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66화
하준과 친구들은 촬영 전에 대본을 숙지하고 가야 했기에 액션 연습과 수영 연습 등을 하면서도 틈틈이 대본을 외웠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서로 대사도 맞춰보게 되었고, 연기를 잘하는 하준이 공정환과 서희수의 연기를 도와주게 되었던 것이다.
“오, 벌써 삼총사라고 서로 돕고 그러는구나. 하준아, 잘했다, 잘했어.”
김 PD가 하준을 칭찬하자, 공정환은 기회는 이때다 싶어 하준의 비범한 면모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하준이는 대사도 엄청 빨리 외우더라고요. 게다가 대사를 통으로 다 외웠어요! 심지어 다른 사람들 대사까지도요. 제 대사도 막 줄줄줄 읊어서, 아, 역시 아역 배우는 다르구나 했다니까요. 솔직히 전 아직 제 대사도 완벽히는 못 외웠는데 말이에요.”
공정환은 흥분해서 신나게 설명했는데, 김 PD는 의외로 놀라지 않고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알지. 하준이가 대본 통으로 외운다는 얘기는 엄청 유명한 얘기잖아. 정환이는 몰랐구나?”
“네에? 진짜요? 전 몰랐는데······! 그게 벌써 유명한 얘기였구나······. 아무튼, 전 처음 봐서 진짜 놀랐어요.”
공정환은 조금 김이 빠진 느낌으로 말하더니 서희수에게 물었다.
“희수야, 너도 몰랐지?”
“응, 나도 몰랐어. 하준이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애였구나.”
“그러게. 우린 엄청 대단한 친구를 뒀나봐.”
공정환과 서희수가 하준을 우러러보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하준은 손사래를 치며 부정하는 제스처를 보였으나, 하준이 그러거나 말거나 공정환과 서희수를 포함한 다른 엑스트라 아이들까지 하준을 감탄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이민혁의 친구인 박다일도 하준을 동경하는 듯한 시선을 주다가 이민혁에게 딱 걸려서 눈총을 받았다.
“자, 그럼 우리 하준이 연기 한 번 볼까?”
김 PD가 웃으며 말했다.
다음 씬이 바로 하준이 기숙사 방으로 들어가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하준은 바로 방 바깥에서 대기했고, 촬영장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하준에게 집중되었다.
최선희는 이렇게 칭찬을 잔뜩 받은 후에 연기하게 된 하준이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걱정이었다.
‘괜히 떨려서 대사를 까먹으면 어떡하지······. 주목받는 것도 참 힘들겠다, 우리 하준이.’
하지만 하준은 콘서트, 뮤지컬 등으로 수많은 시선에 어느 정도 면역이 생긴 터라 별로 부담이 되진 않았다.
또한 연기를 한번 시작하면 그 역할에 몰입되어 주변 상황은 인식에서 금방 사라졌다.
“안녕, 얘들아! 난 박민후라고 해. 어? 근데 쟨 왜 저렇게 벽에 붙어 있어?”
하준이 평소의 차분한 말투와는 달리 한껏 톤을 높여 명랑하게 대사를 시작했다.
“아, 쟤가 지 혼자 방을 다 차지하려고 하길래, 내가 교육 좀 해줬어. 안녕, 난 이청모.”
“오, 너 벌써 도술 잘하는구나! 난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왔는데, 앞으로 잘 부탁해.”
하준이 공정환에게 손을 내밀었고, 바른 자세로 책상 앞에 앉아 있던 공정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하준의 손을 잡았다.
“쟤처럼 굴지만 않으면 우린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반갑다.”
하준과 공정환이 서로를 마주 보고 악수를 하며 활짝 웃었다.
“컷! 잘했어!”
김 PD가 경쾌하게 컷을 외쳤다.
그러자 주변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사실 하준의 첫 연기가 그렇게 어려운 연기는 아니었는데, 구경하던 엑스트라 아이들이나 그 엄마들은 하준의 연기를 직접 봤다는 것에 감격한 모양이었다.
하준은 멋쩍게 웃었고, 이민혁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방에서 먼저 걸어나갔다.
“다음 종각 촬영 준비할게요!”
조감독이 다음 촬영 장소를 알려주었고, 세트장의 동쪽 끝에 뚝 떨어져서 만들어진 종각으로 촬영팀과 배우들이 이동했다.
“와, 종 엄청 잘 만들었다. 그치?”
“어, 책에 나온 삽화보다 훨씬 더 종 같아. 멋있다······!”
“맞아, 근데 이걸 어떻게 만들었지? 진짜 대단하다!”
종을 본 아이들은 그 웅장하고 진짜 같은 모습에 깜짝 놀랐다.
커다란 종은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라는 제목에도 등장할 만큼 중요한 소품이었다. 그래서 제작팀에서는 아예 세트장에 누각 세트를 설치하고 거기에 종을 달아 종각을 만들었다.
“감독님, 이 종 진짜 소리 나요? 만져봐도 돼요?”
서희수가 아이들의 마음을 대표해 김 PD에게 물었다.
“소리는 안 나. 진짜 종으로 만들면 너무 무겁거든. 음, 만져보는 건, 잠깐만. 저거 튼튼해?”
김 PD가 조감독에게 확인했다.
“네, 애들이 좀 건드린다고 문제 될 건 없습니다. 고정 잘 시켜 놨거든요.”
“오케이. 살짝만 만져봐. 막 흔들면 안 돼.”
김 PD의 허락이 떨어지자, 아이들이 우르르 종으로 달려갔다.
하준도 생전 처음 보는 커다란 종에 관심이 폭발했기에 다른 아이들과 함께 종을 만져보았다.
“와, 여기 겉에 무늬도 하나하나 파서 만든 건가 봐.”
“뭔가 좀 오래된 종 같게 디게 잘 만들었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 진짜 종 같은데?”
“보신각 종이랑 크기는 비슷한데, 더 파란빛이 나서 예쁘다, 그치?”
“뭘로 만든 걸까?”
“원래 진짜 종은 뭘로 만드는 거지?”
“나도 그게 궁금해.”
아이들이 종을 관찰하며 저마다 한마디씩 했고, 개 중에는 궁금증을 내비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때, 하준이 입을 열었다.
“원래 이런 종은 청동이나 주철로 만드는데, 한국종은 거의 청동으로 많이 만들었대.”
“오, 정말? 청동? 청색 동인가?”
“그럼 이거 청동종이라서 이렇게 푸른빛인 건가?”
“청동으로만 종을 만든 거야?”
하준의 말에 아이들이 질문을 더 쏟아냈다.
“청동은 원래 동과 주석의 합금인데, 청동종에는 주석이 12~18퍼센트 섞여 있고, 주석을 많이 넣을수록 종소리가 맑아진대. 대신 주석을 많이 넣으면 갈라질 확률이 좀 높아지고. 물론 지금 이건 진짜 청동은 아닐 거야. 그래도 청동처럼 엄청 리얼하고 예쁘게 색칠하신 거 같아.”
하준은 이번에 <신비종>에 출연하게 되면서 외국의 종과 전혀 다른 한국종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서 책을 좀 찾아봤었다.
그래서 아이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준이 종 박사야? 신기해!”
“우와, 하준이 말이 맞아요?”
아이들이 신기해하며 조감독에게 하준의 말이 맞는지 확인했다.
조감독은 청동종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어서 하준의 자세한 설명에 그도 역시 놀라워하고 있었다.
“어······ 청동종이라는 건 맞는데, 주석 얘기는 나도 잘 몰라.”
그때, FD가 휴대폰을 검색해보더니 감탄하며 외쳤다.
“맞대요! 주석 많이 넣으면 종소리가 맑아지는 거. 와, 하준이 엄청 똑똑하구나! 척척박사네!”
“와······!”
“하준이 대단하다!”
FD가 사실확인을 해주자, 아이들은 또 한 번 감탄했다.
김 PD도 박학다식함에 놀라며 하준에게 물었다.
“하준이 덕분에 새로운 지식이 하나 늘었네! 근데 하준아, 어떻게 알았어?”
“한국종에 대해서 궁금해서 좀 찾아봤어요.”
“역시! 우리 하준이는 민후처럼 호기심이 많구나.”
김 PD는 기특하다는 듯 허허 웃으며 하준을 칭찬했다.
잠시 후, 종을 구경한 아이들은 각자 자기 위치에 섰고, 곧 김 PD가 ‘액션’을 외쳤다.
이번 장면은 도술학교 입학생들이 도술학교의 상징인 종을 구경하는 장면이었다.
촬영이 시작되자, 치천(治天)술 스승으로 나오는 배우가 먼저 종에 대해 설명하고 종의 옆에 달린 타원형의 나무로 종을 쳤다.
물론 종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연기했다.
“아! 이 종소리였구나!”
아이들이 웅성거리며 중얼거렸다.
“이 종소리를 들을 수 사람은 우리 도술학교에 들어올 수 있는 자격이 있어. 다들 들어봤지?”
“네!”
모두들 한목소리로 대답했는데, 박민후만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대답이 끝난 후 박민후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는 이 종소리가 아니었는데요?”
“뭐? 그럴 리가 없는데······. 종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보니 그림이 있지 않았니?”
“네, 있긴 했어요. 그래서 그 통로로 여기에 오게 됐고요.”
“그럼 이 종소리 맞아. 네가 잘못 기억하는 걸 거야.”
치천술 스승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다른 설명을 이어갔다.
하지만 박민후는 ‘아닌데······’라고 작게 읊조렸다.
“오케이, 컷! 민후 클로즈업 가자.”
김 PD의 말에 스태프들이 박민후 중심으로 촬영 세팅을 바꿨고, 다른 배우들은 카메라에 걸리지 않는 곳으로 다들 이동했다.
첫 촬영은 그동안 준비할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분량이 많은 삼총사도 이미 많은 연습을 해왔기에 소품 NG나 타이밍이 안 맞는 등의 NG가 대부분이었고, 대사 실수나 연기력 부족으로 인한 NG는 거의 없었다.
저녁 무렵, 드디어 첫 촬영이 마무리되었다.
김 PD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모아 놓고 말문을 열었다.
“오늘은 첫 촬영이니까 무리하지 않고 이쯤에서 촬영을 마치겠어요. 음, 내 경험상 첫 촬영이 물 흐르듯 잘 풀리면 그 작품은 마지막까지 별 문제 없이 잘 가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우리 <신비종>은 끝까지 잘 될 것 같습니다.”
“와아!”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박수와 환호로 공감과 기대를 표출했다.
“첫 촬영의 열정 그대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좋은 작품 만들어봅시다. 우리 <신비종>도 전세계 시청률 1위 할 수 있어요. 아자, 아자, 파이팅!”
“파이팅!!”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김 PD의 외침을 따라 열정적으로 파이팅을 외쳤고, 서로 수고했다는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막 해산을 하려는데, 김 PD가 조감독에게서 무슨 말을 듣더니 다시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아, 여러분, 세트장 밖에 저녁 밥차가 준비되어 있답니다. 다들 저녁 드시고 가세요.”
“와, 정말요?”
“안 그래도 진짜 배고팠는데!”
“감사합니다아!”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기뻐하며 밖으로 나갔다.
하준도 친구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는데, 밖에 준비된 밥차를 보고 깜짝 놀랐다.
밥차에 걸린 여러 개의 플래카드 때문이었다.
[하준의 드라마 첫 주연을 축하합니다! -팬카페 ‘사랑하준’ 일동]
[오늘 저녁은 하준이 쏩니다!]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 대박나세요!]
“뭐야, 하준아, 너네 팬카페에서 준비한 거야?”
“너 알고 있었어?”
공정환과 서희수도 놀라서 하준에게 물었다.
“아니, 나도 몰랐는데······.”
“우와, 그럼 서프라이즈 밥차네. 너 놀래켜주려고 준비했나 봐.”
“팬분들 대단하시다!”
사람들은 하준의 팬카페에서 온 밥차라는 걸 알고는 하준에게 다들 와서 잘 먹겠다고 인사했다.
“잘 먹을게, 하준아.”
“부럽다, 팬카페에서 밥차도 보내주고. 아무튼 잘 먹을게.”
하준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인사를 받은 뒤 얼른 팬카페 임원진에게 달려갔다.
“누나들! 어떻게 된 거예요? 밥차를······!”
“하준아!! 도복 귀엽다! 누나들이 하준이 첫 주연 드라마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잖니!”
“와······ 너무 감사해요. 생각도 못 했는데······.”
“깜짝 놀랐어? 감동 받았지?”
“네, 엄청요!”
하준이 그제야 활짝 웃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럼 성공이네! 하준이가 좋아하니까 우리도 너무 좋아. 특별히 우리 하준이 좋아하는 돈가스도 있으니까 많이 먹어.”
“네, 진짜 감사드려요!”
“근데 촬영이 일찍 끝날 것 같다고 해서 우리 엄청 헐레벌떡 준비했다? 시간 맞춰 준비하느라 혼났네. 호호.”
“힘드셨겠어요. 저녁 밥차 준비하시는 줄 알았으면 제가 NG라도 더 낼 걸 그랬나 봐요.”
“귀여워! 말만이라도 고맙다. 그래도 그럼 안 돼. 너 그럴까 봐 누나들이 말 안 하고 서프라이즈로 온 거야.”
“헤헤, 네. 감사합니다!”
“참, 밥 먹고 나서 이따가 우리한테 다시 와. 줄 거 많으니까.”
“밥차만 해도 고마운데, 뭘 또 준비하셨어요······.”
“밥차는 밥차고, 선물은 선물이지! 이따 봐!”
임원진들은 하준에게 찡긋 윙크를 하고는 배식을 도우러 밥차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