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69화
하준이 녹음 부스로 들어가자, 컨트롤 룸에 모여 있던 아이들은 악보를 보면서 귀를 쫑긋 세웠다.
아무래도 하준이 노래를 잘한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다들 잘 듣고 하준을 따라 부르려는 것이었다.
하준은 헤드폰을 아이들과 함께 부르는 곡인 ‘신비종’을 먼저 부르기 시작했다.
“귀 기울여 봐~ 신비로운 종소리가 들리지 않니~”
음악감독은 첫 소절만 듣고도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그리고 편안히 눈을 감고 부드럽게 고갯짓을 하며 노래를 감상했다.
반면 아이들은 하준의 노래를 듣자마자, 한숨을 푹 쉬었다. 따라 부르기에는 하준의 실력이 너무 뛰어났던 것이다.
그러다 이내 따라 부를 생각을 접었는지 악보에서 눈을 떼고 음악감독처럼 그저 하준의 노래를 감상했다.
노래는 ‘신비종’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맑고 고운 종소리가 반주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덕분에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잘 표현되었다.
거기에 하준이 청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를 얹으니 그 분위기가 한껏 더 살았다.
“신비로운 종소리는 어디서나 네 곁에 있어~ 귀를 기울여~ 종소리를 따라와~ 그곳에 꿈에 그리던 내일이 있을 테니~”
하준이 노래를 마치자, 음악감독과 작곡 프로듀서가 부스 안의 하준에게 엄지를 치켜세운 후 오케이 사인을 주었다.
아이들도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우와, 노래 진짜 좋다. 난 이런 노랜 줄 몰랐어. 내가 부르니까 동요 같았는데······.”
“내 말이! 하준이는 진짜 OST처럼 부른다······.”
“이거 그냥 하준이 혼자 부르는 게 나은 거 아닐까?”
몇몇 아이들이 괜히 자기들이 함께 부르면 노래를 망치는 게 아닐지 걱정까지 했다.
그러자 음악감독이 아이들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하준이가 잘 부르긴 하지만, 이 곡은 너희가 함께 부르는 게 더 의미가 있어. 그러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말고. 너희들이 노래 부르는 데 도움 되라고 하준이가 가이드로 불러준 거니까, 참고해서 부르면 돼.”
그제야 아이들은 조금 부담을 덜었다는 듯 미소를 되찾았다.
“자, 그럼 한 명씩 1절만 불러보자. 먼저 정환이부터 불러볼까?”
“어······ 저부터요?”
정환이 당황해하자, 서희수가 당당하게 손을 들었다.
“제가 먼저 불러볼게요.”
“어, 그래! 희수부터 한대요!”
공정환은 노래에는 영 자신이 없다며 차례를 미뤘다.
“뭐, 그러렴. 순서는 상관없지.”
“그리고, 저기······ 감독님, 저 하준이한테 노래 좀 배우고 와도 돼요?”
“그럼! 하준이만 괜찮다면 가르쳐 달라고 해봐. 연습실은 여기 나가서 오른쪽에 있어.”
“네!”
그때 마침, 하준이 녹음부스에서 나와 다시 컨트롤 룸으로 들어왔다.
“하준아, 나 노래 좀 가르쳐주라! 속성으로!”
“응?”
공정환은 얼른 하준을 끌고 연습실로 데려갔다. 그러고는 간곡하게 부탁했다.
“나 노래 진짜 못한단 말이야. 조금만 가르쳐주라. 망신만 안 당하게 도와줘.”
사실 공정환은 한 명씩 그냥 노래만 녹음하고 그걸 편집 프로듀서가 자르고 합쳐서 노래를 만드는 줄 알았다.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녹음을 하고 평가를 받게 될 줄 몰랐던 것이다.
하준은 친구가 이렇게 부탁하는데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알았어. 내가 부르는 거 따라 불러 봐. 귀 기울여 봐~”
“귀. 기울여. 봐.”
“그렇게 한 단어마다 끊어서 부르지 말고 자연스럽게 이어서. 귀~ 기울여~ 봐~ 이렇게. 다시 해봐.”
“아하! 귀 기울여 봐~”
“그렇지, 좋아. 그리고 음이 귀- 이거야.”
하준은 연습실에 놓인 피아노로 다가가 ‘미’ 음을 치면서 다시 음을 잡아주었다.
“귀-”
“귀- 오! 어때?”
“그렇지 좋아, 그럼 여기 한 소절 다시 한 번 불러볼래?”
하준은 공정환의 음정 불안과 딱딱하게 부르는 걸 집중적으로 교정해주었다.
하준은 문제점을 콕콕 집어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었고, 거기에 주력 파트까지 정해주었다.
“정환아, 넌 저음에서 목소리가 더 좋은 거 같아. 그러니까, 여기 ‘네 마음 깊숙이 울리는 소리에~’ 여기 파트를 집중해서 잘 불러봐.”
“정말? 나 누가 노래할 때 목소리 좋다는 얘기 처음 들어봐! 다시 불러볼래!”
하준의 지도와 칭찬 덕분에 공정환의 노래 실력은 금방 확 달라졌다.
공정환은 스스로도 그 변화를 인지하고 무척 놀라워했다.
“오, 하준아, 너 완전 족집게 강사야!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는 나도 몰랐는데, 넌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게다가 이해도 쏙쏙 잘 되고!”
“너무 자세히는 안 알려줬어. 딱 기본 할 정도만 가르쳐 준 거야. 강약 조절도 좀 더 세밀하게 해야 하고, 고음 연습이랑 바이브레이션도 좀 해야 하는데······.”
걷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뛰는 것까지 가르쳐줄 순 없기에 하준은 적당히 공정환의 수준에 맞춰 노래를 가르쳐주었던 것이다.
“나 어차피 그런 건 못할 테니까 안 가르쳐 줘도 돼. 이 정도면 충분해. 내가 듣기에 너무 만족스러워!”
공정환은 망신만 안 당할 수준을 원한 것이었기에 지금도 너무 훌륭하다며 활짝 웃었다.
“이제 녹음하러 가도 되겠어. 고맙다, 하준아. 내가 내일 맛있는 거 쏠게! 방금 배운 거 잊어버리기 전에 얼른 가야지.”
공정환이 신나서 연습실 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엇! 뭐야, 서희수? 너 왜 여깄어?”
서희수가 처음 보는 시무룩한 모습으로 문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어, 그게. 나는 파트 안 준대······. 난 내가 노래 잘하는 줄 알았는데······. 하준아, 나도 좀 가르쳐주면 안 될까?”
서희수는 지적을 많이 받았는지,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희수야, 걱정 마. 하준이가 노래 엄청 잘 알려줘. 하준이한테 배우면 너도 금방 잘 부르게 될 거야.”
공정환이 서희수에게 희망을 심어주었고, 서희수는 하준을 무슨 구세주 보듯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쳐다보았다.
“정말? 하준아, 진짜 나 노래 잘 부르게 해줄 수 있어?”
“어······ 해 봐야 알겠지만, 일단 가르쳐 줄게.”
“고마워!! 자, 들어 봐. 내가 노래 불러볼게.”
서희수는 다시 발랄한 모습으로 돌아와 적극적으로 노래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사이 공정환은 후다닥 컨트롤 룸으로 들어가 음악감독에게 다음 차례에 자신이 노래하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오, 벌써 다 배우고 온 거야?”
“네, 하준이가 엄청 잘 알려줬어요. 근데 바로 불러야 돼요. 잊어버릴까봐서요.”
“하하, 그래, 그럼 바로 불러보자.”
공정환은 녹음 부스로 들어갔고, 곧 ‘신비종’ 1절을 열창했다.
“감독님, 어땠어요?”
“괜찮았어. 특히 저음이 좋네. 정환이가 ‘네 마음 깊숙이 울리는 소리에~’ 이 부분 맡으면 되겠다!”
“우왓!! 하준이가 저 저음에 잘 어울린다고 여기 연습 많이 시켜줬어요!”
“정말? 하하, 하준이 족집게네, 족집게.”
“신난다!! 나도 파트 맡는다아!!”
공정환은 만세를 부르며 녹음 부스를 나왔다.
작곡 프로듀서는 음악감독에게 하준의 탁월한 능력을 칭찬했다.
“하준이는 노래만 잘하는 게 아니라, 디렉팅 쪽으로도 재주가 있나 봐요.”
“노래하는 거 보면 전체적인 곡 분위기나 어디를 살려야 할지 잘 알고 있잖아. 재능이 엄청 많은 애야.”
잠시 후, 서희수가 다시 노래를 불러보겠다며 돌아왔다.
그리고 두 사람은 180도 달라진 서희수의 노래 실력에 깜짝 놀라 입이 쩍 벌어졌다.
“아니······! 희수 어떻게 된 거야? 파트 하나 줘야겠는데?”
아까는 화통을 삶아 먹은 목소리로 모든 부분을 힘차게 불렀는데, 지금은 적당한 크기의 목소리로 강약을 조절하며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물론 강약 조절이 디테일하지는 않았지만, 노래의 분위기에 잘 맞춰져 있었다.
하준에게 노래를 배우고 왔다는 걸 아는 두 사람은 옆에 서 있는 하준을 쳐다보았다.
“하준아, 네가 가르쳐 준 거야?”
“네, 조금 가르쳐 줬어요.”
“이야, 어떻게 가르쳐 줬길래 저렇게 변해? 하준이 재주 엄청 좋구나!”
“대단하다, 대단해! 하하.”
음악감독과 작곡 프로듀서가 혀를 내두르며 하준을 칭찬했다.
하준이 덕분에 공정환과 서희수는 각자의 솔로 파트를 조금씩이라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하준은 이번 단체곡에서 첫 도입 부분과 일부 고음 부분, 그리고 브릿지 부분을 솔로로 맡았고, 후렴 부분은 아이들 전체가 함께 합창으로 불렀다.
단체곡 녹음을 마친 후, 음악감독은 아이들을 돌려보냈고, 하준만 스튜디오에 남았다.
“자, 그럼 이제 박민후 캐릭터 송 ‘구름을 타고’ 녹음 들어가자! 노래 잘하는 하준이가 주인공이라서 직접 주인공 캐릭터 송도 부를 수 있고, 좋다, 좋아.”
주인공이 직접 주인공의 캐릭터송을 부르면 현실감을 높여서 드라마 몰입도가 높아질 터였다.
음악감독은 이번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는 여러모로 매우 기대하고 있었다.
그 기대의 절반 이상은 하준에게 거는 기대였다.
연기도 잘할 뿐만 아니라, OST까지 직접 부를 수 있고, 화제성 또한 대단한 아이였으니까.
“명랑하게 불러보자?”
“네에!”
하준은 녹음 부스로 들어가 ‘구름을 타고’ 녹음을 시작했다.
“구름을 타고~ 비를 내리고~ 땅을 뛰어넘어 달리는 도사~ 그게 바로 나야~”
역시 하준의 노래는 특별히 지적할 것이 없었다.
가끔 하준 스스로 다시 불러보겠다고 해서 다시 부르곤 했지만, 음악감독이나 작곡 프로듀서는 하준이 어떻게 부르든 마음에 들어했다.
하준은 금방 박민후 캐릭터 송 녹음을 마쳤고, 만족스럽게 스튜디오를 나섰다.
***
4월의 어느 날, 하준은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 촬영을 위해 문경새재 야외세트장을 찾았다.
날이 좀 풀려서 요즘에는 문경새재에서 촬영하는 날이 많았다.
오늘 촬영은 밤에 기숙사에 침입한 악의 무리들과 싸우는 장면이라서 저녁 무렵 촬영이 시작되었다.
“얘들아, 이리 와 봐.”
와이어 액션을 앞두고 무술감독님이 하준과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지붕 위로 점프해서 올라갈 때 땅을 박차면 와이어가 쭉 끌어서 올려줄거야. 무서워하지 말고, 자, 연습해보자.”
무술감독님은 촬영 전에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자세히 알려주었다.
그리고 와이어 액션 후에 이어지는 봉술 액션 지도도 꼼꼼히 이루어졌다.
또한 이번 액션 촬영에서는 삼총사의 각자의 특기를 보여주는 장면이 처음으로 등장해서 삼총사에게는 지팡이 외에 다른 소품이 준비되어 있었다.
“청모는 부채, 홍연이는 구슬, 민후는 대금. 자, 받아.”
공정환은 부채를 받자마자 한 손으로 부채를 촤라락 펼치며 좋아했다.
“부채 멋있지? 후후.”
극중 이청모는 부채를 이용해 바람을 부리고, 부적 대신 사용하기도 했다.
이청모의 성품이 대쪽 같은 선비 기질이라 이에 맞게 지팡이를 부채로 변신시켜 사용하는 설정이었다.
“난 내 구슬이 더 마음에 드는데? 너무 예쁘지 않니?”
서희수는 알록달록한 구슬이 한 움큼 받아들고 만족스러워했다.
극중 장홍연은 아름다운 구슬로 환영을 만들 수 있고, 구슬을 날게 하여 상대의 급소를 강타해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적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알록달록한 게 여자애들이 좋아할 만하네. 근데 하준이는 뭔가 하준이한테 잘 어울려. 안 그래?”
공정환이 하준의 대금을 가리키며 말했다.
극중 박민후는 대금을 불어 소리로 공격하고 지팡이 대신 대금으로 봉술을 펼쳤다. 그래서 박민후의 특별 무기는 대금이었다.
“맞아, 하준아, 그거 이렇게 부는 척해봐.”
서희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하준에게 포즈를 취해보라고 시켰다.
하준은 서희수가 시키는 대로 대금을 가로로 들어 불려는 자세를 취했다.
“와, 하준이 각 잘 나온다. 그치? 근데 저러다 막 대금 진짜 부는 거 아냐? 하하.”
“맞아, 여기서 대금까지 진짜 불면 완전 대박이겠다.”
공정환과 서희수가 박수를 치며 농담을 주고받는데, 갑자기 진짜 대금 소리가 두 사람의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하준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