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빨리! 빨리! 빨리!
‘아, 보채지 좀 마.’
-이게 벌써 몇 달째야! 두 달이 다 돼간다고!
‘조금만 더 참아. 지금은 위험해서 그래.’
별의 재촉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별은 한시도 서준을 가만히 놔두지 않고 계속해서 보채고 있었다.
별의 영혼 조각은 이미 다 모았다. 용이 가지고 있던 구슬을 마지막으로 열두 개의 아티팩트를 모두 모았다.
-다 모았잖아! 그냥 가면 되잖아!
‘놈들이 근처에 있을 수도 있다니까?’
열 개는 이미 별의 동상에 흡수된 상태였다. 그러나 아직 두 개의 아티팩트는 서준이 지니고 있었다.
하나는 알다시피 용이 지니고 있던 구슬이었고 남은 하나는 모하메드가 들고 있던 아그니의 채찍이었다.
아그니는 악룡과의 전투 후 완전히 소멸하였다. 해서 이제는 필요 없어진 채찍을 모하메드가 서준에게 넘겨주었다.
-몇 년이나 지키고 있겠냐고! 십 년도 더 지났잖아!
‘그놈들 엄청 집요한 놈들이라잖아.’
-애초에 용의 유적이랑! 내 동상 있는 곳이랑 거리도 꽤 멀다고!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쏘다니던 곳이잖아. 흔적이 남아있을 수도 있대.’
련을 만나기 전 서준이 아무 생각도 없이 지났던 길이였다. 혹시 어떤 흔적을 남겼을 수도 있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참나, 거기 지나간 지 백 년도 더 됐겠다. 흔적이 남아있겠냐고!
‘조금만 기다려봐. 요번 주말까지는 무조건 갈 거야.’
-약속한 거다?
‘응.’
별의 말대로 놈들이 그 흔적을 찾아냈을 확률은 사실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차원의 흔적을 쫓아올 수 있는 실력을 지닌 자들이었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서준은 어떻게든 여의주의 인정을 받은 후 별의 영혼을 합치러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처음 여의주를 먹은 후 한 달, 이후 보조 여의주를 먹은 후 한 달. 벌써 두 달이나 흘렀지만, 여의주는 서준을 인정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뭔 생각을 그리하고 있어?”
“아, 여의주요. 어떻게 하면 인정받을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고 있었죠.”
“흠…. 길면 일 년도 더 걸리는 놈도 있으니……. 좀 더 기다려봐야겠지.”
그동안 서준은 련과 여의주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나눴다. 재능이 충분하고 쌓아둔 게 많았던 자들은 단 하루 만에 인정받은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재능이 떨어지거나 훈련이 미비했던 자들은 일 년 넘도록 인정받지 못했던 자도 있다고 들었다.
심지어 련은 죽는 날까지 인정받지 못해 여의주를 그대로 날린 사람도 있다고 얘기했다.
“제 재능이 너무 부족한 탓일까요?”
그동안 자신감이 넘치던 서준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게까지 흘러가니 넘쳐 흐르던 자신감이 모두 말라 비틀어가기 시작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
련이 부정했다. 서준을 위로하기 위한 말은 아니었다.
그동안 재능이 없다는 말을 계속해서 하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서준을 자극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십 년에 하나 나올만한 그런 천부적인 재능은 아니었다. 그러나 서준 역시 훌륭한 재능을 지닌 건 사실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껏 이런 성장은커녕 련의 훈련을 소화해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너는 보조 여의주까지 두 개의 여의주를 먹었다. 그게 문제일 수도 있어.”
“저도 그 생각은 안 해본 건 아닌데……. 결국 사부님 잘못이네요?”
보조 여의주는 련이 서준에게 강제로 먹였다. 만약 이것이 문제라면 지금껏 서준이 여의주의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련의 탓이었다.
“기다림이 긴 만큼 보답도 크겠지. 기다려 보거라.”
“진짜 그럴까요?”
“쯧, 이렇게 심지가 약해서 어디다 쓰겠냐. 어디 가서 내 제자라고 하지 마라.”
서준은 불안한 마음을 모두 떨쳐내지 못했다. 여태까지와 다르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서준을 련이 못마땅하게 바라보며 퉁명스럽게 답했다.
“쯧, 자꾸 그렇게 비굴하게 굴면 인정해 줄래도 마음이 변하겠다. 최가 놈이 겉으로는 경박해 보여도 만만한 놈이 아니야. 그 일족의 명성이 헛된 게 아니야. 그놈이 그렇게 말했으면 괜찮을 거다.”
“네, 좀 더 노력해 볼게요.”
최제원이 쌓은 명성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그의 가문은 오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용을 다뤄왔다.
그 역시 날 때부터 용의 부속을 만지며 자라왔고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아 가주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최제원이 알아본 물건이 헛된 물건일 리 없었다. 서준은 믿고 기다리기로 했다.
“그나저나 너무 늦어도 문제다.”
“그러게요. 게이트가 열리는 빈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어요. 이제는 진짜 한계에요.”
최근 들어 서준과 유명길드 그리고 모하메드 모두 매일같이 게이트 방위 임무에 나서고 있었다.
네 사람이 각자 한 개의 게이트를 막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몸이 부족했다. 게이트가 너무나도 많이 열리고 있어 네 사람의 힘으로 모두 커버할 수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도시가 뚫려버리고 말 것이다.
“일단 되든 안 되든 주말에는 동상으로 가보자. 인정은 차차 받도록 하고 영혼을 다 모은다면 뭐 또 알아낼 수 있는 게 있겠지.”
“네.”
더 이상은 미룰 수가 없었다. 이제는 진짜 한계였다. 여의주의 인정을 받고 못 받고를 떠나서 별의 영혼을 합칠 때가 왔다.
별의 기억을 되찾아 게이트를 닫을 단서를 찾아야 했다. 만약 여의주 없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더욱 좋았다.
-짐만 믿으라고. 기억만 찾으면 뭐든 해줄 테니까.
‘영혼을 다 모은다고 기억이 돌아오는 건 맞고?’
-그것만은 확실해. 확실히 내 영혼에 각인된 기억이니까.
조금이나마 남은 영혼에 각인된 기억이 정확하다고 믿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희망은 그 작은 확률에 있었다. 믿을 수밖에 없었다.
‘기억을 찾는다고 쳐도 네가 게이트 닫을 수 있는 건 맞아?’
-짐이 못 하는 건 없다. 지금은 단지 힘을 잃어서 이렇게 비루한 모습이지만 영혼만 되찾으면 저 검쟁이 놈도 한 번에 없앨 수 있어!
‘그래, 알겠다.’
서준은 이제 별의 자랑을 대꾸해줄 힘도 없었다. 신경이 온통 여의주에 쏠려 있었다.
두 달간 명상도 해보고 힘든 훈련도 해보고 안 해본 짓이 없었다.
자연 현상을 다루는 힘이라기에 태풍 속에서 우산 없이 서 있어보기도 했다. 심지어 천둥 번개가 치는 날 벼락을 맞기 위해 쇠파이프를 들고 길 한복판에 서 있던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여의주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날은 정말 재밌었어. 벼락 맞고 온몸이 새까맣게 탄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고!
‘시끄러워 인마, 나는 목숨 걸고 한 일이야.’
서준이 아무리 강해졌다지만 맨몸으로 번개를 견뎌내는 건 정말로 목숨을 걸고 한 짓이었다.
다행히도 서준은 이미 상당히 강해진 상태였다. 벼락을 맞고도 별 상처 없이 버텨낼 수 있었다.
뭐, 아주 평범한 일반인이 벼락을 맞는 경우도 상당하다고 하니 서준이 버텨낸 것도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근데 느낌이 어떻디? 나는 벼락 안 맞아봐서 모르겠는데.
‘그냥 찌릿해.’
-그게 끝이야?
‘응.’
살짝 찌릿했다. 속에서 뭔가 울컥하는 느낌이 들기는 했는데 그게 여의주가 번개와 반응한 건지 벼락을 맞아 생긴 작용인지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벼락까지 맞아봤지만, 여의주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근데 너도 다 알 거 아니냐? 왜 굳이 물어보는 건데?’
-아니, 그냥 너무 바보 같아서.
별과 서준은 영혼이 이어져 있었다. 서준이 느낀 감정과 느낌은 별 역시 모두 느낄 수 있었다.
굳이 서준에게 벼락 맞은 감상을 물어볼 이유는 없었다. 단지 별은 서준을 놀려먹고 싶었을 뿐이다.
‘여의주에 대해서는 아는 거 없어? 용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잖아.’
-음……. 짐은 여의주 같은 게 없어도 전지전능한 존재였다. 굳이 그런 걸 탐하지 않았어.
‘또 지 자랑 시작이군.’
별에게 조언을 얻어보려 해도 소용없었다. 별이 기억해낼 수 있었다면 진작 말해줬을 것이다.
기억을 잃은 별이 도움 되는 일은 사실 별로 없다.
-음……. 그러고 보니 그런 놈들이 있던 것도 같은데.
‘무슨 놈?’
-용을 신봉하는 놈들이 있었어. 그러고 보니 그놈들이 그때 여의주를 먹었다고 말했던 것도 같고…….
조각난 기억 속에 무언가 떠오른 듯 별이 중얼대기 시작했다.
‘계속해 봐.’
-아니, 사실 나도 여의주가 필요 없어서 안 먹은 게 아니고 몰라서 안 먹은 거거든. 근데 그때 여의주를 먹었다는 놈들이 있었던 것도 같아. 미친놈들인 줄 알았는데…….
‘그래서? 그놈들이 최초로 여의주 먹은 놈들이야? 그놈들은 어떻게 됐는데.’
-끄응…. 여기서부터는 기억이 안 나.
‘너는 꼭 그러더라. 중요한 부분에서 기억을 못 해.’
별은 항상 이랬다. 중요할 때면 기억을 못 했다. 이쯤 되면 일부러 이런다고 해도 믿을 만했다.
하지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최초로 여의주를 먹었던 자가 별의 시대에 있었다는 것은 알아내었다.
만약 별의 기억을 되찾는다면 여의주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어느덧 토요일 아침이 되었다.
서준과 그 일행들은 게이트를 열어 대장장이의 마을로 넘어갔다. 이후 빠른 속도로 달려 별의 동상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련 역시 함께였다.
추적 마법을 끊었기에 련은 거리낄 게 없었다.
“다행히도 매복은 없네요. 이곳까지 들키지는 않았나 봐요.”
“그러게요. 괴물 같은 놈들이라길래 백 년 된 흔적도 찾아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괜한 걱정이었나 봐요.”
천만다행이었다. 놈들이 이곳까지는 발견하지 못한 것 같다. 별의 동상은 아주 멀쩡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단지 처음 보았을 때와 달라진 점은 흑색으로 칠해져 있던 장신구들이 색을 찾았다는 것이다.
-드디어! 짐의 기억을 되찾을 때가 왔다!
‘신나냐?’
-참을 수가 없다! 더 이상은 기다리기 힘들구나! 어서! 어서! 아티팩트를 가져다 대라!
별이 흥분하여 소리치기 시작했다. 어찌나 크게 소리쳤는지 서준의 머리가 울려 띵해질 정도였다.
실체적인 소리는 없고 영혼으로 연결되어 의념을 전달하는 방식이었지만 흥분한 별의 목소리는 귀에다 대고 소리를 치는 것처럼 들렸다.
‘그래, 알겠어.’
그러나 서준은 별을 나무라지 않았다. 이 순간만은 이대로 놔두고 싶었다.
영혼이 찢긴 채 정말 오랜 시간을 고통 속에 살았다. 기억조차도 대부분 잃어 자신이 누구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드디어 그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순간이 왔다. 그 누구라도 흥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서준은 별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 하겠습니다.”
“기다리다 목 빠지겠다. 빨리해라.”
“네, 스승님.”
서준이 구슬 모양의 아티팩트와 채찍 모양의 아티팩트를 양손에 쥐고서 동상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서는 각각 같은 모양을 하고 있지만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는 장신구에 아티팩트를 가져다 댔다.
열두 개의 아티팩트 중 마지막 두 개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