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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만 걷는 천재스타-17화 (17/150)

17화

17화

이번 오디션은 하준의 드라마 첫 오디션이기도 하고, 첫 사극 연기 도전이라 최 대표가 최선희, 하준과 동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오디션장에 들어선 하준은 깜짝 놀랐다.

오디션장에 오디션을 보러온 아이들이 바글바글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들 중 절반은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엄마······ 여기 TV에 나왔던 애들 되게 많아요······.”

하준이 조금 위축됐는지 최선희의 팔을 꽉 붙들었다.

“그렇네. 하지만 겁먹을 필요 없어. 하준이는 하준이의 연기를 하면 되는 거야.”

“네······ 근데 오늘 한복 입고 오랬나요?”

최선희에게 고개를 끄덕인 하준이 이번엔 최 대표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 이유는 오디션장에 온 아이들 중 다수가 한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복을 입은 아이들 중 대부분은 도령 복장을 하고 있었고, 몇몇은 세자복을 입고 있기도 했다.

“아니, 그런 건 없었어. 그냥 더 잘 보이려고 입고 온 거겠지. 사실 나도 하준이 도령 옷 입힐까 하다가 이럴까 봐 안 입혔어. 봐, 오히려 안 입은 애들이 눈에 더 띄잖아.”

“아하. 정말 그러네요.”

대부분이 한복을 입고 있으니 오히려 평상복을 입고 있는 아이들이 더 눈에 띄었다.

“그리고 사실 연기력으로 뽑히는 거지, 복장에 공들인다고 뽑아주는 건 아니거든.”

최 대표는 하준을 안심시켰다.

그런데 그때, 한 남자가 최원상 대표에게 다가와 알은 척을 했다.

“어? 원상 형님 아니십니까?”

“너······ 아! 노규찬, 규찬이 맞지? 오랜만이네.”

“와, 한 3,4년 된 것 같은데, 제 이름도 기억하시네요. 맞습니다.”

노규찬은 최원상과 같은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매니저로 근무했었다. 그 당시 최원상은 팀장급이었고, 노규찬은 신입으로 들어온 로드 매니저였다.

그때 한 6개월 정도 함께 근무했는데, 곧 최원상은 퇴사해서 월드 엔터테인먼트를 차리게 되었다.

그러니 사실 그다지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너 여전히 올림 엔터에 있는 거야?”

“아뇨. 저 JS로 이직했어요.”

“오, JS 엔터면 성공했네. 축하한다, 야.”

JS 엔터테인먼트는 스타우드와 최고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대형 기획사였다. 그러니까, 대한민국 3대 기획사 중의 하나였다.

“하하, 감사합니다. 형님은 월드 엔터 차리셨다고 전해 들었어요. 형님도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그래, 고맙다.”

“근데 형님은 아역 오디션장에 어쩐 일이세요? 월드 엔터도 아역 키워요?”

“원래는 안 키웠었는데, 어쩌다 보니 한 명 키우게 됐어.”

“아, 얘예요?”

노규찬이 하준을 유심히 훑어보며 물었다.

하준은 살짝 고개를 숙여 묵례를 했다.

“응, 맞아.”

“아······ 얘도 그럼 오늘 오디션 보러 온 거죠?”

조금 경계하는 말투.

노규찬은 사실 한눈에 하준을 알아보았는데, 모르는 척하는 중이었다.

스타우드 엔터에서 월드 엔터의 하준이라는 아역 배우를 영입하려 했다는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에 하준은 업계에서 꽤 유명인사였다.

그래서 노규찬은 일부러 먼저 최 대표를 알은 척하며 접근한 것이었다.

“그렇지. 아, 너도 오디션 때문에 온 거겠네?”

“네, 우리 JS 엔터 애들 여러 명이 이 오디션을 보거든요. 제가 아역팀 실장이에요.”

“아, 그래?”

“근데 형님은 왜 대표가 아역을 직접 데려오셨어요? 아무리 매니저가 없어도 뭘 굳이 대표가 직접······.”

“그거야 내 마음이지. 내가 하준이를 아주 예뻐하거든.”

“아······ 걱정 돼서 따라오셨구나. 아참, 우리 건우 아시죠? 우리 아역 애들 중에서도 제일 유력한 애가 바로 얘예요. 다른 애들은 뭐, 경험 쌓으라고 데려온 거고요.”

노규찬이 세자복을 빼입은 남자아이를 보여주며 말했다. 그 남자아이는 귀찮다는 듯 뚱하게 서 있었다.

“알지, 알지. 옷도 잘 입혀서 왔네.”

김건우는 꽤 유명한 아역 배우였다.

하준도 여러 번 TV에서 나오는 걸 봤을 정도로.

오디션을 보러온 다른 아이들도 김건우를 알아보고 계속 시선을 주고 있었다.

아마도 김건우가 다른 아이들의 경계 대상 1호일 것이다.

“우리 건우가 또 사극 연기 전문이잖아요. 하하. <왕도>에서 보셨죠?”

노규찬은 김건우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일부러 하준의 기를 죽이려는 듯이.

“응, 잘하더라.”

최 대표는 영혼 없이 답했다. 그만 가라는 듯이.

하지만 노규찬은 계속해서 떠들어댔다.

“사극 연기가 쉽지 않잖아요. 어른들도 어려운데, 애들은 더 어렵죠. 근데 건우는 처음부터 잘했어요. 현대극보다 사극을 더 잘하는 것 같다니까요. 세자복도 너무 잘 어울리죠?”

“그러네. 좀 설레발인 것도 같지만······ 뭐, 열심히 준비하면 좋지.”

“아, 그리고······.”

최 대표는 노규찬이 이제 그만 좀 가줬으면 했는데, 자꾸만 말을 걸었다.

‘에이, 이 자식, 확 꺼지라고 할까? 괜히 우리 하준이 신경 쓰이게 말이야. 그래, 안 되겠다.’

최 대표는 이 정도면 얘기를 많이 들어줬다 생각하고 노규찬의 말을 잘랐다.

“야, 노규찬, 너 이제 그만······.”

그런데, 최 대표의 말이 끝을 맺기 전에 갑자기 대기 중이던 아역 배우 아이들이 소리를 질러댔다.

“와아!!”

“서재혁 형이다!”

“서재혁······!”

서재혁이 등장한 것이다.

오늘 오디션 심사에 참여하기 위해 온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물론 매니저들, 엄마들이 서재혁에게 환호하며 몰려들었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노규찬도 최 대표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안녕하세요. 안녕, 얘들아. 한복 많이들 입고 왔네. 하하. 귀여워.”

서재혁이 멋진 목소리로 자신의 아역 오디션을 보러온 아이들에게 인사했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 하준 앞을 지나쳐갔다.

하준은 실제로 보는 배우 서재혁이 키도 크고 멋있어서 감탄하며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서재혁이 발길을 멈췄다.

그러더니 몸을 홱 돌려 하준을 쳐다보았고, 하준과 서재혁은 눈이 딱 마주쳤다.

“어?”

서재혁이 동그래진 눈으로 하준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하준에게 말을 걸었다.

“너 이름이 뭐니?”

“네? 어······ 하준이요.”

“하준? 하준이라······. 음, 그래, 오디션 잘 보렴.”

서재혁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고 인사만 하고 오디션장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준과 최선희는 서재혁의 행동에 의아해했고, 다른 아이들은 부러워했다.

그리고 매니저들은 소문으로만 듣던 바로 그 ‘하준’이냐며 수군거렸다.

잠시 후, 드디어 한 명씩 오디션장에 입장해 오디션을 보기 시작했다.

15번째 순서인 하준은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중간중간 오디션장에서는 웃음소리와 감탄 소리, 아이들이 특기로 준비한 노랫소리도 새어 나왔다.

김건우의 차례 때는 심사위원들의 가장 큰 환호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김건우가 기세등등하게 오디션을 마치고 나오자, 노규찬이 물었다.

“잘했어? 심사위원님들이 뭐랬어?”

“잘했대요. 진짜 세자 같다고도 했고요.”

김건우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아이구, 잘했다, 우리 회사 에이스!”

노규찬은 하준과 최 대표가 들으란 듯 크게 외치며 김건우를 번쩍 들어 안았다.

그 모습에 몇몇 아이들의 자기들은 이미 글렀다는 듯 시무룩해했다.

그때, 최선희가 하준에게 조용히 속닥였다.

“하준아, 이거 꼭 안 해도 되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마. 혹시 이게 안 되더라도, 다른 더 좋은 역할을 하게 될 수도 있는 거니까. 알겠지?”

하준은 자신을 걱정해주는 엄마의 마음에 행복해져서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새옹지마란 말씀이시죠?”

“호호, 그래. 우리 아들, 벌써 그런 사자성어도 알고, 사극 덕분인가?”

하준과 최선희는 서로를 마주 보며 빙긋 웃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하준의 차례가 되었다.

“15번 하준 군, 들어오세요.”

하준은 최선희, 최 대표와 차례로 파이팅 의미의 하이파이브를 하고 바로 오디션장으로 입장했다.

“안녕하세요. 15번 하준입니다! 여덟 살이고, 연기 경력은 한 달밖에 안 되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준이 긴 테이블에 일렬로 앉은 심사위원들에게 배꼽인사를 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심사위원들은 하준을 보자마자,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오?”

“네가 하준이구나!”

“재혁 씨 말이 맞네. 진짜 닮았어.”

“싱크로율은 얘가 1등이네요.”

“맞아, 진짜 신기하네. 혹시 재혁 씨가 숨겨둔 아들 아니야? 하하.”

“저도 저런 아들 하나 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아닙니다. 외롭네요.”

서재혁이 오 PD의 농담을 웃으며 받았다.

일단 심사위원들은 하준이 서재혁과 많이 닮아서 호감을 가진 듯했다.

“근데 하준 군, 연기 경력이 한 달밖에 안 됐다는 게 진짜예요?”

“네, 이제 한 달 조금 넘었어요.”

“그럼 사극은 어려울 텐데······ 뭐, 그래도 연기 일단 한 번 봅시다.”

“네, 해보겠습니다.”

하준은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쉰 후, 바닥에 풀썩 엎드리며 연기를 시작했다.

하준이 준비한 연기는 세자가 아바마마에게 읍소하는 장면.

“아바마마, 어마마마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어마마마께서는 함정에 빠지신 것입니다. 조정의 간신들이 어마마마를 모함하여 이리 된 일임을 진정 모르신단 말씀입니까.”

하준은 눈에 살짝 눈물이 고인 채 다급하면서도 간절하게 대사를 했다.

그리고 이어진 대사에서는 조금 차분하게 말하다가 마지막에 힘을 주었다.

“공자께서도 애지욕기생(愛之欲基生), 오지욕기사(惡之欲其死)라 하셨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살리고, 미움은 그 사람을 죽인다고 하셨습니다. 어마마마를 미워하는 그 마음이 아바마마를 아프게 할까 소자 심히 걱정되옵니다. 부디 어마마마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으흐흑.”

하준은 여기까지 감정을 끌어올리다가 마지막에 눈물을 와락 터뜨렸다.

긴 대사를 자연스러운 사극톤으로 연기하자, 심사위원들은 매우 흡족해하며 놀라워했다.

“와, 얘 대사 치는 거 좀 봐. 장난 아니야. 대사톤 높낮이 조절도 그렇고, 말투도 안 어색하네!”

“한 달밖에 안 된 애가 이렇게 잘한다고?”

“표정도 잘하고, 눈물도 잘 흘리고, 대사도 좋고······.”

“잘한다, 잘해.”

하준이 곧 눈물을 닦고 일어서자, 오 PD가 종이 하나를 건넸다.

“거기 적힌 거 연기해 볼래요?”

즉흥적으로 대사와 지문을 보고 얼마나 연기를 잘 해내는지 보려는 의도였다.

하준은 잠시 대사를 읽고 상황을 파악한 후, 곧바로 연기에 들어갔다.

“멈추어라! 당장 그 손 놓지 못하겠느냐? 그 아이는 내가 귀히 여기는 아이다. 네 놈이 함부로 대할 아이가 아니란 말이다!”

하준이 준비해 온 대사와는 조금 다른 대사와 다른 톤의 연기였지만, 하준은 다양한 대사와 톤을 연기 선생님과 연습해 봤기에 바로 훌륭히 연기해낼 수 있었다.

“오! 좋은데?”

“위엄있는 것도 잘하네요!”

“대사 전달력도 좋고, 목소리도 좋고.”

심사위원들은 칭찬 후에도 한참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마음에 든다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자, 그럼 특기 같은 거 준비한 거 있어요?”

이번에도 오 PD가 물었다.

“네!”

하준이 씩씩하게 대답하고는 가져온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엇인가를 꺼냈다.

그 모습을 본 심사위원들은 도대체 무슨 특기인가 하고 궁금한 눈빛으로 하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저는 서예를 준비했습니다.”

하준이 가방에서 꺼낸 것은 바로 서예를 쓸 화선지와 붓펜이었다.

“서예? 특기로? 귀엽네. 하하.”

“어디 한번 써봐. 얼마나 잘 쓰는지 궁금하네.”

특이한 특기이긴 했다.

다른 아이들은 대부분 노래, 악기, 춤, 랩 이런 것들을 준비해왔으니까.

이건 사실 최 대표와 전략적으로 준비한 특기였다.

사극에서 노래를 잘하면 뭐할 것이며, 춤을 잘 추면 또 어디다 쓰겠는가.

하지만 붓글씨를 잘 쓰는 건 활용할 여지가 꽤 있었다.

사극에서 서찰 쓰는 장면은 항상 나오니까 말이다.

하준이 글을 쓰기 위해 바닥에 화선지를 펼치고 엎드리려 했다.

그러자, 서재혁이 하준을 얼른 불렀다.

“하준 군! 여기 책상에 놓고 써도 돼요. 이리 와요. 그래야 우리도 잘 보이니까.”

“그래, 이쪽으로 와요. 가까이서 봐도 서 배우 닮았나 보자.”

결국 하준은 심사위원들의 책상에 화선지를 펼치고 그들의 바로 코앞에서 붓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사실 심사위원들은 애가 글을 잘 쓰면 얼마나 잘 쓰겠나 하고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하준의 글씨를 본 심사위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준이 한글도 아니고 한자를, 그것도 무슨 서예의 대가가 쓰는 것처럼 아름답게 써 내려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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