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70화
“뭐야, 이 소리?”
“대금 소리 아니야?”
“그니까, 누가 불고 있냐고?”
하준의 주변에 있던 스턴트맨들과 스태프들이 갑자기 들려온 대금 소리에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기와지붕 위에 걸터앉아 멋들어진 자세로 대금을 불고 있는 하준을 발견했다.
“설마 지금 하준이가 대금 불고 있는 거야?”
사람들은 심금을 울리는 청아한 대금 소리에 이끌려 하준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마치 하준이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된 것처럼 말이다.
하준은 소품 대금이라 진짜 소리가 나나 한번 연습 삼아 불어본 것인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서 민망해졌다.
그래서 연주를 멈추고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신경 쓰지 마세요.”
하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하준이 연주를 멈춘 것을 싫어하며 얼른 계속 불어보라고 재촉했다.
“하준아, 듣기 좋은데 왜 멈춰? 계속 불어봐, 응?”
“맞아, 얼른!”
“노을 지는 이 저녁에 너무 잘 어울리는 소리야. 좀만 더 불어주라!”
“와아아!!”
사람들은 아예 환호로 연주를 청했다.
하준은 당황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이렇게 원하니 다시 대금을 입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대금 연주.
촬영장의 모든 이가 숨을 죽이고 하준을 바라보는 가운데, 구슬프면서도 묵직하고,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대금 소리가 하준을 중심으로 일렁이듯 퍼져나갔다.
몇몇 사람들은 이건 영상으로 남겨야 한다는 듯 휴대폰을 꺼내 하준의 연주를 촬영하기 시작했다.
김 PD와 음악감독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촬영 준비를 하다가 대금 소리를 듣고 하준에게로 달려왔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지붕 위의 하준을 올려다 보았다.
“헛······!”
“아니, 이건······!”
두 사람이 특히 더 놀란 것은 이 음악이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의 OST에 포함된 박민후의 테마곡 ‘그리운 그림자’라는 대금 독주곡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곡은 주인공 박민후가 자신의 아버지가 도술 세계를 지배하려는 악의 무리에게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장면에 삽입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하준이 자신의 테마곡을 알고 싶다며 ‘그리운 그림자’의 대금 악보와 가이드 음악을 받아갔다.
‘이거 연습하려고 악보를 받아갔던 거였구나!’
음악감독이 속으로 감탄했다.
하준의 대금 연주 실력도 실력이지만, 하준의 작품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촬영장의 사람들은 하준의 아름다운 대금 연주에 푹 빠져 하준의 연주가 끝날 때까지 침묵하고 있었다.
마침내 하준이 대금을 입에서 떼어놓자, 그제야 힘찬 박수갈채와 환호가 쏟아졌다.
“와아!! 대박!”
“하준이 너무 잘한다!!”
“대금 소리 정말 좋다. 구슬프면서도 감동적이야!”
“근데 이 곡 뭐야? 너무 좋은데?”
하준은 사람들의 칭찬에 감사하다며 고개 숙여 인사한 뒤, 곡에 대해 설명했다.
“이거 ‘그리운 그림자’라고 박민후 테마곡 중 하나예요.”
“와, 우리 드라마 삽입곡이었어? 대박! 근데 그걸 언제 연습한 거야? 아니지, 대금은 원래 불 줄 알았어?”
무술감독이 대표로 물었다.
“아뇨. 그냥 극중 박민후가 대금을 부니까, 제가 직접 불면 좋을 것 같아서 좀 배웠어요.”
하준은 액션 스쿨을 다니면서, 또 드라마 촬영을 하면서, 틈틈이 대금도 배웠다.
기본은 대금 연주자에게 직접 배웠고, 그 후에는 다양한 동영상을 보면서 연습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렀을 때 음악감독에게 박민후 테마곡의 악보를 달라고 했던 것이다.
“와, 그럼 이번 작품 때문에 대금을 배웠단 말이야? 근데 벌써 이렇게 수준급 연주를 하고? 하준이 진짜 천재네!”
“음악적 감각을 타고났나 봐. 하준이 노래도 잘하고 피아노도 잘 치잖아.”
“음악적 감각만이라고 하기엔 연기도 엄청 잘하잖아?”
“크으, 하준이 재능도 재능인데, 이렇게 잘 부는 거 보면 연습도 엄청 했다는 거잖아. 얼마나 이 작품에 애정이 있는 거야. 기특하다, 기특해.”
스태프들과 배우들은 입을 모아 하준을 칭찬했다.
그때, 음악감독이 하준에게 다가와 말했다.
“하준아, ‘그리운 그림자’ 네가 직접 연주해서 앨범에 담자!”
“네? 제가 아직 실력이······.”
하준은 대금을 배운지도 얼마 안 됐고 해서 OST 앨범에 실어도 될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음악감독이 확신에 차서 답했다.
“내가 들어보면 알지. 너 실력 충분해!”
여기에 김 PD까지 합세했다.
“맞아, 들어보니까 진짜 좋더라.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맞아요!”
“너무 좋았어요.”
김 PD의 말에 다들 동조했고, 하준은 결국 직접 OST에 대금 연주를 하겠다며 승낙했다.
“아, 그리고 촬영 때도 직접 연주할 수 있지? 다른 곡도 혹시 불 줄 알아? 적들 공격할 때는 빠르고 고음인 곡들도 불 줄 알면 좋을 것 같은데.”
“이런 거요?”
하준은 김 PD의 말을 듣자마자 긴장감 가득한 고음의 곡을 연주했다.
“오! 그래, 이거야, 이거! 좋았어. 오늘 촬영에서 바로 해보자. 자, 그럼 촬영 곧 시작할게요!”
김 PD가 스태프들과 배우들에게 외쳤고, 사람들의 각자의 포지션으로 돌아가 촬영 준비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
약 한 달 후.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 시즌 1 촬영이 드디어 마무리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너무 수고 많으셨어요!”
마지막 촬영이 끝나고 스태프들과 배우들은 한 명씩 포옹하며 작별인사를 나눴다.
“너무 보고 싶을 거예요······!”
“흐엉······.”
아이들은 거의 울음바다가 되었다.
촬영이 끝났다는 시원함보다는 앞으로 함께 촬영하던 친구들을 이제 못 보게 된다는 서운함이 훨씬 컸던 것이다.
하준도 공정환, 서희수와 함께 삼총사로 지낸 몇 달간의 추억이 스쳐 지나가며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하준은 약과였다.
의외로 항상 명랑하던 서희수가 눈물을 펑펑 흘리며 하준과 공정환에게 매달렸던 것이다.
“으허엉! 너네랑······ 완전 정들었는데······ 너무 슬퍼.”
공정환도 눈이 빨개져서 서희수를 가만히 안아주고 있었고, 하준도 그들을 양팔로 안고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우리 연락하고 지내면 되잖아. 그리고 시즌 2 찍으면 또 만날 수도 있고.”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 몰라? 우리도 그렇게 되겠지······ 그리고 시즌 2는 확실치 않잖아.”
서희수가 훌쩍거리며 말했다.
사실 서희수의 말이 다 맞았다. 각자의 생활이 있으니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점점 멀어지게 될 것이다.
또한 시즌 2 제작은 시즌 1의 성공 여부에 달려있었다.
“잘 될 거야! 그리고 우리도 최소 2주에 한 번씩 만나기로 아예 정하자. 어때?”
공정환이 서희수를 달래며 의견을 제시했다.
“정말? 난 좋아. 하준아, 넌?”
“나도 좋아. 서로 연락처는 아니까 심심하면 문자도 자주 하자.”
“응! 좋아. <신비종> 시즌 1 잘 돼서 꼭 시즌 2 찍었으면 좋겠다······!”
서희수가 눈물을 닦고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하준이 삼총사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마치자, 김 PD와 조감독 등이 하준에게 다가왔다.
“하준아, 주연으로서 열심히 해줘서 정말 고맙다. 우리 꼭 대박 나서 시즌 2, 시즌 3, 계속 찍자!”
“감사합니다, 감독님. 진짜 그럼 너무 좋겠어요. 그동안 잘 지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귀여운 하준이, 내일부터 못 본다니까 벌써 보고 싶다.”
“내 말이. 하준이 대금 소리도 듣고 싶고······. 이번 작품은 정말 즐겁게 했는데.”
스태프들은 즐거운 촬영이었다며 촬영이 끝나는 것을 아쉬워했다.
한참을 서로 인사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랜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마지막으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주연인 하준과 삼총사 친구들이 맨 앞 가운데에 섰고, 김 PD가 하준의 뒤에 섰다.
나머지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이들을 중심으로 모두 모여 서자, 촬영감독이 카메라의 타이머를 맞추고는 후다닥 달려왔다.
“자, 준비, 하나, 둘, 셋!”
찰칵.
이로써 다섯 달에 걸친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 시즌 1의 촬영은 모두 끝이 났다.
***
“하준아, 지금이라도 안 가도 돼. 진짜 갈 거야?”
집을 나서려던 윤기철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하준에게 물었다. 어제부터 벌써 수십 번 묻는 질문.
하지만 하준은 단호했다.
“아빠, 나 진짜 가도 된다니까. 주연배우가 언론시사회에 안 나가는 경우가 어디 있어?”
“사정이 있으면 안 가도 돼. 이번에 기자들 질문은 막을 수가 없어. 라이브로 방송되는 거라서. 혹시라도 입양 이야기 나오면······.”
오늘은 드디어 개봉을 앞둔 <죽지 않는 백화점>의 언론시사회가 있는 날이었다.
언론시사회는 영화 개봉 전에 기자들에게 영화를 먼저 공개하는 것으로, 관람 후에 배우들과 감독은 영화에 관련된 질의응답 시간을 갖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하준은 당연히 기자들의 질문을 받게 될 텐데, <죽지 않는 백화점>의 내용상 가족애에 관한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럼 진짜 부모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고, 입양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다.
사실 안 그래도 하준이 유명해지면서 입양 관련된 소문이 돌고 있는 상황이라 윤기철은 하준에게 이번 시사회에 나가지 않는 게 어떠냐고 설득하고 있었다.
“내가 입양아인 게 뭐 어때서? 아빠, 이제 나도 9살이야. 엄마, 아빠가 날 버리고 간 꿈을 꿨다고 울던 그 8살 꼬마가 아니라구.”
윤기철은 심각한 상황이었는데, 하준의 대담하면서도 맹랑한 대답에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8살이랑 9살이랑 둘 다 꼬마 아니야?”
“아니지! 8살이랑 9살은 천지 차이야. 그리고 이제 더 숨길 수도 없는데, 괜히 거짓말하기 싫어. 나 마음의 준비 다 했어.”
하준은 최원상 대표에게 들어 이미 상황을 알고 있었다.
하준이 너무 유명해져서 소속사의 힘으로 막는 것은 역부족이라고.
그래도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 촬영 때는 TV 출연이나 작품이 공개되는 일이 거의 없어서 입양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하준이 출연한 작품이 개봉하는 것이라 말이 안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아, 그리고 이왕 공개될 거 <죽지 않는 백화점> 시사회에서 공개하면 <죽지 않는 백화점>도 같이 이슈가 될 거 아니야. 그럼 아빠 영화 잘 되고 얼마나 좋아. 내 생각엔 이게 최선이야.”
하준이 어른스럽게 말하며 자기는 괜찮다는 듯 활짝 웃어 보였다.
윤기철은 하준이 자기를 위해서 그런 것 같아 한편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하준의 말이 다 맞았다.
이제 정면승부를 할 때였던 것이다.
“그래, 차라리 오늘이 나을지도 몰라. 아빠인 내가 같이 있으니까. 아빠가 지켜줄게! 가자.”
윤기철이 결의를 다지며 하준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최선희도 하준의 다른 손을 잡고 신발을 신었다.
“엄마도 가는 거야?”
“당신도 가게?”
하준과 윤기철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최선희를 쳐다보았다. 최선희도 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 이런 중차대한 상황에 엄마가 가까이 대기하고 있어야지. 얼른 가자.”
최선희는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 대답했다.
하준이나 윤기철이나 최선희가 함께 가는 것이 심적으로 든든한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세 사람은, 하준 가족은 다 함께 집을 나섰다.
그런데, 하준이 대기 중인 매니저 김유택의 차에 함께 타려고 보니 앞자리에 한 사람이 또 타고 있었다.
“대표님?”
하준이 보니 조수석에 앉아 있는 사람은 최원상 대표였다.
“최 대표님도 가시는 거예요?”
“최 작가님도 같이 가시네요?”
최원상 대표와 최선희가 서로 놀라 물었다.
“네, 저는 우리 가족을 지켜야 하니까요.”
“저는 우리 소속 배우를 지켜야 해서 갑니다!”
하준은 자신을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으니 마음이 벅차고 든든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에이, 뭘. 항상 내가 우리 하준이한테 고맙지. 자, 유택아, 출발!”
이리하여, 모두 다섯 사람이 함께 <죽지 않는 백화점> 언론시사회장으로 향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