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눈 부신 빛이 온 세상을 뒤엎었다. 별의 동상이 있는 곳만을 뒤덮지 않았다.
밝디밝은 빛은 유재학이 경비대장으로 있었던 곳부터 재배지 섬까지 모두 뒤엎었다.
새하얀 빛은 단 한 줌의 공간도 남기지 않고 온 세상을 뒤덮었다.
빛은 고작 세상을 뒤엎은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동물들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 역시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서준의 옆에 서 있던 김비서와 오세근 그리고 모하메드뿐만 아니라 련 역시도 움직임을 멈추고 숨조차 멎었다.
식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감각이 극도로 발달하고 식물을 다루는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서준은 느낄 수 있었다.
커다란 나무부터 시작해서 아주 작은 잡초까지 모든 식물들이 호흡을 멈추었다.
지금 움직일 수 있는 건 오로지 별과 영혼이 연결된 서준뿐이었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앞이 하나도 안 보여.’
강렬한 빛 때문에 도무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기운을 불러모아 안구를 보호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단지 주위에 있던 모두가 행동을 멈추고 숨조차 쉬지 않고 있다는 것만 느낄 수 있었다.
‘야! 말해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이쯤 되면 서준도 눈치를 챌 수밖에 없었다. 별의 영혼을 모은 여파로 모두가 행동을 멈추었다는 사실을.
자신은 별과 영혼이 연결되어 있었기에 이 현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이 모든 것의 해답은 별밖에 없었다. 서준은 별을 목청이 찢어져라 불렀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고! 왜 말을 안 해!”
주위에 듣는 사람도 없었다. 어차피 세상은 멈추었다. 서준은 목청이 찢어져라 크게 외쳤다.
이제 별과 대화하는 걸 혼잣말을 하는 미친 사람이라며 의심할 사람도 없었다.
-…….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서준은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목이 찢어져라 별을 불렀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빛은 아직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너무 강렬해서 도무지 익숙해질 수도 없었다. 서준은 눈을 질끔 감은 채 감각에 의존해 별의 동상 쪽으로 걸어갔다.
강렬한 빛과 함께 튕겨 나간 동상의 방향을 정확히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서준의 감각은 이제 평범한 인간의 수준을 월등히 뛰어넘었다.
바닥을 더듬으며 기어서 서준은 쓰러져 있는 동상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서준이 동상에 손을 얹는 순간 서준의 몸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그대로 멈추었다.
메두사의 눈을 본 사람처럼 딱딱하게 굳어 그대로 쓰러졌다.
“황제! 다른 거점을 찾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오래 유지될 수 없습니다!”
“아닌데? 아닌데? 주위를 둘러봐. 얼마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이야?”
쓰러진 서준은 몸을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의식만은 남아있었다. 그리고 서준의 의식은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이상한 장면을 보고 있었다.
‘별이네.’
황제라 불린 자는 딱 봐도 별이었다. 별의 동상이 색을 잃고 있긴 했지만 모습만은 완전히 같았다. 색을 잃은 동상이 색을 찾으면 딱 저 모습이었다.
‘별의 과거를 엿보는 건가?’
이쯤 되면 서준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서준은 별의 동상을 만진 순간 별이 살아있을 적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별은 그곳에서도 지금 서준과 함께할 때처럼 철없는 황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예, 분명히 평화롭습니다. 그러나 오래 지속되지 못합니다. 절대로!”
별의 앞에서 검은색의 망토를 두른 채 십수 명의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제일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사람이 별에게 호소했다. 그 짙은 호소력에 엿듣고 있던 서준의 마음이 흔들릴 정도였다.
“왜 그렇게 생각해? 지금처럼 괴수 튀어나오면 잡고 몰아내고 거기에 집 짓고 살면 되는 거 아니야?”
별은 천진난만한 얼굴로 말했다. 이제 보니 별은 다 자란 성인이 아닌 어린 황제처럼 보였다.
지금껏 어린이다고 놀린 것도 단순히 키가 작다고만 생각해서 그랬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 정말로 어린 황제였을 뿐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황제! 모두 다 황제께서 살아계시니 가능한 일입니다. 훗날 황제가 없는 세상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내가 죽는다는 말이야? 이렇게 전지전능한데?”
“사람은 모두 죽습니다! 황제!”
뒤이어 두 사람이 무언가 계속해서 얘기를 주고받았다. 서준은 역사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푹 빠져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봤다.
과거 별이 살아있던 이 세상은 훗날 별이 없는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력한 괴수들이 끊임없이 나타났고 인간들의 영역을 침범했다.
그러나 인간들의 영역은 현재와 과거 사이에 아주 큰 차이가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괴수들 다 잡아버리면 된다니까?”
별은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았다.
“괴수 나오면 내가 공간이동 해서 순식간에 잡아버리면 그만이잖아!”
“황제! 사람은 결국 죽습니다! 황제가 떠나시고 난 후에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결국 돌고돌아 원점으로 돌아왔다. 자신감이 흘러넘치는 별을 설득할 수는 없었다.
별은 진심으로 자신이 죽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이때의 세상은 별이 완전히 제어하고 있었다. 별의 감각은 온 세상을 덮을 정도로 광활했다.
별은 온 세상의 괴수를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다 인간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괴수가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면 그 순간 공간이동을 해 괴수를 쫓아냈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살 수는 없습니다! 오직 황제 당신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당신의 힘으로 차원문을 열어주십시오!”
검은 망토를 두르고 있던 신하는 간절히 청했다.
“내가 죽는다고 쳐도 너보다는 오래 살 텐데? 그럼 뭔 상관이야? 너 사는 동안은 안전하잖아!”
“황제! 후손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차원문을 열어 안전한 세상으로 도피해야 합니다! 언제까지고 이런 곳에서 살 수는 없습니다!”
신하는 이주를 주장하고 있었다. 차원문을 열어 보다 안전한 다른 세상으로 이주하기를 간청하고 있었다.
‘역시, 게이트의 단서는 여기에 있었어.’
서준은 곧바로 알아챘다. 지금 게이트가 열리는 것이 이놈의 말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면 바보였다.
“꼭 인간들이 가지 않아도 됩니다! 황제! 부디 차원문을 열어주십시오! 모든 괴수를 몰아내겠습니다.”
신하는 모든 괴수를 차원문 너머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지구로 넘어오는 괴수들이…….’
저 말대로 이루어졌다면 지금 지구의 열리는 게이트의 목적은 뻔했다.
이곳에 있는 모든 괴수를 지구로 옮기는 상황이었다.
“괴수를 다 옮긴다고 해도 소용없을 텐데? 괴수의 씨앗은 나조차도 파괴할 수 없는 물건이라고. 그게 남아있다면 아무 소용도 없잖아?”
별이 말했다. 이후 둘의 이야기를 들은 서준은 괴수의 씨앗이 무엇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괴수의 씨앗이란 괴수를 탄생케 하는 에너지원이었다. 생성된 이유도 목적도 알 수 없었다.
괴수의 씨앗은 평범한 동물들을 괴수로 만들었다.
“그리고 설령 씨앗을 파괴했다고 쳐도 꼭 그게 좋은 걸까? 씨앗 덕분에 우리도 신비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거잖아? 너 정말 신비의 힘을 모두 잃어도 괜찮겠어?”
“…….”
“거봐 너도 힘은 포기 못 하잖아. 다른 평범한 백성들처럼 되는 건 싫은 거잖아?”
괴수의 씨앗은 동물들만 괴수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인간들 역시 강하게 만들었다.
온 세상에 뿌리를 내린 괴수의 씨앗은 인간들이 기운을 축적하고 다룰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역시나 식물들 역시 특수한 기운을 품을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이곳의 식물들이 약초라 불리며 특수한 힘을 내는 것은 모두 괴수의 씨앗 덕분이었다.
물론 모든 인간들이 강력한 능력을 지닌 건 아니었다.
단지 땅속에 있는 양분을 흡수하는 것만으로 강력한 효능을 지닌 약초가 되는 식물과 날 때부터 강한 몸과 무기를 가진 동물들과 다르게 인간은 약했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정점에 설 수 있었다. 씨앗의 힘을 탐하고 탐하여 어떻게든 강해졌다.
물론 그 혜택을 누리는 건 소수였다. 모든 인간이 씨앗의 영향을 받아 신비의 힘을 부릴 수 있었지만 군림할 수 있는 인간은 소수였다.
별 역시 그 소수에 포함된 인간이었다. 별은 모든 인간 중 단 하나, 최고의 자리에 군림했다.
별 앞에 있는 검은 망토를 메고 있는 신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별에게는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별을 제외하고 본다면 이들 역시 괴물이었다.
괴수의 씨앗을 없앤다면 밑에 있는 백성들은 편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곧 군림하는 자들에게는 나쁜 소식이었다.
괴수의 이주를 권하는 신하 역시 그것만은 용납할 수 없었다.
“됐지? 돌아가.”
“방법이 있습니다.”
“무슨 방법?”
별은 지루한지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파며 성의 없게 물었다. 그러나 앞에 있던 신하는 긴장을 놓지 않았다. 어리고 철없는 모습의 황제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기에.
“씨앗을 하나만 남기면 됩니다. 어차피 백성들을 다스리려면 힘이 필요합니다. 모두가 힘이 없고 통제되지 않는 세상은 오히려 더욱 혼란스러울 뿐입니다. 힘은 필요합니다. 우리가 사용할 힘만을 남겨놓으면 됩니다.”
“와, 되게 이기적이다. 너.”
별이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지금까지는 백성들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직언하는 신하였기에 별은 귀찮지만 다 들어주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있는 신하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아득바득 발버둥 치는 모습으로밖에 안 보였다.
“결국 네 말은 이거잖아? 내 자리는 내놓기 싫다. 근데 더 많은 땅이 필요하다. 더 많은 땅을 차지하고 싶다! 그러니까 괴수들을 쫓아내자. 이거지? 처음에 인간이 이주하자는 것도 다 거짓말이었지?”
“!”
신하의 눈이 크게 떠졌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에 함부로 대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어린아이였다. 가진 힘과는 다르게 살아온 세월은 매우 짧은 황제였다.
대충 회유하면 넘어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어린 황제, 별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거, 완전 나쁜 새끼잖아?’
서준은 막장 드라마를 보던 시청자처럼 별과 신하의 대화에 완전히 푹 빠졌다. 그런데 하나 이상한 게 있었다.
별의 세상과 지구에서 열린 게이트 사이에는 엄청난 시간의 흐름이 있었다.
별은 서준이 열 수 있는 게이트의 세상보다도 과거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구의 게이트는 서준이 열 수 있는 게이트의 세상보다 훨씬 뒤의 세상이었다.
별마저 봉인된 세상이었다. 신비의 힘을 다루는 인간이 오래 살 수는 있다고 하지만 저렇게 오래 살 수는 없었다.
저 신하의 계획은 완벽히 진행되고 있었다. 실제로 지구에는 게이트가 열렸고 괴수들이 침공해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 신하는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뜻일까? 아니면 그 뜻을 이어받은 누군가가 있다는 뜻일까?
서준의 고심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저놈들이 설마…….’
그리고 서준의 시선이 어느덧 뒤쪽에 무릎을 꿇고 검은 망토를 입은 집단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