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목약사 백선생-130화 (130/150)

130화.

“아, 이렇게 오니 수월하네요.”

“그러게요. 예전에는 항상 헤매면서 찾아다니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길잡이가 있으니 편하네요.”

서준과 일행은 재배지 섬에서 배를 타고 다시 대륙으로 넘어갔다. 유적에 있는 게이트 좌표를 여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물론 이번에는 련이 함께였다. 이곳에서 평생을 살아온 련이 함께하자 길 찾는 데 걸리는 시간이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그러게 진작 깨달으시지 그랬어요? 그랬으면 얼마나 편하고 좋아.”

“뭐야?”

“…….”

괜히 더 말을 꺼냈다가는 맞을 거라는 게 확실했다. 오세근은 입을 굳게 다물고 련을 못 본 체하며 앞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저 새끼는 도대체 언제 철들까?”

“저게 세근이 매력이죠. 뭐.”

련이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오십 년이나 흘렀는데 크게 변하지 않았나 봐요?”

“변했지. 변해도 한참 변했어.”

“그래요?”

“그래.”

온전히 련의 기억에 의존해가며 가고 있었다. 련이 헤매지 않고 길을 잘 찾아서 안내하길래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련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이렇게 나무가 울창한 곳은 아니었어. 이곳에 서면 저 멀리까지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빽빽한 나무들만 보이는군. 오십 년 우습게 볼 시간은 아니야.”

“그래도 어떻게 길은 잘 찾아가시네요?”

“길이 하나밖에 없잖아? 그냥 그거 따라가고 있는 건데? 예나 지금이나 사람 다니는 길은 똑같은 거지 뭐.”

사실 이곳에 떨어트려 놓으면 누구나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온통 나무로 빽빽한 산에서 사람 다닐만한 길은 딱 하나였다.

그래도 이곳까지 오는 데 련이 상당한 도움이 되었던 건 사실이다. 련이 없었더라면 여기까지 오는 데 한 달 이상 헤매도 이상하지 않았다.

“보이는군”

앞장서던 련이 멈춰 서자 뒤따르던 모두가 멈춰섰다. 그 앞에는 작지만 활기찬 마을 하나가 보였다.

“근데 놈들이 이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용을 잡은 걸 알았을 텐데 그렇다면 제일 먼저 여기로 왔을 거 같은데요?”

“아니, 불가능해.”

“왜죠?”

“감시하는 걸 눈치채는 순간 다시는 무기를 제련해주지 않는다. 그게 대장장이 일족의 무기다.”

“나 같으면 잡아다 고문하고 강제로 만들게 시킬 거 같은데.”

“용이라는 게 진심을 담지 않으면 다룰 수 없는 법이다. 저들이 기술을 가지고 있는 이상 따를 수밖에 없어.”

“그렇군요.”

그렇다면 다행이었다. 이곳까지 와서 잡히는 일은 적어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기에 우리는 최대한 의심 가지 않게 행동하며 마을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잠깐, 멈춰.”

“왜 그러시죠?”

마을의 경비원이 우리를 막아섰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디서 온 누구지?”

경비원이 우리에게 신분을 요구하며 막아섰다. 대장장이 일족 덕분에 외지에서의 유입이 많은 마을이었다.

덕분에 마을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경계수위는 웬만한 중형 마을 이상으로 삼엄했다.

그러나 해결 못 할 일은 아니었다. 전 세계, 아니 전 차원을 막론하고 통하는 것이 있었다.

“어이쿠! 뭐가 떨어졌네?”

“응?”

“경비원님 거 아니에요? 거기 주머니에서 떨어진 것 같은데?”

“음, 잠깐 확인해 볼까?”

경비원이 뒤돌아서 주머니를 확인하는 척을 했다. 서준과 일행은 그 틈에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경비원은 그 모습을 보지 못한 건지 보지 않는 척을 하는 건지 그냥 들여보내 주었다.

이윽고 서준의 일행이 마을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시야에 보이지 않게 되자 다시 자세를 정돈하며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역시 돈이 최고야.”

“맞습니다. 형님. 돈으로는 안 되는 게 없죠. 지구나 여기나 다를 게 없네요.”

돈이라면 넘칠 정도로 있었다. 저런 경비병 따위의 환심을 살 정도의 돈은 티도 나지 않을 정도니 백 명, 천 명이 와도 무마시킬 자신이 있었다.

“크게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뭐가요?”

“오십 년이다. 짧은 시간은 아니야. 사실 이놈들이 회유당했다고 해도 이상할 건 하나도 없어.”

“믿어봐야죠. 그것밖에는 방법이 없으니.”

이렇게 무력한 것도 오랜만이었다. 할 수 있는 건 단지 믿는 것뿐이었다. 뭐, 아니라면 어쩔 수 없다. 게이트 열고 도망가면 그만이었다.

“도착했다.”

한눈에 봐도 대장간이라는 건 전혀 눈치챌 수 없었다. 물론 평범하지는 않았다.

이 마을에서 제일 큰 집이었다. 마당 역시 웬만한 수목원 정도 규모는 되어 보였다. 그 정도로 큰 집이었다.

그러나 쇠를 두드리는 소리도 뜨거운 열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보통의 대장간에서 느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겉에서 보기에는 그저 지역 유지의 집처럼 보였다.

“용의 부속이라는 게 쇠처럼 다룬다고 다뤄지는 게 아니니까. 일종의 신비라고 보면 된다.”

신비 그러니까 쉽게 얘기하면 마법과 같은 기적이라고 생각하면 편했다.

대장장이 일족은 가문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던 신비를 이용해 용을 제련했고 노하우를 쌓아왔다.

“들어가자.”

“그냥 들어가도 돼요?”

“문 열려있잖아? 들어오라고 열어놓은 거지 뭐.”

하긴 큼지막한 대문이 활짝 열려있기는 했다. 서준과 일행은 조심스럽게 대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대문에서부터 길게 이어진 길을 따라 정원 안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모하메드처럼 매우 건장한 체격을 지니고 있던 그는 정원에서 고양이를 닮은 동물 두 마리와 즐겁게 놀고 있었다.

“용을 맡기고 싶어서 왔소.”

련이 건조하게 답했다. 오십 년이라는 시간 동안 대장장이 일족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없었기에 최대한 경계를 하며 말했다.

“오! 아룡입니까?”

“아니오. 온전한 용 그 자체요.”

“오! 오랜만의 의뢰군요.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알겠습니다.”

건장한 남성이 서준과 일행을 안내하며 앞장섰다. 그 남자를 따라가자 손님 접대용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 테이블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위의 나무와 꽃 그리고 자유분방하게 돌아다니는 고양이 괴수들이 잘 어우러져 아름다운 장소였다.

“그럼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오랜만의 의뢰라 너무 설레서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네요.”

남자는 련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했으나 련은 답하지 않고 남자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자 남자는 입맛을 한 번 다시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가지고 계신 부속은 어느 부위입니까? 또 그리고 어떤 것을 만드시고 싶으십니까?”

어찌 보면 제일 중요한 질문이었다. 가지고 있는 부위에 따라 만들 수 있는 것이 달라진다.

그리고 그것이 의뢰인의 생각과 다르다면 의견을 조율해야 했다.

“우선, 가주를 뵙고 싶소. 여기서 얘기할 사항은 아닙니다.”

하지만 련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은 용의 일정 부위가 아니었다.

용 한 마리를 통째로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보통 용이 아닌 별의 영혼을 품은 악룡이었다.

아직 젊어 보이는 일족의 말단에 맡길 만큼 손쉬운 물건은 아니었다.

“아! 꽤 좋은 걸 가지고 계신가 봐요?”

“그렇소. 아마 당신들도 꽤 구미가 당길 거요.”

“그럼 말씀하시죠.”

“가주를 보고 싶다고 말했을 텐데?”

련이 남자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아! 소개가 늦었군요. 제가 대장장이 일족 최가의 가주 최제원입니다.”

“아! 가주셨군. 젊어 보여서 실례가 많았습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종종 받는 오해입니다.”

가주라는 말에 련이 사과를 먼저 했다. 상대의 지휘는 존중해줄 필요가 있는 법이었다.

그것도 우리에게 도움이 될 상대라면 더욱이 그러해야 했다.

“그나저나 한국식 이름이네요?”

“그러게 신기하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서준과 오세근이 속삭였다. 물론 통역 아티팩트가 돌고 있었기에 최제원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한국식 이름이요? 한국이 뭔가요? 처음 듣는데요.”

“그런 게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닐 텐데요?”

“아! 죄송합니다. 오랜만의 의뢰라 너무 들떠버렸네요.”

어차피 이 일족에게 의뢰인의 정체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이들이 원하는 건 용의 시체를 만지는 것뿐이었다.

이들은 용에게 매료되어 평생 용을 만지며 살아가는 일족일 뿐이었다.

“용 한 마리를 통째로 가지고 있습니다.”

“한 마리를 통째로요? 아! 얼마 전에 소문으로 들었습니다. 부서진 용의 유적이 발견되었고 거기서 누군가 용을 사냥한 흔적이 있었다고요. 그분들 맞으십니까?”

“그렇소.”

이미 여기까지 알고 있으면 숨길 수 없는 사항이었다. 이들이 놈들에게 넘어갔다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련은 최대한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여기서 얕보여서는 안 됐다.

“그렇다면 뭐든 만들 수 있겠네요.”

“창 세 자루와 한 자루의 검 가능하겠소?”

“옷이나 장신구 그런 건 필요 없으십니까?”

“그건 재료가 남는다면, 하지만 모든 재료를 무기에 사용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주시오.”

무기 하나에 한계 이상의 재료를 넣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많은 재료를 넣으면 넣을수록 무기는 강해지겠지만 당연히 균형을 잡지 못해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렵지 않습니다. 알고 계실 텐데요? 저희는 용 한 마리를 통째로 검 한 자루를 만든 적도 있다는걸.”

“소문은 소문일 뿐. 직접 보지 않은 건 믿기 힘들지요.”

“뭐, 어쨌든 알겠습니다. 무기 네 정쯤은 만들 수 있습니다. 뼈대가 되는 부속만 말씀해주신다면 잘 만들어드리지요.”

“얘기가 잘 통해서 좋군.”

이야기를 마친 련이 서준을 보며 눈짓했다. 서준은 곧장 알아듣고 게이트를 열어서 잘 정리해준 용의 부속들이 담긴 상자를 모두 가져왔다.

“차원문을 열다니! 역시 대단한 분들이셨습니다. 하긴 그 경쟁을 뚫고 용을 잡으실 정도라면 이 정도는 하셔야죠!”

일부러 준비한 퍼포먼스였다. 별은 쉽다고 말했지만 차원문을 여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련의 수준으로도 용무기를 이용해 흔적을 쫓는 것이 겨우 가능할 뿐이었다. 가주 역시 서준이 손쉽게 차원문을 여는 것을 보더니 속으로 평가하던 서준 일행의 수준을 상향 조정했다.

“오! 생각했던 것보다 질이 상당히 좋군요.”

“고작?”

“하하! 고작이라뇨. 엄청난 칭찬입니다. 제가 어릴 적부터 봐왔던 용이 한두 마리도 아니고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악룡은 상당히 강한 용에 속했다. 하지만 가주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뿐만 아니라 오백 년 역사를 모두 지켜봤습니다. 선대들께서 만든 물건들이 저희 집에 상당수 있답니다. 그것들과 모두 비교해봐도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진심으로 한 말이니 노여움을 거두세요.”

뭐 여기서 화를 낸다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체가 더 좋아지는 건 아니었다.

“그럼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최대한 빨리해주시죠.”

련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 곧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게이트가 열리는 빈도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기에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음……. 오 년은 주셔야겠습니다.”

“오 년이요? 너무 긴 거 아닙니까?”

“그만큼 재료가 좋다는 뜻입니다. 쉽게 다룰 물건이 아니죠.”

“흠. 어쩔 수 없군. 알겠소. 잘 부탁드리겠소.”

어쩔 수 없었다. 련은 가주에게 악수를 청하며 인사했다.

오 년, 상당히 긴 시간이었다. 그러나 서준 일행에게는 그 시간을 단축할 비장의 수단이 있었다.

생각보다 길어진 건 아쉬웠지만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일 뿐이었다. 이 정도는 참고 기다릴 수 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