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길만 걷는 천재스타-18화 (18/150)

18화

18화

“와아······.”

“이, 이게······ 와······ 말이 안 나온다.”

오 PD를 비롯해, 다른 심사위원들 모두 입을 떡 벌리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고는 하준이 쓴 붓글씨를 하나의 미술작품을 감상하듯 한참을 뚫어져라 감상했다.

“크으, 정말 명필이네.”

“누가 이 한자 쓴 것만 봤으면 애가 썼다는 거 안 믿을 거예요. 기가 막히게 잘 쓰네!”

“지금까지 다른 애들이 특기라고 보여준 것들은 다 그냥 취미였고, 이게 진짜 특기지.”

“진짜 특기네, 특기.”

심사위원들은 칭찬과 감탄도 모자라다고 생각하는지 하준에게 박수까지 보냈다.

“감사합니다.”

하준은 공손히 인사한 뒤, 이제 그만 나가보라는 말을 기대했다.

그런데 심사위원들은 아직 하준에게 볼 일이 더 있는 듯했다.

“근데 하준 군, 이거 무슨 내용인지 알아요? 읽을 줄도 알고요?”

심사위원 중 유영미 작가가 궁금한 듯 물었고, 하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 알아요.”

그러자 서재혁이 가장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정말? 이걸 다? 나도 다는 모르겠는데······.”

“나도 여기 맨 앞에 학이시습지 부분은 알겠는데, 뒤는 잘 모르겠어. 하준 군, 이건 오디션과는 상관 없긴 하지만 궁금하니까 하준 군이 쓴 한자들, 한번 읽어볼래요?”

하준이 써 내려간 한자는 논어에 나온 공자의 어록 중 하나였다.

하준은 ‘네’라고 대답하고 한자를 거침없이 읽어내려갔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그 뜻은 이러합니다. 배우고 또 그것을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온다면 또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준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한자의 음과 뜻을 줄줄 읊자, 심사위원들은 한 차례 더 감탄하며 활짝 웃었다.

그 미소는 기특한 아들을 바라보는 아빠, 엄마의 미소 같았다.

“오구, 똘똘하기까지 하네. 엄청 귀엽다.”

“한자 읽는 거 보니까, 어려운 대사도 잘하겠구만.”

“좋아, 좋아. 굿이야, 굿.”

하준의 오디션은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칭찬으로 마무리되었다.

하준이 오디션을 마치고 나오자, 최선희와 최 대표가 얼른 달려왔다.

“수고했어. 연습한 대로 했어?”

“네.”

“그럼 됐어. 아, 특기도 보여드렸구?”

“네, 근데······.”

“근데, 뭐?”

“제가 쓴 거 심사위원님들이 갖고 싶다고 하셔서 드리고 나왔어요.”

마지막에 심사위원들은 하준의 서예 작품을 서로 갖고 싶다고 난리였다.

결국 심사위원들은 가위바위보로 소유자를 정했고, 소유자는 유 작가가 되었다.

“하하, 그럼 특기 대성공이네!”

최 대표가 싱글벙글 웃으며 좋아했다.

반면, JS 엔터테인먼트의 노규찬은 지금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사실 그 전에는 초조한지 손톱을 뜯고 있었다.

그러다 오디션장 안에서 박수갈채 소리가 들려오자, 그때부터 입술을 씹는 중이었다.

“어? 노규찬, 너 아직 안 갔어? 야! 너 입술에서 피나!”

최 대표가 하준을 데리고 나오다가 노규찬을 보고는 기겁하며 말했다.

노규찬은 얼른 입을 가리더니 홱 돌아서 하준 일행과는 반대편으로 가버렸다.

“왜 저런대? 하준아, 가자!”

하준은 최 대표와 최선희의 손을 잡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오디션장을 나왔다.

***

이틀이 지났다.

하루 이틀이면 서재혁 주연의 사극 로맨스 드라마 <월야>의 오디션 결과가 개별 통지될 것이라고 했는데, 아직까지 하준에게 연락은 없었다.

그래도 최 대표의 말에 의하면 아직 통지를 받은 사람은 없다고 하니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준아, 오늘은 다 같이 집에 가자!”

오늘 촬영을 마친 윤기철 감독이 하준을 번쩍 들어 빙그르르 돌며 퇴근의 기쁨을 표현했다.

그러자 하준이 까르르 웃으며 좋아했다.

“하준이 엄청 좋아하네. 하준아, 한번 더?”

“네!”

“오케이.”

윤기철이 하준의 허리를 꼭 안고 빙그르르 한 번 더 돌려주자, 하준은 또 한 번 신나게 웃어젖혔다.

최선희도 두 사람의 모습이 영락없는 부자 사이 같아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아, 우리 오늘 저녁은 돈가스 먹을까? 어때?”

윤기철이 운전석에 오르며 제안했다.

“전 무조건 좋아요! 돈가스! 돈가스!”

하준은 양팔을 퍼덕대며 돈가스를 제창했고, 최선희도 그러자며 동의했다.

“그럼 하준이가 좋아하는 <돈가스 하우스> 가자. 출발!”

“출발!”

하준이가 좋아하는 <돈가스 하우스>는 윤기철네 아파트 근처에 있는 돈가스집이었다.

그래서 세 사람은 차는 아파트에 대놓고 걸어서 돈가스집으로 향했다.

“하준아, 뭐 먹을래?”

“저는 안심 돈가스 먹을래요.”

“난······ 함박 스테이크 먹을래. 당신은? 당신도 안심 먹을래? 여기 안심 엄청 부드러워서 맛있어.”

“그럴까? 음······ 아, 하준아, 하준이는 다른 거 또 먹고 싶은 메뉴 없어?”

윤기철 감독은 메뉴를 결정하지 못하는 척하면서 하준이의 의견을 물었다.

“저는 카레 돈가스 안 먹어봐서 먹어보고 싶긴 해요.”

“그래? 그럼 나 카레 돈가스 먹을래. 난 아무거나 잘 먹으니까, 이것도 좋아.”

“우와, 정말요?”

“그럼! 우리 하준이 맛있는 거 많이 먹어봐야지.”

“감사합니다, 아빠.”

8살이 될 때까지 맛있는 걸 많이 못 먹어본 하준이 안타까워서, 윤기철은 최대한 하준이 다양한 메뉴를 먹어볼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최선희는 그런 남편의 배려를 눈치채고 잘했다는 눈빛을 보냈다.

이리하여 세 사람은 세 가지 메뉴를 시켜서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하준은 돈가스도 먹고 함박 스테이크도 먹고 카레도 먹을 수 있다면서 무척 좋아했다.

돈가스집에서 나오면서 하준은 볼록 나온 배를 쓸며 말했다.

“너무 맛있었어요. 아, 배불러.”

“어머, 안 되겠다. 여보, 우리 소화도 시킬 겸 산책 좀 하고 들어가자.”

“그럴까? 그럼 동네나 한 바퀴 돌고 들어가지, 뭐.”

세 사람은 소화를 위해 동네를 구경하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동네를 도는 와중에 하준이 발길을 갑자기 멈춘 곳이 있었다.

바로 인형뽑기 가게였다.

“인형뽑기? 하준아, 인형 갖고 싶어?”

하준이 인형뽑기 가게 앞에서 한참 구경을 하고 있자, 최선희가 물었다.

“아뇨. 인형이 갖고 싶은 건 아닌데······.”

“아닌데? 그럼 뭐 때문에 그래?”

“······아빠가 뽑아준 게 갖고 싶어요. 예전에 길에서 인형뽑기 기계가 있었는데, 어떤 아빠가 자기 아들한테 인형을 뽑아주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저번 아빠한테 한 번 부탁한 적이 있었는데요, 돈 아깝게 뭐 그런 걸 하냐고······.”

옆에서 듣고 있던 윤기철은 돈이 아깝다는 건 공감했지만, 돈보다 더 중요한 건 추억이라고 생각했다.

“자, 그럼 아빠의 능력을 보여줘야 할 때구나! 들어가자, 하준아. 아빠가 한방에 뽑아줄게.”

“정말요? 와, 신난다아!!”

윤기철은 자신감을 뽐내며 인형뽑기 가게로 입성했고, 하준은 신이 나서 폴짝폴짝 뛰며 그를 따랐다.

“여보, 근데 이거 해봤어? 할 줄 아는 거야?”

최선희가 천 원짜리 지폐로 돈을 바꾸는 윤기철에게 다가가 슬쩍 물었다.

그러자 윤기철은 고개를 저었다.

“안 해봤지만, 쉽지, 이 정도는!”

“어려울 거 같은데······.”

최선희는 낮게 읊조렸지만, 윤기철은 이미 하준이를 만족시킬 꿈에 부풀어 최선희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자, 그럼 뭐 어떤 거부터 뽑아볼까?”

“아빠, 저는 이상한씨 뽑아주세요.”

“뭐? 이상한씨? 그게 뭐야?”

“아, 저기 저 초록색 거북이 같은 거요.”

“아하! 오케이. 아빠만 믿어! 간다!”

윤기철은 기계에 지폐를 집어넣고 버튼을 톡톡 치면서 집게를 조절했다.

“오, 거기, 거기. 여보, 거기서 스탑!”

최선희는 관심 없는 척하더니 막상 윤기철이 인형뽑기를 시작하자 더 흥분해서 훈수를 두었다.

“아앗!”

“아깝다!”

윤기철은 조금 빗나간 위치에서 집게를 내려서 이상한씨를 잡지 못했고, 하준과 윤기철은 아쉬움에 탄식했다.

“이제 감은 알았어. 다시 하면 낚을 수 있을 것 같아. 바로 재도전한다!”

윤기철이 곧바로 재도전을 하려는데, 최선희가 잠깐을 외쳤다.

“잠깐, 여보! 이거 동영상으로 남기자. 내가 찍을게, 잠시만. ······ 됐다! 다시 시작!”

“그럼 간다!”

윤기철은 다시 지폐를 넣고 버튼을 조작하기 시작했고, 하준은 옆에서 응원을, 최선희는 영상 촬영을 담당했다.

“으앗! 이번엔 진짜 아깝다!”

“크, 너무 아까웠어, 그치? 그럼 한 번 더!”

하지만 기세등등하게 시작한 인형뽑기는 3차 시기, 4차 시기, 5차 시기······ 결국 9차 시기까지 갔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하아······.”

윤기철이 아쉬움과 안타까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인형을 못 가진 게 아쉬운 것이 아니라, 하준의 소원을 이뤄주지 못한 게 안타까웠다.

‘우리 아들 로망을 실현시켜줘야 하는데······. 그래, 칠전팔기다! 어디 누가 이기나 해보자!’

윤기철은 팔을 걷어붙이고는 다시 인형뽑기에 지폐를 넣으려고 했다.

그런데, 하준이 그의 손을 막았다.

“아빠, 됐어요. 전 아빠가 절 위해 이렇게 노력해주신 걸로 충분해요. 제가 애초에 갖고 싶었던 건 인형이 아니라 아빠의 마음이었으니까요. 이제 집에 가요.”

하준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하준의 마음 속에는 이미 아빠, 엄마와의 이 경험이 즐거운 추억으로 아로새겨져 있었다.

“우리 아들은 말도 어쩜 이렇게 이쁘게 할까. 하지만! 그럼 딱 한 번, 딱 한 번만 해보고 가는 걸로 하자.”

“음, 네, 한 번만이에요.”

윤기철은 마지막 부탁으로 한 번의 기회를 얻었다.

이제 정말 마지막 도전.

이번에는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정적 가운데 윤기철이 오롯이 집중해 버튼을 조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윤기철은 이상한씨를 뽑고야 말았다.

“어어······! 우와아악!!”

“와아아!”

“여보, 잘했어!!”

세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마치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골을 넣었을 때처럼 방방 뛰고 난리가 났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봤으면 우리나라가 무슨 메달을 딴 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세 사람은 지금 누가 보든 말든 행복감에 취해 있었다.

“으하하하. 이거 기분 진짜 좋구만!”

윤기철은 호탕하게 웃으며 이상한씨를 꺼내 하준에게 안겨주었다.

하준은 이상한씨를 품에 꼬옥 안으며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었다.

“자, 그럼 이제 집에 갈까?”

최선희가 웃으며 하준에게 물었다.

그런데 하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엄마, 근데 저도 딱 한 번만 해보면 안 될까요?”

“어? 그래, 해봐도 되지! 직접 경험해보는 것도 좋아. 해봐.”

“감사합니다!”

최선희의 허락을 맡은 하준이 인형뽑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하준은 여기서도 발군의 실력을 뽐내고야 말았다.

단 한 번 만에 곰돌이 인형을 뽑은 것이다.

“헉······.”

“역시, 우리 하준이는······ 대단해!!”

최선희는 하준을 끌어안고 기특해했고, 윤기철은 처음에는 살짝 당황했지만, 곧 하준을 칭찬해주었다.

“잘했어! 우리 아들은 인형 뽑기 신동이네, 신동. 하하.”

“헤헤, 운이 좋았어요. 그럼 이제 집에 가요.”

하준은 양팔에 인형을 하나씩 끼고 앞장서서 집으로 향했다.

최선희와 윤기철은 그런 하준을 뒤따라가며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때, 하준의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어어, 엄마, 제 패딩 주머니에 진동 오는 것 같아요. 이건 전화 같은데······.”

“어, 그래, 엄마가 대신 받아줄게.”

양손에 인형을 들고 있는 하준을 위해 최선희는 하준의 전화를 대신 받아주었다.

“여보세요. 아, 최 대표님.”

-늦게 죄송합니다. 근데 제가 지금 연락을 받아서 바로 연락드리는 겁니다. 우리 하준이가, 우리 하준이가 글쎄······ 서재혁 아역으로 결정이 났답니다!! 으하하하.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