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여기도 오랜만에 오는군.”
“어때요? 그리운 고향에 온 기분인가요?”
“아니, 기분 더럽네.”
현 시각 한국은 어제 서준이 떨군 벼락 때문에 난리가 난 상황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벼락이 스물세 개의 게이트를 완전히 막아버렸다. 하지만 그 원인은 아직까지 증명하지 못했다.
그냥 자연 현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초인의 짓이라는 게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서 그렇게 많은 벼락이 내리치는 일은 없다. 게다가 벼락의 위력도 보통 벼락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그 많은 괴수들을 단 세 번 만에 끝장을 냈다. 심지어 정확히 스물세 줄기로 나뉘어 게이트만 타격했다.
이걸 두고 자연 현상이라고 할 순 없다.
그러나 서준은 그런 상황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굳이 자신이 벌인 일이란 걸 말할 이유는 없었다.
서준은 련과 함께 별의 동상을 챙겨 게이트를 넘어온 상태였다.
-저기서 위만 그놈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래? 난 잘 모르겠는데.’
-위대한 짐이기에 가능한 일이지.
련과 둘이 움직이니 이동 속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오세근과 김비서 그리고 모하메드도 매우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었지만 서준과 련에 비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티팩트는 어디에 숨어 있는 거지?”
아티팩트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야 안전하게 일을 끝마치고 도망칠 수 있다.
물론 련의 계산대로라면 정면으로 싸운다고 해도 이길 확률이 더 높았다. 그렇지만 굳이 싸우지 않고 승리할 수 있다면 싸울 이유는 없었다.
지구로 향하는 게이트를 여는 아티팩트만 부수고 도망가도 서준과 련의 승리다.
‘어딘지 알겠어?’
-그래. 직접 보니까 확실히 알겠어. 내 기억 그대로라면 저쪽이다.
서준은 별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물론 별은 몸이 없었기에 의념으로 전달했다.
그곳에는 시계탑이 하나 있었다.
‘저 시계탑 말하는 거야?’
-그래. 거기에 있어. 내 기억 그대로라면.
별의 기억 그대로라면 아티팩트는 저곳에 있었다. 저곳에 몰래 잠입해서 아티팩트만 파괴하면 모든 일이 끝이다.
“저곳이래요.”
“시계탑? 저곳에 있다고? 그럴 리 없는데.”
“왜 그러시죠?”
하지만 련은 곧장 부정했다. 아티팩트가 시계탑에 있을 리 없다고 말했다.
“저기는 아무나 손쉽게 출입 가능한 곳이야. 애초에 약속 장소로 애용되는 곳이라고.”
휴대폰이 없어서 실시간으로 연락할 수 없는 이곳에서 시계탑 같은 곳은 약속 장소로 애용되었다.
지구의 역사를 훑어봐도 그랬다. 시간을 확인할 수 있고 멀리서도 훤히 보이는 장소는 약속 장소로 삼기 딱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곳 주민들은 모두 위만 소속의 군인과 그의 가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들도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갔다. 위만 소속의 군인들은 여의주를 사용할 수 있는 매우 특별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가족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전 세계를 손바닥 안에 두고 있는 집단이지만 약속을 잡을 때는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사부님도 자주 가보셨겠네요?”
“그래, 심지어 내부 출입도 자유롭다고. 근데 저런 곳에 아티팩트가 있다고? 믿을 수가 없는데? 아티팩트라고 의심되는 물건은 본 적이 없어.”
별의 기억은 셀 수도 없는 오래전의 기억이었다. 물론 별의 기억이 오랜 시간이 흐르며 왜곡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 시간이 흐르며 아티팩트의 위치가 옮겨졌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련은 이곳 시간으로 불과 오십 년 전만 해도 여기서 생활했다. 그리고 그 시절의 련은 시계탑에서 아티팩트로 의심되는 물건은 보지 못했다.
-쯧쯧, 그 정도 되는 아티팩트가 나 아티팩트요! 하고 티를 내겠냐?
‘그래도 그런 귀물을 저렇게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에 둘까? 몰래 가져가면 어쩌려고.’
-가져가면 티가 날 만한 물건이지. 그리고 아무나 가져갈 수도 없고.
‘그래?’
하지만 별은 자신했다. 별은 시계탑에 아티팩트가 있을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알겠어. 그래서 어디 있는 데?’
-너도 보고 있잖아?
‘설마 시계탑 전체가 아티팩트라는 거야?’
당연히도 서준은 별과 이야기를 하면서 시계탑을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서도 바라보기 좋을 정도로 크고 아름답게 지어졌을 뿐만 아니라 목표물이 저곳에 있다니 자연스레 시선이 갈 수밖에 없다.
-아니, 그건 아니고 시계 중앙에 동그란 구체 보여?
‘저기 반짝이는 거? 무슨 보석 같은데?’
-저게 아티팩트다.
시계탑 꼭대기에 달려있는 시계의 정중앙에는 동그란 구체가 하나 있었다. 물론 절반만큼 박혀 있었기에 눈에 보이는 건 반구였다.
아름다운 붉은색으로 빛나는 저 커다란 보석이 아티팩트였다. 지구로 향하는 게이트를 열고 괴수들을 쏟아붓는 바로 그 아티팩트였다.
-아직은 붉은색이네. 저게 검은색이 되면 다른 차원과 통로가 연결되었다는 뜻이지.
‘그래, 이곳은 과거의 세계니까.’
그리고 당연히도 이곳의 아티팩트는 아직 발동되지 않았다. 해서 붉은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직 작동되지 않아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뿐이야. 작동한다면 아티팩트가 내뿜는 힘은 멀리서도 느낄 수 있을 거다.
서준도 련도 알아채지 못한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아티팩트가 아직 잠들어 있었기에 그 힘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아티팩트가 본격적으로 발동된다면 서준과 련은 즉시 눈치챌 수 있었을 것이다.
“사부님, 저기 시계 중앙에 있는 보석이 아티팩트라는데요?”
“뭐, 몰래 가져가긴 힘들겠네. 저거 빼내면 시계탑 그냥 무너져 버리겠는데?”
보석의 크기는 상당히 컸다. 주머니 속에 들고 갈 수 있는 작은 보석이 아니었다. 웬만한 수박보다 큰 크기였다. 그리고 그 위치도 정말 절묘해서 저것을 빼낸다면 시계탑이 무너져내릴 것이다.
훔쳐가기 힘든 물건인 건 맞다. 게다가 이곳에는 위만의 관련자들만 살고 있었으니 더더욱 그런 잡범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그렇게 귀한 물건을 이렇게 아무 곳에나 놔둘 리 없는데.”
하지만 그래도 이해가 안 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반짝하는 보석이라면 상관없다.
어차피 위만은 이 세상을 지배하는 집단이었고 돈이라면 썩어 넘쳤으니까.
하지만 저것은 평범한 보석이 아니다. 위만의 최종 목표를 이룰 수 있게 해주는 귀물이었다.
정말 많은 용을 죽여서 겨우 만든 물건이다. 심지어 도움을 주는 용조차 별에게 죽었기에 다시는 만들 수 없는 물건이었다.
련은 위만이 아티팩트를 저곳에 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찌 됐건 우리한텐 잘된 일 아닙니까? 들락날락하기 쉽다면 그냥 지금 가서 부숴버리면 되겠네요.”
“그래, 잘된 일이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서준에게는 이득이었다. 약속이 있는 척하며 시계탑 내부로 들어가서 아티팩트를 파괴한 후 지구로 도망치면 모든 일은 말끔히 해결된다.
이곳에서 아티팩트가 파괴된다면 미래의 세계에도 영향을 끼칠 테고 다시는 지구의 게이트는 열리지 않는다.
“근데 사부님 얼굴을 기억하지 않을까요?”
“그건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다.”
“어째서죠?”
“벌써 오십 년도 더 지났다. 내 얼굴을 기억하는 놈들은 모두 은퇴해서 뒷방 늙은이가 됐을 거다. 저기 있는 놈들만 봐도 다 젊은 녀석들 아니냐.”
감각이 인간을 초월한 서준의 눈에는 저 멀리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보였다.
실제로 시계탑 근처에는 젊은 사람들만 모여 있었다.
“이 시간에 놀러 다니는 놈들은 다 어린놈들이지. 내 얼굴을 알아볼 걱정은 없어.”
“그럼 결정됐네요. 갑시다.”
“그래.”
이미 옷은 바꿔입은 지 오래다. 지구의 옷을 이곳에서 입고 다니면 매우 티 나기 때문에 위만의 복색을 갖춰 입었다.
련이 위만의 복색을 완벽히 파악하고 있었기에 준비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두근두근하네요.”
“조용히 해라. 여기 있는 놈 중에 귀 어두운 놈 없다.”
“네.”
마을 안으로 들어서며 서준이 호들갑을 떨자 련이 꾸중을 했다.
위만의 거처였다. 평범하게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 중 몇은 여의주를 품고 있다.
여의주를 품지 않았더라도 웬만한 괴수는 한 손에 들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사람들도 많았다.
당연히 감각도 엄청나게 발달하여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곳에서 함부로 말했다간 발각되기 십상이었다.
서준도 아차 했는지 곧장 정신을 차리고 눈을 똑바로 떴다.
다행히도 경비 같은 건 없었다. 물론 련이 미리 말해둔 이야기였다.
감히 위만의 구역에서 깽판을 치는 놈은 없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수 없다.
게다가 이곳에 사는 주민 다섯 중 한 명은 괴물이라고 불릴 정도의 수준이었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는 순간 튀어나온다.
당연히 경비 같은 걸 둘 이유가 없었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계탑을 향해 조용히 걸어갔다.
빠른 걸음도 느린 걸음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보폭에 맞춰서 걸었다.
지금 이 순간 두 사람은 누가 보더라도 이곳의 주민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시계탑 앞에 도착했다.
‘와, 가까이서 보니까 더 큰데?’
-이왕 부수는 거 완전 산산조각 내는 건 어때?
‘그럴까?’
말을 하지 말랬지 생각을 하지 말라고는 안 했다.
서준은 입 밖으로 말을 못 꺼내는 만큼 별과 이야기를 계속 주고받았다.
“아직 안 온 걸 보니 좀 늦나 본데? 들어가서 기다리자.”
“네.”
련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서준에게 말했다. 시계탑 주변을 서성이던 사람들은 서준과 련을 일행을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듯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휴, 십년감수했네.’
-이런 게 통할 줄 몰랐네.
‘그러게 말이야. 조금만 신경 써서 봤으면 처음 보는 사람인 걸 눈치챘을 텐데.’
이곳의 도시는 현대 지구의 도시와는 다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사람을 기억할 정도로 적은 수도 아니다. 하지만 이곳은 위만 관계자만 살 수 있는 특수지역이었다.
조금만 신경 쓰면 주민을 다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적은 수로 이루어져 있다.
‘플랜 b를 사용할 필요는 없어서 다행이네.’
-너는 참 운도 좋다.
물론 걸렸을 때를 대비해 플랜 b도 세워두었지만 다행히 그걸 사용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렇게 별과 대화하며 계단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시계탑의 꼭대기에 오를 수 있었다.
‘딱 봐도 저거네.’
-바로 하게?
‘혹시 모르니까 빨리해야지.’
겉면에서는 구의 절반만 보였다. 당연히 시계탑의 안쪽에선 나머지 절반이 보였다.
심지어 아름다운 붉은색의 반구는 서준이 알아보지 못할 수가 없을 정도로 커다랬다.
“빨리 끝내자.”
“네.”
그제서야 입을 다물고 있던 련도 말을 꺼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련의 손끝은 떨리고 있었다.
서준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긴장하셨나 봐요?”
“그럴 수밖에.”
련이 긴장했다. 일평생을 위만의 아래서 자랐다. 그들의 위대한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적이 되어 그들의 심장부에 침입했다. 아무리 련이라고 해도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준은 그런 사부를 보며 안쓰럽다는 듯이 쓴웃음을 지으며 기운을 모았다.
그리고 서준의 손끝에서 게이트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