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68화
“뭐? 그게 무슨 말이니? 내 손주라니?”
김복녀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 아이 이름이 하준인데, 우리가 입양했어. 얼마나 이쁜지 몰라.”
“입양? 입양을 했다고? 그, 그 서재혁 닮은 애를?”
김복녀는 입양이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지만, 입양한 아이가 TV에 나온 바로 그 서재혁 닮은 애라는 사실에 충격이 상쇄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김복녀는 이번엔 최선희에게 사실이 맞는지 확인했다.
“진짜니, 아가? 그 애를 입양했다는 게 진짜냐고?”
“네, 맞아요. 어머님.”
“어, 언제?”
“작년에요.”
“아니, 이게 무슨······! 내 핏줄 아닌 애를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아니? 게다가 입양을 하려면 애기 때······ 아니지, 애기 때면 더 힘들겠다. 아무튼, 입양은 그렇게 쉽게 결정하는 게 아닌데······.”
김복녀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내 핏줄이 아닌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또 혹시라도 입양한 아이가 나중에 엇나가기라도 하면 그 감당은 또 어떻게 할지 걱정이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그 입양한 아이가 서재혁을 닮았던 귀여운 그 아이라니, 마음에 들기도 하고······.
“쉽게 결정한 거 아니야, 엄마. 하준이, 얼마나 착하고, 똑똑하고, 예쁘다고. 엄마도 한 번 보면 반할걸? 일단 한 번 봐봐.”
윤기철이 최선희에게 하준을 데려오라고 눈짓했다.
최선희는 얼른 일어나서 하준을 데리고 나왔다.
“하준아, 인사해. 할머니셔. 아빠의 어머니.”
“안녕하세요, 할머니.”
하준이 방긋 웃으며 배꼽 인사를 했다.
김복녀는 TV에서 봤던 그 귀여운 아이가 눈앞에 나타나자, 반갑고 귀여워서 저절로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가려고 했다.
“어머······ 진짜 그 아이네······!”
“엄마, 이름이 하준이야, 하준이. 윤하준.”
윤기철이 하준의 이름을 불러주라고 다시 한번 이름을 알려주었다.
“어, 그래, 하준이······.”
“하준아, 할머니 옆에 가서 앉자.”
최선희는 하준을 김복녀 옆에 앉히고 자기도 하준의 옆에 앉았다.
김복녀는 가까이서 하준을 빤히 바라보았다.
‘애가 엄청 똘망똘망한 게 귀엽네. 웃는 것도 해맑고······. 근데 입양을 했다는 건 고아였다는 뜻이겠지? 어떻게 이렇게 이쁜 아이를······.’
그때, 하준이 김복녀를 와락 껴안으며 말했다.
“할머니, 감사합니다.”
하준의 말에 세 사람은 동시에 울컥했다.
하준이 왜 감사하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기에.
특히 김복녀는 하준의 감사하다는 말에 마음이 아렸다.
‘방에서 마음 졸이며 있었겠지. 내가 노발대발하며 반대할까 봐······.’
김복녀는 자신을 안은 하준을 꼬옥 껴안아 주었다.
졸였을 마음을 어루만져주듯이 하준의 머리도 쓰다듬었다.
“아휴, 이 어린 것이······.”
윤기철과 최선희는 감격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역시 하준은 언제나 뭐든 스스로 잘 해냈다.
이번에도 ‘감사합니다’ 한 마디로 김복녀의 마음을 움직였다.
물론 이건 하준이 계획한 바는 아니었다. 그저 진심에서 우러나온 감사였다.
무작정 내치려 하지 않고 잠시나마 자신을 따뜻하게 바라봐준 할머니에 대한 감사함이었다.
김복녀는 어차피 윤기철이 아이도 낳지 못하는데, 입양을 또 못할 건 뭔가 싶었다.
게다가 입양한 아이가 서재혁을 닮은 아역 배우인 하준이라니, 반길 일이었다.
김복녀는 하준을 안은 채 슬쩍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았다.
그러고는 분위기를 전환할 말을 꺼냈다.
“참, 하준아, <월야>에 나온 거 할머니가 봤어. 너무 똘똘하고 귀엽더라. 연기도 잘하고. 그래서 누구 아들내민가 했는데, 호호, 우리 기철이 아들내미였네!”
김복녀의 말에 이번엔 나머지 세 사람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 말은 곧 하준을 기철의 아들로 인정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엄마, 고마워!”
바닥에 앉아 있던 윤기철이 벌떡 일어나더니 김복녀를 와락 안았다.
“아이고, 야야, 엄마 숨 막혀 죽는다!”
김복녀는 말로는 죽는다고 엄살을 피웠지만, 아들의 포옹이 싫지만은 않은 듯 가만히 있었다.
“어머니, 정말 감사드려요.”
최선희도 눈물을 글썽거리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그때, 하준이 방긋 웃으며 김복녀에게 말했다.
“할머니, 아침 드시고 오셨어요? 우리는 떡국 먹으려고 하거든요. 할머니도 안 드셨으면 같이 드세요. 엄마가 소고기 엄청 많이 넣고 끓여서 엄청 맛있을 거예요!”
“아휴, 내가 너희들 아침도 못 먹게 했구나. 하준이 배고프겠다. 얼른 밥부터 먹자.”
하준은 김복녀를 곧바로 스스럼없이 대했고, 김복녀 역시 손자가 배고플까 봐 걱정하는 일반적인 할머니의 모습으로 하준을 대했다.
윤기철과 최선희는 평범한 할머니와 손자 같은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제가 얼른 준비할게요, 어머님.”
“나도 도울게. 그래야 빨라.”
최선희와 윤기철이 후닥닥거리며 아침을 차렸고, 하준은 김복녀와 소파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우리 하준이는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저는 돈가스 좋아해요! 근데 사실 다 잘 먹어요. 아, 아직 고추는 매워서 못 먹어요.”
“오, 돈가스? 다음에 이 할머니랑 돈가스 먹으러 갈까?”
“네, 좋아요. 동네에 맛있는 돈가스집 있거든요. 제가 할머니 사드릴게요!”
“응? 오호호. 어린 애가 돈이 어딨어서? 할머니가 사줄게.”
“저 돈 많아요! 엄마가 모으라고 못 쓰게 하지만 할머니한테는 사드릴 거예요.”
“정말? 기특해라!”
김복녀는 하준이 돈이 많아봤자 용돈을 모은 것일 거라 생각했다. 근데 그 적은 돈을 할머니한테 쓰겠다니 감동이었다.
김복녀는 하준과 대화를 할수록 하준이 마음에 쏙 들었다.
생긴 것만 잘 생기고 귀여운 것뿐만이 아니라, 명랑하고 속도 깊고 착했다.
“아, 할머니, 제가 노래 불러드릴까요?”
“노래? 좋지!”
“잠시만요! 제가 기타 가지고 올게요.”
“기타?”
어린 애가 무슨 기타를 친다는 건지 의아해하고 있는데, 하준이 진짜 기타를 들고 와 할머니 옆에 앉았다.
“어머, 기타도 칠 줄 아니?”
“네, 이거, 아빠가 생일선물로 사주셨어요.”
하준이 기타를 가지고 온 이유는 옛날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였다.
기타를 연습하려고 너튜브를 찾아보다 보니 옛날에 통기타 노래들이 무척 많았다. 좋은 노래들도 많았고 말이다.
그래서 연습한 옛날 노래들이 있었는데, 할머니는 연세가 있으시니 옛날 노래를 좋아할 것 같았다.
“불러볼게요.”
“응, 와아!”
김복녀는 일단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하준이 반주를 시작하자, 김복녀는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김복녀가 이렇게 놀란 이유는 2가지였다.
하나는 하준이 그 작은 손으로 기타를 너무 잘 쳤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김복녀가 반주만 들어도 알 정도로 좋아하는 곡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준은 현란한 손놀림으로 반주를 하더니 곧 노래를 시작했다.
“라일락 꽃향기 맡으면~”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아래 서면’.
이 노래는 통기타 노래 중에서도 김복녀가 가장 좋아한 곡이었다.
김복녀는 통기타 노래를 라이브로 듣기 위해 라이브 카페도 가곤 했는데, 가게 되면 꼭 이 노래를 신청했었다.
그런데 그 노래를 이 작은 아이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어머머······!”
김복녀는 감격스럽고, 또 너무 좋아서 저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그러다 얼른 노래에 방해가 될까 봐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하준의 목소리는 마치 눈부시게 빛나는 햇살 같았고, 그 목소리로 만들어 내는 노래는 담담하면서도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하준이 노래를 마칠 때까지 김복녀는 숨도 크게 쉬지 않고 조용히 하준의 노래를 감상했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자마자, 손바닥이 부서져라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짝짝짝짝짝!!!
“와아! 너무너무 잘한다!! 어머어머, 기철아! 하준이 가수 시켜야 하는 거 아니니? 아니지, 연기도 잘하는데······. 하준아, 올해 몇 살이지?”
“올해 9살 됐어요.”
“어머, 9살인데 기타도 너무 잘 치고, 노래도 이렇게 잘한다니! 기철아, 나 라이브 카페 안 가도 되겠어. 하준이한테 신청하면 될 거 같아.”
김복녀의 호들갑에 윤기철과 최선희는 웃으며 설명했다.
“하준이 벌써 가수야. 저번에 한범우 씨랑 같이 듀엣곡 내서 음원차트 1위도 했고, 작년 크리스마스 때는 캐럴송 내서 또 음원차트 1위 했어.”
“정말? 하준아, 정말이니?”
김복녀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하준에게 물었다.
하준은 쑥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어머어머, 내 강아지! 이뻐 죽겠네! 하준아, 노래 또 해줄 수 있어?”
“네, 또 이문세 아저씨 노래 불러드릴까요?”
“좋지!”
김복녀가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데, 윤기철이 얼른 끼어들어 말렸다.
“엄마, 떡국 다 됐어. 하준이 배고픈데, 밥 먹고 불러달라고 해.”
“아! 그렇지, 우리 하준이 배고프지! 얼른 밥부터 먹자.”
“네, 할머니.”
김복녀가 하준의 손을 잡고 식탁으로 왔다.
네 사람은 오붓하게 식사를 했고, 김복녀는 밥을 먹는 내내 하준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식사가 끝난 후, 윤기철과 최선희는 잠시 김복녀를 안방으로 불렀다. 그리고 하준을 입양하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기철이 영화에 주연으로 나왔다고? 언제 개봉했는데?”
“올해 6월에 개봉해요. 주연으로 캐스팅할만한 애가 없어서 제 영화 못 찍을 뻔했는데, 하준이 덕분에 아주 잘 나왔어.”
“오, 복덩이가 확실히 맞구나!”
“그럼! 애가 마음씨도 착하고, 똑똑해.”
“내가 보기에도 그래. 벌써 이뻐 죽겠다!”
“하하, 엄마가 보기에도 그렇지?”
윤기철의 말에 김복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러다 갑자기 화를 버럭 내며 외쳤다.
“아니, 근데 그 나쁜 년놈들은 왜 애를 파양을 했다니!! 한 번 데려갔으면 책임을 져야지! 보는 눈이 없어가지고, 참나!”
하준의 파양 이야기까지 다 알게 된 김복녀는 하준에게 상처를 준 전 양부모들을 욕했다.
“그건 그런데, 그래도 파양 안 했으면 우리 아들이 안 됐을 거 아냐. 그런 부모 밑에서 계속 자라는 것도 하준이한테는 더 힘든 일이었을 거야. 난 그래서 차라리 파양해준 그 사람들한테 고마워. 물론 그런 사람들이면 아예 입양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뭐, 그렇게 생각하니, 또 그렇네. 아무튼, 그런 힘든 일을 많이 겪었는데도 애가 저렇게 밝아서 너무 다행이다. 살갑고, 이뻐. 오호호.”
김복녀가 하준을 떠올리며 활짝 웃었다.
윤기철과 최선희는 김복녀와도 잘 화해했고, 하준의 입양도 잘 넘어가서 무척 다행이었다.
“이제 할 얘기 다 했지?”
김복녀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물었다.
“왜, 엄마 벌써 가게?”
“아니, 하준이 보러 가려고.”
김복녀가 윤기철에게는 무뚝뚝하게 답하더니, 갑자기 목소리를 바꿔 다정하게 하준을 부르며 안방을 나갔다.
“하준아~ 내 강아지~”
***
얼마 후, 하준은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 촬영장이 아닌 한 녹음 스튜디오로 향했다.
녹음 스튜디오에 도착해보니, 삼총사 친구들과 몇몇 조연 아역 배우들이 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 얘들아!”
하준이 반갑게 인사했고, 음악감독이 하준을 반갑게 맞았다.
“하준이 왔구나! 오늘 목 컨디션 어때?”
“좋아요.”
“다행이다. 노래는 많이 들어보고 왔지?”
“그럼요.”
음악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러고는 다른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얘들아, 오늘 녹음할 노래는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 OST에 수록될 곡인 거 알지?”
“네에!”
“너희들 한 명씩 노래 부르는 거 봐서 파트 나눌 거야. 그러니까 열심히 불러 봐.”
물론 하준은 예외였다. 하준의 실력은 이미 다들 알고 있었으니까.
하준은 이미 솔로곡 한 곡과 함께 부를 곡의 메인 파트를 맡을 예정이었다.
“네에!”
아이들은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듯 결연한 태도로 우렁차게 답했다.
“그럼 먼저 하준이부터 불러보자. 다들 하준이 부르는 거 잘 들어 봐.”
음악감독의 말에 하준은 녹음부스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