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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140화 (140/150)

140화.

안정초를 시작해서 초록 활력초를 포함한 여러 약초들이 잘 정돈되어 있다.

용을 잡고 아티팩트를 모으면서도 서준은 재배지 섬을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매일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어 재배지 섬으로 넘어왔고, 이렇듯 잘 관리해왔다.

그리고 그 순간은 모두 별과 함께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서준은 붉은색의 꽃을 자랑하듯이 커다랗게 꽃잎을 피운 꽃 앞에 가서 섰다.

‘이거, 별이 알려줘서 키운 건데…….’

일종의 각성제였다. 서준이 이 꽃을 길러 상품화시킨 이후부터 초인들은 커피 대신 이 꽃잎을 다린 차를 마셨다.

맛도 커피보다 월등히 더 좋았을 뿐만 아니라 효과 역시 뛰어났다.

무엇보다 최고의 장점은 지속 시간이 매우 짧았다는 것이다. 각성 효과가 필요한 그 시점에 한 잔 마셔주면 그만이었다. 저녁에 잠 못 잘 걱정은 없었다.

물론 중독 효과도 없었다.

‘이것도 별이 알려준 거지…….’

한곳에 뭉쳐서 일종의 동굴 모양을 만들어낸 넝쿨 종류의 식물이었다.

사실 이 식물을 먹어서 사람이 특별한 효과를 볼 수는 없었다. 오히려 쓴맛에 얼굴을 찡그릴 뿐이었다.

그러나 이 넝쿨이 모여서 만든 동굴을 좋아하는 곤충이 하나 있었다.

바로 뿔벌이었다. 보통 벌처럼 몸통의 끝에 침이 달려 있지 않았다. 머리에 두 개의 뿔이 달려있었다.

그리고 이 뿔벌은 게이트 너머에서 피어나는 꽃들에서 꿀을 채취할 수 있었다. 지구의 벌들은 하지 못 하는 일이었다.

지구의 벌이 감당하기에 게이트 식물들의 독성이 너무 강했으니까.

그리고 그 꿀들은 피부미용에 엄청난 효과가 있었다. 물론 맛이 훌륭한 건 당연한 이야기였다.

서준의 주머니 사정을 더욱 넉넉하게 해준 상품 중 하나였다.

이 역시 별이 알려줘서 채취할 수 있었다.

이렇듯 별은 기억을 잃은 와중에도 몇몇의 식물을 기억해 냈고 모두 서준에게 알려주었다.

서준은 그 정보들을 활용해 재배지 섬을 가꿨고, 돈을 벌었다.

재배지 섬에는 유독 별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어흥! 어흥!

우울한 서준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걸까? 어흥이가 서준을 위로한다는 듯이 혓바닥을 내밀어 서준의 손등을 핥기 시작했다.

다 자란 호랑이의 혓바닥은 매우 거칠었다. 하지만 그 거슬리는 까칠함이 서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줬다.

“다른 데로 가보자.”

-어흥!

마음을 추스른 서준이 어흥이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주다가 말했다.

어흥이가 크게 짖으며 몸을 낮췄다. 등 위에 올라타라는 신호였다.

“일단은…. 저쪽으로 가보자.”

“어흥!”

서준이 어흥이의 등 위에 올라타서 한 방향을 가리켰다. 해변으로 향하는 방향이었다.

물론 섬이기 때문에 어느 방향이든 달리다 보면 바다가 나오기는 했다. 그래도 사람이 놀만 한 백사장은 한 곳밖에 없었다.

다른 방향은 가파른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별은 유독 그 장소를 좋아했다. 황제로 군림하던 시절에도 바다에는 몇 번 가보지 못했던 것 같다.

공간 이동도 할 수 있고, 절대 권력도 가진 녀석이 왜 그랬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래도 확실한 건 별이 바다를 좋아했다는 거다.

어흥이가 해변을 향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커다란 나무들이 어느덧 서준의 옆을 스치며 뒤로 물러났다.

별의 속도는 고속철도보다도 빨랐다. 그 위에 올라타 공기의 저항을 그대로 받는 서준이었다.

그러나 단련될 만큼 단련된 서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오히려 시원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서준은 따갑고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해변 쪽을 노려보았다.

-어흥! 어흥!

어흥이가 다 도착했다며 신호를 보냈다. 여전히 재배지 섬의 해변은 아름다웠다.

지구에는 보라카이나 와이키키처럼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한 섬들이 있다. 물론 서준이 직접 가보지는 못했다.

부모 없이 힘들게 자랐고, 약사가 된 후에도 이제 겨우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기에 여유가 없었다.

슬슬 여유가 생길 무렵 대침공이 일어났고, 국외로 이동하는데 큰 제약이 생겼다.

하지만 서준은 단언할 수 있었다. 재배지 섬의 해변이 지구의 그 어떤 해변보다 아름다웠다.

비록 지구의 아름다운 해변을 사진으로밖에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알 수 있었다.

이곳이 그 어떤 해변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애초에 재배지 섬에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살지 않았다. 가끔 약초를 관리하러 서준이 넘나들 뿐 그 어떤 사람도 살지 않는 무인도였다.

옆 대륙 역시 아직 중세시대에 불과했다. 심지어 인구조차 매우 적었다. 아름다운 자연이 그대로 보존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태생적으로 아름다운 해변에 오염요인조차 단 하나도 없었다. 서준은 별이 이 해변을 좋아하는 이유도 어쩌면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서준은 터지지 않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시간 괴리를 막기 위해 게이트를 열어둔 상태긴 하지만 이곳까지 전파가 터지진 않았다.

서준의 휴대폰에 해변의 모습이 담기기 시작했다. 재배지 섬에 올 때면 항상 별이 졸라서 이 해변을 오곤 했다.

그때마다 눈에 담아둘 뿐 사진을 찍은 적은 없었는데 무슨 변덕인지 서준은 해변을 열심히 찍었다.

“역시, 여기가 제일 이쁘네.”

-어흥!

어흥이도 동의한다는 듯이 짖었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와이키키나 보라카이의 해변들, 그 사진은 물론 전문 사진작가들이 찍었던 사진이다.

그리고 지금 서준이 휴대폰 카메라로 대충 찍은 재배지 섬의 해변, 기술도 없고 장비도 허접했다.

그러나 그 사진 속에 담긴 경관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서준의 것이 뛰어났다.

‘여기도 아니면 도대체 어디냐…….’

그렇게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리고 별이 가장 좋아하던 장소였다. 그러나 별은 이곳에도 없었다.

이러다가 정말 재배지 섬을 전부 샅샅이 뒤져야 할듯싶었다.

그러나 별수 없었다. 서준은 다시 어흥이의 등 위에 올라타서 다른 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어흥! 어흥! 어흥!

목적지에 도착하니 어흥이가 흥분해서 짖어대기 시작했다. 그럴 만했다. 어흥이가 아직 어린 시절, 서준은 별다른 전투 기술이 없었을 시절에 사투를 벌인 장소였다.

바실리스크와 싸웠던, 바실리스크의 이동 흔적이 동굴처럼 남았던 그 장소였다.

재배지 섬의 정중앙, 바실리스크의 은신처였다.

물론, 지금 바실리스크는 존재하지 않았다. 전투 흔적조차 이제 희미했다. 서준이 지구에 있을 때 재배지 섬의 시간은 매우 빠르게 흘러갔고 그 시간이 전투 흔적을 지웠다.

남아 있는 건 바실리스크의 거대한 몸뚱이가 지나다녔던 흔적뿐이다. 바위산으로 이루어진 이곳에 간헐적으로 뚫려있는 구멍은 모두 바실리스크의 흔적이었다.

이제는 바실리스크조차 존재하지 않고 어흥이를 위협할 생명체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흥이는 어릴 적 사투를 기억하는지 무척이나 날이 선 모습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별거 아냐. 긴장 풀어도 돼.”

서준이 그런 어흥이를 보며 안쓰러웠는지 목덜미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이제 일 년 조금 더 자랐을 뿐이다. 좋은 것을 먹고 자랐기 때문에 보통의 호랑이들보다 훨씬 크고 강했다.

그러나 아직 성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어리광을 부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혼자 다녀올게.”

-어흥!

어흥이가 겁이 나는지 동굴 안으로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지금껏 바실리스크보다 훨씬 강한 적들과도 싸워왔고 이겨왔다.

그러나 가장 힘들었던 상대를 뽑으라면 바실리스크였다.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어릴 적의 포식자를 떠올리니 겁이 난 모양이다.

서준은 겁먹은 어흥이를 차마 동굴 안으로 데려가지는 못했다.

‘이곳에는 있어야 할 텐데…….’

이곳에도 없으면 곤란했다. 더 이상은 별이 있을 만한 장소가 떠오르지 않았다.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던 약국에도 없었다. 재배지 섬, 약초를 기르는 곳에도 없었다. 가장 좋아하던 해변에도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이곳이 마지막이었다.

이 동굴은 별의 영혼을 처음으로 접한 곳이었다. 바실리스크를 잡고 왕관 모양의 아티팩트를 손에 넣었다.

그것이 별의 영혼과 서준이 처음 만난 시점이었다. 물론 별의 영혼을 깨운 건 대륙을 발견하고 별의 은신처에서 단검을 손에 쥐었을 때다.

그러나 별과 처음 만난 장소는 이곳이다. 별이 의식이 없었을 뿐이다.

서준은 경계하지 않고 터벅터벅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상대가 용만 아니라면 그 누가 나와도 이제는 혼자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서준의 감각도 이제는 인간의 것을 초월한 지 오래다. 이 주변에 서준을 위협할만한 괴수가 없다는 건 진작 알아채고 있었다.

동굴은 매우 길었다. 그리고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있었다. 서준은 오른쪽 벽을 따라 걸었다.

이 동굴은 바실리스크의 이동 흔적이었다. 다 둘러보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게 틀림없었다.

서준은 걸음 속도를 빠르게 했다.

-위이잉! 위이잉!

그때였다. 서준이 손에 쥐고 있던 별의 동상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별의 동상이 무언가에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멍하니 벽에 손을 짚으며 앞으로 나아가던 서준의 정신이 돌아왔다. 완전한 집중상태에 돌입했다.

동상의 눈 부위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은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쯤 되면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서준은 그 빛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계속해서 나아갔다.

동굴은 끝없이 구불구불 이어졌다. 이제는 얼마나 들어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대로 동굴이 무너진다면 서준은 그대로 죽어버릴 거다. 서준의 실력으로도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들어왔다.

그러나 서준은 겁을 먹지 않았다. 지금은 오직 별을 찾겠다는 의지만 남았다.

서준은 걷고 또 걸었다.

동굴 밖에서 기다리던 어흥이가 걱정이 되는지 동굴 입구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서준의 냄새가 이제는 나지 않는다.

지금 뛰어들어가도 서준을 만날 수 없다. 오히려 복잡한 동굴 속에서 서로 엇갈릴 가능성만 컸다.

어흥이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 동굴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어흥! 어흥! 어흥!

그러나 해는 이미 떨어졌다. 오랜 시간 서준이 나오지 않았다. 어흥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크게 울부짖는 것뿐이다.

동굴 주변에 있던 크고 작은 괴수는 겁을 먹고 오줌을 지렸다. 그나마 쓸만한 놈들은 멀리 도망쳤다.

심장이 약한 괴수들은 그대로 놀라서 죽거나 기절했다. 이제 동굴 주위에는 숨을 쉬는 동물이 단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

-아! 기다리다 혼났네! 왜 이렇게 늦게 오는 건데!

밖에서 어흥이가 걱정하고 있을 때쯤 드디어 서준은 별을 찾았다. 동굴 안을 계속해서 걷고 또 걷다가 어디까지 들어왔는지 모를 때쯤 동상이 아주 환하게 반짝이며 빛났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 동상에서 별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드디어 별의 영혼을 찾은 거다.

-뭐 해? 안 나가고. 여기 갇혀있었더니 답답해 죽겠어. 빨리 해 보고 싶어, 여긴 너무 어두워.

‘이 새끼가…….’

이제는 영혼으로 이어져 있지 않았다. 별의 영혼은 동상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여전히 서로의 생각만으로 대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밤이다. 이 새끼야.’

드디어 별을 찾았다. 그리고 서준은 여느 때처럼 별을 구박하기 시작했다.

지난 시간 별을 그리워했던 건 잊어버린 듯이, 아무렇지 않게 이전처럼 별을 구박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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