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어서 오세요!”
약국 문을 열며 한 커플이 약국 안으로 들어왔다. 물론 두 사람 모두 헌터였다.
호랑이 약국의 고객은 모두 초인이었으니까.
“와, 소문으로 듣던 것보다 더 좋은데?”
“그러게. 약초 퀄리티 봐. 진짜 좋다.”
“이것도 사자.”
“그래, 담고 싶은 거 다 담아.”
요즘 들어 호랑이 약국은 초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각광받고 있었다. 이전에는 약초를 저렴한 가격에 대량으로 구매하기 위해 길드에서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손님들보다 데이트 장소로 이용하는 고객이 더 많았다.
물론 그 이유에는 질 좋은 약초가 원인이었지만 다른 원인도 있었다.
“꺄악! 저거 봐! 호랑이야! 너무 귀엽잖아!”
“와, 진짜 멋있네. 나도 호랑이 한 마리 키울까?”
호랑이 약국이 최고의 데이트 코스로 꼽히는 데는 단연코 호랑이들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물론 몸이 너무 커져서 귀여운 맛은 조금 떨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귀엽다는 소리 대신 멋있다는 소리는 더 들었다.
한국 소속 길드의 GOTY 최초 우승의 일등공신이었던 호랑이들의 인기는 여전히 식을 줄 몰랐다.
그리고 그 호랑이들을 볼 수 있는 호랑이 약국은 초인들에게 최고의 관광 명소였다.
“됐어, 땅도 없는데 호랑이를 어떻게 키워.”
“여기 약국 주인도 건물 하나 들고 시작했다더라.”
“우리 실력으론 턱도 없다.”
“그런가.”
초인들이 호랑이를 기르는 경우는 꽤 있었다. 강한 힘을 가진 초인들에게 호랑이 정도의 동물은 고양이와 다를 바 없었다.
작은 동물보다 큰 동물을 좋아하는 성향을 지닌 초인들이 제일 선호하는 애완동물이 호랑이와 사자였다.
그러나 누구나 호랑이와 사자를 기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호랑이의 활동반경은 넓으면 수천 킬로미터에 달했다.
서울의 땅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요즘에 단칸방에 사는 하위 헌터들은 호랑이를 기르는 건 상상도 못 했다.
서준의 경우는 게이트를 열 수 있었기에 호랑이들이 스트레스받지 않고 잘 자랄 수 있게 해줄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호랑이를 기르고 싶지만 사정상 못 기르는 헌터들이 호랑이 약국을 자주 찾았다.
“아저씨! 이건 얼마예요?”
“아! 그거는 한 뿌리에 십오만 원입니다.”
서준은 아저씨라는 말에 기분이 살짝 상했지만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사근사근하게 답했다.
돈 주는 사람에게 저 정도 말을 듣고 화낼 순 없다.
“그렇게 비싸요?”
“에이, 딴 데 가서 사면 삼십만 원 넘어가요. 여기가 제일 싸요. 마진도 안 남는다니까요?”
물론 마진도 안 남는다는 말은 거짓이다. 재배지 섬에 가면 저런 약초가 지천에 널려 있다.
서준은 잠시 쪼그려 앉아서 캐면 그만이었다.
“그런가? 오빠! 이것도 사자!”
“그래.”
사실 흥정을 하면 깎아줄 법도 했다. 그렇게 약초를 저렴하게 사 가는 초인들도 매우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절대 깎아줄 생각이 없었다.
서준은 아저씨라는 말에 이미 상처받은 지 오래였다.
“안녕히 가세요!”
한 쌍의 손님을 그렇게 보내며 서준은 약국을 정돈했다. 손님이 한 명 올 때마다 약국은 상당히 어질러졌다.
“에휴, 만졌으면 제자리에 돌려놓을 것이지.”
진열해 놓은 약초를 이것저것 만져놓으며 어지럽혔고 호랑이들과 논다며 의자나 책상을 건드리기도 했다.
이런 것들을 정리하는 건 항상 서준의 몫이었다.
“어때? 장사는 좀 잘되냐?”
“너무 잘돼서 탈이죠.”
2층에서 련이 내려오면서 말했다.
“일정이 정해졌다.”
“언제요?”
“내일 오전.”
“알겠습니다.”
위만을 잡으러 갈 일정이 정해졌다. 물론 누구와 조율한다거나 할 필요는 없었다.
서준과 련 단둘이서만 위만을 상대할 생각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게이트를 넘어 목표를 수행하면 그만이다.
“가능하겠죠?”
“놈들이 숨겨놓은 수가 있지 않다면 될 거다.”
“어느 정도로 보세요?”
“무사히 돌아올 확률이 구 할은 된다고 본다.”
“그렇게나 높아요?”
“나도 놀랐다.”
련이 가능성을 저렇게 높게 잡은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서준과 련의 여의주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한 힘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련은 위만의 아래서 생활하면서 그들이 여의주를 부리는 모습을 수도 없이 봐왔다.
해서 그들이 지니고 있는 여의주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요번에 스스로 여의주를 사용하면서 본인의 여의주가 그들의 여의주를 월등히 뛰어넘는다는 것을 눈치챘다.
“하긴, 다시 생각해봐도 말도 안 돼요. 힘 조금 썼다고 섬이 반으로 갈라져 버리다니.”
“그것보단 네놈 게 더 말이 안 되지.”
그리고 서준의 여의주는 그것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작은 섬 하나쯤은 한 번에 태워버릴 정도로 강력한 벼락을 내리칠 수 있다.
심지어 보조 여의주 덕분에 탄창 걱정 없이 연발로 날릴 수 있었다.
성공 가능성을 저렇게 높게 잡을 수 있던 건 서준의 덕이 매우 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여의주를 거부하지 않고 그냥 빨리 인정받을 걸 그랬어.”
“그러게요, 사부님 여의주가 이렇게 센 걸 알았으면 그놈들 밑에 있을 이유도 없었겠죠.”
련은 고의로 여의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의주가 깨어나는 순간 놈들이 련을 붙잡아 죽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에는 그 선택을 후회하고 있다. 이 정도로 여의주가 강력했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진작에 여의주를 받아들이고 놈들과 싸웠을 것이다.
물론 혼자서 놈들을 이길 순 없겠지만 적어도 죽임을 당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뭐, 지나간 일이지. 앞으로 해야 할 일만 생각하자고.”
“참나, 후회는 제가 한 게 아니고 사부님이 한 거거든요?”
“짜식, 요즘 많이 기어오른다?”
“어? 이제 제가 더 셀 거 같은데? 악!”
서준은 괜히 한번 기어올랐다가 한 대 얻어맞았다. 여의주를 이용한 싸움은 서준이 월등히 강한 게 맞았다.
그러나 여의주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선 서준은 련에게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아! 진짜! 자꾸 이러면 여의주 쓸 거예요!”
“그러던가. 여기가 내 땅이냐? 네 땅이지.”
여기서 여의주를 사용하면 손해 보는 건 결국 서준이다. 약국이 무너지면 련의 돈이 나가는 게 아니고 서준의 돈이 나갔다.
“그나저나 너도 참 안 는다. 아직도 이걸 못 막아?”
“두고 봐요. 뒤집힐 날도 얼마 남지 않았어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서준은 그런 날이 올 거라고는 믿지 않았다. 그 정도로 서준과 련의 수준 차이는 매우 컸다.
아마 지구인을 기준으로 한다면 서준보다 강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게이트 너머의 사람들을 포함해도 한 손에 셀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서준은 강해졌다. 그러나 아직 련에게는 멀었다.
“어! 뭐지?”
“게이트가 열린 것 같은데?”
그때였다. 서준과 련이 잡담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그들의 감각이 갑작스럽게 경종을 울렸다.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진 두 사람의 감각은 게이트가 열리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다.
“한두 개가 아닌데?”
“못해도 스무 개는 되는 것 같아요.”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군.”
“위만 그놈들 빨리 처리해야 할 것 같네요.”
“그래.”
약국 주변에서 느껴지는 게이트의 기운이 무려 스무 개가 넘었다. 최근 들어 게이트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수의 게이트가 한 번에 열린 적은 없었다.
그것도 이런 밀집 지역에 열린 적은 없었다.
“여기는 무슨 마가 꼈나……. 서울에서 열리는 게이트는 다 우리 약국 옆에서 열리는 것 같네.”
물론 사실은 아니었다. 다른 곳에 열린 게이트를 세 보면 이곳보다 적지 않았다.
하지만 유독 다중 게이트가 약국 근처에서 많이 발생하는 건 틀린 말이 아니다.
“어떡할 거냐?”
“제가 해결해야죠, 뭐. 이건 자체적으로 막을 능력이 안될 텐데.”
게이트가 이렇게 한 번에 많이 열리면 국가 시스템으로는 방어할 수 없었다.
방위 임무를 수행 중인 길드만으로는 다섯 개 이상의 게이트를 막을 수 없다.
그렇다고 길드를 소집한다 해도 그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물론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한 시간이면 적어도 세 길드를 모을 수 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는다. 한 시간이면 괴수들이 시민들을 도륙 내는데 충분한 시간이다.
“다녀올게요.”
“그래.”
서준은 천천히 계단 위로 올라갔다. 어차피 괴수들이 튀어나오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린다.
2층으로 올라간 서준은 계단을 하나 더 올라갔다. 그렇게 서준은 약국의 옥상에 도착했다.
“많기도 많네.”
주위를 둘러본 서준은 혀를 차며 탄식했다. 스무 개의 게이트는 약국을 중심으로 산발적으로 개방되어 있었다.
아직은 새파랗게 떠 있어야 할 하늘이 온통 검은색의 구멍으로 가득 찼다.
“좀 징그럽네.”
솔직히 조금 징그러웠다. 서준은 어서 이 광경을 끝장내고 싶었다. 물론 24시간 동안은 방법이 없었다.
게이트의 유지시간은 24시간이었으니까. 그동안은 곳곳에 구멍 뚫린 하늘을 억지로 볼 수밖에 없다.
“으, 징하게 많네.”
게이트 너머에서 괴수 떼들이 무자비하게 달려오고 있다. 약국에서 보이는 게이트는 총 스물세 개였다.
스물세 개의 게이트 속에서 괴수들이 기어 나오는 광경은 무척이나 징그러웠다.
물론 저 장면을 볼 수 있는 건 서준이 유일했다. 보통의 초인들은 게이트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었다. 게이트를 들어가기 전까진 무슨 환경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게이트를 다루는 서준은 어느 순간부터 게이트 내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서준은 괴수들이 게이트 밖으로 튀어나오기 전에도 괴수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빨리해라. 덥다.
“그래, 바로 시원한 에어컨 바람 쐬게 해줄게.”
그때 별이 불평을 내뱉었다. 별의 동상은 서준이 항상 들고 다녔다.
서준은 별에게 답하면서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 자세 의미 있는 거냐?
‘글쎄? 이렇게 해야 힘쓰는 맛이 나잖아.’
-어휴, 이게 그거지 중2병인가 뭔가 하는 거.
서준은 별의 말을 무시하며 하늘 높이 들어 올린 손을 주먹 쥐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하늘이 찢어지는 소리가 나며 스물세 개의 게이트를 향해 벼락이 내리쳤다.
꽝! 하며 벼락이 한 번 내리치자 게이트를 빠져나오려던 괴수들이 모두 곤죽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꽝! 하고 내리치자 겨우 살아남은 괴수들 역시 모두 곤죽이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번의 꽝! 소리와 함께 게이트의 출구 멀리서 다가오던 괴수들마저 모두 땅에 머리를 처박았다.
-야, 쓸만한데?
‘보스도 다 죽은 건가?’
-그런 것 같은데? 뭐, 이제 보스 나와봐야 별거 있냐. 그 정도는 헌터들이 알아서 하겠지.
‘그치? 내려가자 그럼.’
설령 한두 마리 남았다고 해도 상관없다. 게이트 깊숙이 보스가 남아있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지금 한국의 시스템으로 충분히 감당 가능한 수준이다. 스물세 개의 게이트가 뿜어내는 막대한 물량이 사라진 지금 대한민국은 서준의 도움이 없어도 충분히 막아낼 역량이 있다.
그리고 그날 밤 뉴스에는 온통 난데없이 내리친 벼락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물론 그 벼락이 서준의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