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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만 걷는 천재스타-28화 (28/150)

28화

28화

<월야> 아역 촬영 분량이 모두 끝난 하준은 여유가 생겼다.

하준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친구들과 놀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피아노 연습을 했고, 덕분에 최선희도 여유가 생겨 시나리오 집필을 하는 중이었다.

타닥타닥.

최선희가 작은 방에서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리고 있는데, 갑자기 최선희의 휴대폰이 신나게 울리기 시작했다.

‘시간 다 됐네!’

최선희는 방금 작업 중이던 파일을 저장한 뒤 부엌으로 향했다.

아일랜드 식탁 위에는 랩이 덮인 커다란 접시가 놓여 있었다.

‘다 부풀었나?’

최선희는 랩을 살짝 들어 접시 안에 말랑하게 부풀어 있는 6개의 동그란 반죽을 확인했다.

한편 하준은 방에서 피아노 연습을 하다가 잠시 쉬고 있었는데, 밖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하준은 엄마가 뭘 하나 궁금해서 거실로 나왔다.

“엄마, 뭐해?”

“우리 하준이 간식 만들어주려고 하지.”

“오늘은 무슨 간식인데?”

최선희는 한창 자랄 때인 하준에게 다양한 간식을 직접 만들어주었다. 과일, 샌드위치, 고구마 맛탕, 떡볶이 등등.

오늘 간식 메뉴는 홈메이드 피자였다.

“불고기 피자. 어때? 마음에 들어?”

“응! 진짜 맛있겠다! 근데 피자를 집에서 만들 수 있어?”

“그럼. 여기 엄마가 피자 도우, 그러니까, 피자 빵이 될 부분 반죽을 해놨어. 봐봐.”

최선희는 방금 확인했던 말랑말랑한 반죽들을 보여주었다.

“우와, 호빵 같네.”

“아니, 우리 하준이 볼 같은데? 호호.”

최선희가 하준의 말랑하고 통통한 볼을 살짝 찌르며 웃었다.

“헤헤. 그런가? 엄마, 나도 같이 해보면 안 돼?”

“당연히 되지, 왜 안 되겠어? 손 먼저 씻고 와서 같이 만들자.”

아이들에게는 다양한 경험이 중요한데, 특히 하준은 배우니까, 나중에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모르니 다양한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하준이 하기 싫다는 걸 억지로 경험하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하준은 다행히 호기심 많은 그 나이 때 아이처럼 항상 뭐든 해보고 싶어 했다.

“자, 준비됐지?”

“응!”

“먼저 요 부푼 반죽을 눌러봐. 어떤 느낌인지.”

하준은 최선희가 시키는대로 호빵 같은 반죽을 검지로 은근히 눌러봤다.

그러자 반죽은 쑥 들어갔다가, 하준이 손을 놓자, 언제 들어갔었냐는 듯 다시 원래 모양으로 되돌아왔다.

“와! 부드럽고, 말랑말랑해. 느낌 엄청 좋다!”

하준은 피자 도우 반죽의 느낌을 무척 좋아하며 자꾸 눌러 보았다.

최선희는 하준이 실컷 피자 도우 반죽을 눌러보게 해준 다음, 칼국수를 밀 때 사용하던 큰 나무도마를 가져와서 그 위에 밀가루를 뿌렸다.

“자, 이제 도우를 밀어보자. 이렇게 밀가루를 뿌려야 도우가 나무도마에 안 붙어.”

“아하.”

최선희는 밀가루를 뿌린 나무도마 위에 도우 반죽을 놓고 밀대로 쭉 밀어서 약 30cm 지름의 동글납작한 도우를 만드는 시범을 보였다.

“자, 하준아, 이렇게 밀대로 쭉 미는 거야. 자꾸 다시 쪼그라들겠지만, 계속 밀면 결국 커질 거야. 이제 하준이가 해볼래?”

“응!”

최선희는 아일랜드 식탁이 높은 하준을 위해 넓은 발판을 가져와 하준을 그 위에 올려주었다.

뭐든 한번 알려주면 잘 따라하는 하준은 이번에도 역시 최선희가 보여준 대로 도우를 잘 펴냈다.

“이 정도면 돼, 엄마?”

“오, 딱 좋아! 아주 잘했어.”

“근데, 엄마 이거 하트 모양 하면 안 돼?”

“하트 모양? 해도 되지. 그럼 여기 가운데 눌러서 만들까?”

“아니, 그럼 쭈글쭈글해지니까, 칼로 잘라서 할래.”

최선희는 혹시 몰라서 사둔 하준을 위한 어린이용 칼을 꺼내 주었다.

“하준이가 직접 해볼래?”

“응.”

하준은 칼을 잡더니 단 3번의 칼질 만에 동그란 도우를 하트 모양으로 변신시켰다.

하준의 하트 도우는 30cm 도우의 크기를 최대한 살려 그 안에서 만들 수 있는 최대 크기였고, 균형도 딱 맞는 완벽한 하트 모양이었다.

최선희가 놀라서 손뼉을 치며 물었다.

“어머, 하준아, 어떻게 밑그림도 없이 한 번에 이렇게 이쁜 하트를 만들었어? 와······.”

그러자 하준은 별로 어려운 게 아니란 듯 대꾸했다.

“그냥 동그란 도우에서 하트가 될 부분만 남기고 잘라내면 되는데.”

“그, 그게 진짜 어려운 거야······.”

최선희는 하준의 대답에 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떠올랐다.

‘우리 하준이는 조각 시켜도 잘하겠다.’

지금 이 도우를 하트 모양으로 잘라낸 건 입체인 조각을 하는 것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었지만, 부모들은 자기 자식의 능력을 항상 훨씬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잠시 최선희는 조각가가 된 하준을 떠올리며 흐뭇한 상상을 했다.

그러다 하준이 이렇게 잘하는 게 많으니 배우가 정말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는 다양한 능력이 필요한 직업이었으니까.

도우를 완성한 하준은 그 위에 토마토 소스를 바르고 원하는 재료를 토핑하기 시작했다.

“엄마, 먹고 싶은 재료 다 넣어도 돼?”

“그럼! 하준이 마음대로 다 넣어.”

“아싸!”

하준은 햄도 넣고, 불고기도 넣고, 옥수수 콘, 파인애플, 양파, 피망, 양송이 버섯, 올리브까지 넣었다.

최선희는 하준의 피자 토핑을 보고 의아해졌다.

준비된 재료를 전부 다 넣었기 때문이다.

“하준아, 재료 그냥 전부 다 넣었네?”

“응, 다 먹고 싶은 재료라서 다 넣었어.”

“양파 같은 채소도 다 먹고 싶었어?”

“응, 골고루 먹어야 맛있어. 고기만 넣으면 원래 맛없는 거야.”

하준의 어린이답지 않은 대답에 최선희는 웃음을 터뜨렸다.

“와, 그 진리를 8살에 깨우쳤단 말이야? 호호. 대단하네, 우리 아들.”

사실 하준은 어릴 때부터 채소나 고기 모두 잘 먹었다.

보육원에서는 혼나니까 다 먹었고, 전 양부모 밑에서는 사랑받기 위해 뭐든 주는 대로 잘 먹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릴 때 그렇게 다 먹다 보니 고기와 채소를 함께 먹는 게 맛있다고 느꼈다.

“자, 그럼 이제 치즈 뿌려서 오븐에 넣고 구워 볼까?”

최선희와 하준은 둘이 만든 각각의 피자를 하나씩 차례로 구워냈다.

“우와, 진짜 피자다, 피자! 사 먹는 피자랑 똑같아! 냄새도 똑같고, 모양은, 엄마 껀 똑같아! 난 다르지만.”

하준은 집에서 직접 피자를 만들었다는 것에 감격한 듯 팔을 흔들며 신나 했다.

그러고는 곧 최선희에게 자신의 하트 피자를 보여주며 말했다.

“엄마, 이게 내 마음이야.”

“어머······ 우리 하준이가 엄마 사랑한다고?”

“응, 사랑해.”

최선희는 하준에게 처음 들어보는 사랑 고백에 눈물을 글썽였다.

감격한 최선희는 하준을 꼭 안으며 말했다.

“엄마도 하준이 너무너무 사랑해.”

“헤헤.”

하준은 사랑한다는 말이 쑥스러운지 어색하게 웃으며 최선희에게 안겨 있었다.

곧 최선희는 행복의 눈물을 슥 닦고 웃으며 하준에게 제안했다.

“자, 그럼 하준아, 이제 맛은 똑같은지 먹어보자.”

“응응!”

하준은 최선희를 따라 자신의 피자를 8등분으로 잘랐고, 두 사람은 동시에 맛을 보았다.

하준은 피자를 호호 불어 입에 한입 베어 물었는데, 한입 먹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감탄사를 내뱉었다.

“으음! 우와!”

“어때? 사 먹는 피자랑 맛 똑같아?”

“아니! 훨훨훨씬 맛있어! 너무너무너무 맛있어!”

하준은 양팔을 넓게 펼치며 피자가 얼마만큼 맛있는지 표현했다.

“정말? 다행이네. 고마워, 잘 먹어줘서.”

최선희는 잘 먹어주는 하준이 고맙고, 또 이렇게 함께 피자를 만든 것이 뿌듯해서 활짝 웃었다.

“진짜진짜 맛있으니까 잘 먹는 거지. 나 이거 다 먹을래!”

“이거 한판 다 먹으면 배 터져.”

“음, 그럼 최대한 먹고 남으면 뒀다가 또 먹어야지.”

하준은 신나게 피자를 흡입했다.

최선희도 하준의 옆에 앉아서 커피와 함께 피자를 먹었는데, 그러다 문득 음악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선희는 집에 설치한 AI 어시스턴트를 불렀다.

“용구야!”

‘띵’하는 인식음이 들리자, 최선희가 이어 또박또박 말했다.

“한범우, 하준의 ‘꽃바람’ 틀어줘.”

최선희의 말을 알아들은 AI 어시스턴트는 [한범우, 하준의 꽃바람을 재생할게요.]라고 답했고, 곧 스피커에서 꽃바람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바람에 실려 날아온 꽃잎은~

-너의 향기를 품었네~

“그렇지, 봄에는 이 노래를 들어줘야지. 우리 아들 목소리 너무 좋다.”

최선희가 행복한 미소로 노래를 감상하며 커피를 음미했다.

“어제부터 하루종일 이 노래랑 ‘단 하루만’만 들었는데, 또 들어?”

하준은 말로는 지겹지도 않냐는 듯 말했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사실 ‘꽃바람’과 ‘단 하루만’은 어제 음원이 발매되었고, 최선희는 발매되자마자 계속 이 노래들만 반복해 듣는 중이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좋으니까 그렇지. 아, 하준아, 나중에 엄마 시나리오로 드라마 나오면 하준이가 OST 불러주기다?”

“엄마가 원하면 당연히 해 줘야지. 그것도 엄청 엄청 잘해줄 거야.”

“아이, 좋아라.”

최선희가 즐거워하며 노래 박자에 맞춰 고개를 흔들었다.

‘꽃바람’ 노래가 끝나자, 최선희는 AI 용구에게 물었다.

“용구야, 한범우, 하준의 ‘꽃바람’, 체리차트 몇 위니?”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어요.]

AI는 방금 최선희의 말은 잘 못 알아들었다.

그래서 최선희는 직접 휴대폰으로 음원사이트 체리에 접속해 순위를 확인했다.

“어머머!”

차트를 확인한 최선희는 눈이 왕방울만 해져서는 입을 틀어막았다.

“왜, 뭔데 그래?”

하준이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최선희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지금 너랑 한범우 삼촌이 같이 부른 ‘단 하루만’이 차트 2위야, 2위!”

“와, 정말? 어디 봐봐.”

“잠깐만, 근데 차트 1위는 뭔지 알아?”

최선희는 하준에게 휴대폰을 보여주지 않고는 이렇게 물었다.

“내가 어떻게 알아? 1위 노래가 뭔데?”

“한번 맞춰 봐. 네가 아는 노래고, 봄에 정말 잘 어울리는 노래!”

“음······ 잘 모르겠는데······. 설마, ‘꽃바람’은 아니지?”

하준이 농담처럼 물었다.

그런데, 최선희가 만세를 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정답!! 하준아, ‘꽃바람’이 1위야!!!”

“진짜? 정말이야? 헉.”

하준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러자, 최선희가 휴대폰을 하준의 눈앞에 보여주며 확인시켜주었다.

“자, 봐. 1위 꽃바람, 2위 단 하루만. 우리 하준이 너무 축하해. 와, 8살에 음원차트 1위, 2위를 휩쓸다니, 우리 하준이의 이 넘치는 재능을 어떡하지? 호호호.”

최선희는 너무 기뻐서 새어 나오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하준은 잠시 이게 꿈인가 생신가 어안이 벙벙해 있다가 여러 번 차트를 확인하고는 그제야 함박웃음을 지었다.

“우와아······!”

하준이 입을 쩍 벌리고 기뻐하는 사이, 최선희는 이 두 곡이 담긴 앨범에 들어가 사람들의 댓글을 살펴보았다.

[오, <유이열의 음악노트>에서 부른 곡 음원으로 나왔네요!! 너무 좋아요~]

[한범우가 혼자 부른 꽃바람 역주행하더니 듀엣 나오니까 바로 1위 꽂히네~ 대박! 노래 대박 좋음]

[하준 목소리가 참 예뻐요. 봄이랑도, 노래랑도, 한범우랑도 잘 어울림!!]

[한범우 솔로로 부른 곡도 좋지만, 전 이게 더 좋네요. 하준이랑 같이 부르는 게 꽃바람은 뭔가 더 싱그러운 느낌 들고, 단 하루만은 아름답게 구슬픈? 그런 느낌이라 더 좋아요~~]

[꽃바람은 앞으로 봄마다 찾아 들을 듯ㅎㅎ]

[하준이 목소리 보물이다~~]

[애기가 연기를 잘해서 그런가 표현력이 장난 아님 노래 넘 잘 불러ㅠㅠ]

[꽃바람은 간질간질하고, 단 하루만은 가슴이 아리다요.. 무튼 둘다 노래 개좋음 bb]

[듀엣 버전 한번도 안 들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들어본 사람은 없다고 한다]

[노래 넘 잘해서 하준이가 누군가 찾아봤더니 와 애기가 벌써 얼굴도 완성형이네······ 이렇게 나는 이모팬이 되고ㅋㅋ]

댓글을 읽던 최선희는 입꼬리가 슬금슬금 위로 치솟더니 결국 입이 귀에 걸렸다.

“하준아, 다들 노래 너무 좋대! 그러니까 1위를 했겠지만. 자, 엄마가 댓글 몇 개 읽어줄게, 들어봐.”

최선희는 신이 나서 하준에게 댓글들을 읽어주었다.

그러자 하준은 무척 감동받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무 감사하다······. 아! 범우 삼촌한테 전화해야겠어. 기쁜 소식 알려줘야지.”

하준이 휴대폰을 가지러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마침 하준의 휴대폰 벨소리가 들려왔다.

“어? 전화 온다! 누구지?”

그런데 동시에 최선희의 휴대폰까지 신나게 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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