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55화
“하준아, 윤하준!!”
하준이 교문을 지나는데, 뒤에서 고우주가 하준을 발견하고는 목청껏 하준을 불렀다.
하준은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어, 우주구나. 안녕, 주말 잘 지냈어?”
“응, 안녕! 나 어제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 오디션 봤는데, 너도 보고 왔지?”
“응, 난 토요일에 봤어.”
“잘 봤어? 하긴, 넌 잘 봤겠다······. 난 이런 오디션은 처음이라서 얼마나 떨리던지, 내가 생각해도 너무 바보같이 어버버거렸어, 힝.”
고우주가 하준의 옆에서 나란히 걸음을 맞춰 걸으며 한탄했다.
하준은 그런 우주의 어깨를 토닥이며 공감해주었다.
“저런. 사실 오디션은 많이 봐도 항상 떨리긴 해.”
“그럼 너도 떨었어?”
“속으로는 떨렸는데, 안 떨려고 노력했지.”
“우와, 부럽다. 난 노력해도 안 되던데. 난 이미 틀렸으니까, 너라도 되면 좋겠다!”
“고마워. 근데 결과는 나와봐야 아는 건데, 벌써 포기한 거야?”
“사실 어제 오디션 보고 깨달았거든. 아, 이건 내가 혹시 뽑혀도 못할 것 같다고 말야. 오디션 보는 것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데, 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기하다가는 난 정말 심장이 터져서 죽을지도 몰라. 그래서 내 목숨을 위해서 과감히 포기해주기로 했지. 하하.”
“그래, 똑똑한 결정이네. 솔로몬도 울고 가겠어. 하하.”
하준은 능청스러운 고우주의 말을 냉큼 받아주며 함께 웃었다.
“그치? 내가 좀 똑똑하지. 음, 근데 솔로몬은 누구야? 포켓몬 같은 건가?”
“아······ 그게 아니고, 옛날 이스라엘의 왕 중 한 명인데 똑똑하기로 유명한 왕이야.”
“아하. 그런 왕도 알고, 너도 되게 똑똑하네! 인정!”
고우주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하준을 칭찬했다. 그러더니 곧 하준에게 물었다.
“참, 근데 그거 발표는 언제 나는 거랬지? 지원자가 너무 많아서 오디션 한참 봐야 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적어도 한 달은 걸릴걸? 박민후 역 지원자가 3천 명 정도인데 하루에 100명씩 본 댔나, 그랬으니까.”
“그렇겠네. 와, 근데 진짜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 인기 되게 많다. 3천 명이나 지원했다니······.”
“다른 역도 다 지원자가 천 명은 넘는대.”
“이야, 그러다 오디션만 몇 달 보는 거 아냐?”
“진짜 몇 달 볼걸?”
“그럼 촬영도 아직 멀었겠다. 그치?”
“응, 그렇겠지.”
하준에게는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 촬영이 몇 달은 있어야 시작한다는 것이 잘된 일이었다.
베토벤 뮤지컬이 8월 말부터 시작해서 2달 이상 공연하기 때문이다.
사실 하준은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 오디션에서 붙을 수도 있어서 섭외가 들어온 여러 드라마와 영화를 거절한 상태였다.
하준은 솔직하게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 오디션을 보기 때문에 거절한다고 했는데, 제안 온 작품들 중 일부는 오디션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보겠다며 혹시 오디션에서 떨어지게 되면 자기네 작품을 같이 하자고 했다.
그래서 하준은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 오디션에서 떨어져도 할 수 있는 작품이 여럿 있었다.
하지만 거의 성인 주인공의 아역 역할이라서, 어린이가 주인공인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가 그 무엇보다 하고 싶었다.
하준은 이번 오디션에서 꼭 주인공으로 캐스팅되길 바라고 또 바랐다.
***
“여보세요. 아, 은호 형.”
-하준아, 어디야?
“저 거의 다 왔어요. 방송국 보여요.”
-그래? 난 지금 방송국 앞이야. 얼른 와.
“네, 곧 봬요.”
하준은 성인 베토벤 역 중 한 명인 남은호와의 전화통화를 마치고는 운전 중인 로드 매니저 김유택에게 말했다.
“형, 은호 형 정문 앞에 있대요.”
“아, 그래? 우리도 1분이면 도착해. 정문에서 내려줄 테니까, 남 배우님이랑 같이 들어가. 어머님이랑 나는 주차하고 따라 올라갈 테니까.”
“네, 형.”
하준은 차가 도착하면 바로 내리기 위해 가방을 미리 멨고, 최선희는 하준의 머리카락과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었다.
“자, 내려. 곧 보자.”
“네!”
김유택이 SBC 방송국 앞에 차를 세웠고, 하준이 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 앞에는 남은호와 조세핀 역의 윤아영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준아, 안녕!”
“안녕, 우리 하준이는 오늘도 귀엽네!”
“안녕하세요, 형, 누나.”
남은호와 윤아영은 하준의 양쪽에서 손을 잡고 방송국 정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문으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눌러댔다.
세 사람은 손을 흔드는 포즈, 하트 포즈 등을 해주며 사진을 찍어주었다.
“감사합니다!”
세 사람은 짧게 사진을 찍은 후, 기자들에게 인사하고 방송국 안으로 들어갔다.
“하준아, 라디오 출연 처음이야?”
“네. 처음이에요.”
오늘 하준과 남은호, 윤아영은 뮤지컬 <루드윅 반 베토벤> 홍보 차 라디오에 출연하게 되어 이렇게 SBC 방송국을 찾은 것이었다.
“떨려?”
“생방송이라고 하니까 좀 떨리긴 해요. 혹시 말실수할까 봐요. 재미없을까 봐도 걱정이고요.”
“우리가 있잖아. 형이랑 누나만 믿어.”
“네, 형이랑 누나만 믿을게요. 다 같이 나가서 정말 다행이에요.”
남은호와 윤아영은 다정하게 하준의 양쪽에서 손을 잡고 라디오 부스로 들어갔다.
오늘 라디오는 보이는 라디오로 진행되어 소수의 방청객들이 정면에 앉아 있었다.
“와, 남은호······!”
“하준이다!”
“윤아영 예쁘다!”
방청객들은 환호하며 그들을 맞아주었고, <강지혜의 파워쇼>의 진행자 강지혜도 반갑게 그들을 맞았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머, 하준이 너무 잘생겼다! 반가워.”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하준은 공손하게 인사하고 안내해준 자리에 앉았다.
강지혜는 남은호와 윤아영과는 구면이라 그런지 오늘 처음 만난 하준에게 더 관심을 보였다.
“하준아, 얘기 많이 들었어. 노래를 그렇게 잘한다면서? 오늘 하준이가 라이브 한다고 해서 엄청 기대하고 왔어. 저기 피아노도 준비해 뒀고.”
“감사합니다. ‘작곡은 나의 즐거움’은 방송에서 처음 불러봐요. 게다가 라이브로 하는 거라 긴장이 좀 되네요.”
“좀 틀려도 돼. 다들 귀엽게 봐주실 거야. 또 그게 라이브의 묘미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말고 해. 알겠지?”
“네, 감사합니다.”
잠시 후, <강지혜의 파워쇼> 부스의 ON AIR 박스에 불이 켜지고, 방송이 시작되었다.
“오늘 <강지혜의 파워쇼> 라이브타임에는 뮤지컬 <루드윅 반 베토벤>의 뮤지컬 배우 세 분을 모셨는데요, 먼저 뮤지컬 배우 7년 만에 첫 주연을 맡은 감성 배우 남은호, 아름다운 목소리와 화통한 입담의 반전 매력 뮤지컬 여제 윤아영,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 이번엔 뮤지컬까지 도전하는 아역계의 천재 배우 하준 군입니다. 세 분, 반갑습니다! 어서오세요. 각자 인사 한마디씩 해주시죠.”
강지혜의 소개에 방청객들이 박수를 쳤고, 남은호부터 인사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뮤지컬 배우 남은호입니다. 강파쇼에 거의 8개월 만에 출연한 것 같은데요, 이번에는 주연으로 출연하게 돼서 정말 기쁘네요.”
“저번에 나오셨을 때, 다음에는 꼭 주연 맡아서 돌아오시겠다고 농담처럼 말씀하시고 가시더니 진짜 주연 맡아서 돌아오셨어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하하.”
강지혜가 축하인사를 건네자, 남은호는 싱글벙글 웃으며 좋아했다.
다음으로 윤아영이 인사했고, 마지막으로 하준의 차례가 되었다.
“안녕하세요, 아역 배우 하준입니다. 라디오 방송은 첫 출연인데요, 예쁘게 봐주세요.”
“반가워요, 하준 군. 예쁘게 봐달라고 안 해도 저절로 예쁘게 봐질 것 같아요. 벌써 채팅창에 귀엽다고 난리 났네요.”
“감사합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뮤지컬 얘기 나눠볼까요? 이번에 세 분이 함께 하시는 뮤지컬이 <루드윅 반 베토벤>이라고 하는데요, 베토벤 이야기인가요?”
강지혜의 질문에 남은호가 대표로 설명을 시작했다.
“네, 베토벤의 인생과 사랑을 그린 창작 뮤지컬입니다. 제가 성인 베토벤, 여기 하준 군이 어린 베토벤 역을 맡았고요, 윤아영 씨가 베토벤의 연인 조세핀 역을 맡았습니다. 사실 베토벤은 죽을 때까지 독신이었는데요, 이번 뮤지컬에서 베토벤의 연인은 픽션으로 추가된 인물입니다.”
“아하, 논픽션과 픽션이 섞인 거군요. 더 재밌겠네요.”
“네, 음악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많은 감동을 느낄 수 있으실 겁니다.”
“무척 궁금하네요. 아, 근데 베토벤은 작곡가잖아요? 그럼 피아노를 직접 치는 장면도 나오겠죠?”
“네, 그럼요. 하준이와 저, 둘 다 피아노를 직접 칩니다. 제가 이번에 베토벤으로 캐스팅된 건 사실 거의 피아노 덕분입니다.”
“오, 피아노 잘 치신다고 들었는데, 정말인가 봐요. 근데 뮤지컬에서 기본적으로 노래와 춤을 볼 수 있는데, 거기다 피아노 연주까지 볼 수 있다니, 굉장히 풍성한 공연이 될 것 같네요. 이따가 우리 강파쇼 애청자분들을 위해서 피아노도 쳐 주실 거죠?”
“네, 열심히 준비해왔습니다. <루드윅 반 베토벤>은 이번이 초연이라서 이따가 보여드리는 노래들이 방송 사상 최초로 공개되는 거예요.”
남은호의 말에 방청객들은 박수와 환호로 기뻐했다.
“와우, 여러분 들으셨죠? 오늘 끝까지 함께 해주시면 최초 공개되는 <루드윅 반 베토벤>의 뮤지컬 넘버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참, 하준 군도 피아노를 엄청 잘 친다고 하던데, 맞죠?”
강지혜의 물음에 하준 대신 윤아영과 남은호가 호들갑을 떨며 대답했다.
“진짜 잘 쳐요. 피아노 치면서 노래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것도 너무 잘하고요. 다들 정말 깜짝 놀랐다니까요.”
“우리 배우들이 다들 하준이 예뻐서 죽어요. 하준이는 피아노도 잘 치지만, 춤도 잘 추거든요. 연기나 노래도 당연히 잘하고요. 게다가 대사나 가사 까먹지도 않아요.”
“아, 심지어 다른 배우들 대사나 노래까지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근데 원래 기억력이 좋은가 보더라고요. 배우들이 모여서 첫 미팅하고 대본 리딩하고, 다음 날 다시 모였는데, 40명도 넘는 배우들 이름을 다 외웠더라고요. 앙상블 분들 이름까지 다 외워서 인사하고 그러니까, 다들 예뻐할 수밖에 없죠.”
하준은 피아노를 잘 치냐는 질문에 양쪽에 앉은 두 사람이 온갖 칭찬을 쏟아내니 가운데에서 쑥스러워하고 있었다.
“와, 대단하네요. 근데, 하준 군이 어린 베토벤이면, 은호 씨나 아영 씨와 같이 노래하거나 하는 장면은 없겠네요?”
“네, 없죠. 그게 정말 아쉬워요. 나중에 아빠와 아들이 주인공인 뮤지컬이 생기면 꼭 같이 해보고 싶어요.”
“저는 엄마와 아들이 주인공인 뮤지컬에서 같이 하고 싶네요. 호호.”
윤아영이 남은호의 대답을 따라 답했고, 하준 역시 그런 뮤지컬이 있으면 무조건 하고 싶다고 했다.
“<루드윅 반 베토벤>은 8월 26일부터 11월 6일까지 공연한다고 하셨죠?”
“네, 2주 남았습니다. 빨리 2주가 지나서 공연을 보여드리고 싶네요.”
“오, 자신감이 넘치시네요. 벌써 연습은 완벽하게 되어 있으신 건가요?”
“연습은 아직 조금 더 해야 하지만, 빨리 관객들을 만나고 싶다, 뭐 이런 마음입니다. 참, 하준이는 사실 연습을 더 안 해도 될 정도로 벌써 완벽해요. 시간 남아서 우리 연습할 때 같이 따라 하고 그러거든요.”
“와, 하준 군, 은호 씨 말이 사실이에요?”
강지혜가 놀라워하며 하준에게 물었다.
그러자 하준은 겸손하게 답했다.
“네, 근데 저는 사실 여기 형, 누나에 비해서 비중이 작거든요. 그래서 그런 거예요.”
“비중이 작아도 완벽하게 하기는 쉽지 않죠. 아, 그럼 이쯤에서 하준 군의 뮤지컬 넘버 하나 듣고 갈까요? 하준 군, 지금 준비한 곡 제목이 뭐죠?”
“‘작곡은 나의 즐거움’이요.”
“그럼 박수로 청해 볼까요?”
방청객들은 신나게 박수를 쳤고, 하준은 준비된 디지털 피아노 앞에 가서 앉았다.
하준이 멋지게 피아노를 치면서 완벽한 무대를 선보이고 나자, 방청객들은 감탄과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강지혜 역시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하준의 노래를 듣더니 노래가 끝나자마자 흥분해서 외쳤다.
“와, 정말 감탄밖에 안 나오네요. 여기 방청객분들 표정도 ‘지금 나 뭘 본 거지?’하는 표정들이세요. 지금 채팅창도 너무 잘한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1234님이 ‘하준 군 연주와 노래에 반했습니다, 이번 공연 꼭 보러 갈래요.’라고 하셨고요. LOVE님은······.”
“‘피아노 실력이 정말 베토벤 같네요. 지금 예매하러 갑니다.’라고 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MAGIC님은 ‘그래서 공연이 언제라고요?’라고 해주셨는데요, 공연은 8월 26일부터 11월 6일까지입니다.”
하준이 <강지혜의 파워쇼>에서 부른 ‘작곡은 나의 즐거움’은 큰 화제가 되었고, 덕분에 초연임에도 <루드윅 반 베토벤>에 대한 관심도가 급상승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