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준비 단단히 됐겠지?”
“네, 몸만 가면 됩니다.”
서준과 련은 이른 아침부터 전투 준비를 끝마친 채 약국 1층에서 모였다.
두 사람은 오늘 위만과의 정면대결을 준비 중이다. 뭐, 준비라고 해봐야 마음을 단단히 먹는게 전부였지만.
“명심해라, 다른 도움은 바라지마. 너와 나 단둘이서만 가는 거야.”
“네, 이미 마음 단단히 먹었어요.”
“그래, 어떻게 해야 할지는 이미 다 숙지했겠지?”
“네.”
어제 서울 한복판에서 한 번에 쉰 개의 게이트가 열렸다. 역대 최고의 규모였다.
약국 근처였다면 아무 피해 없이 서준이 막을 수 있었겠지만 그러기에는 거리가 있었다.
덕분에 어제 죽은 사람만 삼천 명이 넘었다.
대침공 이후 여러 길드들의 활약으로 안정화된 대한민국에서 사상 최대의 피해 규모였다.
지금 대한민국은 온통 난리였다.
갑작스럽게 개방된 오십 개의 게이트와 그 안에서 튀어나온 강력한 괴수들, 서울 전역을 뒤엎은 커다란 먹구름 그리고 괴수들을 감전시킨 빗방울.
그것들을 분석할 여유 따윈 없었다. 어제 죽은 삼천 명의 사람들과 팔천여 명의 부상자들 그리고 그 가족들 가족들의 통곡 소리가 온 대한민국을 덮었다.
이전 테러 사건 이후 가장 많은 통곡 소리가 대한민국에 울려 퍼졌다.
며칠 전에 서울에서만 스물세 개의 게이트가 열렸고 어제는 쉰 개의 게이트가 열렸다.
이 추세대로라면 앞으로 칠십 개 백 개, 그리고 이백 개의 게이트가 열릴 날도 올 것이다.
그렇게 지구와 위만의 세계가 완전히 연결되고 나면 괴수의 씨앗이 완전히 지구로 넘어오게 되고 지구는 되돌릴 수 없이 황폐해질 것이다.
괴수로 뒤덮인 지구에서 인간이 차지할 수 있는 구역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초인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일반인들은 결국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서준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서준은 무리한 여의주 운용으로 인한 부담이 다 회복되지 않았으나 쉬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해서 서준은 바로 오늘 련과 함께 위만과의 정면대결을 준비하고 있었다.
“넘어가면 놈들의 한복판이다. 놈들이 미처 대비하기 전에 공격해야 한다. 놈들도 우리가 갑자기 자기들 심장부에서 튀어나올지는 예상 못 할 거야. 물론 외성에 있는 놈들이 놈들의 주 전력은 아니지만 골칫거리인 건 사실이다. 첫 공격에 최대한 많은 놈을 무력화시켜야 해.”
“네, 알고 있어요.”
게이트는 지금 시계탑에 지정되어 있었다. 지금 서준이 게이트를 열고 들어가면 놈들의 심장부에서 공격을 시작할 수 있다.
기척을 느끼고 바로 대처한다고 해도 찰나의 틈은 보일 수밖에 없다.
놈들이 첫 공격을 눈치채기 전에 최대한 많은 적을 쓰러트려야 뒷일을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다.
“들어가자마자 몸에 부담 가지 않는 선에서 벼락을 되는대로 떨어트려. 나는 횟수 제한이 있어서 돕지 못한다.”
“네. 알겠습니다.”
“부담 가지 않는 선이란 걸 명심해라. 괜히 무리했다가 진짜 중요할 때 힘을 못 쓰면 의미 없어.”
“네.”
출력을 넘어서는 공격을 하다간 어제처럼 힘이 풀려버릴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진짜 중요한 순간에 힘을 못 쓸 수가 있다.
최대한 힘을 보존한 채 최소한의 공격으로 적을 쓰러트려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서준의 판단과 결정이 중요한 순간이다.
“그럼 가자.”
“네.”
더 이상 긴말은 필요 없었다. 서준은 게이트를 열어 바로 넘어갔다. 련 역시 서준을 쫓아서 바로 게이트를 넘었다.
시계탑에 게이트가 열렸고 서준과 련이 튀어나왔다. 위만의 전사들이 그 파동을 놓칠 리 없었다.
자신들의 마을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다. 현시대의 위만들이 게이트의 존재를 아는지 모르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이질적인 파동은 의심스럽기 그지없었다.
쉬고 있던 위만의 전사들과 경계를 서고 있던 위만의 전사들이 시계탑 쪽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바로 쏴!”
“네!”
서준은 그 모습을 시계탑 꼭대기에서 모두 바라보고 있었다. 사방에서 밀려드는 위만의 전사들은 결코 적지 않았다.
서준은 여의주에서 힘을 끌어모았다. 가슴 언저리가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위만의 전사들 중 원거리 타격이 가능한 녀석들이 서준을 향해 공격을 날렸다.
시계탑에서의 이질적인 기운으로 서준과 련이 시계탑에 있다는 것은 이미 걸렸다. 서준의 몸에서 여의주의 힘이 들끓는 것도 놓칠 리가 없다.
위만의 공격들은 다행히 여의주의 힘은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위만의 전사들 중 여의주를 허락받은 전사는 몇 없었다.
쩌렁쩌렁 소리를 내며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꽂기 시작했다.
스물세 개의 게이트를 한 번에 상대했을 때와는 다른 벼락이었다. 그때는 한 개의 벼락에서 스물세 개의 줄기가 내리 떨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수십 개의 벼락이 서준을 주위로 방사하듯 떨어졌다.
“너무 무리하지 마라!”
그 모습을 본 련이 걱정스러운지 소리쳤다. 두 번째 현상을 불러오는 것만큼은 아니더라도 몸에 부담이 갈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부담이 심화되면 전투속행이고 뭐고 결국 죽게 될 것이다.
련은 제자가 걱정됐는지 표정을 찡그렸다.
“이 정도는 해야 해요! 대충 해봐야 먹혀들지도 않아요! 사부님도 알잖아요!”
사실 련도 알고 있었다. 괴수들을 잡을 때처럼 약한 벼락으로는 이들을 상대할 수 없었다.
서준도 사실 이들을 직접 마주하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을 향해 살기를 내뿜으며 달려드는 놈들을 보자마자 알아챌 수 있었다.
예사 공격으로는 이들에겐 생채기도 나지 않는다.
“젠장!”
련은 표정을 썩히며 서준을 향해 날아드는 공격을 쳐냈다. 잘 제련된 용무기가 서준을 요격해오는 모든 공격을 말끔히 사라지게 만들었다.
“방어는 신경 쓰지 마라! 그냥 무작정 갈겨!”
“네!”
이쯤 되면 련도 서준을 만류할 수 없다는 걸 알아챘다. 그냥 서준이 하고 싶은 데로 놔두며 최대한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련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서준의 주위로 벼락이 마구 내리쳤다. 서준을 향해 달려오던 위만의 병사들의 머리 위로 벼락이 내리치기 시작했다.
말단 병사는 벼락이 떨어지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그대로 감전해 죽어버렸다.
몇몇 말단 전사들은 벼락이 오는 것은 알아챘지만 막지 못했고 그대로 몸이 타 죽어버렸다.
그러나 그 위에 있는 수십의 전사들은 서준의 벼락을 막아냈다.
“계속해라! 여러 번은 못 막을 거야!”
련은 누구보다 위만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주위에 있는 놈들은 위만에서는 고수 취급도 못 받는 녀석들이다.
련은 그들의 복색만 봐도 그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벼락 한두 번이면 대강 상황이 정리될 것을 어렴풋이 예측했다.
기습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계탑 중앙에서 시작하지 않고 입구부터 뚫으려 했으면 고생했을 게 뻔했다.
“네!”
벼락이 다시 빠른 속도로 내리치기 시작했다. 하늘에선 쩌렁쩌렁하며 쇠그릇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두 번 벼락을 막아내던 전사들도 더는 견디지 못하고 모두 쓰러졌다.
그리고 이제 땅 위에 남아있던 전사는 단 한 명이었다.
“저놈! 여의주 사용자예요!”
“알고 있어! 저놈은 내가 처리할게! 쉬고 있어라!”
놈은 땅을 조종해 서준의 벼락을 막아냈다. 벼락을 몇 번 더 내리치다 보면 놈을 잡을 수 있을 법도 했지만 서준은 쉬는 것을 택했다.
이미 몸에 부담이 상당해서 더 이상 힘을 사용하다가는 뒷일을 감당 못 했다.
그 상황을 잘 알고 있던 련이 검을 들고 시계탑에서 뛰어내렸다.
“이야……. 이 높이에서 뛸 생각을 하네.”
-별로 안 높은데?
확실히 신체 능력은 련이 서준보다 한참 앞선다. 서준이 앞서는 건 보조 여의주의 출력뿐이다.
서준은 힘이 다 풀렸는지 난간을 부여잡고 겨우 서서 련과 전사가 가까워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호흡이나 해라. 최대한 몸을 진정시켜.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
서준은 심호흡을 하며 흔들리는 호흡을 진정시켰다.
모든 것은 호흡에서 시작되었다. 호흡만 잡을 수 있다면 전투 능력을 몇 배나 끌어 올릴 수 있다.
호흡만 잡을 수 있다면 몸의 재생력 역시 월등히 오른다. 부담된 몸을 진정시키는 데는 호흡이 최고였다.
련이 공중에서 떨어지며 놈에게 검을 찔러넣었다. 련을 마주한 전사도 련의 검술이 보통이 아니란 것을 알아챘는지 여의주로 방어를 시작했다.
여의주 없이 맨몸 전투로는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그러나 허망하게도 놈의 여의주는 발동하지 않았다. 놈은 그대로 련의 검에 심장을 꿰뚫린 채 숨을 거뒀다.
“하여간 대단하신 분이야.”
-저 정도는 짐에겐 간단한 일이지.
서준은 이어지는 별의 자랑을 뒤로한 채 시계탑을 내려갔다.
물론 련처럼 뛰어 내려가지는 못했다. 계단을 이용해 천천히 내려갔다.
몸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난간을 붙잡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려갔다.
“어때? 계속해도 되겠어?”
“이제 충분히 회복됐어요.”
서준이 계단을 다 내려와 시계탑에서 나오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련이 물었다.
“네, 충분히 회복했어요. 계단 내려오면서 호흡도 다 안정시켰고요. 전투속행 가능합니다.”
“그래.”
물론 말끔히 회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아도 될 정도의 몸 상태는 만들어두었다.
애초에 각오한 일이었다. 둘이서 한 군단을 상대하는 일이다. 힘들지 않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봤지? 이게 여의주의 싸움이야.”
“네. 놈의 여의주가 사부님의 여의주보다 약해서 발동 안 된 거죠?”
“그래.”
놈의 여의주는 지진을 일으키는 현상을 허락했다. 놈은 그것을 잘 제어해서 땅을 이용해 공격과 방어를 했다.
그리고 그것은 련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의 여의주는 사용자에게 같은 현상을 허락했다.
그러나 위만의 전사에게는 안타까운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련의 여의주가 더욱 강한 출력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같은 능력을 지닌 여의주와 싸울 때는 조심해야 한다. 더욱 출력이 강한 쪽이 무조건 이기게 되어있으니까.”
“네. 명심하겠습니다.”
“뭐, 우리 둘이 가진 여의주보다 강한 건……. 찾아보기 힘들 것 같지만.”
같은 자연 현상을 부릴 수 있다면 당연히 더욱 강한 출력을 가진 쪽이 제어권을 갖기 마련이다.
련의 여의주가 더 강했기에 놈의 여의주는 발동되지 않았고 그대로 련의 검에 꿰뚫릴 수밖에 없던 것이다.
“이거 가져가서 나중에 애들이나 하나 줘라.”
“네.”
련의 손에는 여의주가 하나 들려있었다. 여의주에게 인정받은 사람을 죽이면 그가 지닌 여의주를 취할 수 있었다.
련이 여의주를 취하는 것을 위만이 기다렸던 이유다.
“네.”
서준은 게이트를 열어서 재배지 쪽으로 여의주를 던졌다.
여의주의 크기가 그렇게 큰 것은 아니지만 들고 다니면서 싸우기에는 거치적거렸다.
조금의 실수가 패배로 직결되는 상황에 들고 다니기에는 부적절했다.
“여의주 수확 좀 해보자고요.”
“그래, 좋은 것만 골라서 애들 나눠 주자고.”
“네.”
앞으로 상대해야 할 여의주가 수십이 될지 수백이 될지는 모른다.
그러나 승리 후 취하게 될 여의주가 셀 수 없이 많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서준과 련은 여의주 사냥을 위해 놈들의 내성 쪽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