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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만 걷는 천재스타-8화 (8/150)

8화

8화

“왜, 뭔데 그렇게 급해?”

방에 끌려 들어와 최선희와 마주 앉은 기철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음, 우리 말이야.”

“우리 뭐?”

“······하준이를 입양하는 게 어떨까?”

“정말?”

생각지도 못한 최선희의 말에 윤기철이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물론 윤기철도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하준이와 함께 생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최선희가 그런 말을 먼저 꺼냈다는 게 놀라웠다.

“응, 당신 생각은 어때?”

“솔직히 나도 그런 생각 안 해본 건 아니야. 그치만 입양은 신중해야 하니까······.”

“당신도 입양에 긍정적이라는 거지?”

“응, 하준이 같은 아들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당신한테도, 나한테도. 요즘 하준이 보면 너무 행복하거든.”

윤기철은 하준을 떠올리며 미소지었다.

그러자 최선희도 윤기철을 따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래. 난 하준이를 처음 본 순간부터, 신이 우리에게 보내준 아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입양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었는데, 하준이가 파양 당한 지 얼마 안 돼서 좀 조심스러웠지.”

“나도 그게 좀 마음에 걸려서, 우선은 후견인으로 하기로 한 거지.”

최선희와 윤기철은 입양 후 파양을 당한 하준이 입양에 대해 트라우마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함부로 입양을 입에 올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근데 왜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어?”

윤기철이 그럼에도 이렇게 빨리 입양하자고 하는 최선희가 의아해서 물었다.

“생각해보니까, 하준이가 이제 곧 초등학교 입학해야 하잖아? 그럼 고아라는 거 다 알려질 텐데, 그 또래 애들은 그런 걸로 놀리잖아. 난 하준이가 더 이상의 상처는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서 이왕 입양할 거면 입학 전에 하는 게 나을 거라는 판단이야.”

최선희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어른들이야 고아라고 하면 안타까워서 더 잘해주지만, 그 또래 아이들은 달랐다.

부모님 없다고 놀리고 괴롭힐 확률이 높았다.

“근데 입양 신청해도 하준이 입학 전에 결정이 나지 않을 텐데······.”

입양 신청을 해도 가정법원의 결정이 나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리기 때문에 약 한 달 반 가량 남은 하준의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결정이 나지 않을 터였다.

“입양 결정은 늦게 나와도, 내가 하준이 엄마가 될 사람이라고 담임한테 말해두면 문제없지. 남녀 사이도 결혼식은 먼저 하고 혼인신고는 나중에 해도 주변 사람들은 부부라고 생각하잖아.”

“그렇네. 당신, 생각 많이 했구나? 좋아, 그럼 하준이한테 의견 물어보고 진행하자. ······미안하고, 고마워.”

윤기철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자기 때문에 아이를 갖지 못하는 최선희에 대한 미안함과 이렇게 먼저 입양에 대해 말을 꺼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눈물이었다.

“이제 미안해하지 마. 당신이 우리 아들 데려왔잖아. 내가 고맙지.”

최선희는 씽긋 웃으며 윤기철을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

다음 날 아침, 아침 식사를 마친 윤기철 부부는 하준과 후식을 먹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하준아.”

“네.”

“아저씨가 하는 얘기 잘 들어봐. 있잖아, 아저씨랑 아줌마는 하준이가 정말 좋아. 아들 삼고 싶을 정도로.”

‘아들 삼고 싶다’는 말에 안 그래도 큰 하준의 눈이 더 커졌다.

하준은 그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지 궁금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하준이가 아저씨랑 아줌마 아들이 되어주겠니?”

이번에는 최선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준은 놀랐는지 그 큰 눈을 깜빡이며 윤기철과 최선희를 번갈아 쳐다봤다.

잠시 머뭇거리던 하준은 곧 되물었다.

“아들이 되어달라는 건······ 저를 입양하고 싶다는 말씀이세요?”

“응, 맞아. 하지만 네가 싫다면 우린 강요하지 않을 거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면 충분히 생각해도 되고, 입양이 싫다면 이대로만 유지해도 괜찮아. 네가 행복한 쪽으로 선택하렴. 우린 네가 행복한 게 최우선이니까.”

최선희는 하준이 부담스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하준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윤기철 부부를 바라보았다. 하준의 눈에는 점점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어떡하지? 나도 아저씨, 아줌마가 좋지만······.’

파양의 아픈 기억 때문에 선뜻 입양을 해달라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 하준의 마음을 이해하는 윤기철 부부는 마음이 아려왔다.

파양을 겪은 아이가 아니었다면 엄마, 아빠가 생긴다고 무척 좋아하며 단박에 아들이 되겠다고 했을 터였다.

그래도 하준의 의사는 무엇보다 중요했기에 윤기철 부부는 하준의 대답이 나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그런데 대답보다 먼저 하준의 울음이 터져버렸다.

으흐흑.

최선희는 얼른 하준을 안아주며 달랬다.

“울지마, 하준아. 응? 힘들게 해서 아줌마가 미안해.”

하준을 꼭 껴안은 최선희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렇게 서럽게 울까 싶었다.

윤기철도 눈시울이 붉어진 채 조용히 두 사람의 등을 토닥였다.

최선희의 품에서 엉엉 울던 하준은 곧 숨을 헐떡이며 겨우 물었다.

“아줌마, 아저씨는······ 저 안 버릴 거죠? ······파양, 안 할 거죠?”

이 말을 듣는 윤기철 부부의 마음은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처음으로 하준이 파양의 아픔을 그들에게 드러낸 말이었기에.

담담한 척했지만 역시 하준의 마음에는 이미 깊은 상처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럼! 절대 안 해. 아니, 못해. 이렇게 예쁜 하준이를 어떻게 버리겠니.”

“아줌마랑 아저씨는 끝까지 너랑 행복하게 살 거야. 약속할게.”

최선희와 윤기철은 딱한 하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약속했다.

“으허엉. 저 그럼, 아저씨랑 아줌마 아들······ 할래요. 하고 싶어요.”

하준은 오열하며 이번에는 절대 부모님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최선희와 윤기철을 꼬옥 안았다.

“그래, 그래. 고맙다, 우리한테 와줘서.”

윤기철 부부와 하준은 한참을 부둥켜안고 행복한 눈물을 흘렸고, 최선희와 윤기철은 하준의 상처를 모두 흔적도 없이 아물게 하리라 다짐했다.

“하준아, 이제 그만 울어, 뚝. 여기 물 좀 마시고.”

윤기철이 물을 가져와서 하준과 최선희에게 건넸다.

하준은 서서히 울음을 그치고 물을 홀짝홀짝 마셨다.

“괜찮니?”

“네.”

그런데 하준이 갑자기 배시시 웃었다.

방금 울음에 모든 슬픔을 떠나보낸 모양이었다.

“웃으니 더 예쁘네, 우리 하준이.”

최선희도 안도했는지 활짝 웃으며 하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배시시 웃으며 최선희와 윤기철을 바라보는 하준은 뭔가 할 말이 있는지 입술을 움찔거렸다.

“왜, 무슨 할 말 있니? 뭐든 다 해봐. 아줌마랑 아저씨가 다 들어줄게!”

최선희의 말에 드디어 참고 있던 하준의 말문이 터졌다.

“엄마. 아빠. 감사합니다!”

“어머!”

최선희와 윤기철은 처음 들어보는 엄마, 아빠 소리에 감격했다.

두 사람은 감동의 눈물과 함께 행복하게 웃었다.

“나도 고마워, 아들!”

“나도, 나도! 너무 고맙다, 우리 아들! 아들 생긴 기념으로 오늘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네, 엄마, 아빠.”

이렇게, 윤기철 부부에게는 귀엽고 착한 아들이, 하준에게는 든든한 부모님이 생겼다.

***

“어? 돼지다! 아빠······ 아니, 감독님, 저기 왜 돼지가 있어요?”

첫 촬영을 위해 세트장을 찾은 하준이 윤기철에게 물었다.

윤기철은 하준에게 이번 영화 촬영장에서는 감독님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유명 연예인들도 자기 자식들이 연예인으로 데뷔하면, 실력을 인정받을 때까지 일부러 부모임을 숨기는 경우가 많았다.

괜히 부모덕에 연예인 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준의 경우, 감독인 윤기철이 발탁했기에 대중이 하준의 실력을 알기 전에 하준을 아들로 삼았다는 얘기가 먼저 나오게 되면 하준에게 안 좋은 영향이 갈지도 몰랐다.

그 대신 윤기철은 제작사와 배우들에게 자신이 하준을 아들같이 여긴다는 점을 확실히 해 두었고, 하준의 부모님 관련 얘기는 일절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입단속을 철저히 시켰다.

“아, 저 돼지는 고사 지내려고 가져다 놓은 거야. 고사는 이번 영화 잘 되게 해달라고 비는 제사 같은 걸 말하는 거고.”

“아하······ 으악! 저거 근데 돼지 머리만 잘려있어요!”

하준이 가까이 다가가다가 돼지가 머리만 잘려있다는 걸 깨닫고는 겁에 질려 윤기철의 뒤로 숨었다.

“하하, 저거 모형이니까 무서워할 필요 없어.”

“모형이요? 진짜 돼지 같은데······.”

“진짜같이 만든 모형이지. 이따가 그 앞에서 절할 때 자세히 봐 봐. 살짝 만져봐도 되고.”

“네, 헤헤. 아, 근데, 돼지머리는 왜 있어요? 저건 모형이라 먹지도 못하잖아요.”

돼지머리가 놓인 상 뒤로는 고사상이 차려져 있었는데, 수박, 떡, 사과 등 먹을거리들이었다.

그러니 하준은 돼지머리가 왜 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음, 돼지가 한자로 ‘돈’이거든? 돼지 돈. 아, 하준이, 돈가스 알지? 돈가스에서 ‘돈’이 돼지 돈이야. 돈가스는 돼지고기로 만드는 거거든.”

“아하! 돈가스는 영어인 줄 알았어요.”

“그럴 수 있지. 아무튼, 그래서 돈 많이 벌게 해달라는 상징으로 돼지머리를 쓰는 걸 거야. 이따가 보면 저기 돼지 입에 돈 물리면서 절하니까 잘······.”

윤기철은 하준에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데, 제작사의 박 대표가 하준이를 발견하고 먼저 다가왔다.

“오, 우리 하준이 왔구나! 우리 영화의 귀요미 마스코트!”

“안녕하세요!”

“오늘은 인사가 뭔가 더 밝은 느낌인데? 무슨 좋은 일 있어? 오늘 아침에 맛있는 거 많이 먹었니?”

하준이 밝게 인사하자, 박 대표가 저번 오디션 때보다 느낌이 달라졌다며 이것저것 물었다.

“좋은 일이 있긴 있는데, 비밀이에요.”

“크, 비밀이라면, 그거구만, 그거! 여자친구.”

박 대표는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요즘 어린 애들은 참 빠르다니까. 우리 딸도 말이야, 한 5살 때까지는 내 껌딱지였거든? 근데 유치원 가더니 남자친구 생겨서는 난 찬밥이 됐다니까.”

“대표님 딸은 몇 살인데요?”

하준이 궁금한 듯 물었다.

“응? 이제 20살 됐지. 대학생이야.”

“아, 저보다 훨씬 누나구나요.”

“누나구나요? 하하, 얘 말투 봐, 엄청 귀엽네. 하준이 같은 늦둥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박 대표는 하준의 말랑한 볼을 살짝 찌르며 싱글벙글 웃었다.

잠시 후, 이번 영화와 관계있는 제작사 직원들과 스태프들, 배우들이 모두 세트장에 모였고, 고사가 시작되었다.

고사상에는 배, 수박, 대추 등 먹을거리들이 올려져 있었고, 그 뒤로 병풍이 쳐져 있었다.

병풍 위쪽에는 [‘죽지 않는 백화점’ 무사 촬영과 영화 대박을 기원합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제작사의 박 대표를 시작으로, 홍 피디, 윤 감독, 배우들이 차례로 고사상 앞쪽 상에 올려진 모형 돼지머리에 절을 하고 그 입에 돈 봉투를 끼웠다.

하준은 처음 보는 고사가 너무 신기해서 핸드폰으로 사진도 찍고, 열심히 구경했다.

그러다 이제 하준의 차례가 되었다.

하준은 윤 감독이 마련해준 돈봉투를 가지고 돼지머리 앞에 섰다.

“하준아, 이번 영화 어떻게 됐으면 좋겠는지 소원 말하고 절하면 돼.”

윤 감독이 설명해주자, 하준은 큰 소리로 기원했다.

“돼지머리님, 아무도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촬영하게 해주세요. <죽지 않는 백화점>을 하늘만큼 땅만큼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돼지머리님.”

기원을 마친 하준은 공손하게 돼지머리에 절하고 돈봉투를 입에 끼워 넣으며 한마디 더 했다.

“많이 드세요.”

마지막까지 공손한 하준의 모습에 고사장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들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귀여워!!”

“우리 하준이, 진짜 잘했다!”

“호우, 하준이 최고!”

하준의 절을 끝으로 고사는 약 2시간 만에 마무리되었고, 드디어 <죽지 않는 백화점>의 첫 번째 촬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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