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어…….”
서준의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련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번 시험해 보려고 사용했던 여의주의 능력, 그 능력은 생각보다 엄청났다.
련이 땅을 갈랐던 건 애교처럼 보일 정도였다. 서준이 사용한 여의주의 능력은 그만큼 엄청났다.
-오, 제법 쓸만한데?
놀라지 않은 건 별밖에 없었다. 혼자서 용을 지렁이 잡고 놀 듯하던 녀석이니 고작 이런 거에 놀라면 오히려 이상하지.
-근데 너 이거 연습하려면 꽤 고생하겠다?
대충 썼을 때 이 정도 위력이었다. 동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위력을 조절하려면 꽤 애를 쓸 것이 눈에 훤했다.
하지만 그런 고생이 눈앞에 보인다고는 해도 서준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이렇게 엄청난 위력의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런 고생 정도는 해도 된다.
“이거, 내 여의주가 민망해서 숨어버리겠는걸?”
그제야 련이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섬의 절반을 거의 갈라버렸던 련의 여의주가 민망해질 정도로 서준의 여의주는 강력했다.
련과 서준은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이미 폐허나 다름없었다.
“재배지 섬에서 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군.”
“그러게요. 약초 전부 다 타서 못 쓰게 될 뻔했네요.”
이곳은 무인도였다. 사람의 손이 전혀 닿지 않는 곳이었다. 섬 중앙부터 외곽까지 온통 정글이었다.
바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가 빽빽한 곳이었다. 물론 련이 땅을 가르면서 나무들이 쓰러지고 그 사이로 바닷물이 들어오긴 했다.
그러나 그 충격의 여파를 피한 곳에는 여전히 나무가 빽빽했다. 그리고 그 나무들이 지금 온통 새까맣게 타올랐다.
몇몇은 연기를 내뿜고 있었고 몇몇은 불꽃을 머금고 있었다. 서준이 간단하게 내리친 벼락 한 번에 일어난 일이었다.
서준의 여의주는 벼락을 칠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해주었다. 그리고 악룡의 여의주는 악룡의 악명에 걸맞게 아주 강력했다.
단 한 번 내리친 벼락은 서준과 련이 있는 장소를 제외하곤 섬 전체를 태워버렸다.
“이건, 연습할 때 골치 좀 썩겠어. 이대로는 못 써먹어.”
“알아요, 지금은 운이 좋아서 우리 둘이 안 맞았지 까닥 잘못하다간 내 기술에 내가 죽겠어요.”
이 정도 위력의 벼락을 맞으면 아무리 서준이라도 한 번에 골로 간다. 련 역시도 장담할 수 없다.
세밀한 제어를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여의주를 봉인한 채 위만과 싸울 수는 없었다.
최대한 빠른 시간에 여의주를 다룰 수 있게 되어야 했다.
“보조 여의주는 아직 멀었나?”
“네, 반응이 없네요. 별 말로는 곧 될 거라고는 하는데…….”
“무슨 효과인지는 아직도 모르고?”
“네, 발동돼 봐야 안다네요.”
심지어 보조 여의주는 아직도 서준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애초에 여의주를 두 개 품은 인간은 없었다. 모두 그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보조 여의주가 사실은 여의주가 아니라 별의 힘을 모아놓은 것에 가까웠기 때문에 가능한 기적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보조 여의주의 역할을 별조차 알지 못했다.
‘이거 어디다 쓰는지 정말 모르겠어?’
-글쎄, 내 눈에는 그냥 힘의 파편으로만 보여서……. 예상 가는 게 없네.
‘용은 이걸 어디에다가 썼을까.’
-그게 의문이란 말이지. 쓸데가 없어요. 쓸데가.
용이 보조 여의주를 사용할 이유는 없다. 인간처럼 여의주의 한 가지 능력만 끌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의주 하나만 있어도 모든 자연 현상을 다룰 수 있다.
해서 용은 두 개의 여의주가 필요 없다.
여의주의 출력을 강화해 주는 것도 아니다. 애초의 여의주보다 용의 힘 그 자체가 중요했다. 용이 강하면 강할수록 여의주에서 많은 힘을 끌어올 수 있을 뿐, 보조 여의주 같은 건 의미 없었다.
용이 어떻게 사용했는지도 모른다. 용에게 어떻게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여의주가 또 인간에게는 어떻게 작용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용에게는 모두 허락했던 여의주가 인간에게는 단 하나의 능력만을 허락했듯이 보조 여의주는 용과 인간에게 다른 능력을 허락할 가능성이 컸다.
해서 별조차도 보조 여의주의 사용법은 예측하지 못했다.
-그래도 내 힘의 파편이라 알 수 있어. 발동하는 데까지 얼마 남지 않았어. 아마도 여의주 훈련하다 보면 알아서 눈을 뜰 거야.
‘그래, 제발 좋은 쪽이길 기대해본다.’
그렇게 며칠이 더 흘렀다. 서준과 련은 서로 다른 장소에서 훈련을 계속했다.
괜히 같이하다간 서로의 기술에 휘말릴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다행히도 여의주는 사용자에겐 위해를 끼치지 않았다.
물론 벼락으로 인해 불타오른 나무가 서준을 태울 수도 있고 진동하는 대지에 련이 넘어질 수는 있었지만 그 정도는 련과 서준의 실력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재배지 섬과 신대륙 사이 어딘가의 섬에서 서준은 쉴 새 없이 벼락을 내리치고 있었다.
-미친놈. 적당히 해라.
‘이제야 좀 알겠는데 어떻게 멈춰. 재밌어서 멈출 수가 없네.’
왼쪽에서 콰앙! 하며 나무 하나가 폭발하듯 터져나갔다. 오른쪽에서 콰앙! 하며 커다란 바위가 폭발하듯 터져나갔다.
다시 서준의 눈앞에서 나무가 하나씩 폭발하듯 터져나갔다.
벼락 한 번에 하나의 목표물을 폭발시킬 수 있었다. 첫날과 비교했을 때 엄청난 제어 능력이었다.
‘어때? 이 정도면 쓸만하지?’
-그래, 인정한다. 이 정도면 위만 놈들도 꼼짝 못 하겠네.
단지 벼락의 힘을 줄여서 내리친 게 아니다. 벼락의 폭발 범위를 조절한 것이다. 벼락의 위력은 서준이 처음으로 사용했을 때보다 절반 정도밖에 작지 않았다.
처음의 벼락이 섬 전체를 불태웠던 것을 생각해보면 절반의 힘으로 나무 하나만을 폭발 시킨 건 엄청난 일이었다.
심지어 그 하나하나의 위력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컨트롤 능력이 점점 더 좋아져 더 많은 힘을 실을 수 있게 된 거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렇게 짧은 시간에 해낼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이 정도로 제어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그러나 여의주를 사용하는 데에는 굉장히 힘이 많이 든다.
련은 연속해서 세 번 땅을 가르고 나면 기진맥진해서 더 이상 여의주를 사용하지 못했다.
하지만 서준은 달랐다. 백번, 천 번 벼락을 내리쳐도 지치지 않았다. 덕분에 많은 연습을 빠른 시간에 쌓아올 수 있었다.
모두 보조 여의주 덕분이었다.
‘보조 여의주가 보조 배터리일 줄 몰랐네.’
-그러게, 최상의 결과로 이어졌어. 용과 다르게 인간은 여의주를 사용할 체력이 되지 않으니까.
‘게다가 배터리 용량이 끝이 없네.’
-짐은 위대하니까. 짐의 파편 역시 대단한 거지.
여의주를 사용할 때 빠져나가는 기력을 모두 보조 여의주가 감당했다. 마치 보조 배터리처럼.
심지어 보조 여의주의 용량은 끝을 몰랐다. 연속해서 벼락을 떨어트리다 보면 보조 여의주가 고갈 나는 게 느껴졌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고갈 났냐는 듯이 순식간에 차올랐다.
아무리 파편이라고는 하지만 별의 파편이었다. 그 정도만으로도 여의주를 사용하는 데는 충분했다.
덕분에 서준은 쉴 새 없이 벼락을 내리칠 수 있었고 지금의 제어 능력을 손에 얻을 수 있었다.
아마 오늘 밤이 지나면 벼락을 최대 위력으로 떨어트리면서 나뭇잎 하나만을 타격하는 기적을 부릴지도 모른다.
서준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벼락을 떨어트렸다. 자연 현상을 다룬다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훈련이 훈련인지도 모르고 시간은 아주 빠르게 흘러갔다.
“성과는 좀 있었냐?”
“네, 이제 단순히 벼락을 떨어트리는 건 완전히 제어할 수 있어요. 다른 활용법은 뭐 생각해 봐야겠지만……. 이 정도 위력이면 뭐 활용하고 말 것도 없어도. 그냥 머리에 한번 꽝! 하면 다 끝이에요.”
“운도 좋은 녀석.”
련이 못마땅한 듯 혀를 찼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는 세 번 사용하면 지쳐서 나가떨어지는데 누구는 수십 번을 사용하고도 멀쩡하니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사부님은요?”
“그래도 네놈들한테 피해 안 갈 정도는 된다. 이 정도면 써먹을 수 있어. 정밀 조정은 실전에서 하면 돼.”
“허세죠?”
“내가 너냐?”
서준은 괜히 련에게 한마디 했다가 머리통을 한 대 얻어맞았다.
그나저나 역시 련의 센스는 놀라웠다. 서준처럼 보조 여의주가 있는 게 아니라 몇 번 사용해보지도 못했을 텐데 벌써 여의주를 상당히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말은 저렇게 했지만 련의 성격으로 보았을 때 실전에서 사용해도 무방할 정도로 완벽히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서준은 보조 여의주를 이용해 벼락을 수천 번 떨어트렸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의 제어 능력을 얻었다.
그러나 련에게는 보조 여의주 따위는 없었다. 몇 번 사용하지도 못하는 능력을 단기간에 이 정도 끌어올렸다는 건 련의 센스가 정말로 압도적이라는 이야기였다.
괜히 검 한 자루를 들고 대륙 제일의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다.
“그나저나 이 정도면 해볼 만해.”
“애들은 어떻게 할까요? 데려가야 할까요?”
“그건 조금 더 고민해 봐야겠다.”
애초에 위만과 싸우는 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오세근을 비롯한 일행의 힘을 모두 끌어다 써도 승산이 매우 적은 싸움이었다.
그러나 여의주의 위력이 련의 생각보다 엄청나게 강했다. 지금껏 련이 겪었던 그 어떤 여의주보다 강했다.
련의 여의주조차 그러했는데 서준의 여의주는 더했다.
이 정도면 련과 서준 둘이서도 위만을 쓰러트릴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생긴다.
“정면 승부를 겨룰 필요도 없지.”
“그렇죠. 사부님이 지진 일으켜서 애들 정신 빼놓고 제가 벼락 떨어트려서 쓰러트리고 빠르게 아티팩트만 부수고 도망치면 되니까요.”
“그래, 여의주가 이 정도 위력이면 아티팩트를 부수는 데 충분하다. 굳이 위만을 다 쓰러트리지 않더라도 그건 가능할 거 같구나.”
“일단 시뮬레이션을 더 해보죠. 될 거 같으면 둘이 가는 게 나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오세근과 김비서 그리고 모하메드 이 세 사람은 충분히 강했다. 심지어 용무기로 무장한 상태였다.
그 용무기 역시 악룡의 시체로 만든 강력한 무기들이었다.
거기에 호랑이들 역시 엄청나게 강해진 상태였다. 악룡을 잡고 용고기를 뜯어 먹으며 엄청나게 힘을 불렸다.
그럼에도 위만과 싸우기에는 불안했다. 위만은 그 일원 하나하나가 여의주를 다룰 수 있는 놈들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어떻게라도 동료들을 잘 이끌어 힘을 모았어야 했다. 일점돌파를 한다고 해도 승산이 적은 싸움이었다.
그러나 서준과 련은 과분한 힘을 얻었다. 뒤처지는 동료들을 데리고 가다간 오히려 방해받을 수도 있었다.
시뮬레이션이 필요한 차례였다. 그리고 련의 시뮬레이션은 생각보다 잘 맞아 들었다.
악룡을 잡을 때도 련의 시뮬레이션이 없었다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일단 오늘은 그만하자. 내일 오전까지는 결과를 알려주지.”
“네, 기대할게요.”
서준과 련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서준은 침대에 누워 오늘 했던 훈련을 상기하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계속했고 련은 위만과의 싸움을 시뮬레이션했다.
수십 년을 그들 밑에 있었기에 련은 그 누구보다 위만의 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시간이 흐른 후 련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서준이 잠들었을 무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