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인터뷰 좀 해주고 가시죠!”
“하준 군에 대한 정보도 하나도 없던데, 기사 잘 써드릴 테니까, 인터뷰 좀 해주세요.”
“영화 홍보에도 도움 될 겁니다. 인터뷰 좀요.”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에 최원상 대표는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하준 군에 대한 관심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아직 하준 군이 어리고, 처음 영화에 출연하다 보니 인터뷰는 오늘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대신 조만간 강하준 군에 대한 보도자료를 돌리도록 하겠습니다.”
최원상은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면 분명히 부모님에 대한 질문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다.
그럼 하준이 고아인 것도 밝혀야 하는데, 그렇게 기사가 나가면 동정표로 관심을 끄는 느낌이 들 것 같았다.
연기와 외모만으로도 충분히 인정받을 인재인데 말이다.
최원상은 나중에 영화가 공개되어 하준이 연기력으로 인정받은 후에 기회를 봐서 알리는 것이 하준에게 훨씬 낫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당분간은 인터뷰 대신 보도자료를 이용할 계획이었다.
최원상은 기자들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윤기철에게 눈짓으로 인사한 뒤 하준을 데리고 나왔다.
“자, 이제 프로필 사진 찍으러 가자.”
“네.”
하준과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하준이 최원상에게 물었다.
“근데요, 아저씨, 프로필이 뭐예요?”
“아, 프로필 사진은 네 소개에 들어갈 사진을 찍는 거야. 최고로 멋있게 찍어놔야 다른 사람들도 보고 너한테 관심을 보이겠지?”
“아하. 소개용 사진이군요.”
“그렇지! 그러니까 스튜디오 가서 이쁘게 찍어보자.”
“스튜디오는 뭐예요?”
“아차, 사진관, 사진관. 아저씨가 아역 배우들을 안 키워봐서 눈높이 대화를 잘 못하는구나. 네가 이해 좀 해주고, 궁금한 거 있으면 지금처럼 바로바로 물어봐. 알겠지?”
“네.”
최원상 대표는 하준을 한 스튜디오로 데려갔다.
“신 실장, 나 왔어.”
최원상 대표는 단골인지,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가며 친근하게 신 실장을 불렀다.
그러자 신 실장이 후다닥 달려 나오더니 하준을 가리키며 물었다.
“어머, 얘가 대표님이 처음 키우게 됐다는 그 아역 배우예요?”
“응, 맞아.”
하준은 이리저리 자신을 뜯어보는 신 실장에게 배꼽인사를 했다.
신 실장의 관찰이 끝나자, 최 대표가 물었다.
“어떤 것 같아?”
“애가 어린데도 벌써 얼굴이 완성형이네요. 커서도 역변 없겠어요. 잘생겼다, 증말!”
신 실장이 하준의 볼을 살짝 꼬집는 척하며 말했다.
하준은 칭찬에 꾸벅 감사 인사를 했고, 최 대표는 연신 싱글벙글 웃으며 만족스러워했다.
“하하하, 정말?”
“네, 그리고······ 대성할 것 같아요. 제가 관상 좀 보잖아요.”
“오, 그래? 근데 믿을 수 있는 거야?”
“그럼요. 저 진짜 잘 맞혀요!”
최 대표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설사 립서비스라고 해도 그냥 기분 좋게 믿으면 될 일이었으니까.
그때, 하준이 끼어들었다.
“저······ 대성이 무슨 말이에요?”
“대성은 크게 성공한다는 뜻이야.”
“아하. 그럼 관상은요?”
“관상은 얼굴 생김새로 미래를 점치는 거.”
“와, 그럼 제 얼굴에 성공할 사람이라고 써 있다는 거네요?”
“쉽게 말하자면 그런 뜻이지.”
말뜻을 모두 알게 된 8살 하준은 순진했기에 그 모든 말을 믿었다.
‘와, 나 정말 크게 성공하는 거야?’
하준의 눈이 커지고 입꼬리가 한껏 올라간 걸 본 최 대표와 신 실장은 그 순진함에 웃음이 나왔지만, 굳이 아닐 수도 있다고 설명하지 않았다.
그렇게 굳게 믿는 게 나쁠 건 하나도 없었으니까. 누가 알겠나, 그 믿음이 실제로 성공을 불러올지.
“자, 그럼 신 실장, 우리 하준이 멋있게 찍어줘.”
“그럼요! 저만 믿으세요. 제 실력 아시죠?”
“알지, 알지.”
월드 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의 공식 프로필 사진은 모두 신 실장에게 맡겨 찍었기 때문에 최 대표는 신 실장의 실력을 믿었다.
그래서 이렇게 직접 체크하지 않아도 믿고 맡길 수 있는 것이다.
최 대표는 한쪽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고, 신 실장은 하준을 의상실로 데려갔다.
의상실에 들어가자, 의상 담당인 김 팀장과 헤어 담당인 정 팀장이 정리를 하다 말고 하준을 쳐다보았다.
하준을 처음 만난 직원들의 감탄이 이어졌다.
“진짜 제가 본 아역 남자애들 중에서 제일 잘생긴 것 같아요. 특히 눈망울이······. 얘 사진 찍으면 눈이 초롱초롱해서 엄청 이쁘게 나오겠어요.”
“나도 기대 중이야. 얼른 옷 갈아입혀 줘. 헤어도 어떤 게 잘 어울릴지 생각해주고.”
“네, 근데 지금 안에 입은 옷도 스타일 좋은데요? 이대로 찍어도 될 것 같아요.”
“맞아요. 앞머리만 올려서 댄디한 느낌 주면 예쁘게 나오겠어요.”
“그래, 일단 하나는 그렇게 가고, 다른 건······.”
미리 몇 가지 촬영 컨셉을 잡아두긴 했지만, 세 사람은 하준을 직접 보면서 다시 한번 의상과 헤어 컨셉을 상의했다.
잠시 후, 하준은 이마를 깐 헤어스타일로 촬영 스튜디오에 다시 나타났다.
휴대폰을 보고 있던 최 대표는 하준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 하준이 깐 머리는 처음 보는데, 더 멋있어 보인다! 근데 옷은 그대로네?”
“지금 이 스타일이 이미 멋있어서 이대로 하나 찍으려고요. 최 대표님이 코디해서 데려오신 거 아니에요?”
“아니, 내가 코디한 거 아닌데? 그거 하준이가 오늘 대본 리딩장에 입고 온 옷이야.”
그러자 하준이 슬그머니 끼어들어 말했다.
“이거, 아줌마랑 같이 가서 제가 골라서 산 옷이에요.”
“어머, 그래? 우리 하준이는 옷도 잘 골라 입는구나! 이따가 그럼 하준이 의견도 물어봐야겠다.”
“애기가 센스도 있네!”
신 실장과 김 팀장이 신기해하며 하준을 칭찬했고, 최 대표는 여러 가지로 괜찮은 아역 배우를 얻은 것 같아 기분이 더 흡족해졌다.
반사판과 카메라, 소품들이 준비된 후, 드디어 하준의 프로필 사진 촬영이 시작되었다.
기본적으로 아역들은 밝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기 때문에 신 실장은 하준에게 환한 미소를 주문했다.
“자, 카메라 보고 활짝 웃어볼래, 하준아?”
하준은 사진 촬영도 연기를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단지 대본이 없다뿐이지.
그래서 스스로 행복한 상상을 만들어냈다.
예를 들면, 엄마랑 아빠랑 손을 잡고 놀이동산에 놀러 가는 상상 같은 것들을.
그러자 하준의 얼굴에는 더없이 해맑은 웃음이 떠올랐다.
“좋아, 아주 좋아!”
찰칵. 찰칵.
하준은 신 실장의 다양한 포즈 요구에도 어색하지 않게 포즈를 잘 잡았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나 멋있지’하는 표정을 짓는다든지, 두 손을 모은 채 ‘부탁을 들어주세요’하는 표정을 짓는다든지.
“최 대표님, 얘 연기도 엄청 잘하죠? 그쵸?”
신 실장이 사진을 찍다가 잠시 멈추고는 최 대표에게 대뜸 물었다.
“어? 맞아. 윤기철 감독이 연기 잘한다고 이번 영화에 캐스팅했거든. 근데 어떻게 알았어?”
“그럴 줄 알았어요! 표정 짓는 것만 봐도 알겠다니까요. 요구하는 대로 표정 연기가 척척이에요. 대부분의 애들은 표정 지으라고 하면 엄청 어색하게 짓거든요. 근데 하준이는 너무 자연스럽게 잘해요!”
“하하, 역시! 우리 하준이는 연기하려고 태어난 애 같다니까.”
최 대표는 아역 배우를 안 키운다고 하준과의 계약을 거절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하준을 자신의 기획사에 가장 먼저 데려와 준 윤기철 감독에게 너무 고마워졌다.
‘조만간 윤 감독한테 밥 한번 거하게 사야겠어.’
첫 번째 의상 촬영이 끝나고, 신 실장은 다시 하준을 의상실로 데려갔다.
그리고 하준에게 입고 싶은 옷을 골라보라고 했다.
하준은 네이비색 후드티와 밝은 아이보리색 카고바지를 선택했다.
“오, 이렇게 입고 싶어?”
“네.”
“그럼 운동화는?”
“운동화는 이거요.”
하준은 검정과 흰색이 섞인, 발목까지 올라오는 하이탑 운동화를 가리켰다.
“크, 너 정말 스타일을 아는구나? 너 지금 약간 개구쟁이 스타일로 고른 거지?”
“네, 개구쟁이 맞아요. 근데······ 스타일이 뭐예요?”
“스타일이란 말도 모르는 애가 이렇게 스타일을 잘 알다니, 너무 웃긴다. 스타일은 음,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뭐야, 나도 모르네?”
김 팀장이 아이러니하다며 웃다가 설명을 해주려 했는데, 막상 단어를 풀어 설명하자니 어려웠는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러자 신 실장이 나서서 설명을 도왔다.
“스타일은 복식이나 모양을 말하는 건데, 하, 설명하기 어렵네······. 아무튼 개구쟁이 스타일이면 개구쟁이같이 옷을 입었다는 말이야.”
“아하, 대충 느낌은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그래, 이해했으니 다행이다. 그럼 얼른 갈아입고 촬영 들어가자.”
하준의 생각대로 이번에 착용한 옷들은 딱 개구쟁이 느낌이 물씬 풍겼다. 전체적으로 색상과 조화도 맞고 하준에게도 잘 어울렸다.
거기에 개구쟁이에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곱슬머리까지 더해지자, 하준은 너무 귀여운 개구쟁이가 되어 있었다.
“오, 이게 누구야? 하준이 이런 스타일은 처음 보는데? 근데 이것도 잘 어울리네! 엄청 귀여워.”
최 대표가 박수를 치며 새로운 모습의 하준을 반겼다.
“하준이가 다 고른 옷들이에요. 애가 진짜 보는 눈이 있어요. 엄청 귀엽죠?”
“어. 진짜 패션 감각도 있나 봐. 하준아, 너 못하는 게 뭐니?”
최 대표가 터져 나오는 기쁨의 웃음을 애써 감추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꼭 대답을 원해서 물은 게 아니었는데, 하준은 질문에 솔직하게 답했다.
“저 못하는 거 많아요. 공부도 못하고, 노래도, 춤도 다 못하거든요. 엄마가 그랬어요.”
양엄마는 하준에게 노래나 춤을 시키며 재롱을 떨어보라고 했지만, 하준이 열심히 해도 항상 못한다는 소리만 들었다.
게다가 전화번호와 집주소도 못 외우고 한글도 작년 말에 겨우 뗐으니 하준은 공부를 못한다는 양부모님의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뭐어?! 잘한다, 잘한다 해 줘도 모자랄 판에 이 인간들이 애 기만 죽여놓고 X랄이야. 나한테 잡히기만 해봐라, 확 그냥······!”
하준을 파양 당한 사실을 아는 최 대표가 얼굴이 벌게져서 열을 냈다.
사정을 모르는 신 실장과 다른 팀장들은 최 대표의 욕설에 깜짝 놀란 듯 서로를 쳐다봤다.
최 대표는 성질을 내다가 당황해하는 하준을 발견하고는 얼른 분을 삭였고, 곧 최대한 다정하게 하준에게 말했다.
“하준아, 네 엄마는 아무것도 몰라서 그래. 우리 하준이는 대본 잘 외우지?”
“네.”
“대본 잘 외우면 공부는 분명 잘할 거야. 공부는 외우는 게 대부분이거든. 그리고 노래랑 춤은 안 배워서 그런 거야. 우리 회사에서 다 가르쳐 주니까 금방 잘하게 될 거야. 알겠지?”
“네!”
하준이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 대표는 그런 하준을 보며 다짐했다.
‘내가 꼭 하준이 성공시켜서 파양한 그 부모들 땅을 치고 후회하게 해준다!’
하준은 양부모님이 틀렸다고 말해주는 최 대표님 덕분에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개구쟁이 컨셉의 사진 촬영을 신나게 할 수 있었다.
“끝났습니다! 수고했어, 하준아.”
“감사합니다.”
하준이 촬영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으러 의상실로 향하는데, 신 실장이 하준이를 불러 세웠다.
“하준아, 그 옷 너 입을래? 너무 잘 어울리는데.”
“정말요? 그래도 돼요?”
“응, 너한테 너무 잘 어울려서 선물로 주고 싶어.”
“와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준은 팔짝팔짝 뛰며 좋아했다.
최 대표도 신 실장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신 실장, 고마워.”
“뭘요, 애가 너무 예뻐서 주고 싶었어요. 사진은 보정해서 내일 오전 중에 보내드릴게요.”
“오케이, 고마워. 그럼 잘 부탁해.”
하준도 최 대표 옆에서 작별인사를 건넸다.
“멋있게 찍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까지 공손하게 인사하는 하준을 보고 직원들은 귀여운데 의젓하기까지 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게다가 고생했다며 과자와 사탕도 잔뜩 챙겨주었다.
하준은 뿌듯한 마음으로 직원들이 챙겨준 간식들을 한아름 안고 최 대표의 차에 올랐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하준은 뒷좌석에 앉아 즐거웠던 오늘 하루처럼 달콤한 사탕을 입안에 쏙 집어넣었다.
그때, 최 대표의 휴대폰이 울렸다.
“어, 윤 감독, 왜? 응, 하준이 다 끝났어. 알겠어. 어.”
최 대표는 윤 감독과의 통화를 마친 후, 룸미러로 하준을 힐끗 보며 말했다.
“하준아, 윤 감독님이 빨리 집으로 오래. 회사 들르지 말고 바로 가자.”
“네, 근데 왜요? 무슨 일 있으시대요?”
“몰라. 와 보면 안다니까, 일단 가보자.”
최 대표는 차를 돌려 윤 감독의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