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자리에서 일어난 위만이 손을 련에게 향하게 했다. 그 순간 불덩이며 물덩이 같은 온갖 것들이 련을 향해 날아왔다.
“흡!”
련이 여의주의 힘을 끌어모아 지면을 일으켜 세웠다. 단단한 지면은 련에게 훌륭한 방패가 되어 주었다.
지금껏 힘을 아낀 보람이 있었다.
“오래는 못 버텨! 어떻게든 쓰러트려!”
“네!”
서준이 놈을 향해 벼락을 계속 내리쳤다. 그러나 위만은 벼락을 손쉽게 막아냈다.
위만이 손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온갖 재해란 재해는 모두 나타났다. 서준과 련의 여의주가 그래도 몇 개의 능력은 확실히 잡고 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수십 가지의 재해가 공중에서 부딪히고 증발하기를 반복했다. 보통의 사람은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 내장이 진탕이 돼서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 건물은 끄떡없었다. 지면을 일으켜 세워도 어느새 건물은 원상태로 복구되었다.
벼락이 내리치고 불덩이가 날아다녀도 건물은 멀쩡하게 버텼다. 아무래도 이 건물 역시 용의 시체를 이용해 만든 듯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집이었지만 위만의 거처다. 평범할 리 없다.
‘젠장! 이대로는 끝이 없겠어! 아까 했던 말 뭐야?’
-저놈 이곳에 종속되어 있어! 인간이 이렇게 오래 사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여기서 나가면 저놈은 힘을 못 쓴다는 얘기지?’
-그래! 애초에 저런 여의주의 집합체를 인간이 소화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 이 장소가 문제라고! 여길 나가는 순간 여의주의 힘을 버티지 못해 폭발해 죽거나 늙어 죽거나 할 거야! 어떻게든 여기서 끌어내!
‘알겠어!’
이곳에서 위만과 싸우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련과 서준이 최상의 몸 상태로 덤빈다고 해도 아마 오 분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위만과의 전력 차이는 무척이나 컸다.
사용할 수 있는 재해의 개수부터 차이가 났다. 이대로는 이길 수 없다.
“사부님 잠시만 버텨주세요!”
“뭘 하려고?”
“제게 생각이 있어요!”
하지만 서준에게는 생각이 있었다. 위만을 끝장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위만은 서준의 이야기를 신경도 안 쓰는지 무표정한 모습으로 계속해서 재해를 날렸다.
“뭐가 됐든 빨리해라!”
련의 얼굴이 완전히 사색이 되어버렸다. 몇 번 쓸 수도 없는 여의주의 능력을 최대 출력으로 연속해서 사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위만의 재해는 련의 방어를 뚫고 들어와 련에게 상처를 입혔다.
련이기에 지금껏 버틸 수 있었을 뿐이다.
서준의 손에서 검은색의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련은 위만을 견제하느라 서준 쪽을 바라볼 수 없었다.
그러나 련은 서준 쪽을 바라보지 않아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게이트가 내뿜는 기운은 이미 너무나도 익숙했으니까.
련은 서준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기운이 게이트의 전조증상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그런 걸 저놈이 맞아줄 거 같아?”
게이트를 이용한 공격은 분명 엄청난 위력을 지닌 것은 맞다. 아무리 단단한 물체라도 차원 틈 사이에 끼어버리면 그대로 결딴나버리는 건 피할 수 없다.
위만이라고 해도 게이트 사이에 끼인 상태로 게이트가 폐쇄되면 그대로 두 동강 날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서준이라도 게이트는 빠르게 이동시킬 수 없다.
그 말인즉슨 게이트를 위만의 몸 중앙에 만들어야 하는데 위만의 실력으로 그것을 못 피할 리 없다.
련의 눈에는 서준의 행동이 어리석은 행동처럼 보였다.
“걱정 마요. 저도 다 생각이 있으니까.”
서준의 손에서 커다란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오래전 리버스의 아지트를 삼켰을 때처럼 균열이 아주 크게 생겼다.
하지만 균열이 생기는 시간은 그때처럼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서준의 게이트를 다루는 능력은 그때와는 천지 차이가 났으니까.
련이 위만의 재해를 몇 번 막아내는 사이에 균열은 아주 크게 자라났다. 위만은 그럼에도 무표정한 상태였다.
아마도 아직은 게이트를 접한 적이 없었으니 크게 경계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걸로 뭐 하게?”
“여기 무너뜨려야죠.”
“그게 뭔 소용인데!”
서준은 아직 련에게 위만의 약점을 말하지 않았다. 괜히 말했다가 엿들은 위만이 경계할까 싶어서 그랬다.
서준은 련에게 그렇게 말하며 건물에 걸친 게이트를 그대로 폐쇄했다. 건물의 중앙에는 작은 실선이 생겼다.
아주 작은 균열이었다. 유심히 지켜보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는 균열이었다.
그러나 그 균열은 다시는 메꿔질 수 없는 균열이었다.
“뭘 한 거냐! 무얼 한 거야!”
위만이 흥분해서 서준에게 달려들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서준은 방어하려 했다.
련도 서준을 향해 달려오는 위만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위만의 공격은 서준에게 닿지 못했다.
서준을 향해 달려오는 위만의 얼굴에 주름이 가득 생기기 시작한다. 활기 넘치는 몸은 땅을 박차지 못할 정도로 기운이 빠져버렸다.
위만의 얼굴이 순식간에 늙어 들어갔고 피부는 푸석푸석해졌다. 그렇게 몇 초가 흐른 뒤 위만은 그대로 쓰러졌다.
허망한 결말이었다. 세상을 지배하던 사람의 최후치고는 너무나도 허무했다. 그러나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저놈 왜 갑자기 쓰러진 건데?”
영문을 모르는 련이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서준에게 물었다. 지금 제일 당황스러운 건 위만도 아닌 련일 것이다.
만약 위만이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다고 해도 위만보다 련이 더 당황했을 것이다.
“저놈 이 건물 밖으로는 못 나간대요. 이 건물에 무슨 장치가 되어 있어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거래요.”
“별이 말해준 거냐?”
“네. 놈의 모습을 보자마자 알아차린 것 같은데요?”
“믿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통찰력이군……. 나는 아무것도 못 느꼈는데.”
“뭐, 이겼으면 그만이죠. 계속 싸웠으면 졌을 텐데.”
“그렇지 뭐.”
건물의 균열이 생기면서 위만의 생명을 유지해주는 장치에 문제가 생겼다.
그리고 결국 위만은 세월의 흐름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숨을 거뒀다.
애초에 인간이 이렇게 오래 살아서는 안 되는 일이다. 위만은 이미 천기를 거슬렀다.
그때였다. 똑또독 소리를 내며 위만의 목젖에서 작은 구슬이 떨어져 내렸다.
훗날 지구로 향하는 게이트를 연결하는 아티팩트였다. 련은 그것을 주워들며 서준에게 물었다.
“이거 어떡할래? 네가 쓸래?”
“제가 그걸 어떻게 씁니까. 위만처럼 되긴 싫은데요?”
애초에 쓸 수 있는지부터 물어봤어야 한다. 여의주 하나를 감당하는 것도 힘든데 저런 미친 물건을 인간이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위만은 용의 힘을 빌려 건물 안에 자신을 종속시키면서 저 물건을 받아들였다. 위만도 그렇게 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서준은 강한 힘도 좋지만 작디작은 건물 안에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것을 도와줄 용도 없었고…….
“그냥 부숴버릴게요. 누가 악용하기 전에 없애는 게 속 편해요.”
“그래. 받아라.”
서준은 련에게 구슬을 건네받으며 순식간에 작은 균열을 만들었다가 없앴다.
그러자 련의 손 위에 있던 붉은 구슬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이제……. 진짜 모든 게 끝났네.”
“그러게요. 수고하셨습니다.”
“허망하군……. 내 인생을 저당 잡았던 놈들이 사라졌는데 기분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아.”
“아직 실감 나지 않으셔서 그럴 거예요.”
“그래, 일단은 돌아가자.”
서준과 련은 게이트를 열고 약국으로 돌아갔다.
* * *
“어서 오세요!”
“구경 좀 하다 갈게요.”
“네.”
여느 때처럼 서준의 약국으로 손님이 들어왔다. 그러나 초인은 아니었다. 초능력을 쓸 수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서준은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이했다.
위만과의 전투 이후 벌써 오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서준의 예상대로 더 이상 게이트를 열리지 않았다.
괴수의 습격으로부터 고통받는 지구의 시간은 그날 이후 끝이 났다.
물론 지구에 괴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프리카나 무인도, 그리고 창공에는 아직 처리하지 못한 괴수들이 상당수 존재했다.
더 이상 게이트가 열리지 않자 국가는 앞다퉈 소속 헌터들을 아직 괴수가 남아있는 곳으로 보냈다.
국가 방위에 헌터는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부터는 근심거리나 다름없었다.
헌터들의 시선을 딴 데로 돌릴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라 더 이상 괴수 자원을 채취할 수 없게 되었다. 남아있는 괴수를 최대한 많이 잡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지구에 남은 마지막 괴수를 처치하는 데 정확히 이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후의 삼 년은 혼란의 시대였다.
게이트가 닫히고 난 후 더 이상의 초인은 탄생하지 않았다. 잔존 괴수가 모두 사라진 후 강한 힘을 가진 헌터들의 시선을 돌릴 곳도 사라졌다.
온 세계가 혼란에 빠졌다. 전쟁도 일어났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 전쟁을 끝낸 것은 서준과 그 일행들이었다. 강한 무력을 앞세워 혼란을 일으키는 무리들을 제압했다.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는 데는 그렇게 오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물론 완벽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시스템 아래에서 조금씩 회복할 수 있다. 서준을 비롯한 전 세계의 사람들은 기적을 보았다.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이전과 같이 평화로운 세상을 원했다. 엇나가려는 사람은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군림할 수 없었다.
-위이이이이이잉!
약국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요즘 세상에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십중팔구 초인 범죄였다.
세상이 평화로워졌다고 해도 완벽할 수는 없다. 초능력을 지닌 존재와 그러지 못한 존재 사이의 격차는 더욱 커졌으니까.
공통의 적인 괴수는 사라졌고 그 힘을 쓸 곳이 없었으니까.
“이거 얼마에요?”
“칠천 원입니다.”
초인이 아닌 평범한 손님이 물었다. 이계의 약초였다.
서준의 입에서 나온 가격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저렴한 금액이었다. 그러나 손님은 당연하다는 듯이 가격을 지불하고 물건을 쥔 채 약국 문을 나섰다.
이제 초인이 아닌 일반인도 약초를 구할 수 있다. 심지어 가격에 대부분을 국가에서 지원한다. 보험이 되는 것이다.
지구의 환경은 이제 어느 정도 약초를 자생할 수 있게 되었다. 서준의 약국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서 약초를 판다.
물론 재배지 섬에서 직접 캐오는 서준만큼 훌륭한 질을 자랑하지는 못한다.
지금 서준의 약국은 전 세계에서 최고 품질의 약초를 지닌 유명한 약국이 되었다.
“어흥이 너 말 안 들을래!”
-어흥! 어흥!
“내가 너를 얼마나 열심히 키웠는데!”
-어흥! 어흥!
이제 어느덧 중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된 정신비가 어흥이를 혼내고 있다.
정신비도 과거의 상처를 모두 치료했고 평범한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정신비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지만 평범한 학교에 다녔다. 서준의 뜻이었다.
“형님! 저 왔습니다!”
오세근과 김비서가 약국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에 든 건 뭐냐?”
“게이트 럼이요! 몇 개 안 남은 거 챙겨왔죠!”
련이 2층에서 내려오며 물었다. 게이트 럼은 이전보다 귀한 술이 되었다.
돈 많은 오세근도 구하기 힘들 정도였다.
“안녕하세요! 저희 왔어요!”
윤희주와 김소현이 약국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김소현의 양손에는 두 마리에 호랑이 목에 걸린 목줄이 달려 있었다.
“하하, 오늘 무슨 날입니까? 갑자기 다들 찾아오시고.”
“그냥 날이 좋아서요.”
“그럼 저도 약국 정리 좀 할 테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네!”
아직 영업시간이 한참이나 남았지만 서준은 약국 문을 닫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일하기 싫은 날이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날씨, 이런 날에는 즐겨야 한다.
어느덧 서준의 손에는 게이트럼이 잔뜩 잠긴 잔이 쥐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