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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만 걷는 천재스타-72화 (72/150)

72화

72화

그 시각, 하준의 팬들은 인터넷 생방송 라이브로 방송 중인 <죽지 않는 백화점>의 언론시사회를 시청하고 있었다.

하준은 언론시사회 전날 밤, 팬카페에 글을 하나 남겼다.

[안녕하세요, 하준입니다^^

오늘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말하지 못한 비밀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 비밀은 아마 내일 <죽지 않는 백화점>의 언론시사회에서 밝히게 될 것 같아요.

누나, 형들에게 먼저 알려드리고 싶은데, 여기에 글을 남기면 금방 기사화가 될 것 같아서 직접 적지는 못해요. 죄송해요.

제가 누나, 형들에게 가장 먼저 비밀을 털어놓고 싶었다는 마음만은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럼 내일 <죽지 않는 백화점> 언론시사회 라이브 방송에서 만나요!]

하준은 자기와 가까운 팬들에게 가장 먼저 입양 사실을 직접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언론시사회 전에 솔직히 털어놓고 싶었는데, 최 대표가 하준을 만류했다.

글을 쓰면 바로 기사화될 것이라고 말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언론시사회는 하준의 기자회견이 될 공산이 컸다.

아예 처음부터 하준의 입양 사실에 포인트가 맞춰지면, 영화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고 하준의 이야기만 크게 부풀려질 터였다.

이 때문에 하준은 그저 비밀이 밝혀질 거라는 사실만 팬들에게 알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팬들은 어떤 큰 비밀이기에 하준이 차마 먼저 말을 할 수는 없는지 무척 궁금하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수많은 팬카페 회원들이 <죽지 않는 백화점>의 언론시사회 라이브를 시청했다.

그리고 그 비밀이 ‘입양’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팬들은 안타까워하며 하준을 응원하는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입양아인 게 뭐가 어때? 하준이, 힘내라!]

[하준이 힘들었겠다 ㅜㅜ]

[마음 아파 ㅠㅠㅠㅠㅠㅠ 꼭 이렇게 상처를 끄집어내야 되나!]

[윤기철 감독님 되게 따뜻한 분이다······!]

[영화 인연으로 입양까지! 하준이랑 윤기철 감독님이랑 엄청난 인연이네~]

[지금 행복하다니 넘 다행이야ㅠㅠ]

[하준이 울리지 마!]

팬들은 악의적인 질문을 한 기자에게도 욕을 한 바가지 해주었다.

[저 기레기! 질문을 해도 꼭 저렇게 해야 되냐! 애 상처받게!!]

[아니, 왜 질문을 저 따위로 해? 하준이랑 윤기철 감독님한테 사과해라!]

[왜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건데? 어이상실.. 기자면 최소한 중립은 지켜야지 저게 뭐야]

[기레기라 그렇지 뭐. 그래도 저 기레기만 그러고 다른 기자님들은 안 그러니 그나마 다행..]

무대 밑에서 김유택은 휴대폰으로 <죽지 않는 백화점> 라이브 방송을 켜 두고 실시간 댓글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다행히 하준에 대한 응원 댓글이 대부분이자, 김유택은 최 대표에게 슬쩍 괜찮다는 사인을 주었다.

최 대표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했다.

사실 최 대표는 월드 엔터의 직원들을 댓글부대로 대기시켜 둔 상태였다.

혹시라도 안 좋은 댓글이나 의도적으로 하준이나 윤기철을 까내리는 댓글이 많이 올라오면 좋은 쪽으로 여론을 몰아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하준이 대답을 잘해줘서 팬들은 물론 일반 사람들도 하준을 안타까워하며 응원했기 때문에 월드 엔터의 직원들이 특별히 나설 일은 없었다.

한편, 무대 위의 하준은 계속해서 대답을 이어나갔다.

“질문이 상처가 됐지만, 답변은 할게요. 아빠, 엄마가 저 때문에 오해를 받는 것이 싫으니까요. 지금부터 제가 말하는 사실을 그대로 기사에 실어 주시기를 여기 기자님들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하준은 부탁드린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배꼽 인사를 했고, 기자들은 짠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제 활동은 모두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것들뿐이에요. 엄마와 아빠는 제가 뭘 하고 싶다고 하면 다 시켜주시고, 적극 지원해주셨어요. 피아노를 치고 싶다고 하면 피아노를 사주시고, 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하면 기타를 사주셨습니다. 제가 뮤지컬에서 피아노 직접 친 건 알고 계시죠?”

하준의 물음에 기자들이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당연히 먹고 싶은 것도 다 사주셨어요. 전 엄마, 아빠를 만나서 처음으로 랍스터도 먹어보고, 한우 스테이크도 먹어봤고요. 뷔페도 처음 가 봤고, 놀이동산도 처음 가봤어요. 눈 오는 날 눈사람도 만들고, 크리스마스 트리도 같이 꾸몄고요. 이게 다 엄마, 아빠를 만나서 처음 한 것들이에요. 아, 아빠가 인형뽑기에서 인형도 뽑아주셨다는 걸 빼먹었네요.”

하준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그동안 윤기철, 최선희와의 추억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윤기철은 하준이 가족과 함께 한 모든 일들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아 고맙고 기뻐서 눈가가 촉촉해졌다.

“제가 이렇게 말해도 제가 번 돈으로 사주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분들 있으시겠죠? 하지만, 아닙니다. 제가 번 돈은 제 통장을 만들어서 넣어주셨고, 한 푼도 가져가지 않으셨어요. 아들을 키우는 데 드는 돈은 당연히 엄마, 아빠가 해줘야 하는 거라고 말씀하시면서요.”

하준은 진실만을 말했고, 그 진실은 기자들에게도 거짓 없이 들렸다.

하준은 최선을 다해 진실을 전한 후, 마지막으로 다짐하듯 말했다.

“구구절절 해명을 해도 안 믿으실 분들은 안 믿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앞으로 제 행보를 잘 봐주세요. 제가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하게 잘 자라는지 잘 지켜봐주세요. 전 자신 있어요. 엄마, 아빠와 행복하게 살 자신이요. 아빠, 아빠도 그렇지?”

하준이 윤기철을 바라보며 당차게 물었다.

윤기철은 옷소매로 눈을 슬쩍 비비고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우리 하준이와 행복하게 살 자신 있습니다. 앞으로 지켜봐 주십시오.”

하준은 윤기철과 눈을 맞춘 채 그를 따라 웃었다.

그러고는 윤기철에게 와락 안겼다.

기자들은 피로 맺어진 진짜 부자 관계가 아님에도 두 사람 사이에 이어진 끈끈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아름다운 부자를 찍기 위해 플래시가 사방에서 미친 듯이 깜빡였다.

그때, 옆에 있던 배우들이 감동한 표정으로 하나둘씩 두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자들 사이에서도 박수가 터져 나왔고, <죽지 않는 백화점> 언론시사회는 이렇게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

하준과 윤기철은 언론시사회 직후 믿을만한 기자와 입양 관련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고, 여기서 보육원에서 나오게 된 이유와 한 번 파양 되었었다는 이야기를 언급했다.

혹시라도 실제와는 다르게 소문이 나거나, 예전 양부모 혹은 보육원장 등과 얽힐까 봐 아예 하준 측에서 먼저 밝히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대중들은 언론시사회 기사와 단독 인터뷰 등으로 하준이 윤기철 감독에게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준의 과거사를 알게 된 대중들은 하준을 안쓰러워했고, 윤기철 부부를 칭찬했다.

또한 그런 환경에서도 이렇게 밝게 자라준 하준을 기특해하며 응원 댓글도 잔뜩 달았다.

[하준이가 윤기철 감독한테 반말하는 거 보면 이건 찐이다, 찐. 서로 진짜 아빠와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거임.. 하준 가족 행복하길 바라ㅜㅜ]

[맞아, 진짜 부자 같더라.. 난 친자식인데도 어릴 때 아빠한테 저렇게 안겨본 적 없음;;]

[하준이나 윤기철 부부나 대단.. 저 나이면 마음 열기 쉽지 않았을 텐데, 하준이도 착하고, 또 그걸 품어준 윤기철 부부도 진짜 좋은 사람들인 듯]

[윤기철 감독 부인이 항상 하준이 촬영장에 데려다주고 케어해준다고 함]

[만남이 진짜 운명적이다..]

[하늘이 고생한 하준이한테 선물을 준 게 아닐까]

[하준이 어린 나이에 참 힘들었겠다ㅜㅠ 앞으로는 꽃길만 걷길!!]

[이미 걷고 있잖아? 계속 꽃길 걷길!!]

[이 가족 잘 됐으면 좋겠다~ 너무 훈훈한 가족임ㅎㅎ]

“다들 우리 하준이 잘되라고 응원해주네!”

“다들 우리 가족 행복하라고 축복해주고!”

최선희와 윤기철이 댓글을 확인하고는 하준의 손을 잡고 즐겁게 외쳤다.

그러자 하준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엄마, 아빠, 나 예전엔 세상에 좋은 사람들보다 나쁜 사람들이 훨씬 많다고 생각했었어. 엄마랑 아빠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야. 근데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아. 이 세상엔 나쁜 사람들보다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아!”

“그럼, 그럼!”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아!”

하준이 양팔을 넓게 펼치며 외쳤고, 윤기철과 최선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하준에게 맞장구를 쳤다.

물론 윤기철과 최선희는 속으로 약간 걱정이 되긴 했다. 바로 내일 학교에서 하준의 친구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다음 날, 최선희는 하준을 학교에 데려다주며 말했다.

“하준아, 혹시 학교에서 무슨 일 있으면 엄마한테 연락해. 엄마는 이 근처에서 볼일이 좀 있어서 연락하면 바로 올 수 있으니까.”

“응? 왜? 학교에서 무슨 일?”

“아, 뭐, 기자들이 찾아왔다거나 뭐 그런 거.”

“아하. 응, 알았어!”

하준은 어제 모든 비밀을 털어놔서 마음이 홀가분한지 한층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문 안으로 사라졌다.

그런 하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최선희는 속으로 부디 하준이 상처받는 일이 없기를 빌었다.

“안녕, 얘들아!”

하준은 교실로 들어서며 여느 때처럼 밝게 인사했다.

“어어, 안녕······.”

“안녕······.”

아이들은 평소와 달리 조금 당황해하며 인사를 받았으나, 하준은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하준은 자리에 앉으며 바로 앞에 앉은 절친 고우주에게 인사했다.

“우주야! 안녕!”

“어어······.”

고우주는 뒤를 돌아보더니 하준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매우 난감해하면서 말을 얼버무렸다.

하준은 고우주의 변화는 캐치했다. 평소 고우주는 언제나 하이톤으로 파이팅이 넘쳤으니까.

“응? 너 왜 그래?”

“어······ 그게······.”

고우주는 뭔가 말을 할까 말까 하더니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려 다시 앞을 보았다.

순간, 하준은 설마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 때문에 그런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설마······.’

하준은 고우주에게 뭔가 개인적인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일단은 그냥 두었다.

그런데 반 전체 분위기도 뭔가 어색함이 감돌았다.

반 아이들은 하준에게 말도 잘 걸지 않고, 하준의 눈치만 힐끗힐끗 보며 뭔가 어색하게 굴었다.

하준이 이상한 분위기에 점점 주눅이 들어가고 있는데, 고우주가 하준에게 쪽지 하나를 건넸다.

“이게 뭐야?”

“······읽어 봐.”

하준은 고우주가 준 쪽지를 펼쳤다.

[하준아, 기사 봤어. 난 네가 너무 밝고 부모님이랑 사이도 좋아서 그런 사정이 있는 줄 몰랐어. 진짜 가족 같았거든.

난 사실 아빠와는 사이가 별로 안 좋아서 너네 가족이 부럽기도 했었어.

아무튼 너희 부모님은 정말 좋은 분들 같아. 너도 좋은 친구고.

아, 우리 엄마가 네 앞에서 말조심을 하랬거든? 입양 얘기를 하지 말래. 근데 또 위로도 해주라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위로는 어떻게 하는 거냐? 너무 어려워.

음, 아무튼 위로한다.

위로는 했으니까, 이제 그냥 평소처럼 말해도 되지?

답장 줘. 당장.

P.S. 저번에 보여준 마술, 나 좀 가르쳐주면 안 되냐?]

하준은 고우주가 자길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서 그랬다는 말에 반 분위기가 왜 이런지 이해가 갔다.

하준은 얼른 앞에 앉은 고우주의 등을 툭툭 쳤다.

고우주가 뒤를 돌아보자, 하준이 반 친구들 모두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답장 줄게! 자, 그냥 말해! 나 아무렇지도 않아. 위로할 필요도 없어. 왜냐면 난 지금 행복하니까.”

“그, 그렇지? 아니, 나는 그냥 똑같이 지내려고 했는데, 엄마가 막, 진짜 친구는 위로를 해줘야 한다잖아.”

“위로는 힘들 때 해주는 건데, 난 지금 안 힘들어. 지금 나한테 필요한 건 그냥 같이 떠들고 노는 거야.”

“아, 진짜, 엄마 때문에 머리만 터질 뻔했네. 야, 그럼 내가 오늘 너 만나면 하려고 했던 말 할게. 그 지갑 마술 어떻게 하는 거냐? 다시 보여주라, 응?”

고우주는 몇 분 만에 예전의 고우주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다.

“안 그래도 네가 너무 신기해해서 오늘 또 보여주려고 가져오긴 했는데.”

“와, 진짜, 진짜? 얘들아, 모여봐! 하준이 마술하는 거 봐봐. 내가 엊그제 봤는데 개신기해! 너네 보면 깜짝 놀랄걸?”

마술 이야기에 아이들은 하준 곁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그리고 언제 어색해했냐는 듯 신나서 마술을 구경했고, 다시 평소처럼 하준을 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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