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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127화 (127/150)

127화.

악룡의 해체작업은 그리 어렵지 않게 끝이 났다.

“네 명이 달라붙으니까 수월하네요.”

“그러게요. 처음엔 너무 커서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근데 진짜 버릴 게 하나도 없네요.”

“그러게 말이에요. 용은 용인가 봐요.”

용의 시체는 정말 버릴 게 하나도 없었다. 살코기는 호랑이들에게 주었다. 호랑이들은 용의 살덩이를 먹는 것만으로 크게 강해질 수 있었다.

이미 성장할 만큼 성장할 상태였기에 먹는 양이 상당했는데 그럼에도 아직까지 많은 양이 엄청났다.

“신기하네요. 썩지도 않고.”

“용이잖아요.”

“그런가?”

용이라는 한 글자에 모든 신비한 일들이 용납되는 그런 날이었다. 용의 고기는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고 항상 신선한 상태로 유지되었다.

아무래도 당분간 호랑이들은 좋은 음식으로 포식할 수 있을 듯싶다.

“약속대로 이건 제 겁니다.”

김비서가 왼쪽 송곳니를 조심스럽게 들며 말했다. 송곳니의 길이가 못해도 20cm는 넘어 보였다.

정말로 어마어마한 길이였다. 특별한 가공을 하지 않고 그대로 창날로 사용해도 될 정도로 날카로웠고 단단했다.

“나는 그럼 이거!”

오세근은 오른쪽 송곳니를 잡아들며 말했다. 역시나 김비서가 들어 올렸던 왼쪽 어금니처럼 어마어마한 길이를 자랑했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왼쪽 어금니는 짙은 파란색이었고 오른쪽 어금니는 아주 샛노란 빛을 띠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두 어금니에는 무언가 다른 점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뭐, 그건 이제부터 알아보면 될 일이었다.

“그럼 저는 이걸 가져가겠습니다.”

모하메드가 오른발의 엄지발톱을 뜯어내며 말했다. 그 모양이 어금니처럼 창날로 쓰기에는 적합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약간의 가공을 하면 못 할 것도 없다. 그대로 가져다 써도 사실 모하메드라면 충분히 잘 활용할 수 있었다. 초승달 모양의 날을 가지고 있는 창도 존재했으니까.

“쯧쯧, 인정머리 없는 놈들.”

그렇게 서로 즐기며 전리품을 나누고 있는 사이 련이 게이트를 넘어 재배지 섬으로 들어왔다.

용의 시체는 련이라도 탐나기 마련이었다.

“사부님은 이미 칼 있잖아요? 이번엔 양보하시죠.”

오세근이 괜히 심통을 부리며 말했다가 역시나 한 대 얻어맞았다.

사실 굳이 양보할 필요도 없었다. 용의 시체에는 수백 개의 이빨과 여덟 개의 발톱이 있었다.

게다가 그 비늘의 양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비늘을 굳이 방어용으로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비늘 역시 충분히 단단하고 날카로워 무기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거 안 보이냐?”

련이 검을 뽑아 들며 날을 오세근의 얼굴 앞에 가져다 대었다.

“으억! 이젠 제자를 칼로 베려고! 사부님이 노망났다!”

“뭣이?”

“악!”

오세근은 또 한 번 괜히 까불었다가 얻어맞았다.

“여기 날을 보라고! 날을!”

“어라? 이거 왜 다 이가 빠졌대요? 이거 짝퉁 아니에요?”

련이 보여준 검의 날은 이미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이가 나가 있었다. 갈아서 되돌릴 수준이 아니었다.

이미 칼의 수명이 다했다고 보는 게 옳았다.

“그럼 용 잡을 때 쓴 검이 멀쩡할 거 같냐? 네놈들처럼 살짝살짝 찔러댄 것도 아니고 이 검으로 벤 비늘만 수천 개다 이놈아!”

“하긴, 내 창도 못 쓰게 됐는데.”

“그런 싸구려랑 비교하지 마라.”

“싸구려 아닙니다.”

“이놈이?”

“아! 싸구려 맞아요!”

더 얻어맞는 건 싫었는지 이번엔 오세근이 꼬리를 내렸다. 오세근과 김비서 그리고 모하메드가 쓰는 창 역시 보통의 창은 아니었다.

모하메드는 이집트의 영웅이었고 오세근은 대한민국 최고 재벌의 하나뿐인 손자였다. 김비서는 그런 오세근이 가장 믿고 있던 부하직원이었다.

당연히 세 사람의 무기가 보통 무기일 리 없었다. 구하기 힘든 아룡의 뼈를 이용해 창대를 만들었고 그 발톱을 가공해 창날을 만들었다.

“그래도 한 대 맞아라! 이놈아!”

“으악!”

세 사람의 창에 재료가 된 아룡의 종류는 물론 모두 달랐다. 아룡이란 건 쉽게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기에 그 재료 역시 한정되었고 원하는 부위로 무기를 만든다는 건 돈이 많아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기가 없어도 지구 최강을 논할 만한 인물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아룡의 무기를 들고 싸웠다.

그럼에도 세 사람의 무기는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되어 있었다.

“드디어 나도 용무기를 갖는구나!”

이러다가 계속해서 얻어맞겠다 생각한 오세근이 화제를 돌리며 용의 어금니를 위로 치켜들었다.

물론 그전에 사용하던 무기도 용무기라고 불리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아룡의 무기였다.

실제로 용을 목격한 사람도 그 시신을 이용해 무기를 만든 사람도 없기에 그리 불리던 무기였다.

그러나 이제는 정말로 진실된 용의 무기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 사용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를 것은 틀림없었다.

“그럼 나는 이걸로 하도록 하지.”

련은 그런 오세근을 무시한 채 용의 시체를 부위별로 모아둔 곳으로 걸어갔다.

그곳에서 련은 용의 왼발을 통째로 들었다. 왼발에는 역시나 네 개의 발톱이 달려 있었고 그 발톱들 역시 모두 색이 달랐다.

“사부님 욕심이 너무 과한 거 아니오?”

“이놈이 덜 맞았나?”

“아! 죄송.”

그렇게 말하면서도 련의 얼굴에선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련은 어쩔 수 없는 싸움꾼이었다. 어쩔 수 없는 군인이었고 어쩔 수 없는 전쟁광이었다.

그런 련이 새로운 무기를 손에 얻었다. 그것도 보통의 무기가 아닌 용의 시체로 만든 무기였다. 기쁘지 아니할 수 없었다.

“뭐가 그렇게 좋으세요? 어차피 이전 무기랑 크게 다르지는 않을 거 아닙니까?”

서준이 련에게 물었다. 맞는 말이었다. 련은 이전에도 용의 부속으로 만든 검을 사용하고 있었다.

“차원이 다르지. 그때는 단순히 비늘 여러 개를 단단히 붙여서 날을 만들었을 뿐이야. 이건 발톱이라고 그것도 네 개나.”

“많이 다른가요?”

“그래, 용의 몸을 덮고 있는 수천 개의 비늘 역시 뛰어나지만 역시 최고를 뽑아보자면 바로 이 발톱들이지. 여기 색이 다른 게 보이냐?”

“네.”

용의 발톱은 오른쪽 왼쪽 해서 총 여덟 개였다. 그리고 여덟 개의 발톱은 역시 모두 색이 달랐다.

“뭐 머리가 있으면 너도 알 수 있겠지. 각각의 발톱이 모두 다른 능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걸 말이야.”

“그 정도야 뭐, 신비도 딱 알아챌걸요?”

“어찌 됐든 네 개의 발톱을 이용해 한 개의 칼날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해봐라. 흥분하지 않는다면 진짜 검사가 아닌 거지.”

“아, 그런가? 근데 저는 맨몸으로 싸우는데 뭘 가져가야 하죠?”

제일 중요한 것이었다. 다른 네 사람은 모두 용의 시체를 이용해 각자 새로운 길을 열 수 있었다.

앞으로 상대해야 할 것들이 악룡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집단이었기에 꼭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서준은 용의 무기를 이용해 강해지려 해봐도 방법이 모이지 않았다. 서준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갑옷이나 입고 다닐까요? 비늘 이거 보니까 엄청 가벼워서 옷에다가 박아넣어도 티도 안 날 거 같은데.”

“그건 너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해야 할 일이지.”

“그런가요?”

“당연하지, 이렇게 많이 남는데 버려서 뭐 하냐. 어차피 용의 비늘과 가죽을 이용해 만든 옷은 일반 옷과 촉감도 외관도 별로 다르지 않아. 그 성능에 천지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건 정말 다행이었다. 말로는 옷이나 만들자고 했지만 외관상 이상했다면 솔직히 말해서 입지 않았을 것 같았다.

예전에 작은 장도리를 가지고 다닌 것도 그런 이유였다. 괜히 칼을 차고 돌아다니는 것은 쪽팔렸기 때문이다.

아직도 서준은 게이트가 열리기 전의 세계에 더욱 익숙했다.

“그래도 공격력의 강화는 꼭 필요한 법이지. 너는 이걸 써라.”

련은 서준에게 동그란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이건 설마 여의주인가요?”

“그래, 지구에도 여의주에 대한 것이 알려져 있나 보구나.”

별의 아티팩트도 여의주를 닮긴 했지만 여의주는 아니었다. 물론 그에 준하는 능력을 용에게 실어주기는 했다.

악룡은 하나만으로 엄청난 여의주를 두 개나 가지고 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봉인이 되어있지 않았더라면 절대 상대할 수 없는 상대였다.

힘이 약화되지 않았고, 선제공격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면 도저히 잡을 수 없는 상대였다.

여의주가 두 개라는 건 일반적인 용보다 두 배는 강하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신기하게 생겼네요.”

“그만큼 신비한 물건이기도 하지.”

여의주는 조금도 모난 곳이 없는 정확한 구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투명한 구 모양인 여의주 속에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어떻게 쓰는 거죠?”

“먹어라.”

“네? 그냥 먹어요?”

“그래.”

련은 대답할 틈도 주지 않았다. 서준의 손에 들어 올려 있던 여의주를 그대로 뺏어 서준에 입에 집어넣고 목젖을 손날로 후려쳤다.

“윽!”

“맛있냐?”

“뭐 하는 짓이에요!”

저도 모르게 여의주를 삼켜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봐도 먹어도 되는 물건처럼 생기지는 않았다.

겉은 유리구슬처럼 단단했고 속에는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먹기에는 꺼려지는 비주얼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몸에 좋은 거야.”

“아니, 아무리 그래도 말은 해 주시지.”

“먹으라고 말했잖아?”

“그걸 말하는 게 아니잖아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서준의 입꼬리는 위로 올라와 있었다. 효과가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용의 여의주였다. 용이 남긴 것들 중에 제일 중요하고 강력한 것이라는 건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었다.

그런 물건을 자기가 차지했다.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근데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요?”

“원래 그래, 여의주가 그리 우스운 물건은 아니야. 그것이 너를 주인으로 인정할 때까지는 아무 효과도 볼 수 없을 거다.”

“주인으로 인정받으면요?”

“그럼 뭐든 할 수 있게 되겠지. 발톱? 이빨? 그런 건 모두 여의주에 부산물에 불가하다. 그것들로 할 수 있는 건 여의주로도 할 수 있게 되어있어.”

사실이라면 엄청났다. 련은 단순히 발톱 네 개를 얻은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해했다.

그런데 그것을 포함해 반대 발과 이빨이 낼 수 있는 모든 능력을 여의주를 통해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사실이라면 서준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인정받는데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그럼 누구한테 묻는데요?”

“나도 몰라, 나도 오늘 여의주 처음 보는데 어떻게 알아?”

“그럼 사용법도 모르는 걸 맘대로 먹인 거예요? 미쳤어요?”

괜히 대들었다가 한 대 얻어맞았다.

“꼭 할 말 없으면 때리시지…….”

“불만이냐?”

“아뇨.”

그렇다고 대들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괜히 오세근처럼 더 얻어맞을 뿐이었다.

“근데 그렇게 좋은 걸 왜 사부님이 안 쓰시고 저 주신 거예요?”

“딱히 이뻐서 준 건 아니다.”

련은 퉁명스럽게 말하며 게이트를 타고 약국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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