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작지만 단단해 보이는 나무 상자였다. 그 외에는 특별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평범한 나무 상자처럼 보였다.
“이게 뭐죠?”
련이 물었다. 통역 아티팩트가 작동 중이라고는 하지만 민감한 사람들은 눈치챌 수 있다.
서준을 비롯한 지구인들은 최대한 말을 줄였다.
“여의주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지요?”
“모르면 바보지.”
“네, 받은 부속들 사이에 여의주가 없는 것을 보고 이미 빼놓으셨다는 건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흑룡의 여의주는 련이 서준에게 건네주었다. 서준은 그 여의주를 먹었지만 아직까지 소화를 하지 못 한 상태였다.
“여의주? 그런 것도 있었어?”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스승님이 빼돌리셨나 보네 역시 욕심쟁이였어!”
물론 련은 다른 제자들에게는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굳이 숨기려 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설명하기가 귀찮아서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서준은 당연히 다른 사람들이 여의주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궁금하면 알아서 물어보겠거니 생각했는데 아무도 묻는 사람이 없었기에 그냥 입을 다물고 있었을 뿐이다.
숨기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보통 용은 여의주를 하나만 지니고 있습니다.”
“알고 있소. 굳이 두 개를 들고 있을 필요도 없지.”
“그렇지요. 인간과 달리 용은 여의주의 모든 능력을 끌어올 수 있으니.”
여의주는 자연을 다스리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기물이었다. 용의 경우 여의주 하나만 있으면 모든 자연 현상을 다스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은 그리하지 못했다. 인간은 여의주의 인정을 받으면 자연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지만 단 하나의 자연 현상만을 다스릴 수 있었다.
그게 인간과 용의 차이점이었다.
“뭐, 여의주의 원주인에 따라 그 힘의 크기가 달라지긴 하지만……. 여의주를 바꿔봤자 의미 없는 일이지.”
“그렇죠. 인간의 경우 여의주의 힘에 끌려다니는 것에 불과하지만 본래 용이 가진 힘 그 자체가 여의주보다 큰 법이죠.”
여의주가 자연 현상을 다스릴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여의주의 힘보다는 용 그 자체의 힘이 더 강했다.
아무리 강한 여의주를 가지고 있다 해도 여의주의 힘이 용의 힘을 넘어서진 못했다. 해서 용은 굳이 다른 용의 여의주를 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는 달랐다. 인간의 힘은 여의주의 힘을 절대로 넘어서질 못했다.
애초에 여의주는 자연을 다스리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인간이란 자연을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법, 아무리 약한 여의주라도 최강의 인간보다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짐은 예외지.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잠재력으로 끌어올 수 있는 자연 현상은 단 하나뿐이었다.
인간이 여의주의 인정을 받게 되면 본인의 재능에 따라 한 가지 자연 현상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세기는 여의주 자체의 힘에 비례했다. 해서 인간은 더욱 강한 여의주를 차지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많은 싸움이 벌어졌지요. 전쟁도 발생하고 한 국가가 멸망하기도 했지요.”
“멍청한 짓이었지. 조금만 실험해봐도 알 수 있었던 것을.”
“워낙 오래전 일이니까요. 지금처럼 기술이 발달 되지 않은 시절이죠.”
이야기를 엿듣던 오세근이 중얼거렸다.
“여기서 기술 운운하니까 웃기네.”
지구인 관점에서 보면 이곳은 원시 부족이나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현대의 지구와 500년 이상의 과학 기술적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네? 무슨 소리시죠?”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최제원이 되묻자 멋쩍은 오세근이 발뺌했다.
“결국 한 명의 사람이 소화할 수 있는 여의주가 단 하나라는 게 밝혀지고 나서야 전쟁이 끝나고 말았죠.”
“덕분에 여의주를 얻고도 더 강한 걸 먹겠다고 아껴두는 멍청이도 생겼지.”
“그 말씀은 중요한 건 여의주 그 자체보다 인간이라는 뜻인가요?”
“뭐, 둘 다 중요하지.”
여의주 하나의 자연 현상 하나, 이것은 오랜 실험을 통해 밝혀진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훗날 밝혀진 사실이 있었다.
인간 하나가 소화할 수 있는 여의주는 단 하나라는 것이었다.
한 명의 인간이 오직 단 하나의 여의주를 소화할 수 있다. 이것은 여의주를 소화하기 전 사람을 망설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련의 여의주 역시 추적 마법을 걸게 할 만큼 강력한 용의 것이었고 서준의 여의주는 잘 알다시피 흑룡의 여의주였다.
“근데 이 얘기는 갑자기 왜 꺼낸 거지? 그 목함 속에 뭐가 들었는지 얘기하는데 여의주 이야기가 필요한 건가?”
련은 이곳에 오래 있고 싶지 않았다. 추적 마법이 풀렸다고는 하지만 어찌 되었건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었다.
사실 그 이유를 떠나서 련은 지구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우선 첫째로 제일 마음에 드는 건 안전이었다. 본인을 노리는 적이 없을뿐더러 지구의 치안은 매우 안정되어 있었다. 게이트가 열린다고는 하지만 그 괴수들이 련에게 위협이 될 리 없었다.
둘째로는 지구의 편리한 시설들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중세 수준에 불과한 이곳보다는 지구가 련에 마음에 쏙 들었다.
련은 빨리 무기를 받아들고 지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지만 그늘 말고는 별 방법이 없는 이곳보다는 에어컨의 차가운 바람이 그리웠다.
“예, 필요한 이야기였습니다.”
“뭐, 알겠소. 계속해보쇼.”
최제원은 목함의 뚜껑을 열며 련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지?”
목함 속에는 십이면체의 검은 보석 비슷한 것이 들어있었다. 자로 잰 듯 완벽한 정십이면체의 모양을 하고 있는 보석이었다.
그 외에는 특별한 점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여의주입니다.”
“여의주라고? 무슨 소리지? 여의주는 이미 뽑아 먹었는데?”
흑룡의 여의주는 이미 서준이 먹었다. 또 다른 여의주가 있을 리 없다.
물론 만에 하나 흑룡이 다른 용의 여의주를 뺏어 지니고 있었다고 해도 련이 발견하지 못했을 리 없다.
“정확히 말하면 여의주는 아닙니다.”
“방금 전에 여의주라고 말하더니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여의주는 아니지만, 여의주와 거의 근접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세히 말해보시죠.”
련은 태도를 바꿔 물었다. 여의주와 비슷한 힘을 지니고 있다. 이 말은 즉 여의주나 다름없다는 소리다.
여의주의 소유자가 둘에서 셋이 된다는 것은 전력적 측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앞으로의 전투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은 확실했다.
“분명 여의주는 아닙니다. 저희는 오백 년을 용을 다루던 일족입니다. 못 알아볼 리 없죠.”
“아니, 그보다 우리가 용을 해체했을 때는 보지 못했던 물건인데?”
“저희 일족의 비술이라고 해두죠. 죽은 용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도중 나온 물건입니다.”
“흐음. 신기하군.”
이 정도는 돼야 대륙 제일이라고 불릴 수 있다. 대륙 제일의 용무기 제작자라면 죽은 용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것도 가능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도 이 용은 또 하나의 여의주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유사 여의주죠.”
-짐의 물건이다!
별의 영혼이 담긴 아티팩트가 유사 여의주 역할을 했다. 용의 잠재력을 끌어올려 주는 것과 더불어 여의주의 힘을 증폭시켜주었다.
그것 때문에 용을 잡는 데 꽤 애를 먹었다. 본래 련이 계산한 대로라면 10초 안으로 전투를 끝낼 수 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덕분에 유재학은 목숨을 잃고 말았다.
“저도 정확히는 알지 못합니다. 오히려 용을 직접 대면한 여러분이 더 잘 알고 계시겠죠.”
“뭐, 그놈이 귀한 보물을 하나 들고 있긴 했지. 계속해보시오.”
굳이 별의 영혼에 대해 알릴 필요는 없었다. 련은 최제원을 재촉했다.
“어쨌든 그 물건이 용의 영혼 속에 새로운 여의주를 하나 더 만들어놓은 모양입니다. 처음 있는 일이라 저도 더 정확히는 모릅니다. 그저 추측일 뿐이죠.”
“어찌 됐건 여의주와 흡사한 보물이 하나 더 생겼다는 이야기죠? 뭐, 운이 좋았네.”
련이 흡족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그런데 일반 여의주와는 조금 다릅니다.”
“뭐가 다르죠?”
“여의주는 그 누구든 먹을 수 있었습니다. 굳이 인간이 아니어도 되었죠. 인정을 받는 것이 어려울 뿐이지 먹는 데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이건 좀 다릅니다.”
“자세히 말씀해주시죠.”
아무나 먹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에 련의 목소리 톤이 조금은 낮아졌다. 실망한 것이다.
“본래 이 용의 여의주를 먹은 인간만이 먹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마도 버티지 못할 겁니다. 오직 영혼의 파장이 맞는 여의주를 지닌 인간만이 이 물건을 취할 수 있습니다.”
“그 사실은 어떻게 알았죠? 실험해 볼 수도 없었을 텐데.”
“평생을 용만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이 정도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저들이 저렇다는데 뭐라고 반박할 말이 없었다. 오백 년의 노하우라는데 뭐 어찌 반박하겠는가? 련은 입을 다문 채 조용히 있었다.
“어쩔 수 없군. 네놈이 먹어야겠다.”
“이걸 먹으면 자연 현상을 두 개 다룰 수 있는 건가요?”
여의주 하나당 자연 현상 하나를 다룰 수 있었다. 그렇다면 여의주가 두 개라면 자연 현상 역시 둘을 다룰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건 저희도 알지 못합니다. 저희도 역시 이런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이 이상은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어쨌든, 뭐 나쁘지 않네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될 일이었다. 벌써부터 걱정할 이유는 없었다.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뭐죠?”
“이 물건을 저희에게 넘겨주십시오.”
“무슨 헛소리를!”
헛소리였다. 여의주를 넘겨달라니 미친 소리였다. 게다가 보통 여의주도 아니었다. 앞으로 어떤 상승작용을 일으킬지 알지 못하는 보조 여의주였다.
“저희도 이런 물건은 처음 봅니다. 부디 저희가 다뤄보고 연구해보고 싶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할 수는 없소. 우리는 힘이 필요해요. 미안하게 됐군.”
련은 그렇게 말하며 목함 속에 있는 보조 여의주를 집어 바로 서준의 입으로 쑤셔 넣었다.
“켁! 켁! 아 말은 좀 하고 행동하세요!”
갑작스레 목구멍에 무언가 물어오자 당황한 서준이 소리쳤다.
“아…….”
그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최제원은 상당히 안타까운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러나 이미 서준의 몸으로 들어간 여의주를 빼낼 방법은 없었다. 여의주가 인간을 인정하면 몸속에 결정이 나타나긴 하지만 보조 여의주의 경우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어때 뭐가 좀 달라진 게 느껴지냐?”
“아뇨, 여의주 처음 먹었을 때랑 똑같은데요. 아무것도 안 느껴져요.”
역시나 서준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우선 여의주의 인정을 받아야 했다.
“흐음……. 역시 여의주의 인정을 먼저 받아야 하는 건가……. 시간이 좀 걸리겠군.”
본래의 주인이 워낙 강한 녀석이다 보니 여의주는 쉽사리 서준을 인정하지 않았다.
앞으로 여의주의 인정을 받으려면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한 듯싶다.
-그것보다! 내 기억이나 되찾으러 가자고!
‘조금만 기다려.’
별의 동상에 가는 것은 그 이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