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겉보기에는 별다를 거 없는 성이었다. 오래전 유재학이 살았던 성과 비교해봐도 오히려 규모는 더 작았다.
서준은 안에 살고 있는 녀석들이 원체 강한 놈들이니 자신감의 상징인가? 하고 생각했다.
웬만한 군대가 쳐들어오더라도 혼자서 능히 막아낼 수 있는 전사들이 집단을 이루고 있는 곳이었으니까.
그러나 련의 말을 듣고 나자 서준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저게 전부 용 뼈랑 비늘로 만든 거라고요?”
“그래, 성을 이루는 모든 구조물은 용의 사체에서 나왔다. 기둥은 용의 허리뼈로 세웠고 성벽은 비늘을 겹쳐서 만들었지.”
“미친 거 아니에요? 무슨 돈지랄이에요.”
“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녀석들이니까.”
성벽은 높지 않았다. 그러나 단단했다. 너무 단단해서 그 어떤 공성 무기를 들고 오더라도 무너뜨릴 방법이 없었다.
성벽 위에 있는 전사들은 혼자서 능히 군대를 상대로 싸울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빽빽하게 서 있었다.
서준은 이제야 자신이 하려는 일이 얼마나 미련한 짓인지 깨달았다.
솔직히 조금 전 시계탑에서 싸움으로는 깨닫지 못했었다. 조금 지치기는 했지만 벼락 몇 번 떨어트린 것으로 상황이 정리됐으니까.
“어떻게 뚫죠?”
“그러니까 힘을 좀 아끼라고 했잖아.”
“난감하네요.”
“그래도 해야지.”
련이 검 손잡이를 꽉 쥐며 검집에서 검을 꺼냈다. 서준과 다르게 련이 여의주를 발동시킬 수 있는 데에는 횟수 제한이 있었다.
해서 여의주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검을 최대한 활용해야 했다.
“성안에 있는 놈 중 절반 정도는 여의주 보유자다. 조심해라.”
“저야 걱정 없지만, 사부님이 걱정이네요……. 횟수 제한이 있잖아요. 어떻게 상대하시게요?”
여의주 사용자와 여의주 없이 싸우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인간이 자연재해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련의 경우는 조금 예외였다. 그 존재 자체가 대륙 제일의 검술 실력을 지니고 있다.
거기에 최강의 용 중 하나인 악룡의 시체로 만든 검을 지니고 있었다.
그 둘의 합이 여의주 사용자와 싸울 수 있는 상태로 끌어올려 준 것이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물론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이 싸움은 전쟁이었다. 일대일의 결투가 아닌 일대 다수의 전쟁이 될 것이다.
현재 련의 상태면 여의주를 사용하지 않고도 저들과 싸우는 것이 가능하기는 하다. 하지만 상대가 다수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디까지나 일대일이라는 가정이었으니까.
그러나 련 역시도 여의주의 사용자였다. 비록 횟수 제한이 있어서 남발할 수는 없지만 사용할 수는 있다.
이 점을 최대한 활용한다면 서준이 저들을 쓰러트리는 동안 방해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어차피 저놈들도 해봐야 한 발밖에 못 쏴. 머리카락 이상 쏠 수 있는 놈은 별로 없어. 그 점을 노리면 돼.”
“그래도 한 명당 한 발씩만 쏴도 엄청날 것 같은데요.”
“일단 지면을 이용하는 것과 벼락과 비구름과 관련된 능력은 봉인된다고 봐야지. 이것들이 여의주가 다룰 수 있는 가장 흔한 능력들인 것을 봤을 때 저들 중 상당수는 여의주가 봉인된 것이나 마찬가지야.”
“그거참 듣기 좋은 소식이네요.”
지면을 활용하는 여의주 중 련의 것보다 강한 것은 없다. 그만큼 련의 여의주는 강력한 힘이었다.
위만이 공들인 이유가 먼데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악룡의 여의주가 서준에게 허락한 힘은 벼락과 비구름이었다. 물론 보조 여의주 덕분에 비구름을 허락받았다.
그리고 악룡의 여의주는 그 어떤 여의주보다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서준의 허락 없이 이곳에 벼락과 비구름이 내리치는 일은 없다.
“먼저 간다. 엄호해라.”
“네.”
련이 검을 아래로 향하게 하며 내성을 향해 달려갔다. 성벽 위에 있던 위만의 전사들이 련을 향해 공격을 날렸다.
불덩이가 날아들고 성을 둘러싼 강에서 물이 범람하여 련에게 날아들었다.
그 와중에 전사들 사이에서 당황한 표정을 짓는 자들이 상당수 보였다.
련은 그들을 향해 도약했다. 성벽 위로 날아가면서도 련은 검격을 날려 몇 명의 적을 쓰러트렸다. 엄청난 신기였다.
“왜? 여의주가 발동 안 해서 놀랐나?”
한 명의 강한 적을 상대하기 위해 상대는 초장부터 전력을 다했다.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여의주지만 모두 힘을 합쳐 날리면 적 하나를 쓰러트릴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들의 패착은 절반 이상이 여의주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련은 그 틈을 이용해 성벽 위로 파고들 수 있었다.
그 누구도 뚫을 수 없는 성이었다. 그 위에는 강한 전사들이 있었다. 그리고 별 이후로 그 성을 최초로 뚫은 전사가 나타났다.
성벽을 낮게 만든 건 자만이 아니었다. 인간의 운동능력으로는 성벽 위로 오를 수 없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련에게는 그 정도는 장애물도 되지 않았다.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치기 시작했다. 련을 향해 달려드는 불덩이와 물덩이 등 여러 재해들이 벼락과 충돌하며 증발했다.
그 충격이 련과 성벽 위의 전사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하지만 련은 전사들과는 다르게 검을 휘두르며 충격을 비켜 맞았다.
“계속해!”
련이 서준에게 소리쳤다. 서준은 계속해서 벼락을 내리쳤다. 이전과는 다르게 전사들에게 직격으로.
재해와 재해의 충돌 사이에서 흔들리던 전사들은 난데없이 떨어지는 벼락을 상대해야 했다.
그리고 련에게 그것은 놓칠 수 없는 찬스였다.
련은 당황한 전사들을 놓치지 않고 몸소 찾아가 검을 놀리며 하나둘씩 쓰러트렸다.
-제법인데? 저 정도나 할 수 있다니.
련의 제대로 된 검술은 서준도 별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전에는 용을 상대로 했다. 용 상대로 검술의 현묘함을 보인다고 해도 소용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인간을 상대로 하는 련은 정말로 놀랍기 그지없었다.
련의 검술은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고 불리는 별이 감탄할 정도였다. 그 정도로 놀라운 검술이 당황한 전사들 사이에서 발휘되고 있었다.
적들이 련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성벽으로 위만의 전사들이 계속해서 몰려들었다. 련은 검을 멈추지 않고 그들을 끝없이 받아내었다.
그들의 머리 위로 서준의 벼락이 끊임없이 내리쳤다.
“허억, 허억, 허억!”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서준의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이미 한계는 넘은 지 오래였다. 서준은 시계탑에서부터 무리해왔다.
그 상태로 여의주를 지닌 전사들을 상대했다. 상대의 재해가 련에게 닿지 않게 하기 위해 벼락을 계속해서 뿌려댔다.
상대가 여의주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도 련을 도와 적들의 머리에 벼락을 계속해서 떨어트렸다.
이미 서준의 몸 상태는 어제부터 맛이 간 상태였다. 비구름에 전기를 섞어 흘려보냈을 때부터 정상은 아니었다.
“해야 하잖아. 어쩔 수 없어.”
그럼에도 서준은 멈출 수 없었다. 지금 서준이 벼락을 멈춘다면 련은 저들을 이기지 못한다.
아무리 련이라고 해도 물량 공세에는 답이 없다. 서준은 몸에 부담이 가는 것을 알면서도 묵묵하게 련을 지원했다.
“허억, 허억, 끝인가?”
련이 검으로 땅을 짚으며 숨을 내뱉었다. 더 이상 성벽 위로 올라오는 적들은 없었다.
“허억! 허억! 허억!”
서준도 숨을 가파르게 쉬며 성 쪽으로 걸어갔다. 아무래도 대부분의 적들은 이미 모두 쓰러트린 것 같다.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애초에 고수들의 전투는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난다.
한 번의 공격으로 땅을 가르고 벼락이 치게 할 수 있는 자들의 전투였다.
일격으로 목숨을 주고받는 전투였다. 시간이 오래 걸릴 리 없다.
“기다려라. 문 열어줄게.”
“네.”
서준이 성벽 앞으로 도착하자 련이 성벽 위에서 걸어 내려오며 말했다.
련도 지치는지 검을 땅바닥에 질질 끌며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안에는 평범하네요.”
“뭐,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지.”
련이 성벽을 열어주자 서준이 성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성벽 안은 실제로도 평범했다. 유재학이 살던 성의 내부와 크게 다를 것 없었다.
성벽처럼 용의 시체로 건물을 지은 것도 아니고 평범하게 돌과 나무를 이용해 지어진 집들이었다.
“위만 그놈은 어디 있을까요?”
“제일 안에 있겠지. 나도 이곳에서 꽤 오래 살았지만 위만 그놈은 본 적 없어.”
“그래요? 살아있긴 한 걸까요?”
“글쎄……. 너무 긴 시간이지. 만약 살아있다면 정말 늙은 괴물일 게다.”
“무섭네요.”
“그래도 해야지.”
지금 아티팩트의 위치를 알 수 없다. 위만이 눈을 뜨고 있는 이상 여기서 아티팩트를 찾을 수는 없다.
차라리 위만을 쓰러트리고 안전을 확보한 후에 찾는 게 백배 나았다.
서준과 련은 성의 한가운데 세워진 거대한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통념상 지배자는 그곳에 있기 마련이다.
“적어도 오백 년은 살았을 텐데……. 기대되네요. 어떤 괴물이 있을지.”
“각오 단단히 해둬.”
서준과 련은 성 한가운데 있는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건물 내부의 구조는 특이했다.
아무런 기둥도, 그 어떤 구조물도 가구도 없었다. 완전한 정사각형의 내부에는 의자가 하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의자 위에는 검을 망토를 둘러멘 사람이 한 명 앉아있었다.
-위만! 위만! 저 개새끼 당장 죽여버려!
그 모습을 본 별이 흥분하며 소리쳤다. 아무래도 진짜 위만이 맞는 듯했다.
“와……. 하나도 안 늙었네.”
서준도 위만의 얼굴을 본 적이 있었다. 별의 기억 속을 보았을 때 서준은 위만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위만은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못해도 오백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을 텐데 놀라운 이야기였다.
“맞지?”
“네, 맞아요.”
위만의 얼굴을 본 적 없는 련이 서준에게 물었다. 련은 그러면서도 위만에게서 시선을 떼놓지 않았다.
조금의 움직임도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이었다. 오백 년 이상 이런 집단을 이끌어온 놈이었다.
한눈을 파는 순간 목숨을 잃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별의 기억 속에 있던 모습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어요. 어떻게 늙지도 않고 살아있는 거죠?”
“아마……. 저것 때문이겠지.”
련이 검을 들어 올리며 검 끝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별의 기억 속에 있는 위만과 현재의 위만 사이에 유일하게 달라진 부분이었다.
위만은 예전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만 딱 하나 달라진 게 있었다.
“저거……. 그 아티팩트 맞죠?”
“그런 것 같구나. 크기는 좀 작아진 것 같지만.”
위만의 목젖이 위치할 자리에는 붉은색의 구체가 대신 자리 잡고 있었다. 아무래도 위만은 여의주의 힘을 이용해 장생한 듯했다.
“대단하군. 여기까지 찾아오다니. 힘들게 키운 부하들을 모두 잃었어.”
“알면서 놓아둔 건 아니고?”
“부하들이야 또 키우면 그만이니까.”
위만이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사실이었다. 만약 성벽을 뚫을 때 위만이 도우러 왔다면 일이 틀어졌을 수도 있다.
-거짓말이다. 저놈, 이 건물 밖으로 못 나와.
하지만 별의 말은 달랐다. 위만은 아무래도 이 건물 안에 종속되어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