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지난 한 달은 정말로 지루한 기간이었다. 서준이 본격적으로 마음먹은 이래로 이렇게 오랜 기간 훈련을 쉬었던 적은 없었다.
서준은 한 달 동안 그 어떤 훈련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재배지 섬으로 향하는 게이트조차 단 한 번도 열지 않았다.
필요한 약초는 미리 모두 약국으로 가져왔다. 워낙 많은 양을 가져와 아직까지 그 손질을 모두 끝내지 못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해?’
-몸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서준의 몸은 붕괴되기 직전이었다. 만약 별을 찾는 것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서준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을 확률이 크다.
다행히 적절한 시기에 별을 찾았고, 별의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아, 나도 방법이 없었어. 어쨌든 지금이라도 알았으니까 문제없잖아.
차원문을 여는 행위 자체가 몸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 일이었다. 인간으로서 이런 기적을 부릴 수 있는 건 별이 유일했다.
그런 기적을 평범한 사람인 서준이 하는 것만으로도 심각한 불균형을 불러일으켰다.
덕분에 서준은 지금까지 완벽한 회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 달이나 쉬었는데 더 쉬어야 해?’
-거의 다 됐어. 이제 며칠 남지 않았어.
‘몸만 다 회복되면 여의주가 인정해주는 거지?’
-그래.
몸이 회복되면 덤으로 여의주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별의 호언장담이 있었다.
서준의 수준은 사실 상당히 높았다. 비교 대상이 련이였기에 모자라 보이는 거지 련의 세상으로 넘어가도 이제는 상당한 고수 축에 속한다.
지금껏 여의주의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이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그리고 별은 그 이유를 불안정한 몸 상태에 있다고 말했다.
충분한 휴식 후 몸을 완전히 회복한다면 여의주가 자연스레 인정할 것이라 말했다.
-여의주가 인정하면 그게 네 몸이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신호야. 그것만 기다리면 돼.
‘알겠어, 믿어볼게.’
기억을 되찾은 별의 말을 믿지 못할 이유는 없다. 여전히 철없는 모습은 마찬가지였지만 그 지식만은 사실이었으니까.
‘좋아, 며칠만 더 믿어볼게.’
그 이상은 몸이 간질거려서 무리였다. 벌써 한 달째 약초 손질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처음에는 훈련을 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며 부담이었는데 이제는 중독이라도 된 걸까? 하루 훈련을 쉬면 하루 뒤처진다는 생각 때문인지 서준은 몸이 달아오름을 느꼈다.
그렇게 무료한 나날들이 며칠 흘러갔다. 그동안 오랜만에 창천 길드의 사람들도 만났다.
그들은 여전히 일에 찌들어 살고 있었다. 어느덧 대한민국 최고 자리를 굳건하게 차지한 창천 길드는 다음 GOTY 준비를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물론 거기에 서준의 자리는 없었다. 서준 본인 역시 참여할 생각은 단 하나도 없었지만…….
“아직 멀었냐?”
“글쎄요, 거의 다 됐다고 말은 하는데……. 아직인가 보네요.”
문화생활을 즐기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던 련도 이제는 지겨운지 서준을 찾아왔다.
사실 련은 진작에 여의주의 인정을 받은 지 오래였다.
“나도 이제 슬슬 실험해 보고 싶은데.”
“며칠만 더 참아보시죠.”
“그래.”
하지만 아직 련은 단 한 번도 여의주의 힘을 사용해보지 못했다. 여의주의 힘이란 건 말 그대로 자연재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기술을 이 지구에서 사용할 수는 없었다. 게이트를 열고 안전한 곳을 찾아 연습해야 할 일이었다.
단 한 번도 사용해보지 못한 기술의 출력을 마음껏 조절하는 건 련조차도 무리였다. 조금만 실수하면 정말 큰 인명피해가 날 수도 있는 기술이다.
그리고 서준은 지금 게이트를 열지 못하는 상태였다. 련은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여의주를 사용해보지 않았던 걸 정말로 후회하고 있었다.
서준이 게이트를 열지 못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또 며칠이 흘러갔다. 호랑이들과 산책하고 정신비와 놀아주고 련의 불평불만을 받아주다 보니 지루하게 느껴졌던 시간은 금세 흘러갔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서준의 주위에는 이전과는 다르게 서준을 즐겁게 해주는 요인이 정말 많아졌다.
물론 점점 더 많이 열리는 게이트를 보며 불안해하는 건 피할 수 없었다.
‘야! 봤어? 봤냐고?’
-뭘 봐?
‘방금 뭔가 번쩍인 거 같은데? 이거 여의주가 인정해준 거 아니야?’
-잠깐만…….
어느 날이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약초 손질을 하고 있던 서준은 갑작스레 반짝임을 느꼈다.
호랑이들도 멍하니 있는 거로 보아 아마 서준만 느낀 현상인 것 같았다.
동상 속에서 멍 때리고 있던 별이 서준을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몸은 없지만 서준은 느낄 수 있었다.
-오! 드디어 됐네!
‘원래 여의주의 인정이란 거 이렇게 간단한 거야? 너무 허무한데.’
-수백 가지의 자연 현상을 담은 여의주가 고작 하나의 현상을 허용한 거야. 특별할 이유 하나 없지.
잠깐 이상 현상을 느꼈을 뿐 그 외에 어떤 특별한 느낌도 없었다. 지금껏 큰 힘을 얻을 때는 고된 수련과 엄청난 전조현상을 느꼈었는데 여의주는 의외로 담백했다.
뭐, 별의 말을 들어보니 그럴만했다. 여의주가 본래 가진 힘에 비하면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은 정말 일부에 불과했으니까.
“사부, 갑시다.”
“어딜?”
서준은 여의주의 인정을 받자마자 련에게 달려갔다. 너무 오래 기다리다 지쳤는지 련은 서준이 여의주의 인정을 받았다고는 생각 못 한 듯 물었다.
“여의주가 드디어 인정해줬습니다. 몸 역시 완전히 회복됐고요, 이제 갈 수 있어요.”
“정말이냐?”
“네.”
“그럼 바로 가 보자.”
여의주의 인정을 받았다는 건 몸 역시 완전한 균형을 되찾았다는 거다. 또다시 게이트를 엄청나게 열어댄다면 부담이 갈건 분명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게이트를 열 일도 얼마 남지 않았다.
매일같이 넘어가던 지난날과는 다르게 이제는 할 일이 있을 때만 딱딱 맞춰서 넘어 다니면 부담도 그렇게 크지 않다.
게다가 여의주가 지원해주고 있는 지금은 그 부담 역시 상당히 절충되었다.
서준은 기쁜 얼굴을 하며 재배지 섬으로 향하는 게이트를 열었다.
“아! 여기도 오랜만에 오니까 정말 기분 좋네요.”
“나도 고향에 온 느낌이라 나쁘지는 않군.”
호랑이들도 일행들도 모두 내버려 둔 채 련과 단둘이 게이트를 넘어왔다.
어차피 여의주의 힘을 실험해 보러 온 것뿐이다. 다른 이들의 도움은 필요 없었다.
“어디 적당한 곳을 찾아보죠.”
“그래.”
적당한 곳을 열심히 찾아보았지만 실패였다. 사실 재배지 섬은 서준이 대부분 활용하고 있었다.
그동안 별의 도움을 받아가며 새로운 약초들을 많이 개발했고 이미 재배지 섬 곳곳에 심어둔 상태였다.
처음 사용하는 여의주의 출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공들여 심어놓은 약초밭을 모두 망치고 말 것이다.
“차라리 다른 섬 하나를 찾는 게 빠르겠어요.”
“어디 봐둔 곳 있나?”
“저쪽으로 좀 나가다 보면 적당한 곳이 있어요.”
“그럼 그쪽으로 가 보자.”
“네.”
재배지 섬과 대륙 사이를 왕복하면서 봐둔 곳이 있었다. 서준은 련과 함께 요트에 올라타 항해를 시작했다.
재배지 섬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에 십 분여가 지나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적당하네.”
“그렇죠?”
당연히 무인도였다. 괴수가 길고양이처럼 흔히 돌아다니는 세계에서 이런 무인도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크기는 재배지 섬의 사 분의 일 정도 될까? 상당한 넓이의 무인도였다.
“따라와라.”
“네.”
련은 무작정 섬 중앙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매우 빠른 속도였지만 서준은 이제 뒤처지지 않고 따라갈 수 있었다.
서준은 이전처럼 나약하지 않았다.
-끼에에에엑!
섬에 살고 있던 괴수들이 련과 서준을 보자 똥오줌을 지리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래도 괴수라고 감은 살아있는 녀석들이었다.
만약 달아오를 만큼 달아오른 련 앞을 막아섰다면 그대로 도륙 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련과 서준은 섬 중앙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부터 해보지. 뒤로 물러나라.”
“네.”
서준은 련 뒤에 숨어 섰다. 련의 여의주는 땅을 가르는 능력을 허락했다고 했다.
지금까지 사용해보지는 못했지만 뭘 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단지 그 출력에 대해 조절하지 못할 뿐이다.
“그나저나 말로만 들었는데 직접 겪으니 신기하네.”
“뭐가요?”
“배운 적도 없는 것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느낌이다. 뭘 어떻게 해야 능력을 부릴 수 있는지 자연스럽게 체득되었어.”
서준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의주의 인정을 받고 뭘 어떻게 해야 새로운 능력을 부릴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현상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여의주의 인정을 받고도 눈치채지 못했다. 여의주로 뭘 할 수 있을까? 의식했을 때에야 떠올랐다.
그리고 서준은 이런 현상을 이미 겪은 적 있다.
‘네가 한 거랑 똑같은 거지?’
-이제야 머리가 좀 돌아가나 봐?
게이트를 처음 열었을 때와 비슷했다. 서준뿐만 아니라 지구의 모든 초인이 그러했다.
배운 적도 없는 기술을 자연스럽게 사용했다. 물론 그 능력을 얼마나 자유자재로 부리는지는 오로지 그 사람에 달린 것도 마찬가지였다.
‘너 생각보다 대단했네?’
-짐은 그것보다도 더 대단하다. 기대해라.
별은 서준이 상상하던 것보다 더 대단했다. 지구에 있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 여의주를 심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차원 너머에서 대다수의 힘을 잃은 채로 말이다.
만약 별이 본신의 힘을 모두 사용할 수 있었다면……. 하며 서준은 입맛을 다졌다.
“한다.”
“네.”
그와 동시에 엄청난 굉음이 일어났다. 엄청난 진동에 서준이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했다.
수업이 단련하고 단련한 몸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쓰러졌을 거다.
“와…….”
“이거, 출력을 조절하려면 연습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
련의 앞쪽으로 땅이 수십 갈래로 갈라진 것이 보였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 섬이 두 쪽으로 나뉘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갈라진 땅의 틈 사이로 바닷물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최대 출력인가요?”
“아니, 이게 절반 정도인 것 같은데? 세밀한 조정은 안 돼서 대충 절반쯤 생각하고 쐈는데 내 생각보다 너무 강했어.”
련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을 정도의 파괴력이었다. 련은 여의주의 능력을 처음 본 것이 아니다.
위만 아래서 지내면서 수십, 수백 번을 보았다. 그러나 이런 파괴력을 내는 여의주는 지금껏 본 적이 없었다.
“절반이 이 정돈데……. 모든 힘을 쏟아낸다면 정말 이만한 섬을 다섯 쪽을 낼 수도 있겠네요.”
“그래, 놈들이 왜 내 여의주를 포기하지 못하고 그렇게 탐냈는지 이제야 알 수 있겠군.”
여의주 하나를 포기하면 될 일이었다. 언제 돌아설지 모르는 불안 종자인 련을 지금껏 품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련이 지닌 여의주의 위력은 서준과 련이 생각한 것보다 월등히 강했다.
“그럼 저도 해볼게요.”
“그래, 기대되는구나. 악룡의 여의주도 절대 여기에 뒤지지 않을 테니.”
서준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물론 이것은 여의주를 사용하는 방법과 전혀 관련 없었다.
단지 긴장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한 루틴이었다.
“파!”
깊게 들이마신 숨을 내쉬자 서준의 긴장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리고 서준은 눈앞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