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허억! 허억! 허억! 허억!"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별의 기억 속 세계로 넘어갔던 서준도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온 세상을 뒤덮었던 강렬한 빛도 사라졌다. 움직임을 멈췄던 서준의 동료들과 호랑이들도 숨결들 되찾았다.
모두 멈춰있는 사이, 아주 찰나의 시간 동안 별의 기억 속에서 서준은 수년간의 시간을 보냈다.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었다. 원래의 세계로 돌아온 서준은 폐가 터져라 숨을 가파르게 쉬었다.
"형님! 괜찮으세요? 갑자기 왜 그러세요!"
놀란 오세근이 서준에게 달려오며 물었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넌 괜찮냐?"
시간이 멈췄다. 아니, 시간이 멈췄다기보다는 세상이 멈췄다.
모두가 숨도 쉬지 못하는 동안 서준만이 움직일 수 있었다.
서준의 체감으로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오세근을 비롯한 모두가 생체활동이 모두 멈췄다.
서준은 그 순간이 아주 찰나였다는걸 알지 못했기에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네, 뭐가요? 갑자기 절 왜 걱정하세요?"
"아니야, 괜찮으면 됐다."
오세근의 반응을 보아 괜찮아 보였기에 서준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무슨 일이 있던 거지?"
뒤에서 터벅터벅 걸어오던 련이 물었다.
역시 련이였다.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었다.
"순간이동을 한 건 아닐 테고 내 옆에 있던 놈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모두가 멈췄을 때 서준만 움직일 수 있었다.
서준은 기어가며 별의 동상이 있는 곳까지 이동했다.
련이 정신을 차리고 난 후에는 서준이 순간이동 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신 겁니까?"
오세근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련마저 아무 위화감도 느끼지 못했다는 건 의아했다.
"글쎄? 네가 순간이동을 한 것 말고는 별로 특이한 건 없는데?"
"그런가요?"
련조차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보통 일이 아니었다. 본인 몸의 이상을 느끼지 못할 사람이 아니었다.
"세상이 멈췄었어요."
"그건 또 무슨 헛소리냐?"
련의 입장에서는 헛소리처럼 들릴 만했다.
멀쩡한 제자 입에서 갑자기 세상이 멈췄다는 말이 나왔다. 농담처럼 받아들이는 게 당연했다.
"아티팩트를 모두 동상에 가져다 대었더니 온 세상이 밝은 빛으로 가득 찼어요. 너무 밝아서 눈을 뜰 수밖에 없을 정도로요."
"음……. 표정을 보니 거짓말은 아닌가 보군. 정말 시간이 멈추었던 건가……."
"아뇨, 시간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저는 움직일 수 있었으니까요. 시간이 아닌 세상이 멈춘 겁니다."
어째서일까? 어째서 서준만 움직일 수 있었을까?
서준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래서 어떻게 했지?"
"아티팩트를 합치는 순간 충격으로 날아간 동상을 찾았습니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라 했으니 엉금엉금 기어대는 게 눈에 훤하군. 하하! 그 꼴을 꼭 내 눈으로 직접 봤어야 했는데!"
"그렇게 추하지는 않았어요. 저는 기어가도 멋지게 기어가는 사람이에요."
많이 추했든 조금 추했든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본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으니까.
"그 이후는?"
"별의 지난 기억을 엿볼 수 있었어요. 별이 봉인 당하기 직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어요. 그게 다예요."
"그래? 그래서 별은 어떻게 됐지? 영혼은 합쳐진 건가?"
아티팩트를 모으는 목적은 별의 영혼을 모으기 위함이었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이 모든 사건들 때문에 순간 별을 잊고 말았다.
이 순간 제일 중요한 녀석이었는데 서준은 그를 잊고 있었다.
'별!'
부끄러움도 잠시,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서준은 별을 불렀다.
-......
그러나 아무 응답도 없었다.
'별! 대답해! 별!'
목이 터져라 외치지는 않았다. 어차피 생각만 해도 부를 수 있었다.
별이 서준 영혼 속에 기생하고 있었기에 생각만으로 통하는 사이였다.
서준은 목이 터져라 외치는 대신 아주 강한 의지를 갖고 별을 불렀다.
-......
그러나 아무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별이 대답을 안 합니다."
서준이 이럴 때 의지할 수 있는 건 련뿐이었다.
서준의 스승인 련은 항상 서준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구해주었으니까.
마찬가지로 오늘도 역시 ‘련이 구해줄 것이다.’라고 서준은 완벽하게 믿고 있었다.
그만큼 련에 대한 서준의 신뢰는 두터웠다.
"흠……."
련이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련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전까지는 영혼이 불안정했기에 네 영혼 속에 기생할 수 있었고 지금은 영혼이 완벽해졌기에 분리된 게 아닐까? 애초에 그 정도 되는 놈의 영혼을 네가 포용할 수 있을 리 없지. 네놈의 영혼은 그리 특별하지 않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서준은 조금 뛰어날 뿐 굳이 따지자면 평범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별은 달랐다. 별은 백 년, 아니 천년만년이 지나도 다시 나오지 못할 천재였다.
별의 영혼의 크기는 열두 조각이 나서야 서준의 영혼과 크기가 비슷해졌다.
그리고 서준의 영혼에 기생할 수 있었다.
련의 추측은 완전히 들어맞았다.
"그럼 별의 영혼은 어떻게 됐을까요? 이대로 성불이라도 한 걸까요?"
별의 영혼을 모은 이유는 간단했다. 별의 기억을 이용해 게이트를 닫을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별이 이렇게 사라져버린다면 그간 해왔던 모든 노력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찾아봐야지. 그보다 왜 네놈만 움직일 수 있었을까? 별의 영혼이 네 영혼 속에 기생해서?"
"아니요. 그건 아닐 거에요. 아티팩트를 모두 모아 동상에 가져다 댄 후 별의 목소리가 끊겼어요. 아마 그때 영혼이 빠져나갔을 거예요."
알아차린 건 늦었지만 별의 영혼은 진작에 빠져나갔다. 이제는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서준만이 홀로 행동할 수 있던 건 별의 영혼 덕은 아니었다.
"그러면……. 이 세상을 만든 게 네놈이라서 그런 건가?"
"네?"
"지구에서 열리는 게이트와 네가 연 게이트 속의 세상은 시간의 축이 다르다."
"네, 누구보다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서준의 능력이었다. 련과 오세근 그리고 김비서가 함께하기 전에도 서준은 홀로 게이트를 이용해왔다.
심지어 별을 만나기 전에도 홀로 게이트를 이용해왔다.
호랑이들과 함께하기 전에도 홀로 이용해왔다.
그 누구보다 게이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던 건 서준이었다.
"그 세계의 주민이었던 나로서는 인정하기 싫지만……. 도리가 없군. 네가 지금 이 세계의 주인이다."
"네? 제가요?"
"그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 진작에 알아차렸어야 했어. 어째서 지금까지 알아채지 못했을까?"
서준은 련이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말하는 련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서준은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 돼요. 자세히 좀 설명해 주세요."
"그래. 나의 세상과 너의 세상. 다른 차원의 세상이지."
"뭘 새삼스럽게 당연한 걸 얘기하고 있어요."
지금은 어린아이조차도 모두 아는 사실이다.
게이트 너머의 세상과 지구는 서로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는 것을.
"하지만 내가 사는 세상과 지구에서 열리는 게이트의 세상은 서로 같은 차원이다."
"네, 시간 축만 다를 뿐이죠."
"그래, 시간 축이 다르지."
왜 자꾸 아는 이야기를 하는지 서준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련은 언제나 이렇듯 빙빙 꼬아서 말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서준은 련의 성격을 잘 알았기에 적당히 받아주면서 뒤에 나올 정답을 기다렸다.
"그래. 그게 이상하단 말이야. 왜 전에는 알아채지 못한 걸까?"
"도대체 뭐가요?"
"서로 같은 세상의 다른 시간 축이 동시에 존재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안 되나요?"
"그건 모르지. 뭐, 지금 우리가 직접 겪고 있으니까 가능한 거지. 그리고 어쨌든 그것을 가능케 한 건 바로 너다."
"네, 뭐 제가 게이트를 열었으니까요."
서준이 게이트를 열었으니 길게 얘기할 거리도 아니었다.
"그래. 전적으로 네가 게이트를 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 그 말은 즉, 네가 게이트의 주인이라는 거다."
"흠……. 이 세상이 존재하는 게 오로지 제 힘 덕분이다 이 말씀인가요?"
"그래. 인정하긴 싫지만 그런 것 같군."
련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련은 서준이 만들어낸 가상 생물체나 마찬가지였다.
련은 오래전에 죽어 그 존재를 기억하는 존재조차 없어야 했다.
서준이 과거의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염과 동시에 련이 탄생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뭐, 완전히 독립된 세계는 아닌 것도 같다. 다 자라지 않은 괴수를 죽임으로써 미래의 위협을 물리친 적도 있으니. 어쨌든 그냥 가설일 뿐이다."
"뭐, 이해는 가요. 이 세상을 만든 게 나였기 때문에 모두가 멈춘 와중에도 혼자 움직일 수 있었다는 거잖아?.
"그래. 뭐 가설일 뿐이다만. 그래도 기분이 나쁜 건 어쩔 수 없군. 내가 네놈 덕분에 존재한다니……."
그래 가설일 뿐이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일 뿐이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현상의 원인을 밝혀봐야 뭐, 어디 도움 되는 것도 아니고. 잊어버려 그냥."
"네."
세상이 다시 멈추지 않는 이상 도움 되지 않는 사실이다.
정확한 원인을 알아내고 세상이 다시 멈춘다 해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을까?
불가능에 가깝다. 그때도 아마 서준만이 움직일 수 있겠지.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별을 찾는 거지."
"하지만……. 어떻게?"
게이트를 닫으려면 별을 찾아야 했다.
영혼이 합쳐진 후 성불한 게 아니라면 별은 어딘가에 분명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시체를 찾아야지."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본인의 몸으로 되돌아갔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영혼과 육체는 본디 한 쌍으로 서로 끌어당기는 성질이 있었다.
이는 서준이 별에게 훈련을 받으면서 익히 들었던 사실이었다.
"일단 저것부터 챙겨라."
"네."
서준은 나뒹굴고 있는 별의 동상을 향해 걸었다.
별의 영혼이 담긴 아티팩트를 모두 흡수한 동상이었다.
비록 별의 영혼은 모두 아티팩트에서 빠져나갔지만 그래도 그 힘의 잔재는 남아있었다.
앞으로의 싸움에 큰 도움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이거 너무 커서 들고 갈 수는 있어요?"
동상 바로 옆에 서 있던 오세근이 동상을 집어 들었다.
천하장사 수준으로 힘이 강했던 오세근도 버거울 정도로 무거웠다.
게다가 크기도 상당해서 들고 다니기 불편했다.
"뭐, 세근아 네가 좀 고생해라."
굳이 서준 스스로 들고 가고 싶지는 않았다.
한눈에 봐도 무거운 동상을 굳이 직접 이고 가고 싶지 않았다.
서준은 동상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살짝 두드리며 오세근에게 동상을 떠넘기려 했다.
"어!"
그리고 그 순간 오세근이 소리쳤다.
동상이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의 동상의 크기는 현저히 작아졌다.
"이 정도면 내가 들고 가도 되겠네. 이리 줘. 세근아."
서준은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로 줄어든 동상을 세근에게서 뺏어갔다.
이 정도면 충분히 스스로 들고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