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여의주가 서준을 인정하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련에게 듣기로는 여의주에게 인정을 받은 자들은 자연의 힘을 다룰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그 능력의 크기는 여의주의 주인이었던 용의 생전 힘에 갈린다고 한다.
용이 아주 강력하기로 유명했던 용이었다면 여의주를 취한 인간 역시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고 반대의 경우에는 그만한 힘을 끌어내지 못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상식을 파괴할 정도로 강력한 힘임은 틀림없다.
“그놈들도 여의주를 취했겠죠?”
“당연한 소리를, 놈들은 진정 용에 미친 놈들이다. 용의 유적뿐만 아니라 용이 살아있다는 소문이 들리면 온 세상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찾아내 잡아버리는 놈들이다.”
용이란 게 그런 생물이었다. 기적이 아니라면 설명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날 때부터 엄청난 능력을 지니며 태어난다. 별 탈 없이 수명이 다해 죽었다면 거의 확실한 예언을 남기며 죽는다.
그전에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한다 해도 막대한 잠재력이 담긴 시체를 두고 떠난다.
뿐만 아니라 생전에 사용하던 여의주까지 취할 수 있다.
강력한 힘을 원하는 집단이 용을 멀리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용의 유적을 차지해 미래의 정보를 독점했고 살아있는 용을 죽여가며 힘을 축적했다.
개인의 노력으로는 거의 강해질 수 있는 한계에 도달했던 련조차도 두려워하는 조직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만큼 용이란 건 엄청난 잠재력이었다.
“그럼 놈들 중에는 여의주에 인정을 받은 놈도 있겠죠?”
“당연하지, 그러지 못할 거라면 용을 찾아다닐 이유가 없지. 놈들의 최대 목적 역시 여의주였으니까.”
“그렇군요.”
미래의 정보도 좋았다. 용의 비늘이나 이빨 그리고 발톱 등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무기들도 좋았다.
그러나 역시 용에게서 얻어낼 수 있는 최고의 전리품은 여의주였다.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 그럼 그걸 저한테 양보하신 거네요?”
“나한텐 필요 없는 물건이다. 그래서 줬을 뿐이야. 네 놈 중에 이걸 소화할 만한 놈을 뽑아보라면 너밖에 없었으니까.”
“왜요? 왜 사부님에게는 필요 없어요? 단기적인 전력상승을 놓고 보면 사부님이 취하시는 게 훨씬 좋았을 거 같은데요?”
련은 서준보다 월등히 잘 싸웠다. 같은 능력이 생기더라도 그것을 더 잘 활용할 사람을 뽑아보라면 단연코 련이었다.
큰 전투를 앞두고 있는 지금 상식적인 판단으로는 여의주를 련이 취했어야 맞았다.
그럼에도 련은 여의주를 서준에게 양보했다.
“난 이미 하나의 여의주를 취했으니까?”
“네?”
“못 알아들었나?”
“사부님이 여의주를 가지고 있다고요?”
“그래.”
충격적인 말이었다. 련은 용을 직접 보는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론 련의 할아버지가 용을 사냥한 사람이기는 했다.
무기 역시 용의 비늘을 엮어 만든 검이기도 했다. 그러나 여의주를 취했다는 건 앞의 두 이야기와 범주가 다른 얘기였다.
알다시피 용의 여의주는 천만금과도 바꿀 수 없는 엄청난 기적을 지닌 전리품이었다. 그것을 련이 취했을 확률은 매우 낮다.
“할아버지께선 놈들의 명을 받아 용을 잡으시고서는 여의주를 빼돌리셨다.”
“그걸 놈들이 그냥 놔뒀대요?”
“아니, 내 몸에 추적 마법이 걸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지?”
“아! 여의주 때문인가요?”
“그래, 나는 그날부터 평생 놈들의 손바닥 위에서 살아야 했지.”
이후 이어진 련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여의주에 집착하는 그 집단의 이야기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어린아이에게 추적 마법을 걸어 평생을 관리할 정도의 집념을 가진 집단이었다.
고작 50년 정도 지났다고 련을 포기할 녀석들이 아니었다.
“할아버지께선 용을 잡자마자 용의 꼬리와 여의주를 들고 그대로 도망치셨다. 그리고 평생을 숨어 사셨지.”
“그래서요?”
련은 옛날을 그리워하듯 눈동자를 위로 살짝 올린 채 회상을 이어갔다.
“그리고 아버지가 태어나셨고 시간이 흘러 내가 태어났다.”
“이렇게 스킵하기 있기에요?”
“어차피 별 얘기 없었다. 외부와 차단되어 숨어 살아간 한 남자의 처절하고 비참한 이야기일 뿐이다.”
“그런데도 결혼은 어떻게 하셨네요?”
“자꾸 말 끊지 마라.”
“네.”
련은 다시 감정을 잡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여덟 살쯤 되었을 때였다. 아버지께서는 할아버지의 검을 나에게 물려주셨다. 나는 자기들처럼 숨어 살지 말라고, 훌륭한 검사가 되어서 세상 밖에 서라면서 물려주셨다.”
련은 다 부서진 검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용의 꼬리에 있는 모든 비늘과 가죽을 이용해 만든 명검이었지. 나는 그 검을 들고 할아버지와 아버지께 검을 배웠다. 최고의 스승이셨지.”
할아버지는 용잡이의 선봉에 섰다. 아버지는 그런 할아버지께 평생을 배웠다.
두 사람은 정말 최고의 스승이었다. 련이 어떠한 상황에도 굴복하지 않게 하기 위해 강한 검술을 물려주었다.
“그런데 내 실수였어. 어린 마음에 내 검을 자랑하고 싶어서 마을로 내려갔다.”
“어디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이야기네요.”
“그래, 세상이란 게 꼭 이야기와 다를 것도 없더군. 동네 꼬마들에게 내 검을 보여주며 자랑했지. 그리고 그 소문이 퍼져 놈들이 우리를 찾아왔고 말이야.”
-쯧쯧, 이래서 애는 굶기면서 키워야 해. 좋은 거 다 먹여주면 저렇게 사고 친다니까.
중간에 머릿속에 이상한 놈의 말이 들린 것 같았지만 서준은 들은 척도 안 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도 굉장한 검사셨다. 심지어 할아버지는 그 집단에 속해 있을 때도 집단 내에서 꽤 하던 편이셨지.”
“그렇겠죠. 용잡이도 하셨는데.”
“그래, 그러나 두 분께서도 수적 우위는 어쩔 수 없었어. 결국 할아버지께서는 오랫동안 간직해오셨던 여의주를 나에게 강제로 먹이셨다.”
“오! 저도 오늘 강제로 먹었는…… 으악!”
괜히 장난 한번 쳐 봤다가 서준은 머리를 얻어맞았다. 그 동생의 그 형이라고 서준 역시 오세근과 별다를 거 없었다.
“이후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는 놈들 손에 돌아가셨다.”
“그런데도 놈들 밑에서 일하신 거예요?”
“처음에는 복수할 생각이었다. 놈들 밑에서 힘을 기르고 여의주를 깨워서 강해진 후에 복수할 생각이었다.”
“그런데요?”
“세상이란 게 그렇게 쉽지 않더라.”
련이 지난날을 후회하듯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가 다시 말했다.
“놈들은 나에게 추적 마법을 심었다. 절대 도망가지 못하도록 했으며 놈들의 검으로 자라게 했다. 나는 덕분에 빠르게 강해질 수는 있었지만 평생 시키는 일만 하며 살았지. 놈들의 목적은 하나였다. 내 몸속에 있는 여의주.”
“여의주요?”
“그래. 놈들은 여의주를 빼내기 위해 나를 관리했을 뿐이다.”
“그냥 빼면 되는 거 아닌가요? 뭐 하러 먹여주고 재워주고 그 힘들다던 추적 마법까지 걸었대요?”
“잠들어 있는 여의주를 빼내는 방법은 없었으니까. 여의주를 빼내기 위해선 여의주가 나를 인정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여의주가 깨어날 테니까.”
뒤이어 이어진 설명은 이랬다. 여의주란 것은 한번 사람의 몸속에 삼켜지면 그대로 연기처럼 흩어져 절대로 감지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여의주가 주인을 인정하는 순간 여의주는 다시 하나 된 모습으로 뭉쳐져 몸속에 자리했다.
그렇게 되면 여의주의 소유주를 죽임으로써 여의주를 취할 수 있었다.
“그럼 사부님은 여덟 살 때부터 지금까지 여의주에 인정을 못 받은 거예요? 그걸 저보고 하라고요? 말이 돼요?”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련과 서준의 재능은 비교도 하기 민망할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련이 단련한 시간 역시 서준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길었다.
그럼에도 련은 여의주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게이트의 발생 빈도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서준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서준이 그 시간 안에 여의주의 인정을 받는 건 불가능이나 다름없었다.
“충분히 할 수 있다. 우선 첫째로 직접 잡은 용에게서 얻은 여의주와 그렇지 못한 것에 차이는 분명히 있다. 너는 직접 용을 잡았다. 그러므로 인정받는데 드는 노력과 시간은 상당히 단축될 수 있다.”
“둘째는요?”
“너와 나의 재능 차이가 엄청나다는 거지. 나는 너처럼 멍청하지 않다.”
“갑자기 뭔 헛소리에요? 제 재능이 모자라면 인정받기 더 어려운 거 아니에요?”
물론 재능이 나쁘다는 건 서준 역시 알고 있었다. 그 얘기가 기분이 나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이야기가 이해 가지 않을 뿐이었다.
“아니, 내가 생각보다 엄청 뛰어났다는 소리지. 나는 여의주의 인정을 받지 않은 게 아니다. 내가 인정하지 않은 거다.”
“아! 인정받으면 죽게 될 테니 일부로 숨겨두신 건가요?”
“그래, 놈들도 이 생각은 하지 못했나 보구나. 단지 나와 여의주의 상성이 맞지 않았다고 생각하더군. 덕분에 오랫동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지.”
놀라운 이야기였다. 고작 인간이 여의주를 거부했다. 용의 전력의 대부분이 담긴 물건이었다.
인간이 함부로 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강력한 힘을 스스로 거부한 건 둘째치고도 여의주를 거부했다는 건 쉽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럼 용과 싸울 때 여의주를 사용하셨으면 됐잖아요? 어차피 이제 놈들의 추적을 벗어난 마당에……. 그랬으면 신비가 싸우지 않아도 됐을 텐데요?”
“멍청한 놈. 여의주가 본래 누구 거라고 생각하냐?”
“용이요.”
“그래! 용의 것이다. 용보다 여의주를 잘 다루는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용의 앞에선 인간의 여의주는 평범한 구슬일 뿐이야.”
여의주의 능력은 자연을 다스리는 것이었다. 자연이란 늘상 그랬듯이 인간의 위에 있었다.
첨단기술이 발달한 현대의 지구 역시 자연을 다스리지는 못했다.
댐을 만들고 하천을 정비해도 홍수가 나면 여러 사람이 죽었다. 내진설계를 아무리 잘해도 지진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런 자연을 다스리는 힘을 얻은 인간이 인간의 정점에 서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용에게는 그것이 통하지 않았다.
더 강력한 자연력으로 자연을 통제하면 그만이었으니까.
“잡설은 여기까지 하고 이제 중요한 게 뭔지 알겠지?”
“여의주의 인정을 받는 거겠죠.”
“그래. 놈들은 여의주를 수십, 수백 년을 사용해왔다. 우리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어. 그런 놈들을 이기려면 너와 내가 그 시간을 초월해야 한다.”
“가능할까요?”
“안 되면 죽는 거지 뭐.”
단호한 대답에 서준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죽기 싫어서 여의주 인정 안 하셨다는 분이 죽는단 이야기를 뭘 그리 쉽게 해요? 전 죽기 싫어요.”
“죽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 그러나 더 이상 무엇도 해볼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사는 것보다는 죽는 게 낫겠지.”
서준이 침묵하자 련이 말을 다시 이어갔다.
“너무 낙심하지는 마라. 여의주의 힘은 용의 생전 힘을 따른다고 말했다. 나와 네 여의주는 절대 약하지 않다.”
“악룡은 뭐, 봉인당해 약해지긴 했어도 별의 영혼을 취했으니까요……. 그렇다고 치더라도 사부님 여의주도 그렇게 강한가요?”
악룡은 본래 일반적인 용보다 월등히 강한 존재였다. 단지 아주 사악한 마음을 눈치챈 다른 용이 악룡이 미쳐 성장하기 전 봉인했을 뿐이다.
악룡은 봉인된 상태에서도 별의 영혼을 이용해 아주 강하게 성장했다. 일반적인 용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서준 일행이 이길 수 있던 건 단지 봉인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여의주가 강한 건 인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련의 여의주 역시 강하다는 말에 서준은 놀랐다.
“놈들이 날 안 죽인 이유가 어디 있겠냐? 여의주 하나? 아쉽겠지만 미래의 적이 될 수 있는 싹을 하나 제거한다고 생각하면 싸게 먹히는 거지. 이유는 단 하나야 할아버지께서 잡은 용이 보통 용이 아니셨거든.”
생각보다 련의 할아버지는 대단한 사람이셨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