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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135화 (135/150)

135화.

시간이 갑자기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마치 비디오테이프를 빨리 감듯이 사람들의 말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이윽고 사람들의 말소리가 더 이상은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빨라졌고 어느새 음소거 상태가 되었다.

동쪽에서 태양이 떠올랐다 서쪽으로 태양이 사라지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무더운 여름이던 세계는 어느새 눈이 무릎까지 쌓일 정도로 추운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눈이 녹아 땅에서 새로운 약초들이 고개를 들이밀 즈음 시간의 흐름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시간은 빨리 흐르면서도 모든 시점은 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이 세상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이 아닌 별의 기억을 되돌아보는 것처럼.

“야, 그 새끼들 요즘 뭐 하고 있냐?”

별이 옆에 서서 별을 보좌하던 신하에게 물었다. 배역으로 따지면 별 특징 없는 아주 흔한 내시1과 같은 존재였다.

물론 내시는 아니었다.

“용을 잡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 그건 알고 있지. 그러니까 왜 그러고 다니냐고.”

용처럼 거대한 존재감을 지닌 존재가 사라지는 걸 별이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애초에 용이 인간의 영역을 침공하지 않았기에 놔두고 있을 뿐 어디에 있는지는 다 꿰고 있던 별이었다.

“그것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냐,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저 새끼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건방졌다.

“근데 그놈들이 용을 어떻게 잡았지? 단체로 덤벼도 턱도 없을 텐데.”

기술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더 발달한다. 뉴턴보다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이 더 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물론 깊이로 따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무술 역시 마찬가지였다. 별의 시절부터 지금의 시절 사이에는 엄청난 시간의 흐름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역시 용이란 엄청난 존재였다. 무기를 제외하고 본다면 최강이라 할 수 있는 련조차 용을 단신으로 사냥할 순 없었으니까.

그러나 별의 시대에는 별을 제외하고는 용을 잡을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집단 역시 없었다.

용이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별 덕분이었다.

“용으로 무기를 만들었답니다. 용의 신체를 이용해서 만든 무기를 들면 평범한 범인도 천하제일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뭐? 천하제일? 짐을 놔두고 천하제일? 어디 다 들어오라 그래. 정신 차리게 해줄 테니까.”

“물론 황제 폐하는 예외입니다.”

사람의 성격이란 영혼이 갈가리 찢어지고 기억을 잃었다 해도 변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서준은 성선설을 믿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이쯤 되니 그 생각이 슬슬 변하려 하고 있었다.

“아! 그게 아니지……. 잠깐만 뭔가 이상하지 않아?”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용으로 무기를 잡으려면 일단 용을 잡아야 하잖아? 전후 관계가 뭔가 이상하지 않아?”

별을 제외한 다른 이들이 용을 잡으려면 용무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용으로 무기를 만들려면 일단 용을 잡아야 했다.

그렇다는 건 용무기를 얻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별을 제외하고는 용을 잡을 수 있는 개인과 단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용을 잡을 수 없으니 용무기도 구할 수 없었다. 저들이 용을 잡은 것과 용무기를 구한 것 모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용이 시체를 남기려면 수명이 다하기 전에 죽임을 당했다는 건데……. 놈들 실력으로는 무리야.”

용이 수명을 다해 죽으면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유적으로 변한다. 용은 모든 잠재력을 유적으로 만들고 죽었기 때문에 시체 또한 남기지 않았다.

“운이 좋았지요.”

“운?”

“네, 폐하. 지난겨울 갑작스레 폭염이 왔던 날 기억하십니까?”

“아, 그날? 웬 늙은 용 둘이 어린 여자 용 차지하겠다고 치고받고 싸운 날이잖아. 그거 짜증 나서 내가 두 놈 다 죽여버렸던 날이잖아.”

“맞습니다. 두 마리의 늙은 용이 서로 싸우느라 기상이변까지 발생했었죠. 둘 다 죽기 직전이라 가진 힘이 상당했거든요.”

“알지, 알지.”

용은 오래 살수록 강해졌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은 신체 최전성기를 지나면 점점 쇠약해졌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였다.

그러나 용은 죽기 직전이 가장 강력했다. 두 마리의 용은 모두 백 년 안에 유적화 될 정도로 나이를 많이 먹은 용이었다.

그런 용 두 마리가 서로 죽일 듯이 싸워대니 온 지구에 기상이변 현상이 발생했다. 그로 인해 피해가 상당해서 별이 그 두 마리를 죽여버리고 말았다.

“바로 그겁니다. 그놈들이 거기서 그 두 마리 용의 시신을 수습했다고 합니다.”

“와, 내 거 훔쳐먹은 거잖아?”

“어떻게……. 그럼 벌하시겠습니까?”

별이 버려두고 갔다고 해도 별의 물건이었다. 황제의 전리품이었다. 황제가 잡은 괴수의 시체를 가져가는 법은 없었다.

별이 가끔 심심풀이로 괴수를 사냥했을 때 생긴 괴수의 시체는 그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다.

별이 벌한다고 하면 충분히 벌할 수 있는 사항이었다.

“아니, 놔둬. 뭘 쪼잔해 보이게 그런 거로 그러냐.”

“알겠습니다. 폐하.”

모처럼 별이 대인배적인 면모를 보였다. 속으로는 매우 꿍해 있을지라도 황제의 위엄을 지켰다.

별은 지금 속으로 나 좀 멋있었어! 하며 자화자찬하고 있었다.

“와, 근데 그 무기는 조금 탐나네.”

“폐하께선 무기가 없어도 강력하시지 않습니까? 그런 미물의 무기는 약자들이나 사용하는 법입니다.”

서준은 이놈이 별의 가장 옆에서 별을 보좌하는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았다.

김비서의 모습과 이자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그래도 좀 멋지잖아? 용의 뼈로 만든 검! 용의 이빨로 만든 창! 멋지지 않아?”

“얘기를 들어보니 그렇게 멋지지도 않다고 합니다.”

“그래?”

“네, 그렇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악룡의 시체로 무기를 만들 때 꼬박 오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더군다나 이 당시에는 용의 무기를 전문으로 다루는 기술자도 없을 시절이었다.

계절이 한 번 바뀌는 짧은 시간 동안 용무기를 제련해낼 수 있을 리 없었다.

“단순히 이빨을 들고 싸우거나 창대에 묶어서 싸우거나 하는 수준이랍니다.”

“그런데도 그런 힘을 낸단 말이지?”

“원체 그 주인이 강력했던 놈이니까요.”

“그렇군.”

간단한 이야기였다. 딱히 주술적인 처리를 하지 않아도 용의 시체는 그 자체로 강력한 힘들 지니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용의 어금니를 들고 싸우는 것만으로 천하제일이 될 수 있다는 것도 과장이 아니었다.

실제로 지구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대침공이 발생하고 사실 그렇게 긴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괴수의 시체를 이용한 무기 제작법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아룡의 시체를 이용한 무기를 만들 때도 그랬다.

단순히 압축하고 날카롭게 벼려서 사용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강력한 힘을 자랑했다.

용무기를 굳이 제련하지 않고 사용해도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물론 안 한 것보다는 한 것이 월등히 좋았다.

다시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싹을 피운 봄꽃들이 잎을 떨어트리고 강렬한 태양이 지면을 달궜다.

어느덧 날이 다시 쌀쌀해지며 단풍이 떨어졌고 눈이 수북하게 쌓였다.

“쌀쌀하네.”

“폐하도 추위를 느끼십니까?”

“아, 나도 인간이라고! 인간! 내가 전지전능해서 가끔 잊는 거 같은데! 나도 인간이라고!”

“아, 그렇습니까? 폐하께서 워낙 대단하셔서 저도 잊어버렸나 봅니다.”

김비서가 한 명 더 있었다.

“요즘 들어 용들이 씨가 말랐네. 그놈들은 왜 그렇게 용을 잡아대는 거야?”

“반란을 꿈꾸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걸 지금까지 말 안 하고 가만히 놔뒀어?”

“그놈들이 그런다고 폐하를 밀어낼 수 있겠습니까?”

“그건 또 그렇지.”

용무기를 아무리 모은다고 해도 별을 쓰러트릴 수는 없었다. 그 정도로 별과 놈들 사이에는 커다란 격차가 있었다.

“한데, 왜 놈들을 아직 가만히 놔두시는 겁니까?”

“왜, 직접적으로 반기를 든 것도 아니고.”

“그래도 거슬리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큰 죄입니다.”

“그래도 쓸모 있잖아. 귀찮게 내가 돌아다니지 않아도 그놈들이 괴수들 다 처리해준다고.”

“그건 그렇긴 합니다.”

공간이동을 하고 괴수를 잡는다. 별에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귀찮은 건 사실이었다.

소파에서 멀리 떨어진 리모컨을 가지러 가는 건 전혀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무척이나 귀찮아서 차라리 텔레비전을 보지 않을 때도 있었다.

이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굳이 몸을 움직여 괴수를 잡으러 가는 건 매우 귀찮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놈들은 속내가 괘씸할지언정 쓸모 하나는 있는 놈들이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계속해서 흘렀다. 계절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하지만 별은 여전히 어린아이였다. 애초에 무척이나 어린 시절 왕이 되었던 별이다.

아직도 별은 청소년기에 접어들지도 않았다.

“어째서?”

“당신처럼 어리고 힘만 강한 어리석은 황제는 필요 없습니다.”

별의 표정에 황당함이 가득했다. 황제가 된 별은 그 누구도 믿지 않았다.

애초에 힘으로 얻은 황제의 자리였다. 평범한 부모 아래에서 태어났으나 그 천재성은 대륙을 흔들 정도로 엄청났다.

두 살, 옹알이도 못 하는 나이에 대륙 최강에 자리에 올랐다. 별이 배가 고파서 울기라도 하는 날에는 지진이 날 정도로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별은 그렇게 네 살, 대화라는 걸 겨우 할 수 있는 나이에 황제가 되었다. 철없는 별의 성격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배경도 없고 무식하게 힘만 센 어린 황제였다. 별을 진심으로 따르는 신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단지 힘에 굴복했을 뿐이었다.

그런 별이 유일하게 믿는 사람이 있었다. 별의 옆에서 보좌하는 김비서를 꼭 빼닮은 놈이었다.

그놈만큼은 별이 진심으로 믿었다. 그러나 그놈이 별을 배신했다. 완전히 믿고 있었기에 방심할 수밖에 없었다.

“황제! 내 말을 따랐으면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았을 겁니다.”

검은 망토를 메고 오른손에는 용의 어금니를 쥐고 있는 놈이 말했다.

“내가 이 정도 봉인도 못 풀 거 같으냐! 어디 한번 해보자!”

“소용없소. 걸리기 전이라면 모를까 이미 완전히 발동한 이 봉인을 풀 방법은 없소.”

별은 차원을 넘나드는 것도 가능했다. 그러나 이 봉인의 결계를 뛰어넘을 방법이 없었다.

“당신의 영혼은 이제 산산이 조각날 것이오. 그리고 그 영혼은 우리의 찬란한 미래를 위해 잘 쓰일 것이니 너무 억울해하지 마쇼.”

“내가 이대로 당할 것 같아?”

별이 소리쳤으나 소용없었다. 이제는 별의 목소리조차 결계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았다.

“대장! 이대로 봉인이 풀리는 건 아니겠죠? 저놈 보통 놈이 아닙니다!”

“백 마리 용의 여의주를 포기하면서 만든 결계다. 아무리 황제라도 불가능해.”

여의주 백 개의 힘을 오로지 별의 봉인에만 사용했다. 자연 현상을 다루는 백 명의 군대를 만들 수 있었지만 별을 봉인하기 위해 포기했다.

쉽사리 풀릴 리 없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악!”

별의 영혼이 찢겨나가고 있었다. 천재라 불리던 별조차도 이 고통은 참아낼 수 없었다.

영혼이 찢긴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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