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26화
“컷! 둘 다 너무 좋았어! 크, 그림 너무 이쁘게 나왔다. 다들 봤지? 마지막에 벚꽃 절묘하게 흩날리는 거. 우리 촬영을 축복하는 거야. 우리 드라마 대박 나겠네! 하하하.”
오 PD는 첫 촬영부터 영상이 잘 나와서 무척 기분이 좋았다. 연기력이 출중한 아역도 잘 캐스팅됐고, 첫 촬영도 순조로우니 왠지 이번 작품은 대박이 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럼 수라간으로 이동하겠습니다!”
다음 장면은 수라간에서 촬영을 했기에 모든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수라간으로 이동했다.
하준도 최선희와 함께 수라간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세아가 하준을 쫓아왔다.
“하준아.”
“응?”
“있잖아, 나 대사 좀 맞춰 줄래?”
수라간에 촬영 준비를 하는 동안 대기 시간이 남기에 대사 연습을 도와달라는 말이었다.
“그래.”
하준은 고개를 끄덕였고, 세아는 활짝 웃으며 좋아했다.
“고마워. 아, 그리고 너 노래도 잘하더라.”
“아, 너도 음악노트 봤어?”
“응. 너튜브 영상으로 봤는데 너무 좋아서 여러 번 봤어. 아, 노래가 좋았다고. 아니, 네가 노래를 잘해서 좋았다고. 아니, 네가 좋았다는 게 아니고······.”
세아는 혼자 얼굴이 빨개져서는 말을 더듬었다.
하준은 세아가 당황한 것 같자, 씽긋 웃으며 대답했다.
“어쨌든 고마워.”
“아, 음원 곧 나온다고 기사 난 거 봤는데, 언제 나오는 거야?”
“4월 15일에 나온댔어.”
“아하, 나오면 꼭 들을게.”
“고마워.”
“아, 근데 넌 어디 살아?”
세아는 하준의 옆에서 함께 걸으며 계속해서 질문을 했다.
세아의 엄마와 최선희는 그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며 뒤에서 천천히 아이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세아가 하준이한테 관심이 엄청 많네요. 호호. 원래 저렇게 말이 많은 애가 아닌데.”
세아 엄마가 최선희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그렇네요. 호호. 세아가 참 예뻐요.”
“감사합니다. 하준이는 애가 참 바르게 잘 자란 것 같아요. 얼굴도 멋있고, 하는 행동도 멋있고요. 세아가 하준이한테 반할 만도 해요.”
“감사합니다. 둘이 꽁냥대는 게 귀엽고 좋네요.”
두 엄마는 하준과 세아를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수라간 세트에 도착한 하준은 세아의 대사 연습을 도와주기 위해 마루 같은 곳에 함께 걸터앉았다.
“하준아, 너 대본 아예 안 가져왔어?”
“응, 대사 다 외웠거든.”
“아······ 그럼 내 대본 줄게. 최상궁마마님 대사 좀 해주라.”
세아는 자신의 대본을 주려고 꺼냈다가 대본이 너무 너덜너덜하고 지저분하자 살짝 멈칫했다.
열심히 보느라 그렇게 된 것이지만 왠지 하준에게 주기가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때.
“안 줘도 돼. 나 그 대사 다 알아.”
“뭐? 네 대사 아닌데 다 안다고? 정말?”
하준의 말에 세아가 경악해 되물었다.
“응, 난 그냥 대본을 통째로 외우는 편이거든.”
“우와······! 정말이야? 그럼 한번 해볼래? 최상궁마마님이 윤서한테 호통치는 장면부터 말이야.”
세아는 하준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려고 자신의 대본을 펼쳤다.
하준은 잠시 생각하더니 곧 대사를 시작했다.
“주상 전하께 올릴 음식에 손을 댄 것이 윤서 너였느냐? 어디 감히 생각시인 네가 주상 전하의 수라에 먼저 손을 대? 네가 정령 죽고 싶은 게냐?”
하준이 목청 높여 최상궁의 대사를 읊었고, 대본을 보며 하준의 대사가 맞는지 확인하던 세아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 진짜네! 너 되게 머리 좋은가보다. 난 내 거 외우기도 바쁜데!”
세아가 감탄하며 하준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런데 하준의 대사를 들은 것은 세아 뿐만이 아니었다.
근처에서 대기 중이던 최상궁 역할을 맡은 배우 나정은도 자기 대사가 들리자 깜짝 놀라 하준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곧 하준에게 달려와 물었다.
“하준아, 방금 네가 내 대사 한 거니?”
“네, 하준이가 한 거 맞아요. 하준이는 최상궁마마님 대사도 다 외웠대요. 엄청 대단하죠?”
나정은의 물음에 하준 대신 세아가 대답했다.
“어머, 진짜? 하준아, 내 대사 한 번만 더 해볼래? 직접 보고 싶어서 그래.”
나정은은 믿기지 않는지 하준에게 자기 대사를 시켜보았고, 하준은 그냥 대사만 줄줄 읊는 게 아니라 대사에 맞는 연기까지 보여주었다.
어린 남자 아이가 성인 여자의 연기를 하니, 그걸 지켜보는 나정은은 하준이 너무 귀여워 어쩔 줄 몰랐다.
“정말이네! 아휴, 귀여워! 하준이는 연기만 잘하는 게 아니라 머리도 엄청 좋구나. 게다가 얼굴도 잘생기고, 노래도 잘하고!”
나정은은 양손으로 하준의 볼을 살살 비비며 귀여워했다.
“근데, 하준이가 나 대신 세아 대사 맞춰 주는 거야?”
“네. 뒤에 세자 대사도 있으니까요.”
“아, 그럼 여긴 내가 맞춰 줄까, 세아야?”
나정은이 세아에게 물었다.
세아는 사실 하준과 대사를 맞춰 보고 싶었지만, 나정은이 직접 대사를 맞춰 주겠다는 데 거절할 수가 없었다.
“네······ 감사합니다.”
세아는 결국 앞부분은 나정은과 대사를 맞춰 보았고, 뒷부분에 세자와 윤서의 대화 부분만 하준과 대사를 맞춰 보게 되었다.
세아는 하준과 대사 연습을 오래 못한 것이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직접 나정은과 대사를 맞춰 본 덕분이었는지, 실제 촬영에서 NG가 거의 없이 금방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당연히 하준은 연기하는 족족 오 PD와 스태프들의 극찬을 받으며 촬영을 마쳤다.
어린 세자 이준과 수라간 생각시 임윤서의 야외세트 촬영은 3일 내내 이루어졌고, 하준은 문경새재에 내려간 지 3일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고, 우리 아들! 아빠가 보고 싶어서 눈이 무르는 줄 알았어!”
집에 돌아오자마자, 윤기철은 하준을 번쩍 들어 안고 볼을 비비며 애정표현을 했다.
“헤헤, 나도 아빠 엄청 보고 싶었어!”
“오구, 그랬어? 아빠 얼만큼 보고 싶었는데?”
“하늘만큼 땅만큼 우주만큼?”
하준이 양팔을 활짝 펴면서 대답하자, 윤기철은 너무 좋아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하하. 우리 아들, 촬영은 잘했어?”
“응, 엄청 재밌었어. 세자 옷도 멋있었고, 거기 풍경도 되게 좋았어. 봄이라 꽃도 많이 피어서 예쁘고. 엄마가 사진 보내 줬지?”
“응, 우리 아들 옷빨이 진짜 좋더라. 세자 옷이 얼마나 찰떡이던지 우리 아들은 전생에 세자였던 게 아니었을까 싶었어.”
윤기철은 하준을 안고 실컷 대화한 후에 최선희와도 포옹했다.
“고생했어, 여보.”
“응, 당신도 혼자 있느라 고생했어. 아, 근데 당신, 나는 안 보고 싶었어?”
최선희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윤기철이 최선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얼른 대답했다.
“우리 마눌님이 안 보고 싶을 리가 있나! 너무 보고 싶어서 눈이······.”
“무를 뻔했다고? 다른 레파토리는 없어?”
“엇. 그럼 하늘만큼 땅만큼······.”
“우주만큼 보고 싶었다고? 에이, 그건 하준이 거 표절이잖아.”
“으음, 그럼 요만큼~ 뺀 나머지만큼 보고 싶었어! 어때?”
윤기철이 손가락 한 마디를 보여주며 말했다.
“호호, 그래, 그것도 좀 들어본 거긴 하지만 노력이 가상하니까 봐줄게.”
“좋았어! 고마워, 여보. 하하.”
윤기철은 다시 최선희를 꼬옥 안았고, 최선희는 윤기철에게 가볍게 뽀뽀를 해주고는 욕실로 향했다.
***
다음 날, 하준은 4일 만에 학교에 갔다.
하준이 교실에 들어서자,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와 하준을 둘러싸고 질문 공세를 펼쳤다.
“오, 하준이다!”
“하준아아!”
“야, 너 촬영 갔었다며?”
“뭐 촬영 간 거야?”
“어디 갔었어?”
하준은 친구들의 질문에 하나씩 답을 해주었다.
하지만 친구들의 질문은 끝이 없었다.
“우와, 너 그럼 세자 역할인 거야? 옷도 입어봤어?”
“응, 세자 옷 입고 촬영했어.”
“그럼 궁궐 같은 데서 촬영했겠네?”
“응, 문경새재에 사극 찍는 큰 야외세트장 있는데, 거기 옛날 집들이랑 궁궐 다 있어. 되게 구경할 거 많더라.”
“와, 나도 보고 싶다. 너 촬영할 때 나 구경 가면 안 돼?”
“아······ 이미 거기 촬영은 다 끝났어. 근데 촬영 말고 그냥 가도 구경할 수 있댔어.”
“오, 엄마, 아빠한테 가 보자고 졸라야지! 너 근데 사진은 없냐?”
“있지. 볼래?”
“어!”
"나도 볼래, 나도!"
친구들은 하준이 세자 옷을 입고 찍은 사진들과 풍경 사진들을 너도나도 구경하겠다며 몰려들었다.
“대박! 옷 진짜 멋있어!”
“궁궐도 디게 멋있다.”
“와, 하준이는 머리 다 올려도 ······.”
남자 아이들은 주로 궁궐이나 옷이 멋있다고 난리였고, 여자 아이들은 부끄러워서 멋있다는 말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지만, 하준이 멋있다고 속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근데 이 여자애는 누구야?”
심혜림이 사진 속에서 하준과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임세아를 보며 경계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 얘는 임세아라고 이번에 나랑 같이 <월야> 찍는 여자 아역 배우야. 우리랑 동갑이고, 착해.”
“으음.”
심혜림을 포함한 다른 여자애들은 조금 못마땅한 눈치였으나, 남자 아이들은 임세아가 예쁘다며 좋아했다.
“칫, 얘가 뭐가 예쁘냐?”
심혜림이 질투가 나는지 툴툴거렸다.
그러자 양지호가 슬쩍 심혜림 편을 들었다.
“그래, 별로 안 이쁜데?”
“그치! 지호만 눈이 멀쩡하네.”
양지호의 말에 심혜림은 마음이 좀 풀린 듯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고, 양지호는 뿌듯해했다.
하준은 양지호가 심혜림을 좋아한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모르는 척했다.
“아, 하준아, 너 오랜만에 왔는데, 이따 학교 끝나고 놀래?”
하준의 앞 자리에 앉는 고우주가 하준에게 물었다.
“아, 미안. 나 아직 촬영 안 끝나서 학교 끝나고 바로 촬영 가야 돼.”
“촬영 끝난 거 아니었어?”
“실내 세트장에서 촬영할 게 좀 남았거든. 그래서 나 내일도 못 와.”
“아쉽다. 너 온다고 해서 같이 놀라고 했는데.”
고우주가 아쉬워하는데, 이번엔 짝꿍인 지수연이 물었다.
“아, 그럼 너, 모레는 학교 오는 거지?”
“응. 그때는 촬영 없어.”
“그럼 그날 놀자! 어때?”
“좋아. 그러자!”
친구들은 다들 찬성했고, 미리부터 뭐하고 놀지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하준은 자기가 촬영 때문에 학교를 자주 빠지는데도 항상 하준이 학교에 가면 자신을 반겨주고 놀자고 해주는 친구들이 있어 기분이 좋았다.
또한 마음 편히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보육원에 계속 있었으면 대욱이 형이랑 같은 학교에 갔겠지? 그때 보육원으로 돌아가지 않길 정말 잘했어.’
윤기철과 최선희의 집은 보육원과는 거리가 좀 있어서 하준은 보육원 원생들이 다니는 초등학교가 아닌 다른 구역의 초등학교로 입학할 수 있었다.
이것은 여러 가지로 하준에게 무척 좋은 일이었다.
하준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아도 되고, 김대욱에게 괴롭힘을 당할 일도 없을 테니까.
그래서 현재 하준에게는 어디든 다 좋은 곳들뿐이었다.
학교는 친구들이 있어 좋고, 집은 엄마, 아빠가 있어서 좋고, 촬영장은 연기를 할 수 있고, 또 예쁨도 받으니 좋았다.
‘진짜 좋다! 이게 다 우리 엄마, 아빠 덕분이야.’
하준은 생각할수록 윤기철과 최선희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더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아들이 되리라 다짐했다.
하준은 오랜만에 간 학교에서 수업도 열심히 듣고,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과 즐겁게 놀았다.
그리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밥을 먹고 촬영장에 갈 채비를 했다.
그런데 최선희가 하준을 잠깐 불렀다.
“하준아, 이리 와봐. 엄마가 하준이한테 줄 게 있어.”
“뭔데?”
하준이 안방으로 들어가자 최선희는 하준에게 통장 하나를 내밀었다.
"네 통장이야. 하준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 엄마가 거기 다 모아놨어. 펼쳐 봐."
"와, 이게 내 통장이야?"
하준은 자기가 번 돈이 얼마인지 궁금해서 얼른 통장을 펼쳐보았다.
그리고 통장을 본 하준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