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게이트가 열렸다. 물론 약국과는 상당히 떨어진 장소였다.
그러나 워낙에 열린 게이트가 많았기에 그 파장 역시 강렬했다. 멀리 떨어진 서준조차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이 정도면 못해도 50개는 열린 거 같은데요?”
김비서가 말했다.
-실패네.
‘젠장…….’
아무래도 시계탑에 있던 보석은 가짜였던 것 같다.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할 때가 왔다.
“차 타고 가면 15분이면 갈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어떡할까요”
“가야겠지. 서울에 있는 길드만으로는 못 막아. 우리가 가야 해.”
“알겠습니다.”
못해도 50개의 게이트가 열렸다. 대침공 이후 사상 최대의 규모였다.
서울에 있는 길드의 역량만으로는 절대 막을 수 없다. 지금 위치와 거리는 꽤 있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규모였다.
김비서가 차 열쇠를 들고 차를 빼러 갔다.
“나는 어흥이 타고 먼저 가 있을게.”
“네.”
“어흥아!”
서준은 어흥이를 불러 그 위에 올라탔다. 캬앙이와 크릉이도 그 뒤를 따랐다.
어흥이의 발이 빠른 속도로 지면을 차기 시작했다. 얼마나 빠른지 밖에서 보면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냥 멀리서 번개로 요격하면 되는 거 아니야?
‘그래야지. 근데 이 거리에서는 무리야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걸 맞출 수는 없어.’
서울에 존재하는 모든 길드의 역량을 쏟아부어도 50개의 게이트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물론 24시간 동안 버티는 것도, 오히려 뚫고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 한 건 아니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에게 아무런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건 지금의 인력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서준은 그것이 가능했다. 서준의 시야 안에만 들어오면 얼마든지 벼락을 떨어트릴 수 있다.
그리고 그 위력이 엄청남은 이미 증명된 지 오래다.
-그래도 숨어서 쏴야 하지 않겠냐? 네가 한 걸 알면 골치 깨나 썩을 거 같은데?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 시끄러운 건 딱 질색이야.’
여의주의 힘은 특별한 능력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강했다.
일 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약초꾼이었던 서준 혼자서 지금은 서울의 길드 전체를 합한 것보다 효율이 좋다.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당연히 시기 질투도 지금보다 더 심해질 테고 서준을 귀찮게 하는 것들도 더 많아질 것이다.
그렇다고 힘으로 그것들을 뚫고 나갈 수도 없는 일이다.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서 그냥 숨기는 게 나았다.
“여기가 좋겠네. 어흥아 멈춰봐.”
-어흥!
적당한 장소를 찾은 서준은 어흥이를 멈춰 세웠다. 캬앙이와 크릉이도 함께 멈춰섰다.
주위는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다. 빠르게 달려왔다고는 하지만 이미 게이트 내부에서 괴수들이 쏟아져나온 지 오래였다.
게이트는 무려 오십 개가 넘었다. 서울에 있는 길드란 길드들이 다 달려오고는 있다지만 시간을 맞추는 건 사실상 불가능이나 마찬가지다.
그러기에는 서울이 너무나도 넓었다.
“너희들은 눈에 보이는 괴수들 그냥 닥치는 대로 다 죽여. 혹시 위험에 처한 사람 있으면 도와주고.”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호랑이들이 답하며 서준의 곁에서 흩어지듯 멀어졌다. 이제 상황이 종료되기 전까지 빠르게 이동하며 눈에 보이는 괴수들은 다 처리할 것이다.
-저기서 쏘면 딱 맞겠네.
‘그래.’
별이 가리킨 방향을 보니 높은 건물이 하나 있었다. 저 위에 올라서면 주위의 게이트들을 한눈에 볼 수 있을 것이다.
서준은 그리 판단하며 빠르게 건물을 올랐다.
평범하게 계단을 오르기에는 상황이 너무 급박했다.
서준은 건물의 벽을 차며 건물 위로 올라갔다. 이미 괴물이나 다름없는 신체 능력을 갖추게 된 서준에게 이런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돌아버리겠네.”
옥상에 올라서서 주위를 바라보던 서준이 탄식하듯 말했다.
상황은 며칠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스물세 개라는 어마어마한 게이트가 열렸을 때는 서준이 그 근처에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이곳까지 오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옥상에서 바라본 광경은 처참했다. 몇인지 셀 수도 없는 수많은 괴수들이 몇 안 되는 헌터들을 몰아붙였고 도망가는 시민들을 습격했다.
도로는 이미 반파된 차들로 막혀서 이용할 수 없게 되었다.
길드들이 이곳에 도착하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듯했다. 멀리서부터 시작된 피난 행렬과 괴수의 시체 그리고 버려진 차들로 도로는 완전히 마비되어버렸다.
서준은 몸속에 있는 여의주를 느끼며 힘을 끌어모았다.
하늘이 갈라지며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먹구름의 크기가 조금씩 커지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서울 거대한 먹구름이 서울 일대를 뒤덮었다.
도망치던 사람들도 무방비 상태의 먹이를 마음껏 뜯어 먹던 괴수들도 이상한 현상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미쳤네. 미쳤어.
별조차도 서준이 끌어낸 힘이 놀라운지 감탄을 내뱉었다. 용을 지렁이 잡듯이 잡던 별에게도 오늘의 광경은 놀라운 광경이었다.
-괜찮겠어? 이 정도 힘은 소화하기 힘들 텐데.
‘괜찮아. 아직 견딜 만해.’
아무리 보조 여의주가 있다고는 해도 이 정도의 힘을 끌어오는 건 몸에 무리가 갔다.
본래 여의주의 힘이란 것이 인간이 품기에는 너무나도 강대했다. 해서 단 하나의 현상만이 허락받았다.
서준이 허락받은 힘은 벼락이었다. 그리고 그 힘을 본인의 기운 대신 보조 여의주에서 충당해주며 마음껏 난사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서준이 벼락을 내리칠 때 먹구름이 낀다거나 비바람이 몰아치는 일은 없었다.
서준이 허락받은 현상은 오로지 벼락 단 하나였고, 비바람은 허락받지 못했다.
서준이 벼락을 내리칠 때는 난데없이 마른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이상 현상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서준이 허락받은 건 오로지 그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서준은 서울 일대를 뒤엎을 만큼 거대한 먹구름을 만들어 냈고 그 아래는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작은 괴수들은 바람을 이겨내지 못하고 몸이 튕겨 나가기도 했다.
-제법인데? 다른 자연 현상을 끌어내다니. 생각보다 대단한데?
‘말 걸지 마. 머리 깨질 것 같으니까.’
물론 서준이 대단하다든가 해서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서준의 재능은 남들보다 조금 뛰어날 뿐 엄청나지도 않았을뿐더러 천재라 불리는 련조차도 하나의 현상만 허락받았다.
서준이 이처럼 다른 자연 현상을 허락받을 수 있던 것은 오로지 보조 여의주 덕분이었다.
출력의 상당 부분을 보조 여의주가 대신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두 개의 자연 현상이 만나자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단순히 벼락을 떨어트릴 거면 이렇게 하지도 않았다.
벼락을 상당 부분 제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미 주위를 완전히 장악한 괴수들에게 모두 벼락을 떨어트리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기에는 괴수들의 수도 너무 많았고 그 범위도 너무 넓었으며 그 사이사이에 사람들이 끼어있었다.
빗방울에 강한 전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한 방울 한 방울 작은 빗방울이 전력을 품자 주위의 온도가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빗방울들이 괴수들을 덮쳤다. 작은 빗방울에 담긴 전류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한 방울 정도라면 따끔한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거대한 괴수의 몸체를 덮는 빗방울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한 번에 많은 빗방울이 그들의 몸을 적셨고 빗방울은 시간차를 두지 않고 계속해서 떨어졌다.
작은 괴수들은 진작에 모두 감전되어 죽었고 커다란 괴수들도 괴로움에 몸을 떨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도 사람들에게는 단 하나의 빗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
세차게 부는 바람이 사람에게 떨어지는 빗방울만을 저격한 듯 빗방울을 밀어냈다.
빗방울을 맞고 쓰러지는 건 오로지 괴수뿐이었다.
-너도 괴물이 다 됐구나.
동상 속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별이 감탄을 쏟아냈다. 아무래도 서준이 이 정도까지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허억! 허억!”
서준이 깊은숨을 토해내며 난간에 기대어 쓰러지듯 앉았다. 그와 동시에 먹구름이 사라지고 비바람도 그쳤다.
지상에 존재하던 대부분의 괴수들은 감전당해 죽어버렸고 겨우 버틴 소수의 괴수들만 남았을 뿐이다.
저들은 호랑이들과 현장을 찾은 헌터들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이제 서준의 임무는 끝이 났다.
‘내가 뭘 한 거지?’
-미쳐서 날뛴 거지 뭐. 그런 거 몇 번만 더 하면 너 진짜 죽을걸?
‘하아…. 겨우 몸 회복시켜놨는데 또 이렇게 됐네.’
물론 서준의 몸에는 엄청난 부담이 가해졌다. 게이트를 열고 닫으며 생긴 부담을 겨우 치료해놨더니 여의주의 힘을 너무 과하게 끌어와서 다른 부담이 가해졌다.
서준도 본래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옥상에서 본 광경은 너무 처참했고 서준은 저도 모르게 흥분해서 필요 이상의 힘을 끌어왔다.
덕분에 몸속에서 타는 듯한 느낌이 났다. 두 군데였다. 바로 여의주와 보조 여의주가 있는 자리였다.
‘하, 죽겠네. 이 정도면 알아서 처리하겠지?’
-못하면 바보지. 살아남은 놈들도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데.
‘약국으로 돌아가야겠네.’
서준은 난간에 기댄 체 주위를 둘러보았다. 두 다리만으로 서 있을 기력이 없었다.
호랑이들은 주위 상황이 대충 정리되었다고 판단했는지 서준이 있는 건물로 모여들고 있었다.
‘척하면 척이라니까.’
굳이 소리쳐서 부를 이유가 없어졌다. 서준은 건물을 오를 때와는 다르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에서 내려갔다.
다행히 엘리베이터는 고장 나지 않았다.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건물 아래에서 세 마리의 호랑이들이 어느새 모여서 서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자 얘들아. 힘들어서 좀 쉬어야겠어.”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서준은 쓰러지듯 어흥이의 등 위에 올라탔다. 어흥이는 서준이 힘들어하지 않도록 최대한 흔들림 없이 서준을 운반했다.
어흥이 위에서 잠깐 졸았더니 어느새 서준은 약국에 도착했다.
“네가 한 거냐?”
“아, 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약국 안 소파에 앉아있던 련이 서준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물었다.
“미친놈이 따로 없군. 그래, 몸은 괜찮고?”
“죽을 것 같아요.”
련이 보기에도 오늘 있었던 일은 기가 막혔나보다. 련의 표정이 이상했다.
“꽤 오래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이런 건 처음 보는구나. 위만 그놈들이 다 뭉쳐도 이런 짓은 못해.”
“앞으로 몇 번 더 하면 죽을 거라는데요?”
“별이 그러더냐?”
“네.”
서준은 별이 말해주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련에게 전했다. 게이트를 사용하는 것처럼 여의주의 힘을 무리하게 끌어오는 것도 몸에 많은 부담을 주었다.
“요양하면 회복되긴 하는 거지?”
“네, 그런 것 같아요. 푹 쉬면 괜찮아진다네요.”
물론 게이트로 인한 부담처럼 몸을 오래 쉰다면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몸의 신호를 무시한 채 계속 사용하다 보면 죽을 수밖에 없다. 그건 서준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한 번 정도는 더 할 수 있겠냐?”
“뭐, 죽지는 않을 거 같네요.”
“그럼 그냥 전면전 한번 하자.”
파괴되었다고 생각한 게이트가 열리며 썩어든 련의 표정이 환하게 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