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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만 걷는 천재스타-44화 (44/150)

44화

44화

오디션장의 심사위원들은 앞선 지원자들의 지원서와 채점점수를 살펴보면서 서로 논의 중이었다.

“음, 일단 5번이 좀 괜찮진 않았어요?”

“응, 난 5번이랑 11번? 장 감독은 어때?”

총감독 송석원이 음악감독 장서은에게 의견을 물었다.

하지만 장서은은 난감한 듯 답했다.

“전······ 아직 딱히······.”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장서은 음악감독은 여기 있는 다른 심사위원들에 비해 기준이 높은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거의 심사가 끝나가는데도 마음에 쏙 드는 지원자가 없었다.

“3명 남았는데, 아직이면 어떡해? 애들을 어른 기준으로 뽑으려고 하지 마. 그럼 절대 못 뽑는다?”

장서은 음악감독은 바로 직전 작품을 함께 했던 총감독 송석원이 이번 작품도 함께 하자고 데려왔다.

그녀는 경력은 짧았지만, 앞서 참여한 두 작품이 흥행하면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음악감독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했던 두 작품은 아역 배우가 전혀 나오지 않는 뮤지컬이었기에, 경력이 많은 송석원 총감독이 이런 조언을 한 것이었다.

“네······ 근데 그래도······ 아, 아니에요. 저도 5번이 제일 낫긴 한 것 같습니다.”

장서은 음악감독은 고집을 꺾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원자가 3명밖에 남지 않은 이 상황에서 이러다가는 답이 안 나올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답했다.

“음, 그래, 5번 애 정도면 무난하지.”

송 감독은 5번 지원서에 동그라미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안내직원에게 말했다.

“자, 다음 지원자 들어오라고 하세요.”

하준이 오디션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심사위원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하준을 쳐다보았다.

“안녕하세요. 아역 배우 하준입니다.”

하준이 배꼽인사를 했고, 심사위원들은 활짝 웃으며 다정하게 하준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네, 안녕하세요, 하준 군.”

“반가워요.”

인사를 마치자마자, 총감독 송석원이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드라마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우리 뮤지컬 오디션에 지원하게 된 거예요?”

심사위원들은 하준의 지원서를 확인하고 다들 놀라워하고 궁금해했었다.

보통의 배우들은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 TV에 얼굴을 더 자주 비춰서 인지도를 더 높인다.

뮤지컬은 직접적으로 얼굴을 알리는 매체는 아니라서 인지도에 그렇게 큰 영향은 주지 못했기 때문에, 막 뜨기 시작하는 배우가 뮤지컬에 지원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드라마는 1,2화 정도만 출연해서 일주일 정도면 촬영이 끝나고요, 제 나이에 할 수 있는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어서 지원했습니다. 어린 베토벤 역할은 뮤지컬이 아니면 할 수 없으니까요.”

“오, 그건 그렇죠. 아주 당차네요.”

하준의 말투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리고 말투뿐만 아니라 지원 이유 역시 인기에 연연하기보다는 하고 싶은 걸 해보겠다는 자신감과 열정이 돋보였다.

송 감독을 비롯한 다른 심사위원들도 하준의 자신감 있는 태도가 호감으로 느껴졌는지 빙긋 웃었다.

“그럼 지정곡 한 번 들어볼까요?”

음악감독 장서은의 말에 하준은 피아노 앞에 앉았다.

지정곡은 이번 국내 창작 뮤지컬 <루드윅 반 베토벤>의 뮤지컬 넘버 중 하나로, 어린 베토벤의 솔로곡 ‘작곡은 나의 즐거움’이라는 곡이었다.

베토벤의 아버지 요한은 베토벤을 제2의 모차르트로 키워 부와 명예를 얻으려고 어린 베토벤을 가혹하게 훈련을 시켰는데, 베토벤은 연주보다 작곡을 좋아했다.

하지만 요한은 베토벤이 작곡하는 것을 매우 싫어했고, 오로지 연주만 연습하게 훈련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아버지가 연주 연습을 시키고 나간 후 어린 베토벤이 혼자 남아 부르는 노래였다.

“시작하겠습니다.”

하준은 손을 살짝 흔들어 푼 다음 눈을 감았다.

눈은 감은 채 작곡에 심취한 모습의 표정 연기가 잠시 펼쳐졌고, 곧 하준은 눈을 반짝 뜨고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의 유명한 도입부, ‘빠빠바밤! 빠바바밤!’을 힘있게 쳤다.

그러고는 얼른 멈추더니 피아노 위에 올려져 있던 종이에 악보를 열정적으로 그리는 듯한 연기를 했다.

하준의 이 첫 시작만으로도 심사위원들은 입이 쩍 벌어졌다.

‘와, 어떻게 저렇게 저 느낌을 잘 살릴 수 있지?’

‘피아노도 잘 치고, 표정도 너무 좋아······!’

심사위원들은 이런 생각을 하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힘 있고 정확한 피아노 연주와 세밀한 표정 연기가 벌써부터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하지만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였다.

하준의 손끝에서 나긋하게 흘러나오는 베토벤의 월광 1악장.

파워풀한 운명 교향곡의 첫 부분과는 정반대의 스타트였다.

따라란 따라란 따라란 따라란~

월광 1악장은 부드럽게 첫 몇 소절이 연주되다가 자연스럽게 다른 멜로디로 연결되면서 ‘작곡은 나의 즐거움’의 도입부로 넘어갔다.

그리고 피아노 반주에 맞춰 하준이 맑디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작곡은 너무나 근사한 거야~ 아빠는 왜 그걸 모르지~”

뮤지컬 노래의 가사는 연기에서 대사를 하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노래를 하면서도 그 안에 배우의 감정이 녹아 있어야 했다.

이건 사실 성인 배우들도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하준은 매우 능숙하게 멜로디와 가사에 연기를 입혔다.

“오······!”

음악감독 장서은이 자기도 모르게 낮은 탄성을 내뱉었다.

지금까지의 어떤 지원자들보다 월등한 실력이었다.

피아노 연주는 물론이고, 노래 실력, 가사 전달력, 연기력,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장서은 음악감독의 얼굴에 드디어 환희에 찬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내가 기다렸던 게 바로 이런 거였다고! 이런 완벽한 아이가 진짜 있었다니!’

장서은 음악감독은 아까 총감독의 조언으로 완벽주의를 버리고 기준을 좀 낮춰뒀었다.

하지만, 하준의 등장으로 전혀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장서은 음악감독은 속으로 ‘심 봤다!’를 외치며 계속해서 하준의 무대를 지켜보았다.

“남의 악보를 연주하는 건 시시해~ 하지만 내가 작곡한 곡은 근사하지~”

여기까지 노래한 하준은 이번에는 ‘엘리제를 위하여’의 도입부를 연주했다.

따라리라 따라리라란~

그러고는 너무 근사한 멜로디라는 듯 벅찬 표정으로 다시 종이에 악보를 그리는 시늉을 했다.

하준은 이렇게 피아노 연주는 연주대로 완벽하게, 노래는 노래대로 완벽하게 해나갔다.

‘작곡은 나의 즐거움’은 창작곡이지만, 중간중간 끊어가며 베토벤의 음악을 넣어 노래를 하면서 작곡을 하는 느낌을 준 것이 이 곡의 포인트였다.

하준은 그 부분을 자연스러운 연기로 넘나들며 한 치의 오차 없는 피아노 연주까지 선보였다.

노래의 후반부로 갈수록 피아노와 목소리는 어린 베토벤의 작곡에 대한 열정을 강렬하게 드러내듯 점점 커졌고, 마침내 하준은 노래를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그 누가 막아도~ 설사 내 귀가 먼다 해도~ 난 작곡을 할 거야~ 작곡은 나의~ 즐거움이니까!”

“브라보!”

“브라보!!”

“브라보!!!”

하준이 노래를 마치자마자, 심사위원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극찬의 ‘브라보’를 외치며 기립박수를 보냈다.

하준은 여러 오디션을 봐왔지만, 지금처럼 기립박수와 브라보로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에 당황했지만, 동시에 어떤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하준이 벅찬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90도로 고개 숙여 인사했다.

심사위원들은 하나의 작은 공연을 본 것처럼 꽤 오래 기립박수를 보냈고, 곧 다시 자리에 앉아 한 사람씩 극찬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와, 하준 군은 이미 완벽한 베토벤이네요!”

“정말 엄청난 보물이야, 보물.”

“전 정말 소름이 돋았어요. 송 감독님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사실 이번 오디션에서 피아노까지 직접 연주할 아이를 캐스팅하시겠다고 하셔서 너무 욕심이 많으시다고 생각했어요. 피아노 연주, 노래, 연기 이 3박자를 모두 해낼 수 있는 아이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이번 오디션은 기대도 안 했어요. 그런데 와, 하준 군이 이 어려운 걸 해내네요.”

무대감독이 격앙된 목소리로 양팔을 쓸어내리며 말하자, 송석원 총감독이 그를 바라보며 솔직히 털어놓았다.

“사실 나도 무리수가 아닐까 했어. 그치만, 뭐, 일단 해보고 피아노를 잘 치는 애가 영 없다 싶으면 그때 가서 변경하려고 했지. 하지만, 이렇게 하준 군이 나타나줬잖아? 으하하.”

“아하하!”

송 감독의 호탕한 웃음에 심사위원들은 다 함께 따라 웃었다.

오디션 내내 들었던 불안과 걱정을 날려버리는 웃음이었다.

“저도 기준을 낮춰야 하나 너무 고민했는데······ 하준 군은 내가 기다리던 바로 그 아이예요. 하준 군이 지원을 안 했으면 어쩔 뻔했나 싶네요. 호호.”

오늘 내내 깊은 고민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지었던 장서은 음악감독이 처음으로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극찬이 쏟아지자, 하준은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런데 그때, 안무감독이 갑자기 정신이 들었는지 작게 속삭였다.

“어엇······ 근데 우리 이러면 안 되는데······. 사실 춤도 안 봤고요.”

오디션 결과는 며칠 후에 개별적으로 연락이 가게 되어 있었고, 지원자에게 대놓고 극찬을 하는 것은 심사위원들끼리 서로 자제를 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아직 2차 오디션도 남아있는 상황이니까.

그런데 심사위원들은 너무 완벽한 하준의 퍼포먼스에 매료되어 자제력을 잃고 극찬을 해버린 것이었다.

“으음, 다들 자제 좀 하시고······ 하준 군, 원래 노래랑 연기를 잘하는 건 알고 있었는데, 피아노도 수준급이네요? 언제부터 배웠어요? 설마 이번 오디션 때문에 배운 거예요?”

송 감독이 헛기침을 하며 주변을 자제시키고는 하준에게 물었다.

“그건 아니고요, 사실 피아노 덕분에 이 오디션에 지원하게 됐어요. 피아노는 몇 달 전부터 흥미가 생겨서 연습하기 시작했는데요, 소속사 대표님이 제가 베토벤의 월광 1악장을 치는 걸 들으시더니 이 오디션을 보자고 제안하셨거든요. 피아노 연주가 필수인 오디션이 있다면서요.”

“오, 피아노 연주까지 보길 잘했네! 하하.”

송 감독은 자신의 판단이 맞지 않았냐는 듯 주변 심사위원들을 돌아보며 자랑스럽게 웃었다.

그러자 다른 심사위원들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하준 군, 춤도 잘 춰요?”

안무감독이 대뜸 물었다.

잘 췄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어간 질문이었다.

하준은 뭐라고 답하는 게 좋을지 잠시 고민했다.

최 대표님이 무조건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당당하게 잘 춘다고 하는 건 잘난 척하는 것 같아서 차마 말이 안 나왔다.

그래서 하준은 적당히 돌려 말했다.

“지정 안무 오디션은 처음이지만, 기본기를 중심으로 열심히 했기 때문에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안무감독은 나름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는지 싱긋 웃었다.

“그럼 이따 2차 오디션 기대할게요.”

“수고했어요, 하준 군.”

하준은 이렇게 무사히, 아니 끝내주게 1차 오디션을 치르고 오디션장을 나왔다.

하준이 나오자 대기실에는 아까 하준이 등장했을 때처럼 잠시 정적이 흘렀다.

동시에 하준의 표정에서 오디션 결과를 예측하려는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하준이 오디션 소감을 뭐라고 할지 다들 귀를 쫑긋 세웠다.

“수고했어, 우리 아들.”

“고생했다, 하준아.”

다른 부모와 매니저들은 오디션이 끝나고 아이가 나오면 잘했는지부터 물었지만, 최선희와 최 대표는 묻지 않았다.

괜한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하준이 최선을 다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준이 가타부타 오디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자, 다른 사람들은 곧 포기하고 2차 오디션을 준비했다.

얼마 후, 21명의 모든 지원자의 1차 오디션이 마무리되었고, 이제 2차 오디션을 위한 지정안무 연습을 위해 지원자들만 댄스 연습실로 자리를 옮겼다.

“엄마, 나 갔다 올게. 대표님, 잘하고 올게요.”

“응, 잘하고 와. 파이팅!”

“긴장하지 말고, 파이팅!”

“네, 파이팅!”

하준은 힘차게 파이팅을 외치고는 다른 지원자들과 함께 댄스 연습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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