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길만 걷는 천재스타-23화 (23/150)

23화

23화

“아직 없나 본데?”

하준의 팬카페는 아직 개설된 게 없었다.

“그러게. 있으면 가입하려고 했는데······.”

“없으면 만들면 되지!”

여자들 중 한 친구가 눈을 찡긋했다. 그러자 다른 친구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진짜? 현주 네가 만들려고?”

“응, 내가 한 번 만들어 보겠어.”

“큭, 야, 우리 범우 오빠 덕질하러 왔다가 하준이 덕질까지 하게 생겼다.”

“근데 팬카페 열면 범우 오빠도 가입할 눈빛이던데?”

이현주와 친구들은 집으로 돌아가면서 하준에 관해 계속 검색했다.

하준이 도대체 어디서 짠하고 나타난 귀여운 생명체인지 궁금했으니까.

“여기 기사에 난 프로필 사진 봐. 진짜 귀엽지?”

“와, 멋있는데 귀엽네.”

“오, 하준이 완전 신예네! 지금 영화 하나 촬영 중이고, 드라마 아역 하나 예정되어 있는 게 다야.”

“근데 벌써 그렇게 연기를 잘한다고? 얘는 분명히 크게 된다, 크게 돼.”

“노래도 엄청 잘하던데, 좀 크면 아이돌 하려나?”

“뭘 해도 될 성 부른 떡잎이네.”

하준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았지만, 하준이 엄청난 재능을 가진, 앞날이 촉망되는 아이라는 사실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현주는 하준이 앞으로 대성할 아이라고 확신했고, 팬카페를 만들 때 필요한 하준의 정보와 사진을 취합하기 시작했다.

***

일주일 뒤, <유이열의 음악노트>가 전파를 탔다.

당연히 윤기철과 최선희는 하준의 첫 TV 출연이니 꼭 봐야 한다며 본방사수 중이었다.

하지만 <유이열의 음악노트> 방영 시간이 너무 늦은데다가 한범우와 하준은 프로그램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지라 하준은 자고 있었다.

“하준이가 노래를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 당신도 보면 진짜 깜짝 놀랄걸?”

최선희가 미리 윤기철의 기대감을 한껏 끌어 올려놨다.

“빨리 보고 싶다! 어? 이제 나온다, 나온다.”

드디어 한범우의 ‘단 하루만’ 노래가 시작되었고, 마지막 후렴 부분이 되자, 하준이 걸어나왔다.

윤기철은 하준의 노래가 끝날 때까지 탄성이 나오려는 입을 틀어막고 있다가, 하준의 노래가 끝나자마자, 숨을 토해내며 흥분해서 말했다.

“와하! 여보, 우리 하준이 가수 시켜야 하는 거 아니야?”

“여보, 쉿! 하준이 자잖아.”

최선희는 얼른 검지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고 조용히 하라는 사인을 보냈다.

“어어, 미안. 흐흐. 근데 하준이가 노래를 너무 잘하잖아.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애가 연기를 해서 그런지 노래에 감정이 듬뿍 담겨 있어. 안 그래, 여보?”

윤기철이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최선희의 귓가에 속닥거렸다.

“응, 맞아.”

“진짜 가수를 시킬까?”

“하준이가 잘하는 게 얼마나 많은데, 잘하는 거 다 시키면 하준이 쓰러져. 연기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영어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잖아. 그냥 하준이가 하고 싶은 거 하게 둬.”

“그, 그렇지? 내 욕심이겠지?”

윤기철은 못내 아쉽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최선희가 윤기철의 아쉬움을 달래려는 듯 이렇게 중얼거렸다.

“근데 뭐, 연기도 하고 노래도 하는 연예인들도 있으니까, 다 해도 되지, 뭐.”

“그치, 그치! 연기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니까 뮤지컬 같은 거 해도 되겠다. 하하.”

“어쨌든 난 하준이가 하겠다는 거면 다 팍팍 밀어줄 거야.”

“나도! 어? 하준이 마지막 노래한다!”

하준의 미래에 관해 김칫국을 들이키던 윤기철은 다시 TV로 시선을 고정하고 귀를 쫑긋 세웠다.

‘꽃바람’ 노래가 끝나자, 윤기철은 소리가 나지 않게 물개박수를 쳤다.

그리고 곧바로 컴퓨터로 달려가 <유이열의 음악노트> 시청자 게시판에 접속했다.

“여보, 사람들이 뭐라고 하나 한번 보자. 이리 와봐.”

윤기철이 최선희를 불렀고, 두 사람은 책상 앞에 나란히 앉아 시청자 게시판을 훑어보았다.

방송이 끝난 직후 <유이열의 음악노트> 게시판에는 엄청나게 많은 글들이 쉴 새 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오늘 한범우X하준 노래 너무 좋았습니다^^]

[하준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꽃바람이랑 단 하루만, 하준이와 듀엣 버전 음원으로 내 주세요~]

[한범우 신곡 대박! 하준이라는 애도 노래 엄청 잘하네요]

[음악노트 감사합니다~ 귀호강 제대로 했어요 한범우랑 하준 목소리 합이 너무 좋았어요~]

[한범우X하준 음원 내주세요!!]

“어머, 우리 하준이랑 한범우 씨랑 듀엣 음원을 내달라니!”

“그 정도로 좋았나봐. 하하.”

최선희와 윤기철은 거의 게시판에 도배되다시피 한 하준에 대한 칭찬과 듀엣 음원 요청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날 밤, 최선희와 윤기철은 잠자리에 누워 하준이 가수로 활동하는 모습도 그려보고, 배우로 상을 받는 모습도 상상해보고, 뮤지컬 배우가 되어 무대에서 공연하는 모습도 그려보았다.

‘뭐가 되든 너무 좋네.’

김칫국을 세 사발이나 들이켠 두 사람은 입꼬리가 한껏 올라간 채 잠이 들었다.

***

며칠 후, 드디어 <죽지 않는 백화점> 촬영이 2달 만에 마무리 되었다.

세트장에서 촬영하는 부분도 많았고, 하준을 포함한 배우들이 다들 한 연기 하는 사람들이라 초고속으로 촬영을 완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윤기철은 <죽지 않는 백화점> 촬영이 끝난 기념으로 하준에게 선물을 사주고 싶었다.

“하준아, 갖고 싶은 거 없어?”

“나 이미 다 가져서 없어. 엄마, 아빠도 있고, 핸드폰도 있고!”

하준은 별로 갖고 싶은 게 없었다. 가장 원하던 엄마, 아빠를 가졌으니까.

“에이, 뭐 작은 거라도 말해줘 봐.”

“진짜 난 괜찮은데······. 선물 없어도 돼.”

“하준아, 하준이 선물 사주는 게 아빠 행복이야. 아빠는 하준이가 첫 영화촬영을 무사히 마친 기념으로 선물 꼭 사주고 싶어.”

아빠의 행복이라는 말에 하준은 알겠다며 일단 윤기철과 최선희를 따라나섰다.

견물생심이라고 하준도 물건을 보면 갖고 싶은 것이 생기지 않을까 해서, 윤기철과 최선희는 하준을 데리고 백화점으로 향했다.

“자, 하준아, 1층에서부터 쫙 돌아보자. 보다가 갖고 싶은 거 보이면 말해, 알았지?”

“응!”

윤기철과 최선희는 하준의 손을 잡고 백화점을 1층부터 쭉 돌기 시작했다.

모자, 신발, 가방 가게도 돌고, 중간중간 최선희의 옷도 구경했다.

“아직 없어?”

“응, 아빠, 나 대신 엄마 옷 사줘. 엄마가 저 봄 재킷 갖고 싶은 거 같아.”

윤기철의 물음에 하준은 최선희의 옷을 사주라고 등을 떠밀었다.

“그럴까? 그래, 엄마도 수고했으니까, 하나 사 줘야겠다.”

윤기철은 최선희에게 봄 재킷을 사주었고, 최선희는 한껏 기분이 좋아졌다.

“호호. 우리 아들 덕에 예쁜 옷 생겼네. 그럼 이제 하준이 옷도 보러 가자. 여기 5층에 아동복 매장들 쫙 있어.”

최선희는 하준과 윤기철을 이끌고 5층으로 향했다.

그런데 3층을 돌던 윤기철 가족은 반가운 브랜드를 발견했다.

“어? 여보, 하준아, 저기 봐! 네이블리야! 이번에 새로 런칭한 브랜드라더니 벌써 백화점 입점을 했네!”

네이블리는 하준이 광고 모델을 했던 아동복 브랜드였다.

“그럼 우리 하준이 사진 있나?”

윤기철도 관심을 보이며 네이블리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하준도 자기 광고 사진이 있을까 싶어 눈을 크게 뜨고 윤기철을 따라갔다.

“어머머, 우리 하준이야, 하준이.”

최선희가 네이블리 매장 벽면에 커다랗게 자리 잡은 하준의 광고 사진을 보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목소리 자체는 작았지만, 발을 동동 구르며 사진을 가리키는 몸짓은 얼마나 최선희가 기쁨에 차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와, 우리 하준이 사진빨도 엄청 잘 받네!”

윤기철도 감탄을 하며 하준의 어깨를 토닥였다.

하준은 자기 사진이 이렇게 크게 도배되어 있는 것은 처음 봐서 쑥스러우면서도 신기했다.

“여보, 이쪽에도 하준이 사진 있어! 이리 와봐.”

최선희가 다른 벽면으로 윤기철을 잡아끌었다.

네이블리 매장에는 하준의 광고 사진이 3개나 벽면마다 붙어있었고, 한쪽 면에는 아예 광고 영상이 반복적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하준은 영상을 발견하고 그 앞에 서서 자기가 찍은 영상이 어떻게 나오는지 구경했다.

영상은 하준과 민채가 벚꽃나무 옆에서 활짝 웃으며 벚꽃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으로 시작되었다.

다음으로 두 아이가 인조잔디에 깔린 피크닉용 천 위에 앉아 도시락을 먹는 장면, ‘나 잡아봐라’ 놀이를 하는 것처럼 신나게 뛰어다니는 장면 등이 이어졌고, 마지막에는 잔디 위에 두 팔을 벌려 누운 두 아이의 편안한 모습으로 영상은 마무리되었다.

‘색이 엄청 예쁘게 나왔네. 진짜 예쁘게 찍어주셨다.’

하준은 편집과정에서의 보정이나 효과에 대한 건 잘 몰라서 촬영감독님이 엄청 잘 찍어줬다고 생각했다.

또한 영상에는 광고모델인 하준과 민채의 말소리는 전혀 없고, 대신 밝고 화사한 음악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어서 보이는 부분에 더 집중되는 느낌이었다.

“영상도 진짜 샤방샤방하게 잘 만들었다. 우리 아들 너무 이쁘게 나왔어.”

“우리 아들이 이쁜 건 두말하면 입 아프지. 하하.”

어느새 하준의 뒤에 와서 영상을 함께 구경한 윤기철과 최선희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세 사람이 이렇게 만족스럽게 영상을 감상하고 있는데, 갑자기 놀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머! 너, 너?”

네이블리 매장의 매니저가 손님을 맞이하려고 나왔다가 하준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 것이다.

그녀는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하준과 영상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맞지? 여기 영상 속 애가 너 맞지?”

“아······ 네. 맞아요.”

“어머!! 아줌마가 모델인 너 보고 이 매장을 해보겠다고 한 거거든. 실제로 보니까 더 잘생겼네. 귀여워라!”

매장 매니저는 손뼉을 치며 너무 좋아했다.

그런데, 매장 매니저의 목소리가 꽤 우렁차서 다른 매장과 지나던 손님들의 주의를 끌었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하준에게로 몰렸고, 다들 방금 매니저가 했던 것처럼 영상과 하준을 번갈아 쳐다보며 신기해했다.

“진짜, 얘가 얘네?”

“애기가 인물이 엄청 좋네!”

“오, 신기해. 아까 이거 보고 모델 애들이 진짜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그 애기가 요기 있네?”

모여든 사람들 중에는 하준 또래의 여자애들도 있었는데, 여자애들은 하준에게 반한 듯 뚫어져라 하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 근데 얘, 하준이 아니에요? 며칠 전에 <유이열의 음악노트>에 나왔던······.”

한 사람이 하준이 <유이열의 음악노트>에 한범우와 함께 출연한 아이라는 걸 알아봤다.

그러자, 하준이 주변에 모인 군중들은 또 한 번 놀랐다.

“어? 진짜, 얘가 얘고, 얘가 하준이 맞는 거 같은데?”

“아, 네. 맞아요.”

하준이 스스로 자기가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방송을 본 적 있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노래를 너무 잘 들었다면서 더 반가워했고, 못 본 사람들은 하준의 노래 실력이 그렇게 좋냐며 하준에 대해 무척 궁금해했다.

그 와중에 매장 매니저가 이 기회를 놓칠세라 얼른 네이블리의 카탈로그를 들고 와서 하준에게 사인을 부탁했다.

“하준 군, 여기 온 김에 사인 좀 해주고 가요. 사진도 같이 찍어주면 내가 여기다가 같이 걸어놓을게.”

“우리도 사인 받고 싶은데······. 저희도 네이블리 카탈로그 좀 주시면 안 될까요?”

“저도요!”

“여기도요!”

이리하여, 마침 사인도 만들어 놓은 하준의 첫 번째 사인회가 네이블리 매장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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