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58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리 있지 않았어요?”
사실 하준은 관객수에는 일부러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첫 공연 직전에 우연히 스태프들의 대화를 듣게 되어 이 정도 정보만 알고 있었다.
-그랬던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건지는······. 아! 우리 공연 보고 간 사람들이 좋게 소문 좀 내줬나······? 아무튼, 다 네 덕이야. 고맙다!
“에이, 그게 왜 제 덕이에요? 형이 잘한다고 소문나서 많이들 보러 오시는 거겠죠.”
-음,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네 덕이 커! 난 그렇게 생각해. 이번에 너랑 같이 하는 공연이 많은 게 나한텐 정말 행운이야. 물론 같이 호흡 맞추는 부분이 없어서 아쉽지만 말야. 네가 얼른 자라서 나랑 같이 공연하면 좋겠다!
“고마워요, 형.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요. 아, 그리고 축하드려요!”
남은호는 하준의 화제성과 실력이 매진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준에게 고마워했다.
하준은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준이 실력에 비해 티켓 파워가 약하다고 생각했던 남은호의 공연이 모두 매진됐다니 기뻤다.
남은호의 말처럼 하준이 도움이 됐다면, 그것도 기쁜 일이었고 말이다.
하준은 남은호와의 전화통화를 마친 뒤, 뭔가 정보가 있을까 싶어 자신의 팬카페에 들어가 보았다.
그리고 매진의 이유를 어느 정도 추측할 만한 따끈따끈한 소식을 발견했다.
[<루반베> 하준-남은호 첫공 후기&커튼콜 영상-By 공연마스터!!]
하준은 링크된 너튜브 영상으로 들어가 보고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공연마스터는 100만이 넘는 구독자 수를 보유한 유명 너튜버였고, 영상 조회수 또한 벌써 60만을 넘었기 때문이었다.
구독자수를 확인한 하준은 후기로 뭐라고 했을지 궁금해서 영상을 얼른 재생해보았다.
먼저 첫 부분에는 하준과 남은호, 그 외 주연 배우들의 포스터 사진과 간단한 소개가 영상으로 보여졌고, 다음으로 공연마스터가 나와서 첫공 감상 후기를 말하기 시작했다.
“일단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 조합 강추입니다. 여러 가지로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는데, 특히 이 조합은 <루반베>에서 연주되는 피아노곡을 전부 이 두 배우가 연주합니다. 연주 실력도 수준급이고요. 그래서 몰입감도 좋습니다. 물론 피아노만 잘 치는 게 아니라 다른 것들도 모두 좋았습니다. 연기, 노래, 춤, 뭐 하나 빠지지 않거든요. 음, 솔직히, 제가 올해 보았던 공연 중에 단연코 최고의 공연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재미도 있고, 노래도 좋고, 배우들도 굉장했거든요! 그럼 맛보기로 커튼콜 영상 보여드릴게요.”
공연 후에 배우들이 인사를 하며 각 배우들이 자신이 부른 노래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조금씩 불러주는 걸 커튼콜이라고 한다.
커튼콜은 항상 촬영이 가능한 것은 아니고 허락하는 날이 정해져 있었는데, <루드윅 반 베토벤>의 경우는 첫 공연에서 촬영 가능했다.
하준은 커튼콜 영상을 감상했는데, 커튼콜 영상이 끝나자 바로 하준과 남은호의 연습 현장 영상과 라디오 출연 당시 부른 노래 영상도 이어 나왔다.
하준은 이 모든 영상을 본 후, 댓글 반응을 확인했다.
[오, 남은호 님과 하준 군이 어깨동무하고 ‘나의 길’ 잠깐 같이 부르는 거 너무 좋은데 너무 짧다······]
[나 저 첫공 보고 왔는데 하준이는 실력 진짜 미쳤음ㅎㄷㄷ 8살에 벌써 모든 게 준비된 배우!! 남은호 뮤배님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됐는데, 내공 장난 아님]
[하준은 가수도 이미 준비 끝난 듯~]
[남은호 목소리 시원시원하다~~ 갠적으로 확실히 뮤배들 발성이 좀 다르긴 함]
[하준 군 천재라더니, 실력 장난 없네 ㄷㄷ]
[지금 예매하러 갑니다~~]
댓글은 벌써 천 개도 넘어서 스크롤을 내려도 내려도 댓글들이 계속 있었다.
그런데 거의 다 호의적인 반응들이었고, 이 조합으로 공연 보러 가겠다는 사람들도 무척 많았다.
이 영상은 며칠 전에 올라온 것이었고, 아무래도 이 영상이 홍보를 제대로 해줘서 매진이 된 것 같았다.
또한 팬카페를 더 둘러보다 보니 [<루반베> 첫공 후기글 링크 모음] 이라는 게시글도 있었다.
거기에는 수십 개의 첫공연 후기글이 올라와 있었는데, 다들 한결같이 하준과 남은호의 공연을 극찬했다.
‘입소문이 아니라 인터넷으로 소문이 났구나!’
하준이 기분 좋게 후기글들 링크를 하나씩 눌러 확인하고 있는데, 최선희가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하준아! 공연마스터라는 유튜버가 네 첫 공연 커튼콜 올린 거 봤어? 방금 팬카페에 링크 올라왔는데······ 어? 팬카페 보고 있었어?”
“응, 공연마스터 영상도 봤어. 은호 형이 나랑 같이 하는 공연 전부 매진 떴다고 전화 왔었거든.”
“어머! 정말?! 진짜야? 전부 매진이래? 와악!! 장한 우리 아들!!”
최선희는 자기가 좋은 정보를 알려주러 왔다가 더 큰 좋은 소식을 얻고는 하준을 얼싸안고 기뻐했다.
뮤지컬 <루드윅 반 베토벤>은 입소문, 아니 인터넷 소문을 타고 대성공을 거두었다.
남은호는 하준의 화제성 덕에 자신의 공연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기회를 얻었고, 그 기회를 훌륭한 실력으로 낚아채 주연으로서 대중에게 인정받아 확고한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하준은 뮤지컬로도 극찬을 받으며 뮤지컬계에서도 탐내는 인재로 거듭났다.
그래서 뮤지컬 <루드윅 반 베토벤> 공연이 모두 끝나기도 전에 드라마, 영화, 음반, 뮤지컬 등 다양한 부문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하지만 하준을 먼저 캐스팅해간 행운의 드라마는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였기에, 다른 제작사나 회사들에서는 아쉬움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
“하준아, 오늘 첫 미팅인데 이쁘게 하고 가야지? 뭐 입을 거야?”
오늘은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 첫 미팅이 있는 날.
최선희는 하준의 코디를 전적으로 하준에게 맡기고 있기에 오늘 뭘 입을 건지 물었다.
하준은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음, 꾸안꾸 스타일로 입을래.”
“꾸안꾸? 그게 뭐야?”
“꾸민 듯 안 꾸민 듯. 인터넷에서 봤어.”
“아하. 뭔가 말이 귀엽네. 그래, 꾸안꾸로 어떻게 입을 건데?”
하준은 검정 청바지에 흰 맨투맨 티, 그리고 하늘색 선이 포인트로 들어간 캐주얼한 블랙 라운드 재킷을 입었다.
“어때?”
“어떻긴! 우리 하준이는 뭘 입어도 이쁘지!”
“헤헤. 근데 꾸안꾸 느낌 나?”
“응! 딱 적당히 꾸민 느낌이야. 그럼 가자!”
최선희와 하준은 <신비종> 미팅이 이루어질 서울의 한 사무실로 출발했다.
“형, <신비종> 주인공 친구들은 아직 안 뽑혔대요?”
하준이 운전을 하고 있는 매니저 김유택에게 물었다.
“알아보니까, 결정은 나긴 났대. 근데, 다들 배우 했던 애들이 아니라서 기사는 안 냈나 봐. 촬영 좀 들어간 다음에 너랑 같이 인터뷰하면서 기사 내려나보지.”
“아하, 저만 배우인 거군요? 어떤 애들이 뽑혔는지 오늘 가면 만날 수 있겠죠?”
“그렇지.”
“어떤 애들일지 너무 기대돼요!”
하준은 앞으로 함께 삼총사로 연기를 해야 하니 착하고 자기와 잘 맞는 친구들이 뽑혔길 바랐다.
잠시 후, 하준은 사무실에 도착해 노크를 한 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사무실 안에는 가운데 넓은 테이블이 놓여 있고, 테이블 주위로 많은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하준보다 미리 와서 대기 중인 배우들이 있었다.
그들 중 반가운 목소리로 가장 먼저 하준을 부르는 사람이 있었으니.
“하준아!”
그는 바로 ‘진 우유’ 광고를 함께 찍었던 무명 배우 이강명이었다.
그는 ‘진 우유’ 광고 이후 일이 잘 풀려서 지금은 무명이 아니고 조연 배우 정도로 올라선 상태였다.
“스승님, 안녕하세요!”
“아하하. 벌써 그렇게 부르는 거야?”
하준의 인사에 이강명이 웃음을 터뜨리며 다가와 하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강명은 이번 <신비종>에서 도술학교의 괴짜 무술 스승 역할을 맡았는데, 이 괴짜 무술 스승은 도술학교 내에서 주인공 삼총사와 가장 친한 스승이었다.
“기사 보고 기뻤어요!”
하준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도술학교의 스승들의 배역을 맡은 사람들은 대부분 배우들이라 기사가 크게 났기에 하준은 이강명의 캐스팅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
“정말? 내가 네 스승 역할인 게 마음에 들어?”
“네, 좋아요.”
하준은 전에 광고를 찍을 때 만났던 이강명은 예의 바르고 착한 사람이었기에 함께 작품을 하게 된 것이 기뻤다.
“하하. 고맙다. 나도 너랑 같이 스승과 제자로 만난다니 너무 설레서 어제 잠도 제대로 못 잤어. 엇, 그러고 보니 나 내시에서 스승이 됐으니 엄청 신분 상승했다. 그치?”
“네, 축하드려요. 근데 그럼 전 신분 하락이네요? 세자가 학생이 됐으니까요. 헤헤.”
“엇. 아니지, 박민후는 그냥 학생이 아니잖아. 악의 무리로부터 도술세계를 지킬 영웅이지!”
“세자랑 영웅은 같은 급으로 쳐주시는 거예요?”
“에이, 세자보다 영웅이 더 높지. 그러니까, 하준이 너도 신분 상승이야. 아하하. 우리 둘 다 신분 상승했으니까 같이 잘해 보자!”
“네!”
하준은 이강명과 즐거운 인사를 마친 후, 다른 배우들에게도 인사했다.
그 중 하준과 안면이 있는 배우가 이강명 말고도 한 명 더 있었는데, 그는 바로 <메모리즈>에서 아빠로 나왔던 김진철이었다.
김진철은 이번에 악의 수장 역할을 맡았다.
“하준아, 또 같이 하네! 반갑다.”
“네, 근데 <메모리즈>에서는 아빠였는데, 지금은 적이네요.”
하준이 아쉬운 듯 말하자, 김진철도 맞장구를 쳤다.
“같은 편이면 좋았을 텐데, 그치? 사실 난 학장을 하고 싶었는데, 학장 이미지랑 나는 영 안 맞아서 말이야. 내가 사실 악당 전문이잖니. 그래서 본의 아니게 죽는 것도 전문이고.”
김진철은 사실 날카로운 눈매와 강한 인상 때문에 악당 역을 많이 맡는 편이었다. 또한 자주 악역을 맡다 보니 악역을 잘하기도 했다.
하준은 전혀 모르는 배우들만 가득한 것보다는 이렇게 그래도 안면이 있는 배우들과 함께 하게 되어 좋았다.
물론 다른 배우들이 모두들 하준에게 호감을 표시하고, 어차피 촬영에 들어가면 점차 친해지겠지만, 처음에 적응할 때는 아무래도 익숙한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있는 게 편했으니까.
하준은 성인 배우들에게 인사를 한 뒤 자리에 앉아 하준과 삼총사가 될 친구들을 기다렸다.
삼총사 중 두 번째로 온 친구는 말괄량이 소녀인 장홍연 역할을 맡은 9살 서희수였다.
그녀는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큰소리로 모두를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장홍연 역을 하게 된 9살 서희수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아!”
당당하고 쾌활한 그녀는 인사를 한 뒤 하준에게 달려왔다.
“안녕! 너 실제로 보니까 더 잘생겼다? 우리 친하게 지내자!”
“아, 네. 누나.”
하준은 자기보다 한 살 많은 그녀에게 일단 존대를 했다.
그러자, 서희수는 깔깔대며 웃더니 하준의 어깨를 툭 때리며 말했다.
“야, 그냥 반말해. 우리 어차피 여기서 삼총사로 나올 거잖아. 한 살 차이는 그냥 반말 까도 되지, 뭐. 희수라고 불러.”
“진짜······요?”
“그럼 진짜지! ‘희수야’ 해봐.”
서희수는 하준의 어깨에 팔을 턱 걸치며 말했다.
“희, 희수야.”
“응, 하준아. 아하하, 귀여워.”
서희수는 어색하게 인사하는 하준의 표정이 귀엽다며 화통하게 웃었다.
하준은 왜 서희수가 장홍연 역할을 맡게 되었는지 느낌으로 알 것 같았다.
그때, 문이 열리며 남자아이가 들어왔다.
그런데 그는 뜻밖에도 하준이 아는 얼굴이었다.
하준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외쳤다.
“어? 네가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