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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만 걷는 천재스타-9화 (9/150)

9화

9화

촬영작업은 효율성을 따지기 때문에 시간 순서대로 찍지 않고, 장소 여건과 시간을 고려해서 한 장소에서 찍을 걸 몰아서 찍는다.

<죽지 않는 백화점>은 백화점 내부에서 좀비에게 쫓기는 장면이 많아서 백화점 세트장 촬영이 절반 이상이었고, 오늘 역시 백화점 세트장에서 첫 촬영이 진행되었다.

윤기철 감독은 하준에게 영화 촬영 전에 작업 순서를 알려주었다.

“자, 하준아, 촬영하기 전에 리허설이라는 걸 할 거야. 리허설은 뭐냐면,”

“알아요. 진짜 촬영하기 전에 미리 연습 삼아 맞춰보는 거죠?”

“오! 어떻게 알았어?”

윤 감독은 깜짝 놀라 되묻자, 하준이 뿌듯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모르는 말이 많을 것 같아서 미리 책보고 공부했어요.”

“아이고, 이뻐라. 그럼 슬레이트는 뭔지 알아?”

윤 감독의 질문에 하준은 주변을 스윽 둘러보더니 한 스태프가 들고 있는 슬레이트를 가리켰다.

“저거요. 클립 보드, 클래퍼 보드라고도 하는데, 촬영하기 전에 저기다가 씬 넘버랑 컷 넘버, 테이크 넘버 같은 것들을 써서 카메라 앞에 대고 딱! 치는 거예요.”

“오, 맞아. 그래서 우린 딱딱이라고 부르지. 그럼 왜 하는 건 줄 알아?”

“영상이랑 녹음된 소리랑 따로 저장하니까, 그 두 가지를 나중에 딱 맞게 붙일 때 필요해서 하는 거로 알고 있는데 맞나요?”

“그렇지! 맞아!”

“와······!”

“똑똑하다!”

윤 감독은 하준의 자세한 설명에 입이 쩍 벌어졌고, 주변에 있던 스태프들도 감탄에 마지않았다.

옆에서 은근슬쩍 귀를 기울이고 있던 차우민 역시 깜짝 놀라며 한마디 했다.

“와, 제가 아역 배우들 많이 봤지만, 이렇게 세세한 것까지 다 아는 애는 처음이에요. 저도 직접 영화 촬영하면서 실전에서 알게 된 것들인데! 하준아, 너 진짜 대단하다!”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닌데······ 그냥 책에 나온 거 봤어요.”

하준은 쑥스러운지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책? 무슨 책 봤는데 이런 게 나왔어?”

“영화의 세계요.”

“뭐? 영화의 세계? 그거 어른들이 읽는 두꺼운 책인데! 8살이 벌써 그걸 읽었다고?”

차우민은 더 놀라서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주변 스태프들도 ‘영화의 세계’라는 말을 듣고는 웅성웅성거렸다.

“그걸 이해할 수 있나?”

“이해했으니까 저렇게 다 대답하겠지.”

“오, 하준이 진짜 영재인가 봐!”

하준이 읽었다는 책은 연극영화과에 들어간 대학생들이 읽는 책이었다. 그러니 다들 놀랄 수밖에.

“연기도 잘해, 예습도 해와, 똑똑해, 어쩜 이렇게 이쁜 짓만 할까, 우리 하준이.”

윤기철은 양손으로 하준의 볼을 감싸고 예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자 차우민이 하준의 장점 하나를 더 추가했다.

“감독님, 하나 빠졌어요. 생긴 것도 귀엽고 잘 생겼잖아요.”

“아하하, 맞네, 맞아.”

촬영장은 촬영 시작도 전에 하준이 덕분에 화기애애했다.

잠시 후, 리허설을 몇 번 한 뒤, 드디어 하준과 차우민의 첫 촬영이 시작되었다.

첫 촬영은 백화점의 한 창고에 숨어 있던 도진을 도진의 아빠인 주환이 찾아내 상봉하는 장면이었다.

카메라, 붐마이크 등 촬영 준비가 완료되자, 조감독이 외쳤다.

“레디.”

그러자, 슬레이터라 불리는 슬레이트 담당 스태프가 얼른 카메라 앞에 슬레이트를 가져다 댔다.

“사운드!”

조감독의 사인에 동시녹음 기사가 소리가 녹음되도록 스위치를 켜며 ‘스피드’라고 답했다.

이어 조감독은 촬영감독을 향해 외쳤다.

“카메라!”

촬영감독도 녹화를 진행시켰다는 의미로 ‘롤’이라고 대답했다.

창고 밖과 창고 안에 2대의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두 카메라 모두에 촬영 중을 표시하는 불이 들어왔다.

그제야 슬레이터가 큰 소리로 슬레이트에 쓰여 있는 숫자들을 외쳤다.

“25의 1의 1입니다!”

이것은 25씬의 첫 번째 컷, 첫 번째 테이크를 의미하는 것으로, 나중에 장면과 소리를 편집해서 붙일 때 꼭 필요한 외침이었다.

외침 후 슬레이터는 곧바로 슬레이트를 딱 치고 빠졌고, 드디어 조감독의 ‘액션’ 사인이 떨어졌다.

경찰특공대 복장의 차우민은 세트장의 창고 문을 쾅쾅 두드리며 극 중 아들 역인 도진의 이름을 불렀다.

“도진아! 안도진! 그 안에 있어? 안도진!”

숨죽인 채 창고 구석에서 떨고 있던 도진 역의 하준은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아빠?”

하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밖의 사람이 아빠인지 확인했다.

“아빠! 아빠 맞아?”

“맞아, 아빠야. 우리 도진이 맞구나! 문 열어봐.”

이제 하준이 문을 열어야 할 차례.

아직 의심이 남아있는 도진은 잠가 놓았던 걸쇠를 풀고 한 뼘 정도만 문을 열어 밖을 확인했다.

“도진아!!”

도진의 아빠 역인 차우민은 문틈으로 도진을 보자마자 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도진을 번쩍 들어 안았다.

“도진아, 으흐흑. 살아있어 줘서 고맙다. 고마워.”

“으아앙. 아빠, 왜 이제 왔어? 엄마, 엄마가······.”

하준의 주특기인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눈물 연기가 이어졌다.

꺼이꺼이 우는 하준을 토닥이며 차우민이 다음 대사를 이어갔다.

“그래, 아빠가 늦어서 미안해. 다 아빠 잘못이야. 엄마는······ 일단 너부터 내보내고 아빠가 가서 다시 찾아올게. 이제 아빠랑 여기서 나가자.”

다음은 하준이 대사를 해야 하는데, 하준이 갑자기 연기를 멈추고 눈이 동그래져서 카메라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한 손을 높이 들며 말했다.

“아빠가 대사 한꺼번에 한 것 같아요······. 다 아빠 잘못이야 다음에, 이제 아빠랑 여기서 나가자, 이러고 나서 제가 엄마는 찾으러 안 가? 이러면 일단 너부터 내보내고 아빠가 가서 다시 찾아올게. 이렇게 되는 건데요.”

“어? 아! 그렇네! 죄송합니다. 깜빡 섞였어요.”

차우민이 잠깐 생각하더니 하준의 지적이 맞다며 사과했다.

“컷! 그럼 다시 갑시다. 아니 근데, 하준아, 너 아빠 대사까지 다 외운 거니?”

윤 감독도 일단 컷을 외친 후, 하준에게 물었다.

“진짜 내 대사까지 외운 거야? 정말?”

하준을 안고 있던 차우민도 자신의 대사를 줄줄 읊는 하준이 신기했던지 반복해 물었다.

그러자 하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 외웠어요. 상대의 대사를 알고 있어야 저도 정확한 타이밍에 대사를 할 수 있을 거 같아서요.”

“오, 얘 좀 봐! 그런 마음가짐도 대단한 건데, 그걸 실천할 수 있는 암기력까지 있다니······ 넌 정말 대성하겠다.”

“그러게, 진짜 대성할 애야. 앞으로 대사 잊어버리면 우리 하준이한테 물어보면 되겠다. 하하.”

차우민과 윤 감독은 하준을 크게 칭찬했고, 다른 스태프들과 배우들도 하준의 천재성에 혀를 내둘렀다.

“자, 그럼 다시 한번 가겠습니다. 조용히 해주시고요. 레디······.”

조감독이 다시 레디를 외쳤고, 이어진 촬영은 한 번에 오케이가 났다.

물론 나중에 자연스럽게 편집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한 장면을 다양한 각도로 여러 번 반복해서 찍긴 했지만, 하준은 베테랑 차우민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연기를 해냈다.

“다음 촬영 준비해 주세요.”

스태프들이 다음 촬영 준비를 분주히 하는 동안 하준은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의자에 앉아 차우민과 함께 윤 감독의 다음 장면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여기서 좀비들한테 쫓겨서 이쪽으로 가로질러 뛰어가다가 여기서 총을 쏘고 여기 가판대 뒤에 숨는 거야. 알겠지?”

하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듣다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감독님, 저 좀 급한데,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엇. 그래, 그래. 얼른 갔다 와. 같이 가 줄까?”

윤 감독이 다정하게 물었다.

“아니에요. 혼자 갔다 올 수 있어요. 저도 이제 애기가 아니라 곧 초등학교 들어가는 어린이거든요.”

하준의 어린이부심에 윤 감독과 차우민은 웃음이 빵 터졌다.

“하하. 애기가 아니라 어린이구나. 조심해서 다녀와.”

“네.”

하준은 당당하게 화장실을 찾아갔다.

시원하게 볼일을 보고 난 하준은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맞은편의 여자화장실에서 나오는 한 여자아이를 맞닥뜨렸다.

그런데 여자아이를 보자마자, 하준은 기겁하며 소리를 질렀다.

“으악!”

그 여자아이가 좀비 분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준의 비명에 여자아이 또한 깜짝 놀라 함께 비명을 질러댔다.

“꺄아악!!”

그때, 여자아이의 뒤에서 그 아이의 엄마가 나타났다.

“어머,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엄마, 쟤가 갑자기 소리를 질러서 놀랐어. 으앙.”

여자아이가 하준을 가리키며 자기 엄마 품에 안겼다.

그러자 아이의 엄마는 울먹이는 자기 딸을 달래더니 하준을 흘겨보며 성질을 냈다.

“아니, 너는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니? 우리 애 놀랐잖아.”

“죄송해요. 갑자기 좀비 분장을 한 애가 나와서 저도 놀라서······.”

“우리 딸이 좀비 분장해서 네가 더 놀랐다는 말이니? 아니, 남자애가 그렇게 담력이 약해서 어떡해? 보아하니 너도 여기 촬영 온 거 같은데, 그렇게 해서 촬영을 어떻게 할래? 어휴, 너 때문에 오늘 촬영 NG 많이 나겠다. 요즘은 얼굴만 좀 반반하면 개나 소나 다 아역 배우 한다고 난리니, 참.”

여자아이의 엄마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한숨을 푹 쉬며 다다다 화풀이를 해댔다.

하준은 기가 죽어서 고개를 푹 숙이고 그 엄마의 꾸중을 듣고 있었다.

그때.

“저기요,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하준이 고개를 들어보니, 최선희가 눈앞에 있었다.

“어? 엄마?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하준은 반가운 마음에 엄마라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응, 매니저 대신 엄마가 네 매니저 하기로 했거든.”

“우와, 정말요?”

어두웠던 하준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원래 월드엔터테인먼트에서 매니저를 붙여주겠다고 했는데, 최선희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릴 때는 엄마 손이 필요할 것 같아 직접 매니저 역할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얘 엄마예요?”

대뜸 여자아이의 엄마가 하준을 검지손가락을 기분 나쁘게 가리키며 물었다.

“네, 그런데요. 대체 무슨 일인데 우리 애한테 그런 막말을 하시는 거죠?”

“아니, 애가 조심성이 없이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우리 애를 놀래켰다고요.”

“하준아, 어떻게 된 거니?”

최선희는 하준에게 자초지종을 물었고, 하준은 있는 그대로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은 최선희는 화가 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좀비 분장을 보고 아이가 충분히 놀랄 수 있죠. 그리고 아이가 사과도 했잖아요. 어른이면 두 아이 다 놀랐으니 달래주고 간단히 끝내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게 개나 소나 배우가 어쩌고, 그런 말이 나올 일입니까?”

“참나, 우리 애가 놀랐으니까 그렇죠! 배우 컨디션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그쪽 애는 아무 대사도 없는 엑스트라일지 몰라도 우리 애는 대사가 있거든요.”

최선희는 너무 황당해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아니, 이 여자는 우리 하준이가 주연이라는 걸 모르는 건가?’

엑스트라들은 바로 분장실에서 분장하고 대기하고 있다가 다음 촬영 때 다른 세트장에서 촬영하는 거라 아직 하준이 연기하는 걸 보지 못했다.

게다가 하준은 첫 배우 데뷔니 그 엄마가 하준의 얼굴을 알 리 없었다.

최선희가 피식 웃자, 상대 엄마는 더 성질을 내며 최선희와 하준에게 한 발짝 다가왔다.

“지금 웃어? 우리가 웃겨?”

그때였다.

“어? 당신 언제 왔어? 하준이랑 거기서 뭐하는 거야?”

윤기철 감독이었다.

그는 하준이 좀 오래 돌아오지 않자 화장실도 갈 겸 해서 조감독과 차우민을 대동하고 화장실에 온 참이었다.

최선희를 본 조감독과 차우민이 얼른 고개 숙여 인사했다.

“사모님, 오셨어요.”

“사, 사모님······?”

상대 엄마는 동공이 흔들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거기다 배우 차우민까지 하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들, 하도 안 와서 걱정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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