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42화
“안녕하세요, 먼저 두 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기자들 중 하나가 대표로 감사함을 전했고, 바로 다른 기자가 첫 질문을 던졌다.
“이번 노은지 작가님의 <메모리즈>에 출연을 결정하게 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한 분씩 차례로 답해주세요. 강현기 씨부터요.”
“음, 일단은 노은지 작가님 작품을 꼭 해보고 싶었습니다. 워낙 장르물 쪽에서 유명하시고, 또 작품도 흥미롭게 잘 쓰시니까요. 그리고 <메모리즈>의 하태산이라는 캐릭터도 마음에 들었거든요.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해 한 단계, 한 단계 계획을 실행해 나가는 치밀함과 인내심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강현기는 대답을 한 뒤 이제 하준에게 대답하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하준을 바라보았다.
“저는 노은지 작가님께서 감사히도 기회를 주셔서 하게 됐는데요, 전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는데, 이번 어린 하태산의 캐릭터는 제가 못해본 역할이라서 해보고 싶었어요.”
“하준 군은 지금까지 어떤 역할들을 했죠?”
한 기자가 즉흥적으로 질문했다.
“영화 <죽지 않는 백화점>이랑 사극인 <월야>, 이렇게 두 작품 했어요. <죽지 않는 백화점>은 아직 개봉 안 했지만요.”
“이제 겨우 두 작품 했으면, 대부분은 경험해본 역할이 아니겠네요?”
“네, 맞아요. 그래서 작품을 많이 하고 싶어요. 다양한 인물이 되어서 다양한 감정을 경험해보고 싶거든요.”
“하준 군은 연기하는 게 즐거운가 봐요. 그쵸?”
“네, 새로운 인물이 되어 다양한 삶을 살아볼 수 있잖아요.”
하준의 말에 옆에서 아빠미소로 하준을 바라보고 있던 강현기가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저도요. 그게 바로 연기의 매력 아니겠습니까. 하준이의 뛰어난 연기력이 바로 이런 생각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내가 작품 속 인물이 된다’는 마인드에서 메소드 연기가 나오니까요.”
“감사합니다, 형.”
맞장구에 이어진 칭찬에 하준은 감사인사를 전했다.
“현기 씨가 하준 군의 연기가 무척 마음에 드셨나 봐요. 이건 나중에 하려고 했던 질문인데, 말이 나온 김에 먼저 여쭤볼게요. 처음에 하준 군이 현기 씨 아역으로 결정되었다는 소식 듣고 어떠셨나요?”
다른 기자가 질문의 순서를 바꿔 방금 강현기의 대답과 자연스럽게 이어질 질문을 했다.
강현기는 기다렸다는 듯이 신나게 하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아, 저도 <월야>를 봤기 때문에 하준 군이 연기를 잘한다는 건 알고 있었거든요. <월야> 보면서 참 귀엽다 싶었는데, 하태산 아역이 하준이라고 해서 전 좋았습니다. <월야>가 사극이라서 현대극 연기는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도 됐고요.”
“그래서 오늘 대본 리딩에서 하준 군의 연기를 본 소감은요?”
“기대보다 훨씬 대단했죠! 하준 군은 배우가 갖춰야 할 재능을 벌써 모두 갖춘 것 같아요. 뛰어난 암기력은 물론이고, 감정이입도 메소드급이에요. 거기다 작가의 의도, 분위기 파악 능력 모두 훌륭합니다. 아, 연기 스펙트럼도 벌써 넓은 것 같고요.”
하준은 강현기의 높은 평가에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기자들은 원래 타인의 연기에 대해서는 과묵한 편인 강현기가 이렇게 많은 하준의 장점을 나열하자, 놀라워하며 되물었다.
“와, 극찬이신데요?”
“네, 맞습니다. 제가 본 어떤 아역보다 하준이의 연기가 뛰어났거든요. 아,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하준은 아쉬운 점을 알려주면 고쳐야겠다고 생각하며 강현기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강현기는 슬쩍 하준의 눈치를 보더니 말을 이었다.
“같이 연기하는 장면이 없다는 거예요. 이게 너무 아쉽네요.”
“아, 강현기 씨의 아역 역할이니 두 분이 함께 연기 호흡을 맞추는 부분이 없어서 아쉽다는 말씀이시군요.”
“네, 다음에 꼭 부자나······ 형제? 하하, 이건 좀 너무 갔네요. 아무튼 같이 호흡을 맞춰보고 싶네요.”
강현기의 말에 하준이 끼어들어 말했다.
“저도 나중에 형이랑 같이 연기해보고 싶어요. 현기 형은 카리스마가 있어서 연기할 때 막 주변을 압도하는 느낌이 엄청 멋있거든요!”
“하하, 정말? 무섭진 않고?”
“저는 쪼, 조금 무섭긴 한데, 극 중에서 적을 만났을 때 그 점이 적도 무서울 테니까 멋있는 거죠.”
“오, 그래, 고맙다. 우리 하준이 말하는 거 너무 귀엽지 않아요? 으구, 귀여워.”
강현기는 또 하준의 볼을 톡 건드리며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원래 강현기는 인터뷰할 때 잘 웃지 않고 진지하게 자기 연기와 작품에 대한 말만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편하게 웃으면서 인터뷰를 하다니, 기자들은 그 모습이 생소하면서도 훨씬 인터뷰하기에 편안해서 좋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아무래도 하준 덕분인 듯했다.
하준을 보는 기자들 역시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하하, 귀엽습니다, 아주.”
“현기 씨가 하준 군의 매력에 푹 빠지진 것 같네요.”
기자들이 웃으며 말했고, 강현기는 한 마디 더 덧붙였다.
“시청자들도 빠지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럴 것 같습니다. 하하. 자, 그럼 다음 질문드릴게요. 두 분 다 노은지 작가님과는 처음 같이 드라마를 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같이 해보시니 어떠신가요?”
“음, 일단 말씀 안 드려도 작품의 퀄리티나 완성도가 높은 건 당연히 아시겠죠? 워낙 장르물 쪽에서 잘 쓰시기로 유명하시니까요. 그리고 캐스팅할 때는 작가님이 많이 의견을 내신다고 알고 있는데요, 캐스팅 후에는 전적으로 배우를 믿어주세요. 그래서 믿음에 부응하기 위해서 더 열심히 준비하고 연습하고 있습니다.”
“저도 노은지 작가님이 제 연기를 믿어주시는 것 같아요. 지적도 안 하시고 잘한다고 해주시거든요. 그래서 부담 없이 연기할 수 있어서 좋아요. 아, 그리고 사실 지문을 자세히 써주셔서 어떤 상황에, 인물이 어떤 감정인지 파악하기 쉬워서 연기하기도 쉽고요.”
강현기와 하준이 연달아 대답했는데, 기자들은 하준이 8살 아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말을 잘해서 깜짝 놀랐다.
“하준 군은 참 똑똑하군요. 공부 잘할 거 같아요.”
“말하는 모습이랑 목소리는 영락없는 8살 아이인데, 그 말의 내용은 또 어른스러워서 더 귀엽네요.”
“헤헤, 감사합니다아!”
하준이 앉은 채로 배꼽인사를 하자, 기자들은 활짝 웃었고, 잠시 후 다른 질문을 이어갔다.
“두 분 다 하태산 역할이신데, 각자 캐릭터 분석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합니다.”
“성인 하태산은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어릴 적 아픔을 마음에 간직한 채, 복수만을 목표로 치열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매사에 냉철하고 치밀한 면모가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완벽주의에 가깝다고 할 수 있죠. 또 그래서 예민하고, 의심이 많고, 타인에게 차갑습니다. 저는 날카롭고 피폐한 느낌의 캐릭터성을 살리기 위해서 5키로 정도 감량했고, 촬영 전까지 조금 더 뺄 생각입니다.”
강현기는 자신의 캐릭터에 대한 생각을 막힘없이 줄줄 말했고, 기자들은 역시 강현기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하준 역시 캐릭터에 맞는 이미지를 보이기 위해 다이어트까지 했다는 강현기가 연기에 진심을 다하는, 열정적인 배우라고 생각했다.
‘나도 현기 형처럼 저런 멋진 배우가 되어야지.’
존경의 눈빛으로 강현기를 바라보던 하준은 곧 정신을 차리고 어린 하태산 캐릭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어린 태산은 굉장히 다양한 성격을 표현해야 하는 캐릭터예요. 성격이 막 변화하거든요. 초반에는 밝은 척하는 캐릭터예요. 부모님의 이혼을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하고 부모가 원하는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이죠. 하지만 아빠의 죽음으로 불안함과 슬픔에 잠겨요. 그 후에는 자기 때문에 엄마가 힘들어하니 결국 엄마에게만은 괜찮은 듯 행동하고,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으로 아버지의 복수를 다짐하는 이중적인 면모를 보입니다.”
하준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어린 태산의 성격 변화를 똑 부러지게 설명했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언급했다.
“전 이 어린 태산의 감정 변화를 어떻게 하면 보는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표현해낼까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의 이중적인 성격을 넘나드는 걸 어색하지 않게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스스로를 어린 태산이라고 생각하고 감정을 이해하는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하준의 대답이 끝나자, 강현기는 물론 기자들까지 다들 입을 쩍 벌렸다.
“하준이 분석력 장난 아닌데? 허허, 나보다 더 잘했어. 이렇게 분석이 완벽하니까 연기를 잘했구나!”
“와, 정말 대단하네요. 말도 너무 잘하고, 캐릭터에 대한 분석도 훌륭해요!”
“어린 나이에 이렇게 디테일하게 분석하고 연구하다니······!”
“벌써 이렇게 분석하면 나중에 커서는 엄청나겠다. 하준 군, 앞으로가 더 기대되네요.”
하준은 쏟아지는 칭찬에 쑥스러워하며 겸손하게 답했다.
“감사합니다. 과찬이세요.”
강현기와 하준은 마지막으로 <메모리즈>의 재미 포인트를 집어주고 많은 기대 바란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기자들은 알찬 인터뷰 내용을 뽑아냈다면서 만족스럽게 돌아갔고, 인터뷰가 끝난 강현기는 하준에게 연락처를 물었다.
두 사람은 서로 연락처를 교환했고, 강현기는 하준에게 한 가지 부탁을 더 했다.
“아, 하준아, 셀카 같이 찍자! 이리 와봐.”
강현기는 연락처 교환에서 그치지 않고 하준과 얼굴을 맞댄 셀카까지 찍었다.
“아휴, 요 볼 통통한 거 봐. 바탕화면 바꿔야지!”
강현기는 휴대폰 바탕화면을 하준과의 셀카로 곧바로 바꾸더니 너무 귀엽다면서 좋아했다.
“하준아, 사진 고마워! 다음에 또 보자. 연락할게.”
하준의 연락처와 사진까지 얻은 강현기는 만족스럽게 대본 리딩장을 떠났다.
***
“하준아, 오늘도 안 자고 도전이야?”
화요일 밤 9시 50분, 소파에 눈을 부릅뜨고 앉은 하준을 본 최선희가 웃으며 물었다.
“응, 이번엔 안 자고 꼭 끝까지 볼 거야.”
<월야>를 끝까지 보겠다며 하준이 의지를 불태웠다.
그동안 너무 졸려서 <월야>를 끝까지 다 시청한 적이 없는 하준은, 오늘은 낮잠도 좀 잤기에 가능하겠다 싶어 자신 있게 대답했다.
최선희와 윤기철은 그런 하준이 귀여워 미소를 지으며 함께 TV 앞에 앉았다.
<월야>는 10시부터 시작이라서 TV에는 드라마 전에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익숙한 배경이 화면에 등장했다.
“어어? 하준아, 이거, 네 그거, 그거!!”
놀라움과 다급함에 ‘광고’라는 말이 생각이 나지 않은 최선희가 ‘그거’를 외치며 손을 퍼덕거렸다.
그리고 동시에 방송에서는 이강명의 내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세자 저하, 요즘 저하의 예체가 예전 같지 않으신 듯하여 보양식으로 타락죽을 준비했사옵니다.
“오, 진 우유! 하준이 광고!”
윤기철이 화면을 가리키며 외쳤고, 세 사람은 일단 광고를 보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
우유 광고에서 세자로 변신한 하준은 멋있으면서도 귀여웠다.
마지막에는 ‘세자도 반한 고소한 진 우유!’라는 성우의 내래이션과 함께 ‘참으로 진한 우유, 진(眞) 우유’ 라고 쓰여진 화선지가 화면을 가득 메우며 광고는 끝이 났다.
“와, 광고 진짜 잘 나왔다! 위트도 있고, 진 우유라는 이름하고도 잘 맞아. 마지막 저 글자는 하준이가 직접 쓴 거지?”
“응. 내가 쓴 거야.”
“역시, 명필이네! 하하.”
윤기철이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최선희 역시 구경했을 때보다 색감도 훨씬 멋있게 마치 영화처럼 나왔다면서 광고의 퀄리티가 좋다고 만족스러워했다.
하준은 첫 TV광고에 자신의 얼굴이 나오는 게 신기하고 재밌었다. 그런데 곧 걱정이 되었다.
앞으로의 진 우유 매출은 하준과 관계가 있었으니까.
“이제 내 광고 나왔으니까, 진 우유가 잘 팔려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