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길만 걷는 천재스타-1화 (1/150)

1화

“미안하다. 그 말밖에 해줄 말이 없구나. 그 인간이랑 이혼한 마당에 너를 내가 혼자 키울 수는 없지 않니······.”

엄마, 아니 이제는 다시 아줌마가 된 양엄마가 하준에게 말했다.

하준은 답할 말이 없었다.

괜찮다고도, 안 괜찮다고도 할 수 없다.

대답 대신 눈물이 두 뺨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다른 8살의 아이였다면 울고불고 난리가 났을 텐데, 본의 아니게 일찍 철이 든 하준은 그저 조용히 눈물만 떨굴 뿐이었다.

4년.

고작 4년이, 하준이가 엄마, 아빠를 가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하준아, 그럼 엄마, 아니지, 아줌마 갈게. 잘 지내고······.”

하준은 떠나가는 엄마의 마지막 뒷모습만이라도 기억하고 싶어 옷소매로 눈물을 세차게 닦아냈다.

하준은 양엄마의 미안하다는 말만은 진심이었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하준은 안다.

양엄마도 양아빠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귀찮아했다는 것을.

그래도 그 양아빠보다는 나았다.

적어도 양엄마는 때리지는 않았으니까.

그렇게 사랑 없이 키워져서 엄청 행복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엄마, 아빠가 있어서 가끔은 행복했다.

‘안녕, 엄마······.’

그렇게 하준은 다시 고아가 됐다.

***

“들어가자, 하준아.”

보육원 원장이 하준의 어깨를 붙들고 발길을 재촉했다.

하지만 하준은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4년도 더 지난 어릴 적 기억이지만 또렷하게 기억한다.

하준보다 2살 많은 보육원의 망나니, 김대욱을.

김대욱은 이 보육원 원장의 늦둥이 아들이었고, 거의 보육원의 왕자처럼 행동했다.

나머지 보육원의 고아들은 그의 신하, 아니면 장난감 정도에 불과했다.

그리고 김대욱이 좋아하는 여자애가 하준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하준은 보육원생들 중에서도 가장 괴롭힘을 많이 당했다.

매일 꼬집히고, 발로 차이고, 밟히고.

처음에는 순진하게 원장님에게 일렀지만, 아무 소용 없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는 그냥 조용히 맞았다.

그 와중에 찾아온 입양이라는 기회는 하준에게 내려온 구원의 동아줄이었다.

그런데 그 동아줄은 끊어져 버리고 하준은 다시 지옥으로 떨어지고야 말았다.

‘저 안에는 이제 더 힘이 세진 악마가 있겠지? 다시 그 생활로 돌아가긴 싫어.’

하준은 결심했다.

자신이 길바닥에서 얼어 죽는 한이 있어도 다시 이 고통 속으로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준은 몸을 재빨리 돌려 보육원 원장에게서 벗어났다.

그리고 미친 듯이 보육원 밖으로 내달렸다.

“아니, 하준아! 강하준!!”

다행히도 보육원 원장은 몸이 무거워 빨리 뛰지 못했다.

하준은 보육원에서 멀리, 더 멀리 달아났다.

더 이상 하준을 찾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그제야 하준은 멈춰 섰다.

“헉헉.”

하준은 숨을 고르며 잠시 쉬었다.

‘이제 어디로 가지?’

하준은 일단 정처 없이 걸었다.

그런데 얼마쯤 걸었을까.

익숙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호호호~ 여보, 드디어 해방이야!”

이건 분명 엄마의 목소리인데?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자신의 전 엄마, 아빠가 서로 부둥켜안고 있었다.

하준은 순간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생각했다.

‘이혼했다고 했는데, 어떻게 된 거지? ······아! 설마 화해하신 건가? 와, 그럼, 나도 다시?’

하준은 신나서 엄마, 아빠에게 달려갔다.

“엄마! 아빠!”

엄마, 아빠를 부르는 소리에 양엄마와 양아빠는 깜짝 놀라 서로 떨어졌다.

“뭐, 뭐야? 하준이 너, 왜 여기 있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양엄마가 물었다.

하지만 하준은 행복에 겨운 표정이었다.

“저 보육원 싫어요. 엄마, 아빠도 화해하셨으니까, 저도 다시 엄마, 아빠랑 살 수 있죠? 그쵸?”

“아, 아니, 얘가······?”

양엄마는 말문이 막힌 듯 말을 잇지 못했고, 양아빠는 성질을 버럭 냈다.

“애 잘 데려다주고 왔다더니 얘가 왜 여기 있어?”

“그건 나도 몰라요. 애가 잠깐 나왔나 보죠.”

“근데 왜 이런 헛소리를 하는 거야? 당신이 다시 잘 얘기해.”

양아빠는 하준에게서 고개를 돌렸고, 양엄마가 하준에게 말했다.

“하준아, 이제 우리는 너의 부모님이 아니야. 이미 남남이 된 거라고. 그러니까 너의 집은 보육원이야. 알겠니?”

“그건 엄마랑 아빠가 이혼해서 그렇게 된 거잖아요. 하지만 이제 두 분이 화해하셨으니까······.”

의아해하는 하준의 말을 양아빠가 잘랐다.

“하, 얘는 애가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 처먹어? 우린 이제 너 못 키운다니까? 너 키우는데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 줄 알아? 얼른 보육원으로 돌아가. 가자, 정란아.”

양아빠는 그렇게 양엄마만을 차에 태우고, 하준을 길바닥에 남겨둔 채 가버렸다.

하준은 몰랐지만, 두 사람은 하준을 파양하기 위해 위장이혼을 한 것이었다.

하준을 키우는 데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하준을 파양할 방법을 찾다가, 이혼을 하게 되면 법적으로 문제 없이 파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하준을 버린 두 사람은 6개월 후 다시 혼인신고를 할 예정이었다.

‘이혼해서 날 버린 거면, 다시 결혼하면 나를 데려가야 하는 거 아닌가?’

어린 나이에도 철이 일찍 든 하준이었다. 그래서 정확한 사정은 모르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나를 키우기 싫어서 거짓말을 한 거야.

하준은 두 번이나 버림받은 느낌이었다.

아니다, 맨 처음에 보육원에 버려진 것까지 도합 세 번이었다.

‘난 이 세상에 왜 태어난 걸까······.’

하준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버림받으라고, 슬퍼하라고 세상에 태어난 걸까.

하준은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사랑받고 싶었다. 행복하고 싶었다.

그때, 난데없이 하준에게 번쩍하는 빛이 보였다.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

하준은 비명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 픽 쓰러졌다.

길에는 하준을 구해줄 그 누구도 없었다.

그런데 잠시 후, 놀랍게도 하준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일어났다.

‘뭐지?’

분명 누군가 머리를 세게 때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별이 보인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봐도 아무도 없다.

옷도 바닥에 넘어지면서 흙만 좀 묻었을 뿐.

하준은 옷을 툭툭 털었다.

‘그냥 차라리 그대로 죽었으면 더 좋았을걸.’

하준은 혼자 남은 이 세상이 싫었다.

꼬르르륵.

하준은 이 상황에도 배가 고프다는 게 짜증 났다.

그런데 이뿐만이 아니다.

한겨울 추위에 몸도 덜덜 떨려왔다.

하준은 추위를 피하고 싶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 건물에라도 들어가 있으면 여기보단 따뜻하겠지.

하준의 눈에 햄버거 24시간 매장이 들어왔다.

예전에 양엄마와 햄버거 매장에 들어가서 양아빠를 기다리던 생각이 났다.

‘그때 햄버거 안 먹고 앉아 있어도 뭐라고 안 했었어.’

하준은 조심스럽게 문을 밀고 햄버거 매장으로 들어갔다.

직원들이 자신을 보고 뭐라고 할까 봐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하지만 아무도 하준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준은 최대한 자연스러운 태도로 매장의 제일 구석 창가 자리로 향했다.

확실히 추위가 덜했다. 일반 건물에 들어가는 것보다 의자도 있으니 선택을 잘한 것 같았다.

하지만 조금 지나니 맛있는 햄버거와 감자튀김 냄새에 점점 배고픔이 더해졌다.

‘배고프다······.’

배가 고프니까 금방 결심이 흔들렸다.

‘맞더라도, 밥은 주잖아? 잘 곳도 있고······ 보육원으로 돌아갈까? 으······ 아니야, 그 생활은 지옥이었어!’

끔찍했던 옛 기억이 떠올라 하준은 머리를 감싸 쥐고 절레절레 흔들었다.

잠시 후, 다시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본 하준은 화들짝 놀라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갈 뻔했다.

유리창 밖에서 낯선 아저씨가 자신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준은 순간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보육원에서 나 잡아 오라고 보낸 거야!’

하준은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어, 얘야! 잠깐만!!”

아저씨가 다급하게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하준은 매장의 다른 쪽 문으로 달아났다.

그런데.

“으악!”

하준은 스텝이 꼬여 얼마 못 가 철푸덕 넘어지고 말았다.

넘어지면서 짚은 양 손바닥과 무릎이 쓰라렸다.

“으으······.”

그 아저씨는 하준이 넘어지는 바람에 하준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하준은 하늘을 원망했다.

기어코 자신을 지옥으로 보내려 하냐고.

“얘야, 괜찮니?”

낯선 아저씨는 하준을 부축해 일으켰다.

“아이구, 손바닥 다 까졌네! 일단 약국부터 가자.”

하지만 하준은 약국보다 이 아저씨의 정체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아저씨, 근데 누구세요?”

“나? 아, 아저씨는 영화감독인데······.”

“영화감독이요?”

“응, 영화 만드는 사람. 아저씨 이름은 윤기철이라고 해. 네 이름은 뭐니?”

하준의 이름을 묻는 것으로 보아, 보육원에서 보낸 사람은 아닌 듯했다.

하준은 경계를 조금 풀고,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제 이름은 강하준이에요.”

“오, 하준. 이름도 멋지구나. 일단 약국부터 가자. 아저씨 때문에 도망가다가 넘어졌으니 아저씨가 책임을 져야지.”

낯선 사람을 따라가는 건 위험했다. 하준이 경계하는 듯 머뭇거리자, 기철이 안심시키며 말했다.

“아, 바로 앞에 편의점이 있었네. 아저씨가 편의점에서 약 사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

기철은 후다닥 코앞의 편의점으로 달려가 약을 사 왔다. 혹시나 하준이 사라질까 연신 창밖을 내다보면서.

“자, 다 됐다.”

재빨리 돌아와 까진 하준의 손을 치료해 준 기철은 이제 자신이 궁금했던 것들을 물었다.

“하준아, 너 몇 살이니?”

“여덟 살이요.”

“딱 좋구나. 음, 그럼 어디 살아?”

“······.”

사는 곳을 묻는 질문에 하준은 입을 꽉 다물었다.

그때, 눈치 없는 하준의 배가 또 꼬르륵 소리를 냈다.

하준은 자신의 배를 양팔로 감싸 안아 소리를 감추려 했다.

“하준아, 배고프니?”

하준은 대답은 못 하고 기철의 눈치만 보았다.

“배고프구나. 그럼 아저씨가 밥 사줄게. 가자. 뭐 먹고 싶니? 햄버거 사줄까?”

햄버거라는 말에 하준의 고개를 망설임 없이 끄덕여졌다.

기철은 하준과 다시 햄버거집으로 향했다.

하준은 햄버거를 받자마자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기철은 하준이 햄버거를 먹는 동안 다시 한번 이리저리 하준의 얼굴과 표정을 관찰했다.

‘얼굴도 귀엽고, 눈망울도 촉촉하고, 표정도 다양하고······ 딱 내가 찾던 이미지야.’

하준이 햄버거 하나를 다 먹어치웠을 때쯤 기철이 하준에게 슬그머니 물었다.

“혹시 휴대폰 있니? 하준이 부모님과 통화를 좀 하고 싶은데.”

“휴대폰 없어요.”

“아, 그래? 그럼 부모님 전화번호 좀 알려줄 수 있을까?”

기철의 물음에 하준은 너겟을 우물우물 씹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 날 못 믿어서 그러는구나? 아저씨가 영화를 찍고 있는데, 네가 거기에 출연하면 어떨까 해서. 그래서 너희 부모님께 허락을 맡으려는 거야. 그래도 못 알려주겠니?”

“······저 부모님 없어요.”

“응?”

기철의 표정에 놀람과 당황한 기색이 스쳐 지나가더니 곧 미안한 표정이 되었다.

“미안. 부모님이 안 계신 건 몰랐어.”

기철은 얼른 사과하더니 하준이 너겟을 다 먹을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하준이 마무리로 콜라를 마시기 시작하자, 기철이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럼 친척들이나 같이 사는 분들은 없는 거야?”

하준은 보육원을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 엄마, 아빠를 말할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그냥 돌직구를 날려버렸다.

“저 입양됐다가 파양됐어요. 오늘이요.”

“!”

담담한 하준의 말에 기철은 속으로 기함했다.

8살의 아이가 이런 말을 어떻게 이렇게 담담하게 말할 수 있을까.

‘의젓한 건가, 체념한 건가.’

어느 쪽이건 마음이 아팠다.

가장 밝고 힘찰 나이에 전혀 반대의 모습을 가진 하준이 짠했다.

그리고 한참을 뭐라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먼저 말을 꺼낸 것은 하준이었다.

“아저씨, 영화 찍으면 밥 줘요? 혹시 잠도 재워줄 수 있어요?”

“음, 잘되면 그럴 수 있지. 근데 너 연기는 해봤니?”

“한 번도 안 해봤는데요······.”

“그럼 아저씨가 딱 2가지만 시켜볼게. 해볼래?”

“여기서요?”

“응, 쉬운 거야.”

“뭔데요?”

“엄마가······ 아니다, 그냥 한번 울어볼래? 할 수 있겠니?”

기철은 사실 엄마가 자기만 두고 떠난다고 생각하고 울어보라는 요구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차마 그렇게는 말할 수 없었다.

오늘 파양 당한 아이에게 그건 너무 잔인하니까.

그런데 기철이 말을 마치자마자, 하준은 5초도 되지 않아 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철을 바라보던 그 큰 눈망울에 눈물이 차오르더니 곧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작게 흐느꼈다.

그리고 점차 감정이 격앙되며 어깨를 들썩이다가······.

“으흐흑, 으아앙!”

그 또래 아이들의 솔직한 울음소리가 하준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기철은 하준의 순간적인 몰입에도 놀랐지만, 감정 연기의 진실성에 더욱 놀랐다.

기철은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 같은 하준의 표정 연기에 덩달아 눈물이 차올랐다.

‘심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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