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길만 걷는 천재스타-50화 (50/150)

50화

50화

스태프는 하준에게 인이어와 이어마이크를 채워주고는 잠시 대기하라고 했다.

무대에서는 한범우의 노랫소리와 중간중간 팬들의 함성이 들리고 있었다.

이제 다음 곡이 ‘단 하루만’이다.

하준은 눈을 감고 최선희가 가르쳐준 대로 관객들을 꽃이라고 되뇌었다.

잠시 후, 스태프가 다시 하준에게 오더니 핸드 마이크를 쥐여주며 속삭였다.

“이제 노래 부르면서 나갈 거예요. 자······.”

스태프는 하준이 나갈 타이밍이 되자, 손짓으로 나가라는 사인을 주었고, 하준은 노래를 부르며 무대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기 시작했다.

“너는 언제부터 나를 떠나려 한 걸까~ 네 마음은 항상 투명한 아이 같았는데~”

하준의 목소리가 들리자, 관객석은 잠시 술렁였다.

하준이 나오리라고 예상은 했는데, 이 타이밍이 아니라 후렴구에서 나오겠거니 했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노래의 거의 초반에 하준의 목소리가 들리니 관객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뭐야, 이거 하준이 목소리 맞지?”

“벌써 나오나?”

“와, 화음 좋다!”

관객들은 술렁이다가 걸어 나오는 하준의 모습이 보이자, 환호와 박수로 하준을 환대했다.

“와아!!”

하준은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계단을 내려와 한범우 옆에 섰다.

관객들은 크게 한 번 환호한 후 노래를 듣기 위해 얼른 다시 조용히 했고, 한범우와 하준은 서로 눈을 맞추며 ‘단 하루만’을 열창했다.

“눈물이 마를 만큼 차갑게 변해버린 너의 마음을~ 알아채지도 못하는 바보였어 난~”

“눈물이 마를 만큼 차갑게 변해버린 너의 마음을~ 알아채지도 못하는 바보였어 난~”

하준은 역시 실전에 더 강했다.

관객들이 너무 많다고 걱정을 했지만, 무대에 오르자 언제 그랬냐는 듯 목소리 떨림 하나 없이 영롱한 목소리를 뽐냈다. 물론 이건 엄마의 조언 덕분이기도 했다.

약 4분여의 노래가 끝나자, 관객들은 콘서트장이 떠나가라 함성과 박수를 보냈고, 한범우는 활짝 웃으며 하준을 안아주었다.

그리고 하준을 소개했다.

“여러분, 모두들 잘 아시죠? 아역계의 떠오르는 샛별, 하준 군입니다!”

“안녕하세요, 아역 배우 하준입니다.”

한범우가 하준을 소개하자, 다시 한번 우렁찬 함성과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귀엽다’, ‘멋있다’ 등의 외침 소리도 들려왔다.

한범우와 하준은 나란히 생수를 한 모금씩 마신 후에 토크를 이어갔다.

“우리 하준 군이 드라마에, 뮤지컬에, 엄청 바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 위해서 이렇게 게스트로 와줬답니다. 우리 하준이 너무 착하죠?”

“네에!”

관객들은 한 목소리로 대답했고, 하준은 웃으며 말했다.

“저는 범우 삼촌이 초대해 주셔서 너무 영광이었는걸요. 콘서트 무대에 한 번도 안 서 봤는데, 초대해주셔서 전 정말 감사했어요. 제가 사실 가수는 아니니까 언제 또 콘서트 무대에 서보겠어요.”

“하준이는 말도 이렇게 이쁘게 한답니다! 귀여워, 하하. 아, 이번엔 아역으로 찍은 드라마 제목이 뭐죠, 하준 군?”

“<메모리즈>요. 믿고 보는 배우 강현기 님이 주인공이시고요, 전 그 주인공의 아역이에요.”

“오, 강현기 배우님 연기 기가 막히죠. 참, 그리고 노은지 작가님 작품이래요. 여러분, 많이들 봐주세요. 우리 하준이도 연기 잘하는 거 아시죠?”

“네에!”

관객들은 무슨 조련을 당한 것처럼 한범우가 질문만 하면 콘서트장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9월에는 뭐 한댔죠, 하준 군?”

“<루드윅 반 베토벤>이라고, 베토벤 이야기를 다룬 창작 뮤지컬이요.”

“맞다, 베토벤! 난 이거 꼭 보러 갈 거예요. 안 그래도 엄청 기대 중이었는데, 하준이까지 나온다니까 안 갈 수가 없죠. 아, 하준 군, 그럼 요즘 뮤지컬 연습해요?”

“네, 요즘 거의 매일 연습가요.”

“뮤지컬 해보니까 어때요?”

“재밌어요. 뮤지컬 노래는 다 가사가 극중 내용을 담은 거라서, 대사를 노래로 표현한다고 볼 수 있거든요. 그게 새롭고 재밌어요.”

“아, 이런 거요? 하준 군~ 하준 군은 음식 중에~ 뭘 가장 좋아하나요오~~?”

한범우가 질문에 음을 붙여 마치 노래를 하듯 장난스럽게 질문하자,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준 역시 대답은 노래처럼 말에 음을 붙였다.

“저는~ 돈가스가 좋아요오~~ 바삭바삭 돈가스는~ 언제 먹어도 맛있죠~~”

“나도~~ 돈가스 좋아하는데에에에에~ 언제 한 번 같이 먹어요오오오~~ 베이베~~”

한범우는 R&B 가수처럼 기교를 잔뜩 넣어 노래했고, 관객들은 깔깔대면서도 중간중간 잘한다며 탄성을 질러댔다.

그리고 하준이 이 기교를 어떻게 받을지 기대하며 하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준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Give me a call~ baby baby~~”

하준이 어느 여성 듀오의 노래 가사 한 구절을 부르자, 관객들은 허를 찔린 듯 감탄하며 환호했다.

“잘한다!!”

“더 불러줘!”

한범우도 하준에게 엄지를 치켜세우고 박수를 보냈다.

“You win!”

한범우는 하준이 준비 중인 작품들을 홍보해주고, 재밌는 대화도 나눈 뒤 하준과 함께 ‘꽃바람’을 불렀다.

역시 관객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는데, 하준은 그 모습이 마치 꽃들이 축포를 터뜨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와······ 아름답다!’

관객들이 보여주는 즐거운 열광이 하준에게는 뭉클한 감동과 행복을 선사했다.

하준은 정말 꽃밭에 있는 것 같았다.

“자, 하준 군, 마지막으로 준비한 엄청난 무대가 있죠?”

“네, 마지막 곡은 신나는 곡으로 준비했습니다.”

“아마 하준 군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보실 겁니다. 하하. 아, 하준 군, 오늘 게스트로 와 줘서 너무 고마워요. 뮤지컬 잘 되길 바랄게요.”

“감사합니다!”

한범우는 하준에게 핸드 마이크를 건네받고는 손을 흔들며 무대 뒤로 사라졌다.

이제 무대에는 하준만이 남았고, 조명이 어두워졌다.

무슨 노래를 부를까 관객들의 궁금증이 증폭된 가운데, 강렬한 조명 하나가 하준만을 비춤과 동시에 드디어 전주가 나오기 시작했다.

삐뽑 삐뽑 삐뽑 삐뽑 삐뽑삐뽀삡 빠삐삡삡뽀~

“헐?! 이거, ‘으르렁’ 아니야?”

“꺄아아!! ‘으르렁’이다!!”

“하준이 춤추는 거야? 대박!!”

전주만으로 무슨 노랜지 알아맞힌 관객들은 소리를 지르며 열광했다.

하준이 ‘으르렁’을 춰볼까 했던 건, 얼마 전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 한 중학생 형이 나와서 춤을 췄는데, 노래와 춤이 기억에 남았기 때문이었다.

한범우 역시 예전에 ‘으르렁’ 무대를 많이 봤었는데, 보기에는 그렇게 춤이 어려워 보이지 않지만 멋있었던 기억이 나서 찬성했다.

그런데 막상 춰보니 엇박도 많고 어려운 데다가 조금만 동작이 어긋나면 춤이 아예 다른 느낌이 되었다.

결국 한범우는 자기 때문에 괜히 무대 망친다며 하준에게 단독 무대를 제안했고, 하준이 이렇게 혼자 댄스 무대를 준비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하준은 단독무대로 준비하게 되면서 아예 노래까지 라이브로 준비했다.

뮤지컬 연습을 하면서 노래와 춤을 함께 해봐서 이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뮤지컬보다 ‘으르렁’ 노래를 부르면서 춤추는 게 훨씬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하다 보니 할 만했다.

그래서 하준이 이어 마이크를 착용했던 것이다.

“나 혹시 몰라 경고하는데~”

하준이 춤과 동시에 노래의 첫 부분인 랩을 시작하자, 관객석은 난리가 났다.

“춤도 어려운데, 이, 이걸 라이브로?”

“아니, 이게 돼? 게다가 이거 그룹 노래잖아?”

“이걸 하준이 혼자서 다 부르면서 춤도 춘다고? 설마!!”

“꺄아!! 웬일이야! 춤 엄청 잘 춰!!”

“뭐야, 랩도 잘하는데?!”

하준은 경악하는 관객들에게 옅은 미소를 보내며 랩부터 노래, 거기에 춤까지 완벽하게 춰 나갔다.

관객들은 처음에는 충격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잠시 넋이 나가 보였으나, 이내 감탄하며 하준의 무대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하이라이트인 후렴 부분에서는 다함께 떼창을 했다.

“나 으르렁, 으르렁, 으르렁 대~”

하준은 이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관객들이 떼창을 해주니 노래는 적당히 하면서 춤을 더 열심히 췄다.

그런데 그 모습이 관객들에게는 정말 너무 귀여웠다.

8살 아이가 사나워진다면서 으르렁거리는 춤이라니!!

아기 사자의 포효 같았달까?

“꺄아!! 너무 귀여워!!”

“아, 미치겠다! 춤 진짜 잘 추는데, 또 귀여워!”

“어떡해······ 너무 잘한다!!”

하준은 완벽한 무대를 꾸몄고, 관객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준의 춤과 랩은 처음 본데다가 심지어 실력도 뛰어났으니 관객들은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선곡도 기가 막혔다.

‘으르렁’은 유명한 곡일 뿐만 아니라, 한범우의 콘서트에 오는 사람들의 나이대에 맞는 예전 노래였다. 또한, 이 곡은 하준의 춤 실력과 귀여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곡이었다.

“앵콜! 앵콜!”

“꺄아, 하준이 멋있다!!”

“잘한다! 앵콜!!”

하준의 무대가 끝나자, 관객들은 신이 난 나머지 앵콜까지 외치며 하준의 무대에 찬사를 보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봬요.”

하준은 배꼽인사로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무대를 내려왔다.

관객들은 아쉬워하면서도 하준에게 우렁찬 박수를 보내주었다.

하준이 무대에서 내려오자, 최선희가 하준을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정말 잘했어! 하나도 안 떨던데?”

“응, 엄마 말대로 꽃밭에서 노래 부르고 왔어.”

“그랬어? 잘했네, 우리 아들. 호호.”

최선희는 귀여운 하준의 볼을 어루만지며 웃었다.

하준은 이날 밤, 집에 돌아와 오랜만에 그림일기를 썼다.

한범우의 콘서트에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는데, 당연히 콘서트의 관객들은 모두 꽃으로 그려 넣었다.

그리고 예쁜 글씨로 일기도 적었다.

[오늘 범우 삼촌 콘서트에 게스트로 가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췄다. 관객들이 정말 많아서 떨릴 뻔했는데, 엄마가 관객을 꽃이라고 생각하라고 알려주셨다.

관객이 꽃이라고 생각하니 꽃밭에서 노래하는 것 같아서 안 떨고 즐겁게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앞으로는 관객들이 많아도 꽃이라고 생각하면 되니까 떨릴 걱정이 없어졌다.

역시 우리 엄마는 참 현명하시다. 사랑해요, 엄마!]

***

며칠 후, 학교에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난 하준이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왔다.

“어? 맛있는 냄새! 아빠까지 아침 만드는 거야?”

하준이 부엌에 있는 최선희와 윤기철을 보며 말했다.

하준의 목소리를 들은 최선희와 윤기철은 얼른 하준에게 달려왔다.

그리고 동시에 외쳤다.

“하준아, 생일 축하해!! 태어나 줘서 고마워!”

“하준아, 생일 축하해!! 태어나 줘서 고마워!”

두 사람의 말에 하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나 오늘 생일이야?”

하준의 의아한 물음에, 최선희와 윤기철이 서로를 쳐다보며 경악해서 또 동시에 되물었다.

“아니야?!”

“아니야?!”

그러자 하준이 오늘이 며칠인지 물었다.

“오늘 며칠이야?”

“7월 7일.”

“7월 7일이면······ 맞네, 내 생일!”

“그치? 맞지? 휴, 우린 우리가 잘못 안 줄 알았네. 하준아, 근데 생일 까먹었었어?”

최선희가 안도하며 물었다.

“원래 생일 안 챙겨서······.”

하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챈 최선희는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그럴 거면 왜 애를 입양했대? 애 생일도 안 챙겨주고, 참나!’

잠시 전 양부모를 원망한 최선희는 이내 다시 활짝 웃으며 하준에게 말했다.

“앞으로는 무조건 하준이 생일 다 챙길 거야. 왜냐면, 우리 사랑하는 하준이가 태어난 날은 꼭 기념해야 하니까. 태어나줘서 고마워, 하준아.”

“우와······ 엄마, 고마워······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해줘서 고마워.”

하준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자기를 왜 태어나게 한 거냐며 하늘을 원망했던 하준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자기에게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해주다니.

하준은 존재의 이유가 생긴 것 같아 마음이 뭉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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