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32화
“아이고, 우리 하준이 왔구나!”
하준이 월드 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최원상 대표는 후다닥 대표실에서 뛰어나와 반갑게 하준을 맞았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최 대표님.”
“최 대표, 밥은 먹었어?”
하준을 필두로, 최선희와 윤기철이 최 대표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럼, 든든하게 먹었지. 윤 감독은? 다들 점심 드시고 오신 거죠?”
하준은 학교에서 급식을 먹고 하교했고, 윤기철 부부는 집에서 밥을 먹고 왔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커피랑 간식이나 먹으면서 얘기합시다. 아, 하준이는 아이스 초코?”
“네, 좋아요.”
최 대표는 사무실 말단 직원에게 사무실 건물 1층의 카페에서 커피와 아이스 초코 등을 사다 달라고 부탁하고는 하준 가족을 모시고 대표실로 들어갔다.
“하준아, 먼저 축하해. <월야> 시청률 엄청 잘 나왔더라.”
“감사합니다.”
“아역 파트에서부터 이렇게 주목받는 게 아주 드문 일이거든. 엄청 잘한 거야. 하준이가 아직은 유명한 아역 배우도 아닌데 말이야. 아, 아닌가? 이번 작품으로 바로 유명한 아역 배우가 된 것도 같고······? 하하.”
최 대표가 하준의 기특하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었고, 윤기철 부부는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아, 그리고 메이킹 영상도 기가 막혔어. 3개 올라온 영상이 어쩜 그렇게 다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지, <월야>팀에서도 신경을 많이 썼나 봐. 멋있고, 능력 있고, 귀엽고. 종합선물세트 같았다니까. 하하.”
최 대표는 카페에 심부름을 보낸 직원이 돌아올 때까지 하준의 칭찬을 끊임없이 했다.
그리고 직원이 아메리카노와 아이스 초코, 쿠키 등을 가져다주자, 그제야 본론을 시작했다.
“오늘 제가 상의드릴 게 여러 가지인데요, 어제 <월야>가 방송되고 이슈가 크게 돼서 좋은 제안들이 엄청 많이 들어왔어요. 먼저, 인터뷰 제안이 좀 왔는데, 30분 내외의 짧은 인터뷰라서 한두 개 정도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하준이가 싫다면 안 해도 되지만요.”
최 대표가 과거 <죽지 않는 백화점> 당시에는 인터뷰 대신 보도자료를 돌리자고 했으나, 지금은 인터뷰를 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죽지 않는 백화점>의 경우 아직 개봉도 하지 않은 상태였고, 그 당시 하준이 대중에게 뭔가를 보여준 바가 없기 때문에 과거 이야기나 개인적인 질문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때 하준은 윤기철 부부에게 입양된 상황도 아니어서 조심스러운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법적으로도 하준은 윤기철 부부의 아들이라 개인적인 질문이 나와도 곤란할 일은 없었다.
그리고 음악프로그램에서의 뛰어난 노래 실력, 드라마에서의 출중한 연기력과 서예 실력 등 하준의 능력이 보여진 게 많아서 질문은 대부분 그쪽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설명을 들은 하준은 최 대표를 믿고 인터뷰를 하겠다고 결정했다.
“할게요.”
“그래, 그럼 인터뷰 스케줄은 제일 먼저 잡도록 할게. 특별히 시간을 많이 뺏기는 것도 아니니까. 다음은, 광고. 광고가 한 4개 들어왔는데요, 의류, 가구, 초코과자, 우유. 이렇게 들어왔습니다. 아마 초코과자랑 우유는 그 메이킹 3번째 영상 덕분인 것 같아요.”
“와, 벌써 그렇게 많이 들어왔어요?”
최선희와 하준은 서로를 쳐다보며 놀란 눈빛을 주고받았다.
“네, 하하. 하준이가 보여준 끼가 엄청나잖아요.”
“그건 그렇지. 근데, 최 대표, 의류는 아직 네이블리 계약 중이라 좀 그렇지 않아?”
“응, 상도덕상 여러 의류 광고를 겹치게 하는 건 좀 그래. 그래서 이건 거절하려고 했지. 근데 마침 대신 네이블리에서 좀 전에 연락이 왔지 뭐야.”
“네이블리에서? 왜? 무슨 일로?”
“네이블리가 오픈한 지 한 달 좀 넘었는데, 매출이 엄청 잘 나왔대. 특히 의외로 남자 애들 옷이 잘 팔려서 하준이 덕인 것 같다고 계약 연장을 제안하더라고.”
“와, 정말? 잘됐네!”
윤기철이 만족스러워했고, 하준도 네이블리의 매출이 잘 나왔다는 말에 기뻐했다.
“정말 다행이에요. 저는 돈 받고 모델 해줬는데, 장사가 잘 안 되면 미안해서 어쩌나 걱정했거든요. 휴우.”
“하하, 우리 하준이 그게 걱정이었어? 착해라.”
최 대표가 하준이 귀엽다는 듯 웃었다.
“그럼 네이블리 계약 연장할래? 이번에 6개월 연장할 때 광고모델료는 저번의 2배 주겠대.”
“2배요?”
“2배면, 이천만 원이요?”
하준은 물론이고 윤기철 부부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단 몇 달 만에 하준의 몸값이 2배가 되다니!
“네, 이천만 원 맞습니다. 하하. 다들 뭘 그렇게 놀라십니까? 이 바닥에서는 한번 뜨면 원래 몸값이 쭉쭉 오르는 거 아시잖아요?”
“그거야, 알긴 알지만, 상승세가 너무 빨라서······.”
“앞으로 더 빨리 더 높이 올라갈 테니까, 마음의 준비들 단단히 하십시오. 하하.”
최 대표는 지금 기분이 너무 좋아서 계속 웃음이 나왔다.
사실 최 대표도 처음에 이 황금빛 싹을 월드 엔터에 심을 때만 해도 이 정도로 급성장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최소 1년은 물 주고, 거름 주며 투자해서 잘 키워볼 생각이었는데, 반년도 안 된 상황에 벌써 꽤 실한 열매들을 맺고 있었다.
심지어 최 대표는 딱히 물을 주지도, 거름을 주지도 않았다. 그저 관리만 조금 해줬을 뿐인데 그냥 자기 스스로 잘 자라난 것이다.
그러니 최 대표는 당연히 행복할 수밖에.
“그럼 네이블리 제안은 받는 걸로 할까?”
최 대표의 물음에 하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모델료도 그렇게 더 주신다고 제안해 주신 것도 감사하고, 거기가 처음으로 저한테 광고 들어온 데라서 좀 더 하고 싶어요. 친구들도 저 때문에 네이블리에서 옷 샀다고 그랬거든요.”
“우리 하준이는 보면 참 의리가 있어. 아주 좋아. 그럼 네이블리 광고는 연장하기로 하고, 아, 근데 이번에 연장 계약은 네이블리 대표가 직접 하고 싶댔어. 구경도 시켜줄 겸 자기네 본사로 와줬으면 좋겠다고 하던데, 괜찮지, 하준아?”
“네, 저도 이번에 연장하면 1년이나 하게 되는 건데, 네이블리에 대해 좀 더 알고 있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오케이. 그럼 이 건은 이렇게 하기로 하고······.”
최 대표는 나머지 광고 들어온 것들은 하준에게 생각해보고 하고 싶은 걸 고르라고 했다.
“다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고. 앞으로도 광고 많이 들어올 테니까. 자, 그럼 마지막. 이게 정말 제일 좋은 건데 말이야.”
최 대표는 얼마나 좋은 이야기인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벌써 입꼬리를 실룩거리고 있었다.
“뭔데, 그래?”
윤기철도 궁금해서 귀를 쫑긋 세웠다.
“미니시리즈 주인공 아역 역할이 들어왔어! 심지어 오디션 없는 그냥 캐스팅 제안이야. 하준이가 연기를 잘하니까 믿고 맡기겠다는 의미지!”
“와아!”
“어머!!”
“으하하.”
하준은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손뼉을 쳤고, 최선희는 입을 다물지 못했으며, 윤기철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또 중요한 게 있는데, 이게 노은지 작가 작품이라는 거야! 하준이는 근데 노은지 작가님 아나?”
하준은 사실 드라마나 영화 작가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그래서 고개를 저었는데, 최선희는 노은지 작가를 잘 아는지 화들짝 놀라며 최 대표에게 물었다.
“노은지 작가라면······ 장르물로 유명한 분이잖아요? 맞죠?”
노은지 작가는 형사 수사물 <텔미>로 큰 성공을 거둔 후, 여러 개의 장르물을 잇달아 성공시켜 장르물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작가였다.
“네, 맞아요. 노 작가님은 캐스팅에도 깊게 관여하시는데 하준이를 아역으로 캐스팅하자고 먼저 말씀하셨대요.”
“와, 너무 감사하네요. 근데······ 하준이가 출연할 작품도 장르물이겠죠?”
“아마도 그럴 거예요. 조만간 대본 보내주면 대본 확인해 보고 결정해서 답변 준다고 해뒀습니다. 근데, 뭐, 대본이 마음에 안 들면 안 해도 돼요. 하준이는 이거 말고 하고 싶은 드라마 오디션 봐도 바로 캐스팅될 테니까요.”
최 대표는 하준의 연기 실력을 잘 알기에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네, 근데 그런 이름 있는 작가가 하준이를 직접 캐스팅하고 싶다고 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격스럽네요.”
최선희는 하준을 꼬옥 끌어안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 우리 하준이가 그만큼 연기력을 인정받았다는 얘기죠. 그리고······.”
최 대표가 말을 이으려는 그때, 하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어? 오 감독님이네?”
발신자가 <월야>의 오 PD라는 하준의 말에, 최 대표가 잠시 말을 멈추고 얼른 전화를 받으라고 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감독님.”
-하준아! 아이, 이쁜 것. 시청률 나온 거 봤지?
“네, 헤헤. 잘 나와서 너무 다행이에요.”
-다 우리 하준이 덕분이지. 처음 시작은 아역 역할이 정말 중요하거든. 스타트를 너무 잘 끊어줬어. 내가 벚꽃 휘날릴 때 딱 감이 왔다고 했잖니? 아하하.
“감사합니다.”
-하준아, 다음 주에 시간 있을 때 촬영 구경 올래? 다들 너 보고 싶어 해. 와서 깜짝 메이킹도 좀 찍어주면 좋고. 하준이 메이킹 영상 반응이 엄청 좋잖아.
감독님이 말을 마치자, 수화기 너머에서 여러 사람들이 하준이에게 보고 싶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네, 다음 주에 한번 놀러 갈게요.”
하준은 자신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놀러 가겠다고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준이 전화를 끊자, 최 대표가 다시 말을 이었다.
“자, 그리고 또······.”
하준 가족은 이날 하준에게 들어온 각종 제안들을 검토하고 결정하느라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
얼마 후, 하준은 심사숙고 끝에 고른 우유 광고 촬영을 위해 최선희와 스튜디오를 찾았다.
“안녕하세요!”
하준이 스튜디오에 들어서며 밝게 배꼽인사를 하자, 스태프들과 ‘진(眞)우유’의 광고 담당인 백 실장이 기다렸다는 듯 우르르 하준에게 몰려왔다.
그들은 하준을 만나는 다른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하준을 귀여워하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한바탕 인사가 끝난 후, 스태프들은 다시 광고 촬영 준비를 하러 흩어졌고, ‘진(眞)우유’의 백 실장은 하준의 손을 잡으며 하준이 광고 섭외 제안을 받아준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함을 표했다.
“하준 군, 다른 광고 러브콜도 많았다고 기사에서 봤는데, 우리 진 우유 광고를 선택해줘서 다시 한번 고마워요. 내가 이번 광고를 직접 추진했는데, 하준 군이 해 줘야 딱 느낌이 사는 컨셉이어서 거절당할까 봐 무척 걱정했었거든요.”
“저도 광고 제안 주셔서 감사해요. 마침 저도 이 우유 먹기도 하고 미리 알려주신 컨셉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어요.”
하준이 우유 광고를 택한 것은 마침 제안 온 곳이 하준이 먹는 우유 브랜드였기에 거짓 없이 광고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또한 백 실장이 미리 하준을 광고 모델로 놓고 짠 컨셉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무척 간곡하게 부탁을 해서 ‘진 우유’ 쪽에 마음이 더 기울었다.
사실 가구 같은 경우 하준이 뭐가 좋은지도 모르는데 광고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고, 초코 과자는 최선희가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최선희는 하준의 건강을 생각해서 되도록 시중 과자를 사 먹이지 않고 직접 쿠키 같은 것을 구워주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럼 오늘 광고 잘 부탁해요. 아, 콘티 설명은 곧 내시 역 해주실 단역 배우분 오시면 같이 할게요. 그동안 여기 세트 구경하고 있을래요?”
사실 하준은 어쩌다 보니 약속 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이곳에 도착했다.
그래서 아직 같이 촬영할 배우분이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네. 저 이런 거 구경하는 거 좋아해요.”
하준은 오늘 촬영을 진행할 궁궐의 세자 처소와 비슷하게 꾸며진 세트를 돌아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