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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129화 (129/150)

129화.

“그나저나 문제네요.”

“뭐가?”

“용무기 말이에요. 만들 방법이 없네요.”

“무슨 소리야?”

“기왕 좋은 무기를 얻었는데 제대로 만들어야 하잖아요. 근데 용을 다뤄본 사람이 없잖아요. 기껏해야 아룡 수준이지.”

아룡의 부속으로 만들어진 무기는 꽤 존재했다. 워낙 귀하고 희귀한 물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적은 건 아니었다.

단지 정말 소수의 사람들이 독식하고 있었기에 일반인들이 찾아보기 힘들었을 뿐이다. 그만큼 위험하고 강대한 무기였으니까.

그러나 진짜 용의 부속으로 만든 무기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지구에 진짜 용이 나타난 적은 없었다.

힘들게 얻은 용의 시체였다. 기껏 얻은 용의 시체를 허투루 쓰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 상대해야 할 적들 역시 용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못해도 그 수준에는 맞출 필요가 있었다.

“왜 지구에서 만들 생각을 하고 있어? 넘어가서 만들면 되잖아.”

“그게 더 어렵지 않을까요?”

“왜?”

“아는 사람이 없잖아요.”

용무기를 다룰 수 있는 대장장이를 알지 못했다. 물론 련이 알고 있는 대장장이가 있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최소한으로 잡아도 련이 그곳을 떠난 지 오십 년이 지났다. 지금까지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을 확률은 매우 낮았다.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아는 곳이 있어.”

“아직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을까요?”

“걱정하지 마. 가족 전체가 용무기에 미친 작자들이니까. 애초에 의뢰를 용과 아룡의 부속을 가져오지 않으면 받아주질 않는 녀석들이야. 그 아들도 또 그의 아들 역시 계속 이어받았을 거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더군다나 대를 이어 물려받았다는 건 쌓인 노하우가 한 세대 이상이라는 말이다.

련의 말을 들어보니 적어도 오백 년 이상은 용무기를 다뤄온 일족이라고 했다. 오백 년의 노하우라면 믿고 맡길 수 있다.

“근데 걱정이네요. 용무기를 다뤘다면 주 고객이 그놈들일 텐데 웬 처음 보는 놈이 용 시체 들고 나타나면 일러바치지 않을까요?”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들이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입이 무거운 것이 컸으니까.”

“무슨 얘기죠?”

“대부분의 용무기는 그놈들이 가지고 있어. 물론 새로운 용들을 잡는 것도 대부분 그놈들이지. 용무기란 게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는걸 너도 알고 있겠지?”

“물론이죠. 눈앞에서 봤는걸요?”

서준은 련을 처음 본 날을 떠올렸다. 련은 검을 몇 번 휘두르는 것만으로 차원을 열었던 흔적을 찢어 낼 수 있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소름 돋는 일이었다.

“용무기란 음……. 지구를 예로 들면 핵과 같은 거다. 엄청난 억제력을 지녔지.”

“뭐, 그럴 만해요. 지금은 핵 같은 건 없지만……. 뭔 얘긴지는 알겠어요.”

“용무기를 지닌 집단은 생각보다 꽤 많다. 이름 좀 날린다는 집단들은 사실 대부분 가지고 있지.”

“그렇겠죠? 용무기가 없다면 금방 도태됐을 테니까요.”

대침공전 지구의 상황과 크게 다를 것 없었다. 대침공 이후 핵무기는 이제 다시 찾아볼 수 없는 무기가 되긴 했지만 서준은 그 시절을 살아왔으므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대장장이 일족은 의뢰인에 대한 정보를 철저히 숨겼다. 누구나 자신의 진짜 전력은 감추고 싶은 법이거든. 최고가 아니라면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지.”

“그 말은 최고가 되었다면 드러내는 게 좋다는 말인가요?”

“최강자가 굳이 전력을 숨겨야 할 이유가 전혀 없지. 압도적인 위력을 과시하며 지배력을 넓히는 것도 전략이다. 하지만 이인자, 삼인자 그리고 그 이하라면 무조건 숨기는 게 좋다.”

“뭐, 대충 무슨 이야긴지는 알겠어요. 본론으로 넘어가요. 이렇게 말하면 너무 길어질 거 같아요.”

“그래.”

련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대장장이 일족은 그런 자들의 입맛에 딱 어울리는 자들이었어. 실력도 좋지만 입이 누구보다 무거웠거든. 덕분에 용무기를 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일족을 찾았어. 결국 의뢰를 독점하게 되었고 노하우도 엄청나게 쌓이게 되었지. 그게 곧 실력으로 이어졌고 말이야.”

“실력도 좋고 입도 무거우니 죽일 수가 없게 되었다 그 말인가요? 제가 일인자였다면 죽여서 더 이상 용무기가 늘어나는 걸 막았을 거 같은데요?”

서준의 말을 들은 련이 물을 한 모금 홀짝 마시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야기가 생각보다 길어져 목이 탄 모양이다.

“뭐 전후가 좀 다르긴 하지만 비슷하다. 입이 무거워서 의뢰를 독점하게 되었고 실력이 생겼다. 그리고 그놈들은 힘에 대한 집착이 상상 이상으로 강한 녀석들이야.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보다 더 벌리기를 좋아하는 놈들이야. 어차피 대부분의 용은 놈들이 잡았으니까. 다른 집단으로 흘러가는 용무기보단 직접 얻는 용무기의 수가 더 많았지. 그 상황에서 용무기를 잘 다루는 일족을 죽일 이유가 있었을까?”

“뭐, 대충은 이해가 갔습니다. 직접 겪은 게 아니라 완전히 이해한 건 아니지만 전후 상황은 잘 알겠어요.”

“그럼 뭐가 문제냐?”

서준 역시 목이 칼칼했는지 물을 한잔 마시며 다시 말했다.

“돈이 문제죠. 이만큼으로 충분할까요?”

서준은 주머니 하나를 꺼내며 련에게 물었다. 지난 탐험 때 련이 주었던 금화들이었다.

물론 상당한 가치를 지니긴 했다. 그러나 용무기를 제작할 정도의 비용이 되는 거 같지는 않았다.

“너 돈 많잖아?”

“그건 지구 돈이죠.”

련이 말하자 서준이 바로 답했다.

“아니 그거 말고 그놈이 준 거 있잖아. 요번에 뒤진 놈.”

“아! 게이트 금괴요? 맞네요! 그거라면 쓸 수 있겠어요.”

게이트 금괴는 애초에 게이트 너머에서 건너온 것이다. 그 말인즉슨 게이트 너머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어느 정도 가져가면 될까요? 한 두 덩이 정도면 될까요?”

게이트 금괴의 가치는 엄청났다. 지구의 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가치를 지녔다.

서준은 그 가치를 대강 비교하면서 련에게 물었다.

“뭐? 두 덩이 미쳤냐?”

“너무 많나요?”

사실 서준이 생각하기에도 너무 많았다.

“적어도 한 궤짝은 들고 가야지.”

“네? 한 궤짝이요?”

“그래. 용무기가 그리 우습드냐?”

“어…….”

생각보다 큰 지출에 서준은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생각보다 비싸네요? 뭐 어쩔 수 없죠.”

어차피 게이트 금괴는 지하벙커 가득 있었다. 한 궤짝 쓴다고 티도 안 난다.

“문제는 그것보다 놈들 눈을 어떻게 피하느냐인데…….”

“그러게요. 그게 걱정이네요. 게이트가 유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텐데…….”

“다시 배 타고 넘어가는 방법도 있지.”

두 번째 게이트 좌표가 유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놈들 역시 련의 위치를 파악했을 테고 부서진 유적의 흔적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주위로는 경계가 삼엄할 것이 분명했다. 만약 그대로 다시 넘어간다면 용무기도 없이 놈들과 싸우는 셈이 된다.

“어! 그보다 사부님. 여기 있어도 되는 거예요?”

“뭐가?”

“여기 있으면 추적 마법 발동되잖아요!”

낭패였다. 련이 재배지 섬으로 넘어와 있는 것도 잊은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용의 시체에 정신이 팔려 기본적인 대비도 못 했다. 그만큼 용이란 것이 서준의 정신을 빼놓기에 충분한 물건이었다.

“괜찮다. 이번 전투를 겪으면서 깨달음을 하나 얻었어.”

“예? 깨달음이요? 마지막 깨달음이 십 년도 더 전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래, 운이 좋았지. 거기에 여의주를 깨웠다. 덕분에 추적 마법쯤은 이제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

“아, 진작 말씀 좀 해주시지.”

“안 물어봤잖아?”

서준은 천만다행이라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다행히 이 장소가 들킬 염려는 없었다.

더군다나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그럼 이제 사부님도 함께 움직이실 수 있겠네요? 앞으로 일이 좀 수월해지겠어요.”

“어차피 앞으로 해야 할 것들은 나 없이 니들끼리는 못 해. 못난 놈들만 따로 보내느라 걱정이었는데 다행이군.”

대장장이 일족도 만나야 했고 거대 집단과 전쟁도 해야 했다. 어차피 련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사실 서준은 대장장이 일족을 찾아가는 것만 해도 걱정이었는데 한 시름 놨다.

“배나 한 척 구해와라. 어차피 돈도 많은데 크루즈 같은 거 좋잖아?”

“고작 하루 가자고 그런 걸 구해와요?”

“헤엄쳐서 갈래?”

“아닙니다! 구해오겠습니다!”

결국 배를 타고 다시 바다를 건너기로 결정했다. 시간을 좀 더 보낸 후 유적 쪽 게이트를 열어보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굳이 위험부담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거기에 시간을 굳이 낭비할 이유도 없었다. 지금도 역시 게이트의 발생 빈도는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한 가지 위안거리는 있었다. 십이지신 괴수들을 모두 잡았다. 적어도 그 정도의 위력을 가진 괴수가 지구로 돌아올 걱정은 덜었다.

이것만으로 큰 수확이었다. 뒤집힌 세상에서 물량보다 무서운 것은 한 개체의 압도적인 강함이었으니까.

“다 끝났습니다!”

“그래, 어디 보자.”

김비서가 정리를 다 끝마치며 소리쳤다. 그 소리를 들은 련이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달려갔다.

련이 저렇게 들뜬 모습은 지금껏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용이란 건 모든 무인들을 흥분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훌륭하구나. 이 정도면 정말 좋은 무기를 만들 수 있겠어.”

“너무 많은데요? 남은 건 어쩌죠? 팔 수도 없고.”

김비서가 손바닥에 묻은 흙먼지를 털며 말했다.

다섯 사람, 호랑이와 신비를 모두 포함한다 해도 총 아홉이었다. 용의 부속은 아홉이 완전 무장하고도 남을 만큼 있었다.

그렇다고 그 남은 걸 팔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구에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는 용의 부속을 어디에다가 판단 말인가?

“이 아까운 걸 왜 팔아? 우리가 다 써야지.”

“이걸 다요? 검만 만들어도 수백 개는 나올 거 같은데요?”

“쯧쯧, 멍청한 놈들.”

련은 저렇게 말하면서도 입꼬리가 귀에 걸려있었다. 앞으로 자신의 손에 쥐어질 검을 상상하는 듯 보였다.

련은 어쩔 수 없는 검사였다. 지금껏 사용하던 무기도 충분히 강력한 무기였다.

애초에 용무기였으니까. 그러나 이제부터 들게 될 무기는 그 이상의 힘을 가진 무기였다.

들어가는 재료의 질과 양부터가 달랐다.

“그놈들이 얼마나 대단한 놈들인데. 이걸 소화 못 하려고? 그냥 이거 전부 다 가져다 바친 다음에 알아서 해 달라고 하면 잘 만들어 줄 거다.”

“그게 무슨 소리여요?”

“용 한 마리를 통째로 다 써서 검을 만든 적도 있는 녀석들이다. 이정도 양을 소화하는 건 문제없어. 무기 하나에 엄청난 힘을 압축할 뿐이야.”

용 한 마리를 통째로 써서 만든 무기라는 말에 서준을 비롯한 모두의 입이 벌어졌다.

생각만 해도 엄청난 무기였다.

그리고 그보다 대단한 것이 대장장이 일족의 실력이었다. 재료란 것은 보통 부족해도 안 되지만 넘쳐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검 한 자루를 만들 때 사용할 수 있는 재료의 양은 어차피 한정되어 있었으니까. 그러나 련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용 한 마리를 모두 사용해 검 한 자루를 만들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럼 우리가 이빨이니 발톱이니 나눈 건 헛수고였네요?”

“꼭 그렇지도 않지. 어찌 되었건 가장 핵심이 되는 재료들이니까. 직접 사용할 무기의 뼈대를 직접 고르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이지.”

이날 련의 입에서는 하루 종일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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