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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만 걷는 천재스타-45화 (45/150)

45화

45화

댄스 연습실에 들어서자, 안무조감독이 대기하고 있었다.

“자, 지정안무를 가르쳐 줄게요.”

“네에!”

8살에서 10살가량 되는 남자 아이들이 우렁차게 답했다.

안무조감독은 이렇게 아이들만 모아놓고 춤을 가르친 적은 없었기에 무슨 키즈반 춤 선생님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성인들을 가르칠 때와 똑같이 아이들에게 춤을 알려주었다.

“양팔은 가슴에서부터 바깥으로 쫙 펴고, 동시에 왼발을 왼쪽으로 디디면서 원, 오른발을 왼발 뒤로 디디면서 투, 그 다음 오른쪽으로 턴 돌면서 쓰리, 포······.”

설명을 곁들여 느린 동작으로 한 번, 구령에 맞춰 정상 속도로 한 번, 노래에 맞춰 한 번, 이렇게 딱 세 번 안무를 기억할 기회가 있었다.

아이들은 안무조감독의 작은 몸짓을 하나라도 놓칠까봐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열심히 춤을 따라했지만, 안무 강습이 끝나자 벌써 끝난 거냐고 탄식했다.

“이제 강습은 끝났고, 앞으로 30분의 연습시간을 주겠어요. 선생님은 여기 있을 테니까, 혹시 연습하다가 모르는 안무 있으면 와서 물어봐도 돼요.”

안무조감독이 모르는 안무는 다시 알려주겠다는 말에 아이들은 안도하며 연습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각자 거울을 보면서 맨 처음 동작부터 연습했는데, 1분도 지나지 않아 몇몇 아이들이 안무조감독에게 달려갔다.

“선생님, 이렇게 한 다음에 이거 맞아요?”

“선생님, 팔 돌릴 때 다리 동작은 어떻게 했었죠?”

“이 다음 동작 뭐예요?”

성인들은 적어도 약 5분은 지나서 한두 명이 조심조심 다가와 질문을 했었는데, 이렇게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물으니 안무조감독은 당황했다.

“어······ 잠깐만, 처음에 온 사람부터 한 명씩 알려줄게. 일단 그 동작은 맞고······.”

아이들은 돌아가면서 안무조감독에게 안무를 물어보러 왔고, 안무조감독은 거의 쉴 틈이 없었다.

‘역시 아이들한테 지정안무는 좀 어렵나?’

안무조감독은 이런 생각을 하며 연습실의 아이들을 쭉 훑어보았다.

그런데 한쪽 구석에서 혼자 열심히 연습 중인 아이가 있었다.

‘어? 쟤 하준인가 하는 아역 배우잖아?’

안무조감독은 심사위원은 아니어서 하준의 1차 오디션을 보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하준이 이번 뮤지컬에 지원한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준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춤을 추고 있었고, 주변에 몇몇 아이들이 하준을 커닝하면서 춤을 연습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쟤는 나한테 한 번도 물으러 안 왔는데······.’

안무조감독은 과연 하준이 춤을 안 틀리고 제대로 다 외웠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유심히 지켜보려는데, 다른 아이들이 다가와 또 질문을 퍼붓는 바람에 안무조감독은 하준의 춤을 다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방금 잠깐 관찰한 바에 따르면, 하준은 그 누구보다도 정확한 동작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연기나 노래에 뛰어난 애가 춤까지 잘 추는 경우는 진짜 드문데. 오······.’

잠시 후, 마침내 30분의 춤 연습 시간이 끝났다.

“자, 30분 다 됐어요.”

“벌써요?”

“아직 다 못 외웠는데, 망했다······.”

“시간 좀만 더 주시면 안 돼요?”

몇몇 아이들은 한숨을 내쉬었고, 어떤 아이는 추가 시간을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연습 시간은 더 줄 수 없어요. 하지만 순서를 잘 뽑으면 대기 시간 동안 연습을 더 할 수는 있죠. 물론 선생님한테 더 이상 질문은 할 수 없지만요. 자, 이제 순서 뽑기를 하겠어요.”

안무조감독은 준비해 둔 번호표가 담긴 통을 가져와서 아이들에게 번호를 뽑게 했다.

“아싸! 딱 중간 번호다!”

“아싸! 18번!”

“힝······ 5번······.”

앞번호와 뒷번호를 뽑은 아이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다들 이번 매는 먼저 맞는 걸 싫어했다. 조금이라도 연습시간이 더 있었으면 했던 것이다.

아까 하준의 동작을 커닝하며 춤연습을 하던 아이들 중 하나는 16번을 뽑고 좋아했다.

그러고는 슬그머니 하준의 뒤로 가서 하준이 몇 번을 뽑았는지 살펴보았다.

‘에이씨······.’

아이는 하준의 번호를 보고 실망해서 속으로 투덜거렸다.

하준의 번호는 바로······.

“자, 그럼 1번부터 오디션장으로 입장할게요. 1번?”

“네!”

하준이 대답과 함께 손을 가볍게 들고 걸어 나왔다.

하준은 1번을 뽑았던 것이다.

안무조감독은 하준과 함께 오디션장으로 들어갔다.

심사위원들은 하준이 첫 번째로 들어오자 활짝 웃으며 하준을 반겼다.

“하준 군이 1번이네요!”

“하준 군, 파이팅!”

하준은 꾸벅 인사를 한 뒤 가만히 서서 음악이 나오길 기다렸다.

안무조감독은 곧 음악을 재생했고, 하준은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뛰어난 암기 실력으로 춤동작을 완벽히 숙지한 하준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박자에 정확한 동작을 선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준의 춤이 기계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정확한 동작과 박자 안에서 하준은 하준만의 아름다운 춤선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와······!”

“오······.”

심사위원들은 낮은 탄성을 내지르며 하준의 춤사위에 홀린 듯 눈을 떼지 못했다.

특히 안무감독은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리듬감도 엄청나고······ 아니, 아직 어린 애가 어쩜 저렇게 춤선이 아름답지?’

약 1분 30초간의 완벽한 춤이 끝나자, 심사위원들은 박수갈채를 보냈고, 이어 참았던 감상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와, 하준 군······ 뭐라 할 말이 없네요. 정말 훌륭한 춤이었어요.”

“순서도 완벽하게 다 외운 데다가 동작 하나하나가 너무 아름다웠어요. 몸을 정말 잘 쓰네요.”

“기억력도 좋은데, 리듬감이나 표현력도 좋네요. 보통은 순서 기억하느라 동작을 완벽히 펼쳐 보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게다가 손끝부터 발끝까지 어떻게 움직여야 보기에 아름다운지를 다 아는 것 같아요.”

심사위원들의 극찬은 끝이 없었다.

서로 한마디라도 하겠다고 앞다퉈 칭찬을 하는데, 하준은 감사인사를 할 틈도 못 찾는 상황이었다.

“솔직히 이렇게 디테일하게 표현을 잘하는 사람은 성인들 중에도 잘 못 본 것 같아요. 도대체 춤을 어떻게 배웠기에······!”

“저건 배워서 나올 수 있는 춤선이 아니에요. 하준 군은 춤에도 재능이 엄청나네요.”

“아까 1차 오디션에서도 그렇게 우리를 놀래키더니 2차 오디션에도 역시! 기대 많이 했는데, 기대 이상이에요.”

“오늘 오디션은 진짜 행복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아하하.”

총감독 송석원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러자 다들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하준은 그제야 감사인사를 할 수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만족스러운 미소로 하준을 바라보았고, 하준이 퇴장할 때는 손을 흔들며 이렇게 말했다.

“하준 군, 조만간 또 봐요!”

“하준아, 안녕! 조심해서 가. 다음에 보자.”

하준에게는 또 보자는 이야기가 합격을 암시하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하준은 최종합격 발표가 날 때까지 김칫국은 마시지 않기로 했다.

혹시 자기 뒤에 더 잘하는 아이가 나올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

“어? 하준이 왔다! 하준아!”

강현기가 하준을 보자마자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어? 현기 형?!”

하준은 예상치 못하게 강현기가 세트장에 와 있자, 의아해했다.

하준은 <메모리즈> 첫 촬영을 위해 세트장에 온 것인데, 오늘 첫 촬영은 어린 하태산만 나와서 성인 하태산 역인 강현기가 올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구, 우리 하준이 잘 지냈어?”

강현기가 하준을 번쩍 안아 들며 물었다.

“네, 형. 근데, 형 오늘 촬영 있으세요?”

“아니, 없지. 그냥 하준이 보러 왔지!”

강현기가 실실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하준의 귀에 대고 조용히 속닥였다.

“아참, 너 베토벤 뮤지컬 오디션 봤다면서? 잘 봤어?”

“엇,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하준은 순간, 강현기가 자기를 너무 이뻐한 나머지 무슨 뒷조사 같은 걸 하나 싶었다.

“아, 우리 회사에 있는 아역 배우 하나가 거기 오디션 보러 갔다가 너 봤다길래. 잘 봤어?”

“아하. 뭐 보긴 잘 봤는데, 결과는 나와봐야 알죠.”

“언제 결과 나온댔는데?”

“오늘내일 중에요.”

“그렇구나. 꼭 됐으면 좋겠다! 만약에 너 되면 꼭 공연 보러 갈게.”

“헤헤, 감사합니다!”

“아, 하준이 메이크업 해야지? 분장실은 저쪽이야.”

강현기는 하준에게 안내도 해주고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그리고 하준의 첫 촬영을 구경하고 간다며 자기 이름이 써진 간이의자에 앉았다.

“촬영 준비 다 되셨죠?”

조연출이 카메라, 음향 스태프들에게 확인했고, 곧 김학수 PD가 ‘레디, 액션’을 외쳤다.

<메모리즈>의 첫 촬영 장면은 하태산의 엄마 진수정과 아빠 하공철이 안방에서 말싸움을 하는 장면이었다.

먼저 하공철 역의 김진철과 진수정 역의 한주경이 안방 세트장에서 다투는 장면을 촬영했고, 하준은 그 장면을 보면서 감정 연기를 어떤 식으로 표현할지 가늠해보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 다음에 촬영할 부분이 하태산이 자기 방에서 뛰어난 청력으로 방금 대화를 모두 들으며 불안해하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방송에서는 이 부분이 교차 편집되어 나가지만, 촬영 때는 이렇게 나눠서 촬영을 했다.

얼마 후, 두세 번의 반복된 촬영을 마치고, 이제 하준의 차례가 되었다.

“태산이 방으로 이동할게요.”

스태프들은 이제 하태산의 방으로 모두 이동해서 촬영준비를 했다.

준비가 다 되자, 하준은 벽 한쪽에 등을 대고 쪼그려 앉아 대기했다.

하태산의 부모 역인 배우 김진철과 한주경은 대본을 들고 하준의 방 바깥쪽에 서 있었다. 하준의 연기를 위해 아까 연기한 대본을 옆에서 연기해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다들 준비되셨죠?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레디, 액션!”

김학수 PD의 사인이 떨어지자, 한주경은 대본을 보며 대사를 시작했고, 하준은 불안한 눈빛으로 소리에 집중하는 표정을 지었다.

“공철 씨, 언제까지 최 회장 뒤나 봐주고 있을 거야? 증거 인멸하고, 증거 조작하고, 당신이 그러고도 검사야? 이럴 거면 차라리 나처럼 변호사를 해. 그럼 최소한 이러고도 검사냐는 소린 안 듣잖아.”

“내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이래? 검사도 줄을 잘 서야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태산이 들어. 목소리 낮춰.”

하공철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부인 진수정이 주의를 주었다.

하준은 이 부분에서 흠칫 놀라며 잠시 경직된 자세를 취하는 연기를 펼치고 있었고, 그 와중에도 김진철과 진수정의 연기는 계속됐다.

“넌 왜 아직도 그렇게 세상 물정을 모르냐?”

“너무 잘 알아서 그래. 최 회장 같은 사람들, 충성한다고 끝까지 당신 이끌어 줄 것 같아? 그런 인간들은 자기 필요할 때만 이용하다가, 필요 없으면 가차 없다고.”

“계속 필요하게 만들면 돼.”

“그게 쉬워?”

“난 할 수 있어.”

“하, 진짜 말이 안 통해······. 그 자신감, 결혼 전엔 좋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너무 싫다.”

여기서 하준은 불안감이 극도에 다다른 표정으로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물을게. 이 사건, 계속 최 회장 편에 서서 내 의뢰인한테 뒤집어씌울 거야?”

“입 아프니까 더 이상 묻지 마. 내 대답, 안 변해.”

“그래, 좋아. 그럼 나도 마음 굳혔어. 우리······ 이혼해.”

“뭐?!”

하준은 손톱을 물어뜯다가 ‘이혼’이라는 말에 충격받은 표정으로 행동을 멈췄고, 이내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하준은 소리 없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다가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얼른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자는 척을 했다.

“컷! 아이고, 잘한다. 하하.”

김학수 PD는 아주 만족스러워하며 하준을 칭찬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강현기도 박수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고, 하준은 뒤집어쓰고 있던 이불을 젖히며 나왔다.

“하준이 표정 연기 끝내주네. 귀여워라.”

강현기가 이불 속에 들어갔다 나와서 헝클어진 하준의 머리를 잘 정리해주며 말했다.

“형이 보기에도 괜찮았어요?”

“그럼! 너무 잘했어.”

“감사합니다. 근데, 엄마 어디 가셨지······?”

하준은 엄마한테도 어땠는지 물어보려 했는데, 엄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엄마를 찾던 하준은, 곧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최선희를 발견했다.

“엄마, 어디 갔다 왔어? 나 연기하는 거 안 보고?”

그러자, 최선희는 활짝 웃으며 달려오더니 몸을 낮춰 하준을 끌어안고는 귀에다 속닥였다.

“하준아, 너 베토벤 뮤지컬 오디션 합격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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