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71화
<죽지 않는 백화점> 언론시사회에는 수많은 언론사 기자들이 참석했고, 배우와 감독의 질의응답에 앞서 영화 상영이 진행되었다.
그 사이 하준과 윤기철은 대기실에서 <죽지 않는 백화점> 주연 배우들인 김지숙, 차우민, 유송이와 만났다.
“하준아! 우리 하준이, 한 달 만에 더 큰 거 같은데?”
김지숙이 하준에게 달려와 손을 잡으며 말했다.
사실 이들은 한 달 전 <죽지 않는 백화점> 포스터 촬영 차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헤헤, 그래요? 아빠, 나 키 컸어?”
하준의 말에 실제 아빠인 윤기철과 극중 아빠인 차우민이 동시에 대답했다.
“좀 큰 것 같아.”
“커 보이기도 하고?”
그러고는 서로를 쳐다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 난 나한테 물은 줄 알고······.”
“저도 저한테 물은 줄 알았어요. 하하.”
그러자 김지숙이 궁금했는지, 하준에게 물었다.
“하준아, 지금 어느 아빠한테 물은 거였어?”
“음, 두 분 다요!”
하준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활짝 웃으며 답했다.
사실 하준은 윤기철에게 물은 것이었지만, 차우민이 민망해할까 봐 이렇게 답한 것이었다.
윤기철은 <죽지 않는 백화점>의 주연배우들에게 자신이 하준을 입양했다고 미리 알려두었다.
오늘 질의응답에서 이야기가 나올지 모르니 놀라지 말라고 말이다.
하준이 고아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주연배우들은 윤기철에게도, 하준에게도 너무 잘된 일이라며 축하해주었다.
“참, 하준아, <신비종> 촬영 끝났다면서? 언제 방송하는 거야?”
<죽지 않는 백화점>에서 고등학생 역으로 나왔던 신인여배우 유송이가 하준에게 물었다.
“내년 초에나 방송될 거래요. CG 작업이 많아서요.”
“그렇겠다. 도술학교 이야기니까 막 구름 타고 다니고, 축지법 쓰고 그러겠다, 그치?”
“네, 맞아요.”
“몇 부작이야?”
“시즌 1은 10부작이요.”
“그럼 시즌 1 잘 되면, 시즌 2도 찍는 거야?”
“네, 시즌 1이 거의 2권까지 내용이거든요. 책 내용 다 하려면 앞으로 한 시즌 5까지는 해야 끝날 텐데······ 제발 잘 되면 좋겠어요. 안 그러면 끝까지 못 찍게 될 테니까요.”
“잘 되면 좋겠다! 우리 하준이 오래 보게!”
“감사합니다, 누나.”
하준은 함께 나온 주연배우들과 근황 이야기를 나누며 긴장을 풀었다.
잠시 후, 영화 상영이 끝났고, 마침내 그들은 질의응답을 위해 준비된 무대로 올라갔다.
수많은 기자들이 현장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셔터를 눌러댔기에 언론시사회장은 쉴새 없이 번쩍거렸다.
최선희와 최원상 대표, 그리고 매니저 김유택은 무대 바로 아래 구석에서 긴장된 표정으로 하준을 지켜보고 있었다.
“<죽지 않는 백화점>의 주연 배우분들과 감독님을 무대로 모셨습니다. 차우민 배우님부터 한 분씩 차례로 인사 부탁드립니다.”
사회자의 말에 차우민부터 앞에 놓인 마이크를 들어 인사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죽지 않는 백화점>에서 경찰특공대원 안주환 역을 맡은 차우민입니다. 반갑습니다.”
차우민을 시작으로 김지숙, 유송이가 인사했고, 이어 강진욱이 마이크를 들었다.
강진욱은 스케줄 때문에 질의응답 시간에 딱 맞춰 이곳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죽지 않는 백화점>에서 좀비 우두머리 역을 맡은 강진욱입니다.”
다음 차례는 하준과 윤기철이었다.
“안녕하세요, <죽지 않는 백화점>에서 안주환 아빠의 아들 안도진 역을 맡은 하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죽지 않는 백화점>의 연출을 맡은 윤기철입니다.”
모두의 인사가 끝나자, 곧바로 기자들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뉴스 A의 이철수 기잡니다. 먼저 영화 잘 봤고요, 윤기철 감독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요즘 K-좀비가 전 세계를 열광시키고 있는데요, <죽지 않는 백화점>에서의 K-좀비는 기존의 K-좀비와 어떤 점이 비슷하고, 또 어떤 점을 다르게 표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음, 일단 기존에 K-좀비의 특징인 스피드는 살렸고요, 다른 점이 있다면 좀비가 아무 생각 없이 오로지 먹을 것만을 찾아서 사람을 쫓는 것이 아니라, 영리한 한 좀비의 탄생으로 좀비 우두머리의 지시에 따라 군대처럼 움직이는 것을 차별점으로 두었습니다.”
초반에는 역시 영화의 전반적인 기획의도와 관련된 질문들이 윤기철 감독에게 쏟아졌다.
“좀비 우두머리가 계획적으로 지시를 내리고 지성이 살아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고, 흥미로웠는데요, 그렇다면 배경을 백화점으로 하신 이유가 이런 부분과 연관성이 있을까요?”
윤기철이 시나리오도 직접 썼다는 사실을 아는 한 기자가 물었다.
“네, 백화점에는 다양한 물건들이 있지만, 또 한정적이잖아요? 그래서 도구의 활용, 고립된 곳에서의 긴장감 등을 살리기에 백화점이 적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목숨을 건 탈출이다 보니 가족애, 인류애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감독님은 어떤 식으로 이런 것들을 구성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일단은 안주환 가족의 가족애가 중심이었고, 좀비 우두머리와 안주환의 관계 속에서······.”
기획의도 관련 질문이 끝나자, 이제 배우들에게로 질문이 이어졌다.
“배우님들 모두에게 질문드리겠습니다. 각자의 역할을 잘 소화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들을 하셨는지, 연기하는 데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먼저 차우민이 마이크를 들었다.
“음, 저는 액션이 많다 보니까, 여기 강진욱 씨와 액션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액션은 그렇게 안 어려웠는데, 아들과 함께 도망치는 역할이라 여기 하준이를 안고 업고 액션을 하려니 힘이 좀 부치더라고요. 하준이도 매달려 있느라 힘들었고요. 그래도 감정연기는 하준이 덕분에 아주 수월했습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하준이가 울면 마음이 막 아리면서 저절로 몰입이 되거든요.”
차우민의 말에 기자들 대부분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김지숙, 유송이도 각자의 노력과 어려움에 대해 말했고, 다음으로 좀비 우두머리 역할의 강진욱이 입을 열었다.
“저는 사실 처음에 좀비 우두머리라고 해서 열심히 달리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이름만 좀비고 여기 특공대원 뺨치게 액션을 해야 되더라고요. 근데 좀비라서 눈에 흰 렌즈를 끼고 하다 보니까 합 맞추는 게 무척 힘들었습니다. 거의 뭐 눈 감고 감각으로만 액션을 한 거나 다름없었어요. 제가 데어데블이 된 것 같았죠.”
데어데블은 영화 <데어데블>의 주인공으로, 방사능 사고로 실명했으나 다른 감각들이 초인적으로 발달하게 되어 범죄에 맞서 싸운 슈퍼히어로 캐릭터였다.
“그런 점이 좀 어려웠지만, 좀비도 캐릭터성이 부여돼서 좋았습니다. 다른 K-좀비 영화들과의 차별점이 제 캐릭터에서 확 드러나서 무척 마음에 드는 역할이었고요.”
강진욱은 자신의 캐릭터가 정말 마음에 들었는지 신나게 좀비 우두머리에 대한 설명을 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하준의 차례가 되었다.
“저는 첫 영화여서 감정 연기를 열심히 준비했던 것 같아요.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차우민 아빠랑 김지숙 엄마, 다른 배우분들, 여기 윤 감독님, 스태프 형, 누나들이 다들 너무 잘해주셨거든요. 예뻐해주시고요. 그래서 첫 영화인데도 어려움 없이 재밌게 촬영했어요. 아, 아쉬운 점은 하나 있어요. 제가 아직 어려서 이 영화를 못 본다는 사실이요.”
<죽지 않는 백화점>은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였기에 하준은 완성된 영화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기자들은 배우들에게 각자의 캐릭터가 어떤 캐릭터고, 그 캐릭터의 특징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방식을 사용했는지 등, 캐릭터에 대한 자세한 질문들을 이어갔다.
약 40여 분이 흐르고, 이제 거의 질의응답이 막바지로 향해 갈 때쯤, 마침내 하준의 캐스팅에 대한 이야기가 질문으로 등장했다.
“윤기철 감독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안도진 역할이 아주 어렵게 캐스팅된 것으로 압니다. 지금은 하준 군이 아역 배우로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그때는 그냥 평범한 아이였다던데, 어떻게 캐스팅하게 되신 건지 캐스팅 비화가 궁금합니다.”
“맞습니다. 오디션도 많이 봤는데, 제 마음에 그려놓은 캐릭터 이미지와 잘 맞으면서, 연기력도 출중한 그런 아이가 없었어요. 그때 거의 포기 상태로 길을 걷고 있었는데, 햄버거집 창가에 앉아 있던 하준이를 발견했죠. 이미지가 너무 잘 맞아서 연기를 시켜봤는데, 연기도 너무 잘하는 겁니다. 그래서 캐스팅하게 됐습니다. 전 정말 그때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싶었답니다.”
윤기철이 하준을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한 기자가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항간에는 하준 군이 본명이 윤하준이고, 윤기철 감독님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돌던데요. 아들이라서 캐스팅하신 건 아닙니까?”
하준과 윤기철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하준의 입양 이야기가 나올 줄은 예상했으나, 이런 식의 질문이 나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른 기자들 역시 새로운 사실에 놀라 웅성거렸다.
윤기철은 그 기자를 한번 노려본 후 마이크를 잡았다.
“악의적인 질문이네요. 하준 군이 제 아들이 된 걸 아셨다면, 제가 입양한 것이라는 사실도 아셨을 텐데요.”
윤기철의 말에 기자들은 더 크게 웅성대며 난리가 났다.
아역 배우로 한창 이름을 날리고 있는 하준의 입양 사실은 큰 이슈거리가 될 만했으니까.
“기자 여러분, 조금만 조용히 해주십시오. 방금 저 기자분이 제기한 문제에 관해 사실관계를 정확히 설명하겠습니다.”
윤기철이 기자들을 조용히 시킨 후, 차분히 말을 이었다.
“저와 하준이는 햄버거집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거기서 캐스팅 제안을 했고, 그 과정에서 하준이 부모님이 안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육원으로 돌아가기에도 곤란한 사정이 있어 저희 집에서 얼마간 머물렀고, 그러다 저와 제 아내가 하준이에게 정이 들어 입양을 하게 된 것입니다.”
“왜 그럼 지금까지 입양 사실을 숨기신 겁니까?”
“솔직히 하준이가 적어도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는 숨기고 싶었습니다. 입양아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어린 마음이 혹시라도 다치지 않을까 걱정이 컸습니다.”
“하준이가 재능이 많으니 일부러 입양을 하신 건 아닙니까?”
하준을 이용하려고 입양한 것이 아니냐는 의도의 질문이었다.
하준의 입양 쪽으로 질문이 쏟아지자, 사회자가 나섰다.
“지금은 <죽지 않는 백화점>의 언론시사회입니다. 관련 없는 질문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윤기철이 분노를 참으며 괜찮다고 말했다.
“괜찮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다 털어놓고 가는 것이 영화에도 도움이 될 것 같거든요. 방금 질문이 뭐였죠?”
“하준이의 재능 때문에 일부러 입양을 한 게 아니냐는 질문이었습니다.”
다시 들어도 화가 치미는 질문이었지만, 화를 내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기에, 윤기철은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런데 그때, 하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연기를 하게 된 이유는 연기를 하면 극중에서라도 엄마, 아빠가 생기기 때문이었어요. 전 연기하는 것보다 잠시나마 엄마, 아빠가 생긴다는 게 너무 행복해서 연기를 시작한 거예요.”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었지만, 하준의 말을 들은 기자들이 안타까운 탄식을 내뱉었다. 누가 들어도 마음이 아릴 만한 이유였기에.
“하지만 지금은 연기가 즐거워서 연기를 합니다. 절 너무 사랑해주시는 엄마, 아빠가 이미 있으니까요. 방금 기자님의 질문은 저에게나 우리 엄마, 아빠에게나 상처로 남을 것 같습니다.”
하준이 촉촉한 눈망울로 화도 내지 않고 조근조근 말했고, 기자들은 담담하게 말하는 하준의 모습이 왠지 더 가슴이 아프게 느껴졌다.
기자들은 이 질문을 한 기자를 타박하며 눈총을 주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언론시사회장의 분위기가 변했다.
그 전까지는 궁금증을 탐하는 기자들의 모습이었다면, 지금은 상처받은 어린 아이의 편에 선 마음씨 착한 기자들이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