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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138화 (138/150)

138화.

[가장 아끼던 부하에게 뒤통수를 맞아 봉인된 지 삼 년이 지났다. 영혼은 열두 갈래로 찢어졌다. 내 육신은 차디찬 얼음 속에서 냉기도 느끼지 못한 채 멈춰 있었다.]

첫 페이지의 번역을 끝냈다. 다행히도 련이 일기 속 글자의 칠 할은 읽을 수 있었다. 문맥을 파악해 나머지 삼 할을 해석해내는 건 련에겐 일도 아니었다.

련은 뛰어난 무술 실력을 가진 만큼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다.

싸움이란 건 본래 머리로 하는 것이다.

"육체가 없는데 이런 일기는 어떻게 쓴 거죠?"

"침대는 또 왜 있는 거예요? 영혼만 빠져나왔다고 해도 침대 같은 건 필요 없었을 텐데요?"

서준과 오세근이 의문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일기의 내용을 볼 때 명백히 별 본인이 쓴 일기였다.

침대나 책상 등의 가구를 보았을 때 육체가 없는 영혼이 사용한 방이라고 생각하긴 힘들다.

애초에 영혼 상태의 무언가가 이런 방 안에서 숨어 사는 건 상상이 가질 않았다.

"뭐 다음 장을 해석해보면 알 수 있겠지."

련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다음 장을 해석하기 시작했다.

련의 펜이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뭐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쓸모없는 말을 많이 써놨어."

앞 장의 내용도 사실 저렇게 간단히 끝나지는 않았다.

쓸모없는 말은 련이 알아서 쳐냈기 때문에 저 정도로 끝낼 수 있었다.

"어린애라 그래요. 안 그래도 배신까지 당하고 영혼이 찢겼으니 제대로 쓸 정신이 없겠죠."

영혼이 열두 갈래로 찢겼다. 안 그래도 어린아이가 그런 일을 겪었다. 정신이 파괴되어도 무방한 상황이었으나 별이었기에 이만큼이나마 버틸 수 있었을 뿐이다.

[열두 개의 영혼 의식을 잡을 수 있던 건 하나가 전부였다. 봉인되어 흩어지는 순간 몇 개의 영혼을 더 붙잡아보려 노력해봤지만 헛수고였다. 내가 잡을 수 있는 건 하나가 전부였다.]

"대단하군. 봉인의 문제가 있어 영혼 하나를 살렸다고 생각했는데……. 스스로 쟁취해낸 거였어."

"뭐가 다른가요?"

"달라도 아주 다르지. 봉인이라는 건 쉬운 데 아니야. 용 정도나 돼야 가능한 신의 권능 비슷한 거야."

"그런데요?"

"특히나 영혼을 열두 갈래도 찢다니 악랄해도 이렇게 악랄할 수가 없어."

지금껏 서준이 본 봉인은 딱 두 가지였다.

악룡의 봉인과 별의 봉인이었다. 두 봉인 모두 용과 관련이 있었다.

악룡에게 봉인은 건 것은 용이었고 별의 봉인에는 백 마리의 용이 필요했다.

"용이 직접 한 게 아니라 여의주 백 개를 사용했다고 했어. 인간이 다룰 수 있는 건 오직 한 개의 여의주가 전부. 당연히 봉인에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봉인에 문제는 없었다는 거죠?"

"그래, ‘봉인에 문제는 없었다. 나 스스로 풀어냈다.’라고 적혀 있군."

여의주 백 개가 소모되어 있다는 건 용 백 마리가 함께했다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련은 당연히 봉인에 결함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별은 정말로 엄청난 일을 해낸 것이다.

[영혼을 움직이는 데는 일 년이면 충분했다. 단검 속에 갇혀서 움직일 수 없던 영혼은 일 년 후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육신을 찾는 데는 그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용 백 마리의 봉인 속에서 의식을 붙잡은 것도 모자라서 본인을 뚫고 영혼을 봉인물 안에서 끄집어내다니……. 정말 대단하군."

련이 이토록 진심으로 감탄한 건 처음 보는 경우였다.

그만큼 별의 일기가 련이 봐도 놀라울 정도로 어려운 행위기로 가득 적혀 있었다.

서준이나 오세근의 경우는 뭐가 대단한 건지 아직 감을 잘 잡지 못한 것 같았지만 련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련은 계속해서 해석을 이어나갔다.

[그 후로 이 년, 이 년의 시간이 더 흘러서야 내 육체를 되찾을 수 있었다. 육체를 되찾은 후 놈들의 추격을 따돌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영혼을 찾는 데 일 년 육체를 되찾는 데 이 년 총 삼 년이 흘러서야 나는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래, 이렇게 된 거였군.”

“그러게요. 이러면 침대나 책상이 있는 것도 말이 되죠.”

별이 영혼과 육체를 되찾기까지 삼 년이 걸렸고 이곳에 은신했다는 것을 지금까지의 일기 내용으로 알아낼 수 있었다.

“중간 과정이나 이런 걸 좀 써줬으면 좋았을 텐데요.”

김비서가 아쉬운지 투덜댔다. 게이트를 열어 지구로 괴수를 보낸 녀석들이 별을 봉인한 놈들과 연관이 있다는 건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긴 세월을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는 몰라도 어찌 되었건 지금은 그렇게 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놈들이 련에게 추적 마법을 걸었던 집단과 관련이 있다는 것도 거의 확실했다.

두 집단 모두 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두 집단 사이의 매우 긴 시간의 흐름이 있기는 했지만 용과 관련되어 있는 데다가 미래의 게이트를 여는 녀석들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보았을 때 두 집단이 관련이 없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별을 봉인하고 련조차도 지구로 도망쳐 숨어 살 수밖에 없도록 만든 집단이었다.

별이 영혼과 육체를 되찾는 과정에서 그놈들과 충돌이 없었을 거라고는 예상하기 힘들다.

필시 그놈들도 별을 저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을 것이다.

육체를 되찾고 난 후에도 추격을 따돌렸다고 했다. 이후 이곳에 온 것도 은신에 가까웠다.

만약 별이 그놈들과의 싸움을 기록해 두었다면 앞으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별의 일기에는 그 부분은 생략된 채 삼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만 적혀 있었다.

“그러게, 아쉽군. 하지만 적혀 있어봤자 우리에게 큰 도움은 안 됐을 거다.”

“어째서죠?”

“그가 사용한 방법은 우리는 사용하지 못할 테니까. 천재에게는 천재만의 방법이 있는 법이다. 범인들은 감히 따라 할 수 없지.”

추격을 따돌리는 것은 매우 쉬웠다고 적혀 있었다. 영혼이 찢겨나간 상태에서도 그러했다.

그런 일을 우리가 따라 할 수 없는 건 당연했다.

서준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련이 또 한 페이지를 해석해냈다.

[놈들은 내 영혼을 담은 물건들을 세뇌가 걸린 괴수에게 지니게 했다. 내 영혼의 힘을 빌려 강력해진 괴수들을 수족으로 부리려는 계획인 것 같다. 아직 까지는 단 한 마리의 괴수만 내 물건을 받았지만 앞으로 괴수의 세뇌가 성공하는 순간 또 한 마리의 엄청난 괴물이 탄생할 것이다.]

[내 영혼을 감당하지 못한 괴수가 결국 죽고 말았다. 그럼 그렇지. 감히 짐의 영혼을 감당하려 들어? 아마도 놈들의 계획이 실현되는 데에는 수백 년도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다행이었다.]

다음에 적힌 내용은 별의 영혼을 품은 괴수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괴수들이 완벽히 성장하지 못했던 것이 의문이었는데 아무래도 별의 영혼을 감당하기에는 괴수들이 모자랐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대륙 역사상 최고의 천재였다. 열두 조각 난 영혼으로도 엄청난 힘을 유지할 수 있는 강력한 영혼이었다.

그런 영혼을 괴수가 쉽사리 다룰 수 있을 리 없었다.

련은 계속해서 일기를 해석해 나갔다.

[놈들이 내 영혼을 어린 용에게 지니게 했다. 태어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어린 용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건 미친 짓이다. 용을 부리는 건 나조차도 실패한 일이었다. 용은 죽일 수는 있어도 밑에 두는 건 불가능한 종족이었다.]

[내 영혼을 품고 강력해진 용이 이 세상을 부수기 시작했다. 놈들이 용무기를 들고 맞서 싸웠지만, 역부족이었다. 놈들의 세력이 상당히 약해졌다. 아무래도 놈들 계획이 완벽히 실현되는 건 조금 더 훗날의 일인 것 같다. 다행이다.]

“이건 아마도 악룡의 이야기겠죠?”

“그렇겠지. 아마 악룡이 봉인의 여파로 쇠약해지지 않았다면 우리 역시 이길 수 없었을 거다.”

“그렇겠죠. 봉인되었던 상태로도 그렇게 강했는데…….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이기기는커녕 상처 하나 내기도 어려웠겠지.”

련은 서준과 이야기하면서 다음 페이지의 해석을 마쳤다.

[내 영혼을 품은 용이 놈들의 대장을 죽이기 직전 용들이 직접 나섰다. 수많은 용들이 목숨을 버린 후에야 그놈들 봉인할 수 있었다. 놈은 당시 용들의 대장 격이었던 놈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며 겨우 봉인을 끝마쳤다.]

[역시 내 예상대로였다. 용 중에 나를 봉인한 놈들과 내통한 놈이 있는 것 같다. 백 개의 여의주를 하나로 합치는 데 도움을 주고 이번 봉인 사태에 용이 개입할 수 있도록 손쓴 놈이 있는 것 같다. 저놈은 내가 직접 죽여야 분이 풀릴 것 같다.]

“흥미롭군. 용과 인간이 내통하다니. 이게 가능이나 한 건가?”

“안 되는 건가요?”

“안 되지. 용은 인간을 한낱 미물로 취급한다. 너희가 개미를 보는 것과 용이 우리는 보는 것이 같은 시선이다.”

“차이가 좀 심하지 않아요? 개미는 뭉쳐도 인간을 잡을 수 없지만 인간은 용을 잡을 수 있는데요?”

“형님, 어딘가에 식인개미가 뭉치면 인간을 잡아먹기도 한다는 걸 들어본 거 같습니다.”

“그래?”

련의 이야기는 사실이었다. 용은 인간을 개미 취급했다. 인간이 개미와 협동하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용 한 마리가 인간과 내통했다. 별이 적었으니 아마도 확실할 것이다.

[선택해야 했다. 불안한 영혼과 육체로는 오래 버틸 수 없었다. 내 등에 칼을 꽃은 놈들을 죽일지 용을 죽일지 선택해야 했다. 내 분노는 뒤통수 친 놈을 향하고 있었다.]

[용을 죽였다. 용을 살려두었다면 결국 다른 인간과 결탁하여 똑같은 일을 벌일 게 분명했다. 내 등에 칼 꽃은 놈, 위만 그놈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 내 수명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어째서일까요? 저였다면 용 대신 그놈들을 잡았을 거 같은데요.”

“그러게. 이해가 되질 않는군. 어차피 죽고 나면 다 소용없는 세상 화풀이라도 하고 가는 게 옳지 않았을까요?”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었다. 이제야 이름을 알게 된 위만이라는 놈, 그놈을 살려두고 용을 죽일 이유는 없었다.

서준은 련이 서둘러 다음 장을 해석해주길 원했지만 련의 손가락은 멈추고 동공이 크게 확장되어 있었다.

“사부님! 왜 그러세요?”

“위만……. 분명 위만이라 그랬다.”

“근데 왜요? 아는 놈이에요? 설마 사부님한테 추적 마법 건 놈이랑 같은 놈이에요?”

“놈이 아니다.”

“네? 여자예요?”

련이 놀랄만한 이유는 하나였다. 련을 쫓던 놈들과 별을 봉인하는 놈들이 같은 놈들이기 때문이다.

그건 련의 표정과 지금껏 상황만 유추해봐도 알 수 있었다.

“위만……. 그건 그놈들, 그러니까 그 집단의 이름이다.”

“별은 놈이라고 했는데요?”

별의 등에 칼을 꽃은 놈, 아마도 그 김비서를 닮았던 녀석일 거다. 그런데 련은 개인의 이름이 아닌 집단의 이름이라 말했다.

“그렇다는 건 그놈의 뜻을 이은 집단이 별을 봉인한 놈이란 거죠?”

“역시……. 둘 사이에는 연관이 있었어. 이제 확실해졌군.”

두 집단이 같은 집단이라는 게 이제야 확실해졌다. 그리고 서준의 목표 역시 확실해졌다.

위만을 잡으면 게이트를 닫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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