확연히 다른 인지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다행이네요. 형, 누나들이 더 잘 되면 좋겠어요.”
하준은 아직 자신이 너무 어려서 월드 엔터에 큰 부를 가져다주지는 못하기에 이렇게 말했다.
“그래, 잘 돼야 할 텐데. 근데 하준이가 이번에 찍은 <신비종> 잘 되면 그게 진짜 대박일 거야. 후후. 얼른 먹어, 먹어.”
최 대표는 하준의 <신비종>을 매우 기대하고 있었다.
이게 잘만 되면 하준이 전세계적인 스타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
하준은 다시 짜장면을 몇 젓가락 먹더니, 뭔가 궁금한 게 생겼는지 최 대표에게 물었다.
“대표님, 이번에 들어온 대본 중에 일일드라마는 없어요?”
“맞다, 너 밤에 나오면 졸려서 본방사수 못한다고 일일드라마 하고 싶댔지? 있지, 왜 없겠어? 자, 여기, 이게 KBC 일일드라마야. 저녁 8시 반에 하는 거.”
최 대표가 테이블 위의 대본더미를 이리저리 들춰보다가 맨 아래 깔린 대본을 꺼내 하준에게 넘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